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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73화 (273/287)

〈 273화 〉 27. 나쟈, 또 다시 (7)

* * *

머리가 없어진 나쟈의 몸통, 그 단면에서 뱀과 인간을 섞은 듯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처음 보는 광경임에도 묘하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내가, 저런 걸 어디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런 걸 고민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쟈의 내부에 또 하나의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는 게 드러났으니까.

고개를 든다. 하늘로 날아오른 나쟈의 머리,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쟈의 머리조차 껍데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핵이 보이지 않는다.

"본체는 저쪽인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 외침을 파비아도 들었을 것이다. 굳어 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비아는 물러서지 않고 곧바로 추가 공격에 들어갔다. 현재, 파비아의 머리카락은 흰색. 타격력이 높은 형태였다.

콰직!! 지독한 소리였다. 파비아가 머리를 후려친 직후 뱀 인간은 그대로 단면에서 뽑혀 나와서 먼 거리를 날아갔다.

몸통 아래에 숨겨져 있던 하반신이 보인다. 하반신은 아예 뱀이었다. 다리가 없고, 몸통과 꼬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몸통의 좌우로 뽑혀 나온 양손에는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다.

뱀 인간은 타격이 크지 않았는지 지면 위로 쫙 미끄러진 직후 자세를 고쳐 잡고 이쪽을 노려본다.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제……."

파비아가 흘끔 나를 돌아보며 시선을 살핀다. 아마 내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거겠지.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마지막 힘, 또 다른 한 사람의 파비아가 가지고 있는 힘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나쟈가 숨기고 있는 최후의 밑천일 테니까.

"……그래!"

파비아와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마지막 힘의 해금을 허락했다.

"응!! 알았어!!"

이것은 파비아가 보여준 두 가지의 전투 형태와 다르게 겉모습이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전투 능력의 상승은 앞선 두 가지 전투 형태와 비교해도 훨씬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저 상태의 파비아는 허유의 분신과 호각에 가까운 수준으로 맞서 싸울 수 있다.

틀림없이 나쟈를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

갑자기 파비아가 갈색 머리카락의 기본 형태로 돌아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둘로 분리되었던 검이 하나로 돌아오면서 파비아의 왼손이 비었다. 파비아는 그 왼손으로 자기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그때, 내 시선에 파비아를 향해 오른손을 뻗은 나쟈의 모습이 보였다. 나쟈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하지만 모르겠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지금, 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불과 수 미터도 되지 않는다. 뭔가 마력적인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파비아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일텐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접근해서,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나는 파비아를 향해 달려 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파비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달려 가면서 나 자신의 전력을 다시 확인한다.

마력의 기류는 내게 유리한 흐름이다. 하지만 극적이진 않다. 코어가 정지된 나는 얼마 전의 나 자신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극단적인 슬로우 스타터가 되었다.

아마 특급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움직이지 않으면 활로를 열 수 없는 국면이다.

"백신……, 현……"

그때, 뱀 인간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놈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주먹에 벼락이 꽂혔다. 벼락의 창, 저것이 뱀 인간의 무기인 것일까.

경직된 파비아를 향해 벼락의 창이 꽂히려 하였다. 그것을 검으로 받아친다.

칼끝에는 푸른 마력이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다. 마력이 부족한 탓에 어설픈 형태로 발동한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었다.

이때, 뱀 인간과의 거리는 불과 수십 cm에 불과했고, 파비아와의 거리도 상당히 가까운 상태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뱀 인간 쪽에서 파비아를 향해 정체 모를 마력이 쏘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익숙하다.

허유.

격하의 존재로 하여금 피를 쏟게 만들었던 허유의 마력파와 특히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하나 있다. 파비아는 허유의 마력파 앞에서도 큰 피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격조 높은 존재였으니까.

눈앞의 뱀 인간이 보유한 전력은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허유에게 미치지 못한다.

도대체 어째서.

허유와 뱀 인간의 차이는 뭐지?

"……해신인가."

푸른 칼날의 검과 번개의 창이 서로 맞물리면서 불씨가 터졌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나쟈와 해신은 공통점이 많았지……. 설마, 너희 둘이 비슷한 계통의 존재이기 때문에 파비아의 몸에 저런 문제가 벌어진 건가?"

나쟈와 해신, 대지의 뱀과 바다의 뱀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머리에 왕관을 닮은 장식을 붙이고 있다는 점까지 같았다.

허유조차 간섭하지 못했던 파비아의 광증에 뱀 인간이 간섭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파비아에게 광증이 발생한 원인은 바다 뱀, 해신에게 있었으니까.

그리고 파비아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한 사람의 사저는, 아직 광증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신과 나쟈의 뱀이 닮은 계통의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허유와 달리 파비아의 광증에 간섭할 수 있는 거라면……?

실제로 뱀의 경우,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도 수혈이 가능할 정도로 그 스펙트럼이 넓다.

나쟈와 해신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경우 상황이 상당히 곤란해진다.

파비아에게 있어, 나쟈는 최악의 상성이라는 소리가 되니까.

차라리 또 한 사람의 파비아에게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맞서 싸웠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파비아는 광증에 시달리는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격.

광증에는 내성이 있을 테니까.

"큭!!"

샤아아아, 뱀 인간이 갈라진 혀로 소리를 뿜었다. 나쟈의 크기는 줄어 들었지만 힘은 거의 그대로였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

아니, 꼭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검이……, 못 버티고 있다……."

