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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74화 (274/287)

〈 274화 〉 27. 나쟈, 또 다시 (8)

* * *

"……!!"

칼날이 나쟈의 목에 꽂혔다. 하지만 위력이 부족했다. 칼날이 나쟈의 가죽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겨우 절반 정도 파고든 시점에서 검이 멈추고 말았다.

마력이 문제였다. 그 때문에 천변무궁류의 제삼검도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제대로 발휘되었더라면 나쟈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샤아!!」

칼이 멈춘 틈을 타서 나쟈가 반격에 나선다. 오른손으로 번개의 창을 쥐고 앞으로 내지른다.

초근접 거리, 회피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회피했다. 백신현의 전신에 붉은 마력이 휘몰아친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 현존하는 모든 강화 술식 중에서 최대의 강화효율을 가진 기술이다.

끝장을 내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챈 시점에서 백신현은 미련 없이 검을 포기했다. 제삼검을 해제, 그리고 검을 놓은 후 제이검으로 이행했다.

어차피 검을 회수하려 해도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단단하게 고정된 상태였다.

때에 따라서는 검왕검조차 손에서 떼어놓는 일이 잦은 남자다. 검왕검이 아닌 검을 포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완벽하게 회피한 것도 아니다. 백신현의 가슴팍에 가로로 일 자의 상처가 새겨진다.

피가 조금 늦게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한 번 공격을 헛친 시점에서 백신현의 차례가 돌아왔다. 파직, 전신을 휘어감은 붉은 마력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제삼검이 그러했듯, 제이검 또한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최대 출력도 낮은 데다가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스으, 하아."

불평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될 걸 각오하고 도전한 싸움이니까.

마력은 다룰 수 없지만, 백신현의 무기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지난 1년 간, 백신현의 기량은 쉬지 않고 발전했다.

"흐읍!!"

짧은 기합과 함께 다시 한 번 백신현이 움직인다. 뱀 인간, 나쟈의 목에 아직 칼이 꽂혀 있는 지금이 기회다.

쿵!! 허리춤에서 검집을 뽑아내서 아직 목에 꽂혀 있는 검을 후려쳤다. 마치 못과 망치처럼. 충격에 의해 검집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검은 그대로 쑥 들어간다.

나쟈의 목, 그 깊은 곳까지.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았다.

나쟈의 두꺼운 목이 한 번에 절단되었다.

* * *

힘들다.

뱀 인간의 머리가 날아가고, 머리 잃은 몸뚱이가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부활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핵도 제대로 보인다. 멀리 날아간 머리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끝까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해제했다.

다른 기술과 비교해서 제이검은 특히 몸에 걸리는 부담이 크다. 실제로 유지한 시간은 2초에서 3초 정도에 불과했음에도 전신이 찌르듯이 아프다.

금방이라도 주저 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직 안 된다. 나쟈의 핵을 확보하기 전까지 쓰러질 수 없다.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멀리 굴러간 나쟈의 목을 들어올렸다.

나쟈의 핵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애초에 생포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다. 나쟈가 어떤 식으로 파비아의 광증에 개입했는지.

해신과 닮은 점을 고려하면 아마 유사종이기 때문에 간섭할 수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추측은 추측이다.

어설픈 호기심이 남았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백신아니까.

나쟈의 핵을 추출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역시 상태가 안 좋다. 몸이 비틀거리던 그때, 파비아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부축했다.

"사제……, 고생했어."

"이제 일어날 수 있겠어?"

"응……, 아직 머리는 조금 아프지만."

파비아가 살짝 표정을 찌푸린다. 파비아는 표정을 숨길 줄 모른다. 아직 조금 아프긴 한 것 같다.

"사제는 진짜 센 것 같아……. 난 방해만 된 거 같은데."

"너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어. 하필 그때, 또 한 사람의 파비아를 힘을 빌리려다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야."

차라리 파비아가 자신의 힘으로 싸웠더라면 내가 고생할 필요도 없이 순조롭게 쓰러트릴 수 있었을 거다.

또 한 사람의 파비아와 다르게, 여기에 있는 그녀는 광증에 내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남의 힘을 빌려서 싸우려고 했던 게 잘못된 거야."

파비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늘의 싸움이 파비에에게 교훈을 안겨준 것 같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또 한 사람의 네가 가지고 있는 힘도 너의 힘이니까. 너무 의존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쓸 수 있는 힘을 내버려 두는 것도 멍청한 짓이야."

파비아가 이번 일로 얻은 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시련을 경험할 때마다 인간은 강해진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생각해. 네가 노력해서 손에 넣은 힘으로 이길 수 있다면 그게 최고지. 그러다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그 힘을 쓰면 되는 거고. 둘 다 너 자신의 힘이야, 어느 한 쪽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어. 거기다가 애초에."

나는 가볍게 숨을 토해내며 덧붙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싸움 중에서……, 사실 수단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싸움은 없었잖아. 안 그래?"

"……."

