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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72화 (272/287)

〈 272화 〉 27. 나쟈, 또 다시 (6)

* * *

검을 뽑는다. 대단한 검은 아니었다. 좋은 검이긴 해도 검왕검이나 루이스의 검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그런 물건이다.

이것이 아마 내가 외팔이로 싸우는 최후의 싸움이 될 것이다.

나는 진동이 감지된 방향을 주시하며 파비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쟈는 특수한 독기를 뿜는 성질이 있어. 그것 자체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지만 한 번 체내에 흡수해서 해독한 뒤, 다시 접하면 급격한 알레르기 반응과 함께 호흡 곤란이 찾아오는 성질이 있지."

"사제는 괜찮아?"

"1년 동안 선생님도 많이 발전했거든. 완전히 효과를 없앨 수는 없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어. 그리고 결국 독기에 접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마력의 기류를 조작해서 독기를 밀어내기만 해도 위험하진 않지."

이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낫다. 1년 전의 내게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으니까.

거기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

나는 이 자리에서 빠지고, 파비아 혼자서 싸우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온갖 리스크를 담보한 채 여기에 서 있다.

파비아는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만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편이 훨씬 더 승산을 높일 수 있다.

지금의 나쟈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존재이다. 그 정체를 모르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파비아와 나는 각자 서로 다른 허브를 입에 물었다. 서로의 종족과 나타나는 증세가 다르기 때문에 요구되는 허브 또한 다르다.

"일단, 파비아 너는 어느 정도 힘을 아껴 두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데다가 한 번 힘을 제대로 쓰면 너도 퍼져 버린다면서."

"그건 그렇지만……, 뱀이 사제 생각보다 강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내가 너를 보조해서 맞서 싸울 수 있을 거야. 내 검술은 합격진에도 잘 맞으니까."

내가 파비아의 전투 능력을 끌어 올리고, 높아진 파비아의 전투 능력에 편승하는 식으로 나 자신의 전투 능력을 상승 시킬 수도 있을 거다. 조금 어렵긴 하겠지만, 그것이 최선이다.

"넌 늘 하던대로 싸워. 보조는 모두 내가 할게."

"……응. 위험한 짓 하면 안 돼?"

"그건 걱정하지 마."

짧게 대답한 뒤 고개를 돌린다.

조금씩 진동이 가까워진다. 방향과 거리가 명확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

파비아는 어느 시점부터 말이 없어졌다. 겁을 집어먹은 것은 아니다. 입꼬리가 흉악하게 일그러지고 눈매에 예리함과 차가움이 스며든다.

그것은 어느 새 사냥감을 앞에 둔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쿵!! 그 순간 나와 파비아의 눈앞에서 대지가 쩍 찢어졌다. 거대한 뱀이 지면을 아래에서 뚫고 솟아 올랐다. 몸을 휘어감은 시꺼먼 가죽, 어둠 속에서도 빛날 것 같은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머리에는 왕관을 닮은 장식이 붙어 있다.

명백히 현실에 실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화의 한 장면 속에 떨어진 듯한 고고함과 기품이 느껴진다.

"……."

다르다.

내가 일찌기 쓰러트렸던 나쟈의 모습하고도,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쓰러졌던 완전한 나쟈와도 다르다.

그러나 그 힘에 손색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그 어떤 나쟈보다도 거대하고 웅장한 자태를 느낀다.

어쩌면 이것이 나쟈의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크……」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쟈의 포효와 동시에 나와 파비아가 움직였다.

모든 것이 이 싸움으로 끝나기를, 나는 소리 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 * *

"……."

파비아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 시선의 원인은, 나쟈가 전혀 독기를 뿜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전신을 강철 같은 갑옷으로 덮은 대가로 독기를 상실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별개의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현 시점에서 나쟈는 전혀 독기를 뿜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밀어 붙인다. 물론, 방심하지 않고.

카득!! 공중에 높이 떠오른 파비아의 몸뚱이가 여러 차례 점멸하더니 머리카락의 색이 변했다. 그것은 밝게 빛나는 붉은색, 명도가 너무 높은 탓에 분홍색으로도 보일 수 있는 눈부신 색채다.

파비아의 검은 좌우로 쪼개져서 양쪽 손등에 결합되어 있었다.

검을 둘로 쪼개고, 최고 속력과 순간 속력을 높이 상승시킨 고속 전투 형태.

"가우우우!!"

고음의 하울링과 함께 파비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붉은색 잔상은 남았다.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끌려서 나쟈의 전신에 붉은 상처를 새긴다. 파비아가 지나간 흔적이었다.

상처는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 치명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쟈의 가죽이 두꺼운 것일까. 지금의 파비아는 딱 특급 평균 수준의 출력을 가지고 있는데, 조금 위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역대 최강의 나쟈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때, 나쟈의 전신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비늘이 모습을 바꾸었다. 수백 개의 비늘이 길쭉한 주둥이를 가진 기둥으로 변했다.

기둥에는 구멍이 있다. 구멍이 뚫린 검은 기둥, 그것은 대포의 포신을 닮아 있었다.

수많은 포신이 일제히 빛을 쏘았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광량을 가지고 있어서, 태양에서 쏟아지는 햇빛조차 흐리게 보일 지경이었다.