온힘을 쏟아도 모자랄 상황에서 나는 오히려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이 이상 검에 힘을 공급할 수 없다. 검 자체가 견딜 수 없다.

"샤아!!"

뱀 인간이 번개의 창을 크게 휘두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밀려나간 몸이 파비아와 충돌했다. 서로 겹쳐진 채, 그대로 수십 미터를 미끄러졌다.

"아윽!!"

충돌, 격돌. 파비아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것은 깜짝 놀란 탓에 나온 소리였다. 파비아는 여전히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이쪽의 고통이 더 커다란 것 같았다.

파비아가 무력화된 지금, 싸울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속으로는 초조했지만 표정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나쟈는 인간 사이즈로 부피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속도를 얻었다. 다리 대신 몸통과 꼬리로 움직이는 탓에 은밀성도 높다. 움직임을 읽어내는 게 쉽지 않다. 내게도 처음 붙어보는 유형이었으니까.

일일이 계산하고 움직이면 늦다.

계산 과정을 최대한 짧게 단축한 후,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다!

"……!!"

나쟈를 쫓는다. 주변의 나무는 모조리 쓸려 나간 상태이고, 바닥도 울퉁불퉁해서 지상 기동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나쟈는 그런 지형적 장애를 모두 무시했다. 움직임은 기민하고,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내 시야가 비치는 모든 영역에 나쟈의 잔상이 잡혔다.

잔상은 꼬리를 길게 끌면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삿된 것의 침입을 막는 금줄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체는 하나. 시시각각 번개의 창이 이쪽으로 투척되었다. 그것을 투척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읽어내고 대응에 나선다.

그때마다 검이 비명을 질렀다. 빠직, 빠직, 빠직, 빠직, 표면이 쉴 새 없이 균열이 내달린다.

장기전은 힘들다. 천변무궁류의 요체는 장기전에 있지만, 언제나 그것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대로 내가 시간을 끌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나쟈의 핵을 가져갈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시간을 끌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최대한 빠르게 끝장을 봐야 한다.

"……파비아, 상태는 어때?"

"몸이……, 안 움직여……."

파비아가 분한 듯 목소리를 가라 앉혔다. 하지만 호흡은 무사히 기능하고 있고, 마력도 살아있다. 전투만 할 수 없다 뿐이지, 공격이 들어와도 어찌어찌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될 것 같다.

물론 파비아에게 전투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용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파비아. 잠시 뒤에 내가 신호하면 마력을 방출해서 흙먼지를 일으켜줘."

"흙먼지? 눈을 속이려구? 하지만 마력으로 다 감지를 할 텐데……"

파비아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이지만 내가 부탁하면 무리해서라도 마력을 사용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사제로서, 사저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괜찮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있어."

* * *

백신현의 신호는 정확히 그로부터 10초 후였다.

일상적인 평범한 모션 속에 신호가 숨어 있었다. 백신현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던 파비아는 그 신호를 캐치한 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마력이 방출되는 것과 동시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진다. 파비아도, 나쟈도, 그리고 백신현까지 먼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안 된다. 아무리 은밀하게 위장한다고 해도 마력에 의한 감지는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먼지 속에서 나쟈와 백신현의 모습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역시……, 어?'

그때, 파비아의 감각이 이상한 상황을 캐치했다.

하나, 둘, 셋.

감각에 잡힌 백신현이 하나가 아니었다. 모두 합쳐서 셋. 파비아는 아차 싶었다.

그런 기술이 백신현의 천변무궁류에 존재했다.

「…….」

나쟈 또한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검을 든 인간의 기척이 셋. 그리고 세 가지 기척이 모두 동일한 인간의 기척이다.

셋으로 갈라진 기척이 동시에 나쟈를 향해 움직였다.

아마 특수한 술수를 사용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나쟈는 뱀 인간. 뱀의 높은 감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셋 중에서 가장 마력이 높은 쪽을 식별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흙먼지 속에서 세 명의 백신현이 동시에 나쟈를 향해 파고들었다.

속도가 무척 빠르다. 이 또한 특수한 술수를 사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셋 모두를 파괴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셋 중 둘을 파괴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셋 중에서 마력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둘을 꼬리와 번개의 창으로 각각 꿰뚫었다.

그런데 감촉이 이상하다.

인간의 육체를 파괴한 것 같지가 않다.

「……!!」

그 순간 셋 중 두 사람의 백신현이 사라졌다. 마력을 통해 구축한, 질량을 가진 잔상이다.

나쟈가 관통한 것은 어느 쪽도 잔상이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 삼렬성. 그것은 최대 두 개까지 질량을 가진 잔상을 구축해서 적을 속이는 환검??이다.

그러나 나쟈는 그 와중에도 예민한 감각으로 마력의 차이를 구분했다. 이것이 실수였다.

지금의 백신현은 코어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잔상보다도 보유하고 있는 마력이 적다.

코어의 기능 정지라는 커다란 약점을 오히려 이용해서 배후를 쳤다.

"……대단해."

파비아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눈으로 본 건 아니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상황을 이해했다.

천변무궁류는 강력한 검술이다. 제대로 다루기만 한다면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주어진 상황을 한계까지 활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약점마저도 역으로 이용해서 최대한의 이득을 본다.

'호랑이에 날개……, 사제에게 천변무궁류……'

그녀의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그러한 문장이 스쳐 지나간다.

'사제는……, 스승님이 기다리던 사람일지도 몰라……'

파비아 자신조차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그 직후, 백신현의 검이 나쟈의 목에 꽂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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