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27. 나쟈, 또 다시 (3)
* * *
연금술사와 루이스를 현장에 두고, 파비아와 함께 움직였다. 연금술사는 내가 떠나기 전, 공방에서 물건을 몇 가지 가져오라며 메모지를 쥐어줬다. 약초, 죽여서 건조한 곤충, 모두 정화 효과를 가진 물건 뿐이었다.
나쟈의 특성을 고려한 처사였다.
나쟈의 경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사방팔방에 기체를 뿌려대기 시작하는데 이 기체는 그 자체로도 독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 해독한 뒤 다시 흡입하면 격렬한 호흡 곤란을 동반하는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킨다.
일종의 아나필락시스 쇼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나쟈와 한 번 접한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쟈와 맞붙지 못하는 제약이 존재한다.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와 연금술사는 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돈과 기술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최근 일 년간 내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것처럼, 연금술사도 치열한 전투 속에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얻었다.
특히 내가 허구헌날 깨지고 다쳐서 돌아올 때마다 회복 술식을 시술한 경험 때문인지 의학적인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그 결과, 알레르기 증상을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어도 증상을 다소 완화시키는 기술을 다수 손에 넣게 되었다.
치열한 사투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내가 물리적인 강함을 손에 넣은 것처럼, 연금술사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을 손에 넣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 사투가 과한 탓에 가지고 있던 힘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파비아가 오른팔을 내 허리에 감았다. 나를 옆에 매단 상태로 움직이는 꼴이 상당히 우스워 보인다.
내가 이렇게 느낄 지경이니 다른 사람은 더하겠지.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내가 연금술사처럼 파비아의 허리 위에 올라탈 수는 없으니까.
"사제, 출발할게."
"알았어. 부탁해."
개과 수인인 데다가 특급 수준의 마력을 가진 파비아의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빠르다. 도움닫기 없이 도약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작아진다.
높다. 그리고 상당히 멀리까지 나아갔다. 파비아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완만하게 떨어졌다.
건물의 옥상에 오른발이 접한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도약. 눈에 비치는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파비아는 정말 순식간에 연금술사의 공방에 도착했다.
공방에서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챙긴 후 곧바로 몸을 돌렸다. 의외로 파비아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연금술사와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물건이 배치된 장소를 암기하게 된 것일까.
파비아는 내게 바구니 하나도 들게 하지 않았다. 팔이 하나 없는 걸 제외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 몸 상태인데, 과보호가 심하다.
공방을 나서서 곧바로 백신아가 있는 곳을 찾았다. 거의 무인지대에 가까운 이 거리에는 여러 가지 함정이 설치 되어 있다. 외진 곳에 홀로 있어야 하는 백신아의 보안을 위해서다.
살상력은 높지 않다. 발을 묶는 구조라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뿐.
몇 가지 함정을 지나쳐서 백신아가 있는 곳을 찾았다.
우연일까, 그것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요소에 의한 조화일까.
쏟아지는 햇살이 정확히 검왕검을 비추고 있었다.
"이봐, 몸 상태는 어때?"
「어머, 검주. 거기다 파비아 아씨까지.」
검왕검은 날 부분을 아래로 향한 채 거꾸로 꽂혀 있었다. 내가 부르자 검왕검의 날 부분에서 마력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흩어진 마력은 한 자리에 뭉쳐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백신아, 흰 머리카락의 여인이 원피스 차림으로 검왕검의 곁에 내려 앉았다.
「조금 전에 커다란 마력이 느껴졌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휴식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일까. 백신아는 조금 전에 벌어진 요란한 사태의 내막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또 나쟈인가요? 보이드도 그렇고, 스페트로도 그렇고, 어째 검주가 쓰러트린 적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걸요?」
"그러게."
나 역시 백신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내게는 기묘한 대진운이 있는 것인지, 한 번 쓰러트린 적이 다시 나타나서 싸우게 되는 경우가 잦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나름대로 확인사살도 제대로 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나쟈의 경우에는 아예 머리와 몸통을 떼어내서 처치했었고.
미스터리한 일이다.
「저도 검주와 비슷한 생각이에요. 아마 머리만 남아서 보관되어 있던 나쟈가 갑자기 각성한 건 허유 때문이겠죠.」
"놈은 우리 손으로 쓰러트렸을 텐데?"
「네, 틀림없어요. 허유는 죽었습니다.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아요.」
이 점은 백신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 싸움에서 나와 백신아는 모든 것을 걸고 허유에 맞서 싸웠고, 허유의 본체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허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나쟈는 허유에 의해서 눈을 뜨게 된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깊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허유가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을 뿐입니다.」
"그런가……?"
「네, 개미 새끼 하나가 자연계에 끼치는 영향력과 인간 한 사람이 자연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다른 법이죠. 허유는 바로 그러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죽고 나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거예요.」
백신아가 검왕검의 손잡이 부분에 조용히 머리를 기댄다.
「아마 허유의 영향력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세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할 거예요.」
스케일이 너무 크다. 하지만 실제로 허유는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적이었다. 애초에 우리 수준에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
그러한 존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나와 백신아는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치뤘다.
「그리고 검주 역시……, 이제 숙명에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백신아의 입에서 거슬리는 표현이 나왔다.
숙명이라, 그건 나를 두고 하는 표현일까.
꼭 지금 뿐만이 아니라 백신아는 때때로 의미심장한 표현을 입에 담을 때가 있었다.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었지만, 지금까지의 싸움 속에서 뭔가 알게 된 사실이 있는 것일까.
내 호기심이 관심을 보였다.