파비아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후, 그것을 숙고하며 고민하는 태도였다.

잠시 침묵하던 파비아가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나중에……, 사제랑 좀 더 대화하고 싶어."

"그래, 나머지는 나중에 하자. 나쟈의 핵부터……, 추출해야지……."

파비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단검으로 나쟈의 머리를 가른 후, 내부에서 핵을 뽑아냈다.

나쟈의 핵이 상하지 않게 장갑을 낀 손으로 천천히 집어든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훌륭하다……. 역시 허유 님을 쓰러트릴만 하구나…….」

도대체 어디에서? 소리는 내 오른손에서 들렸다.

나쟈의 핵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목표에 눈이 흐려진 탓일까. 아니면 이러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의 핵에 집착한 것이 실수가 되었구나.」

실수.

그 말을 들은 순간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아차 싶었다.

놈의 말처럼, 나는 나쟈의 핵에 너무 집칙한 탓에 눈이 조금 흐려져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제! 갑자기 왜 그래?!"

파비아에게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전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나쟈의 핵이 말하는 소리는 듣지 못한 것일까. 이 와중에 새로운 정보가 새로 추가되었다.

그 짧은 사이에 머리를 굴린다. 고민한다.

판단을 끝마치고 행동에 이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비아. 지금 당장 짐을 챙겨서 후퇴해."

"그건 무슨 소리야? 사제는?!"

"나쟈의 핵이 나를 침식하고 있어. 마력이 내 쪽으로 넘어오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 예를 들어, 지금 내 팔을 잘라서 핵을 몸에서 떼어내거나, 이 핵 자체를 파괴하더라도 침식이 멈추진 않을 거야."

흥분하면 안 된다. 최대한 침착하게, 지금의 상황과 대응책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파비아의 판단력은 좋은 편이 아니다. 내가 흥분한 상태로 전달하면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해신의 핵을 뽑았을 때도 핵의 오염 정도가 너무 심해서 고생 했었어. 그런데 지금의 나쟈는 그 이상……,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나의 육체를 차지하려 하고 있어."

말이 조금씩 빨라진다. 파비아가 제대로 알아 듣기만을 기도한다.

"다행히 마력의 흐름은 아직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야. 천변무궁류의 요령을 써서 최대한 침식을 늦춰 보겠어. 그러니까 너는 어서 루이스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큭!!"

파직!!

그 순간, 나쟈의 핵에서 검은 불꽃이 튀었다. 파비아도 그제서야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 것 같다.

"어서……, 서둘러!! 제때 구해내기만 하면 나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금방, 금방 다녀올게!!"

파비아가 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돌린다. 그거면 충분했다. 파비아의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와줄 것이다.

"……."

지금까지는 나쟈의 핵을 두고 쟁탈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파비아와 단둘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젠 의미가 없었다.

이 나쟈의 핵은 쓸 수 없는 물건이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나쟈의 핵과 전혀 다르다.

핵의 형태를 한 함정에 가깝다.

핵에 접촉하면 그대로 마력을 밀어 넣어서 육체를 침식하는 구성의 함정이다.

나쟈의 핵에 집착하던 나는……, 보기 좋게 함정에 빠져 버린 셈이다.

핵을 아예 파괴해버렸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빌어먹을……"

나쟈의 핵을 한 손으로 틀어쥔 상태로, 나는 거칠게 입술을 비틀었다.

함정에 빠진 건 상관 없다. 함정 자체는 예상외였지만, 나쟈 자체의 힘은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도 천변무궁류의 요령을 통해서 저항하고 있다.

나 자신의 안전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나쟈의 핵은 쓸 수 없다. 이미 마력 대부분이 내 육체에 주입된 탓에 빈껍데기 상태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나쟈의 핵에서 주입된 마력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마력 자체에 의지가 있어서, 내 육체를 침식하는 상황이니까.

나쟈의 핵은 내게 있어 희망이었다. 백신아를 구할 수 있는 최후의 희망.

그 희망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백신아는, 구할 수 없다…….

"나보고……, 포기하라는 건가……."

이를 바득 갈았다.

나쟈의 핵은 나의 손끝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애초부터 껍데기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대신, 나의 전신을 시꺼먼 마력이 휘어감기 시작했다.

마치 촉수처럼 내 몸 여기저기에 달라 붙은 채, 침식에 들어간다.

나는 저항하고 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천변무궁류의 모든 요령을 동원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침식에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도무지 지금의 격정을 참을 수 없었다.

괴로움과 분함이 칵테일처럼 혼합되어서 형용할 수 없는 거무칙칙한 감정을 뱉어냈다.

시꺼먼 마력은 발밑으로 모여들어서 조금씩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체였다. 검은 구체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나의 육체를 휘어감고 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신아의 죽음을……, 나보고 인정하라고……?!"

그 뒤의 말은 차마 이어지지 못했다.

부피가 급격히 증폭된 검은 구체가 그대로 나를 삼켜 버렸음으로.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력 침식의 고통 속에서,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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