〈 277화 〉 27. 나쟈, 또 다시 (11)
* * *
촤악!! 아홉 개의 머리 중 네 개를 검왕검이 찢는다. 하지만 아직 다섯 개가 남아 있었다. 다섯 개의 머리가 백신현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서 배후를 찌른다.
쾅!! 다섯 개의 머리가 턱을 벌린 채 꽂혔다.
파비아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사제!!"
진흙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른다. 그러나 그 사이에 피는 없었다. 쪼개진 다섯 개의 머리가 나란히 하늘을 날았다. 조각조각 찢어져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
조금 늦게 진흙이 가라 앉았다.
파비아가 눈을 크게 뜬다. 백신현은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 손에 검은 없었다. 그의 손에서 홀로 빠져 나온 검이 그의 배후에서 미처 걷어내지 못한 다섯 개의 머리를 쳐 내었다.
검은 구체조차 한 순간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듯 주춤거렸다. 하지만 실제로 입은 데미지는 크지 않다. 아홉 개의 머리를 잃어버린 피해는 대단치 않은 것이다. 본체가 무사한 이상 머리는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으니까.
시꺼먼 구체가 심장의 고동 소리처럼 꿈틀거렸다. 잠시 수축했다가 팽창한다. 다시 한 번 머리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숫자가 더 많다. 아홉 개가 아니라 구십구 개의 머리였다.
홀로 빠져 나왔던 검이 다시 백신현의 오른손에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다리로 쏟아지는 난무 속에 뛰어 들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포효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파비아는 백신현의 입에서 터져 나온 포효 속에서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쏟아지는 뱀의 머리. 그 하나 하나는 사람의 몸통 크기만하다. 그 중 절반을 백신현이 베어내고, 나머지 절반을 그의 손에서 빠져 나온 검이 스스로 베어 찢는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아마 검왕검 내부에 존재하는 진원진기를 끌어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마어마한 강도와 추진력이 느껴졌다.
"……어?"
그런데 이때, 파비아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백신현의 손에서 빠져 나온 검왕검에서 커다란 위화감을 느꼈다.
공중에 떠오른 채 홀로 나부끼는 검왕검의 손잡이를 다른 누군가가 틀어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느낀 위화감인데, 검왕검의 주변만 빗줄기가 튀는 형태가 조금 이상하다. 마치……, 그 자리에 사람이 하나 더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파비아도 자신의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공중에 떠 있는 검왕검을 도대체 누가 쥐고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검왕검의 주인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뿐인데.
"요하네스. 지금 것, 보았나?"
"음, 나도 보았소. 마치……, 또 한 사람의 검사가 존재하는 듯한……"
파비아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위화감을 느낀 건 파비아 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스, 연금술사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
촤악!! 다시 한 번 하늘에 떠오른 검왕검이 십수 개의 머리를 단숨에 잘라 내었다.
그리고……
"어……?!"
그 순간, 검왕검을 쥐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손의 윤곽이 명확하게 잡혔다.
실루엣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여성이었다.
머리카락은 길었고, 색깔은 아마도 흰색.
키는 파비아와 비슷한 정도였다.
얇은 원피스 한 장을 걸친 흰 머리카락의 여성이 검왕검을 쥐고 있었다.
그 얼굴을 파비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의 모습을 갑자기 볼 수 있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자유롭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유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기에 결과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때 파비아는 한 가지 단어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기적……, 이라고.
나쟈는 쉴 새 없이 공격에 들어갔지만 유효타는 없었다. 두 사람의 검사는 서로가 서로의 틈을 지키는 식으로 수많은 공격에 대응했다.
두 사람 사이에 검은 한 자루 뿐이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려운 묘기를 부리듯이 두 사람 사이에서 검이 쉴 새 없이 이동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하나의 검사가 된 것처럼.
「크아아아아!!」
조급함을 느꼈던 것일까. 나쟈가 구십구 개의 입에서 일제히 빛을 쏘았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열기와 밀도를 품고 있어서, 스쳐 지나간 자리에 있는 모든 사물을 절단하는 위력을 보였다.
대지를 찢고, 나무를 가르고, 천공에 있는 구름에까지 손을 뻗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무수한 특급 모험가들이 표정을 찌푸리면서 막아냈다. 위협적인 위력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스치지조차 못했다.
갑작스레 속도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붉은색으로 변질된 마력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붉은 혜성赤?」
두 줄기의 붉은 섬광이 서로 교차하며 십자가를 그렸다.
천변무궁류가 보유한 궁극의 신체 강화 술식.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강하고 굳건하게 보인다.
두 사람의 검사.
두 사람의 천변무궁류.
그것이 서로에게 상승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백신아가 백신현의 힘을 끌어 올리는 형태로 두 사람의 힘은 비약적인 상승을 이루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검사의 포효가 겹쳐졌다.
극한의 신체 능력을 획득한 두 사람의 움직임은 붉은 잔상을 꼬리처럼 끌고 다니며 초고속의 영역에 도달했다.
지금의 그들에게 구십구 개의 머리는 정지한 표적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신현이 검왕검을 옆으로 던진다. 그것을 받아든 백신아가 구십구 개의 머리를 한 순간에 절단했다.
쿵!! 구십구 개의 머리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검은 구체의 표면에 백신현의 발차기가 꽂힌다.
구체는 거대한 크기처럼 무게도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그것이 발차기 한 번에 떠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구체를 향해 백신아가 질주한다. 초고속의 횡 베기, 구체가 둘로 쪼개진다.