속도가 빠르고 양도 무척 많았던 탓에 파비아의 공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게도 몇 발이 쏟아졌지만 견제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대부분의 공격이 파비아에 집중되어 있다.

조금 곤란한 상황이다. 파비아의 진짜 힘을 쓰면 해치울 수 있겠지만, 비장의 카드는 원래 아껴둬야 한다.

즉, 지금은 나의 차례였다.

검을 높이 들어올려서 휘두른다. 천변무궁류의 원리로 하늘을 가르는 섬광의 궤적을 틀었다.

"구!!"

그 순간 파비아가 여유를 얻었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꾼 파비아가 나쟈의 비늘을 깎아내듯이 표면을 훑었다.

두 주먹을 맞붙인 채 정면으로 내지른 자세였다.

까가가가가가가각!! 표면에 돋아있던 포신의 상당수가 무식하게 뜯겨 나간다.

나쟈는 이 행위에 매우 기민하게 반응했다. 머리를 높이 들어올린 후, 바닥을 향해 처박으면서 지하로 몸을 숨기려 하였다.

지하는 나쟈의 홈 그라운드. 나쟈는 싸우기 쉬워지고, 우리는 싸우기 어려워진다. 지하로 파고들게 놔두면 안 된다.

"파비아!!"

"응!!"

천변무궁류의 행사와 동시에 파비아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만으로도 파비아는 지금 자신의 몸에 벌어진 현상의 원인을 눈치챘을 것이다.

마력의 흐름을 파비아 방향으로 유도해서 파비아의 몸에 속도를 더했다.

나쟈의 머리가 지하로 파고드는 것보다 빠르게, 파비아가 그 앞에 도달했다.

파비아의 머리카락이 색을 바꾸었다. 갈색, 파비아의 기본 상태다. 붉은 머리카락의 파비아는 속력이 높아지지만 힘은 오히려 약해진다. 종합적인 밸런스는 오히려 갈색 머리카락일 때가 가장 훌륭하다.

끼이이이이익!! 나쟈의 몸뚱이가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원인은 파비아였다. 나쟈의 움직임을 아예 틀어막고 있었다.

하지만 힘으로만 가능한 재주는 아니었다. 애초에 파비아가 완력으로 버틴다 쳐도 무게 차이가 너무 커서 파비아 째로 지면에 처박혀야 말이 되니까.

전신의 땀샘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에 달라 붙어 있었다. 그 범위는 상당히 넓고, 마력 하나 하나의 밀도도 매우 높다.

수백 미터쯤 되는 범위를 거미줄 같은 마력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나쟈의 거대한 몸뚱이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갸갸갸갸갸갸갸!!"

파비아는 눈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얼굴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칼날이 넓게 펼쳐진다. 천변무궁류의 제삼검. 하지만 크기도 강도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의 마력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이것으로 나쟈의 목을 벨 수 있을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둥!! 나쟈의 목을 후려친 순간 마치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쟈의 표면에 커다란 균열이 달렸지만, 절단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위력이 부족했다.

혀를 찬다. 내가 나쟈를 후려치면서 파비아도 그만 나쟈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여기저기 쏘아 두었던 마력의 실이 끊어지면서 나쟈의 몸이 크게 밀려 나간다.

"……사제!"

파비아와 짧게 시선을 교환한 뒤, 다시 포지션을 재정비했다. 파비아가 전위, 그리고 나는 후위다.

나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고개만 틀어 이쪽을 바라본다. 바로 그때, 나쟈의 입에서 거대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다.

고밀도로 뭉친 마력이 섬광처럼 발사 되었다.

파비아는 충분히 피할 여유가 있었지만, 바로 뒤에 내가 있었던 탓에 피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새 하나로 결합된 검을 두손으로 틀어쥔 채 섬광을 향해 후려쳤다.

딴에는 나를 걱정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파비아가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대응할 방법은 있었다. 곧바로 천변무궁류의 기술에 들어간다.

"……아!"

파비아의 입술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섬광의 궤적이 위로 부드럽게 휘었다. 마력의 기류가 섬광에 개입했다. 이로써 파비아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내 시선에 들어온 파비아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마무리해!!"

"응!!"

파비아가 날듯이 뛰쳐 나갔다. 나쟈는 급하게 섬광을 끊고 파비아의 움직임에 대응하려 하였지만, 조금 늦었다. 나는 이미 파비아의 배후에서 천변무궁류의 다음 기술을 펼친지 오래였다.

섬광.

하늘을 향해 휘어졌던 섬광이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꾸었다. 나쟈의 입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나쟈의 몸통을 오히려 휘어감았다.

나쟈의 움직임이 덜컥 굳는다.

시간상으로는 아주 짧은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파비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비아의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하면서 다시 한 번 칼이 둘로 쪼개졌다.

한쪽은 길고, 다른 한쪽은 짧다. 파비아는 이 형태의 이름을 몽환夢?이라고 불렀다.

이 상태의 파비아는 속도가 조금 죽는 대신 한 번에 발휘할 수 있는 최대 위력이 높아진다.

푹!! 칼날이 나쟈의 가죽을 부수고 쭉 나아간다.

가죽을 쪼개고 들어간 그 순간부터 파비아의 검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나쟈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어?"

그리고 그 순간, 파비아의 눈빛이 변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단면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뱀을 닮은 것 같기도 했고, 인간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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