공격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휘두르고 휘두른다. 콰직!! 둘로 쪼개졌던 구체가 다시 둘로, 촤악!!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여덟 조각으로 찢어진 구체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강하게 달라 붙는다.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하지만 한계는 보였다.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도.
「그렇다면……」
"부서질 때까지 때려 부순다!!"
백신아가 공중에서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두 사람의 검사가 한 순간 교차했다. 그 사이에 검왕검은 다시 백신현에게 돌아와 있었다.
천천히 낙하하던 검은 구체를 노리고 검을 휘두른다. 마치 4번 타자처럼. 쾅!! 검은 구체가 지면과 수평한 방향으로 빠르게 날았다. 쾅!! 추적해서 한 번 더 후려친다. 검왕검이 타격한 지점이 움푹 들어가서 참혹한 흔적을 만들었다.
쾅!!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구체가 지면에 꽂혔다. 그대로 깊이 들어간다. 충격은 그 자리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일대를 마치 싱크홀처럼 가라앉게 만들었다.
루이스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백신현과 백신아가……, 함께 싸우고 있다니……!!"
완벽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하다. 그저 호흡이 잘 맞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은 정말로 하나의 몸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의 그들은 둘이서 하나인 검사였다.
콰직!! 백신현이 검왕검을 그대로 집어 던졌다. 칼날은 구체의 표면에 깊숙히 박혔다.
두 사람은 눈짓 하나 없이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그들은 둘이서 하나인 검사.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데 신호는 필요 없다.
쾅!! 검의 손잡이에 두 사람의 뒷꿈치가 동시에 꽂힌다. 모든 힘과 속도를 실은 뒷꿈치 찍기, 검왕검은 그대로 구체를 뚫고 지면에 꽂혔다.
진동이 느껴진다. 나쟈의 활동으로 주변의 지반이 약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쟈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검은 구체가 발악하듯 꿈틀거린다. 반격이 아니라 후퇴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대로 지면 아래로 숨어들어서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다.
「도망치게 놔둘 것 같아요!?」
표독스럽게 소리치며 백신아가 오른발로 바닥을 세게 내딛었다. 진각?의 일종이었다. 충격은 퍼지지 않고 검은 구체에 집중되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주변의 땅덩어리와 함께 다시 한 번 구체가 둥실 떠오른다.
쾅!! 백신현이 재차 공격을 가했다. 아래에서 위로 걷어 올리는 듯한 올려차기. 그 거대한 덩치가 거짓말처럼 높이 상승했다.
"……."
바닥에 꽂힌 검왕검을 뽑아 내면서 백신현이 시선을 돌린다. 그 또한 자신의 눈앞에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의 곁에는 얇은 원피스를 나부끼는 백신아의 모습이 있다.
기적 같은 건 아니다.
검왕검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진원진기를 뽑아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시적인 현상일 뿐.
하지만 매우 가능성이 낮은 현상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백신현의 표정이 눈에 띄는 격정이 흘러 넘쳤다. 그는 아주 잠시 뿐이었지만,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어진다.
"각별한 기분이야. 너와 이렇게……,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처음이잖아."
「네, 저 또한 같은 기분입니다. 실로……, 기분이 좋아요.」
두 사람은 표현이 조금 다를 뿐,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그들은 둘이서 하나인 검사이니까.
「그만 마무리하도록 하죠. 최후의 적을 쓰러트리는데 걸맞는 기술로.」
"그래, 끝내자."
백신현이 검왕검을 크게 뒤로 젓힌다. 그 자리에 마력의 기류가 모인다.
모인다. 뭉친다. 한 점에 집중되어서 초고밀도의 칼날을 벼텨낸다.
그의 곁에서 백신아는 기술을 보조하고 있었다. 양 손바닥을 칼날에 가져간 상태로 조금 더 강하고, 조금 더 날카롭게 기술을 다듬어 나간다.
파직파직파직파직!!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그 기술은 상당한 영향력을 펼쳤다. 대기가 큰 압박을 느끼며 소리를 토해내고, 지면에는 균열이 달렸다.
무시무시한 열기가 집중된 탓에 빗줄기마저 흐릿해졌다.
쾅!! 마치 벼락이 터진 듯했다.
"……."
기술을 유지한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나쟈는 하늘에 떠 있었다. 마력을 분사해서 자세를 제어하려 하였지만, 의미가 없었다.
이 공격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나쟈가 어느 쪽으로 피하더라도 공격 범위 안이다.
이것은 천변무궁류가 보유한 세 개의 필살검 중에서도 최고의 위력과 타격 범위를 가진 절초이니까.
"간다."
「네.」
마지막 순간, 백신아는 검에서 손을 떼고 떨어졌다. 자신의 차례는 이제 끝났다는 듯이.
백신아를 홀로 남겨둔 채 천변무궁류의 필살검이 시작된다.
천변무궁류?????
일식필살검一?必??
홍?
초신성???
빛이 달린다.
빛이 가속한다.
나쟈는 단 한 순간조차 그 빛을 막아서지 못했다.
접한 순간 지워져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초고밀도로 뭉친 상태로 쏘아 올려진 섬광은 천공의 날씨마저 갈아 엎으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아……"
파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비가……, 그쳤다…….
* * *
"신아야."
「말씀하세요, 검주.」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네.」
백신현이 백신아를 돌아본다.
조금 전과 비교해서 백신아의 모습은 눈에 띄게 흐릿했다.
그리 길지 않은 전투였음에도 많은 것을 소모한 듯한 인상이다.
앞으로 그녀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조차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해져 온다.
그러니까……, 지금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와 싸워줬으면 해."
「검주……」
"마지막이잖아."
그가 살짝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네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신현, 25세의 여름.
그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 될 싸움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