"허유가 이 세상에 남긴 간접적인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허유와 지근거리에서 부딪쳤던 내게는 더더욱 큰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존재하지. 네가 말한 숙명이란 그런 뜻이야?"
「검주 다운 예리한 안목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잠깐만, 신아야?"
백신아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갑자기 몸을 휘청거리면서 오른쪽으로 쓰러진다.
나는 반사적으로 백신아를 부축하기 위해서 팔을 내밀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백신아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내민 팔을 통과해서 백신아가 쓰러진다.
「윽……! 하아……, 하아…….」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숨을 몰아쉰다. 땀을 흘릴 필요가 없는 육체라서 식은 땀은 흘리지 않았지만, 낯빛이 창백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령처럼 흐릿한 육체에 쉴 새 없이 잡음이 끼었다. 마치 고장난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직, 힘 없이 흔들리는 그 모습은 꺼지기 직전의 불꽃을 닮아 있었다.
"신아야!!"
백신아는 대답이 없었다.
쓰러진 자세 그대로 천천히 눈꺼풀이 내려간다.
* * *
"……."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조금 전부터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그래서 조금 전부터 천막을 치고 있었다. 고정만 하면 작업이 끝난다.
천막을 잡고 망치질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곁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검왕검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백신아는 검왕검에 상반신을 기댄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으……, 검주……?」
"몸은 좀 어때?"
목소리가 들린 순간 망치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밝게 말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제대로 됐을지 모르겠다.
「저……, 어떻게 된 거예요……?」
"나하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잖아. 기억 안 나?"
「아…….」
백신아는 아차 싶은 얼굴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은 아니었다.
저 표정은 숨기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을 때 나오는 얼굴이니까.
아마, 백신아는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해."
백신아의 곁에는 연금술사가 앉아 있었다. 검왕검의 표면에는 전극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검왕검의 현재 상태를 살피고 있다.
"마지막으로 체크했을 때와 비교해서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어. 이쪽을 한 번 봐."
연금술사가 나를 불렀다. 나는 망치질을 끝내고 다가갔다.
검왕검에 붙은 전극은 물이 담긴 그릇에 이어져 있다. 그릇에 들어 있는 물이 하나둘씩 떠올라서 바로 옆에 있는 종이에 옮겨진다. 그것이 무늬를 그린다.
그것은 그래프를 닮았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나의 시선에는 심장의 박동을 가리키는 바이탈 사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차이점이 느껴질거야."
연금술사가 종이 한 장을 새로 꺼내서 옆에 놓는다.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서 파형이 상당히 좁아졌다. 금방이라도 파형이 사라지고 잠잠해질 것처럼.
연금술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검왕검은 연금술사의 기술로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물건이었으니까.
「검주,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다섯 시간 정도 지났어. 네가 쓰러지고 나서 파비아가 선생님을 모셔왔고."
루이스는 현장에 남았다.
나쟈 쪽도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다.
「못난 꼴을 보였네요.」
백신아의 표정이 어둡다. 딴에는 웃으려던 것 같지만 잘 되지 않았다.
보나마나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런 말은 됐고."
나는 다시 백신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백신아는 마치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은데."
「그건……」
"허유와의 싸움에서 너와 나는 각자 커다란 피해를 입었지. 나는 코어를 못 쓰게 됐고, 넌 크게 부서졌어."
허유와 싸우기 위해서 분수 이상의 힘을 끌어들인 대가였다.
허용량 이상의 마력을 휘두른 결과 나의 코어는 못 쓰게 되었고, 백신아는 크게 손상되고 말았다.
이것은 루이스가 이전부터 지적하던 불안요소였다. 그리고 나와 백신아는 후유증을 각오하고 싸움에 뛰어 들었다.
내가 후유증으로 고통을 토해낸 것처럼, 백신아도 마찬가지였다.
"말해봐. 지금 네 상태는 도대체 얼마나 나쁜 거야? 충분히 쉬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냐? 그게 아니면……"
「어, 그게……」
"위험한 상황이야."
백신아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금술사가 대답했다.
연금술사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자가수복 기능이 조금씩 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멈춰 있어."
"그럼 단순히 수복이 멈추는 것 아닌가요? 외부에서 수리해준다면……"
"조금 달라."
연금술사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 아이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되고 있는 중이니까."
표정이 차가워진 연금술사가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예를 들어, 건물에 기둥이 몇 개 빠져 있다고 생각해봐. 그런 상태의 건물은, 따로 손을 대지 않아도 조금씩 약해지다가 완전히 붕괴하게 되겠지. 그것과 비슷해."
"즉, 이대로 두면 반드시 붕괴한다는 겁니까?"
"응. 그걸 막기 위해서 난 마력을 집중시켜서 이 아이의 자가수복 기능을 최대한 활성화 시켰던 거야. 붕괴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면 이 아이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테니까."
연금술사의 시선이 검왕검을 훑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가수복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어.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제대로 동작하고 있었는데."
"……기능 자체에 한계가 온 건가?"
고개를 돌렸다. 검왕검 곁에 앉은 백신아는 죄 지은 사람처럼 내 시선을 피했다.
"신아야, 말해줘. 자가수복 기능 자체에 한계가 온 거야?"
「그건……」
무릇, 모든 존재에는 정해진 수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거칠게 사용한 인간과 도구는 수명이 빠르게 닳는다. 그리고 허유와의 싸움은 나와 백신아의 수명을 깎아내다시피 한 끝에 간신히 이겨낸 싸움이었다.
다행히 나는 코어의 손상 이외에 큰 후유증은 없는 상태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백신아는 다르다.
과도한 마력에 노출된 끝에 검으로서의 수명이 크게 닳아 없어져서, 자가수복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파손된 부분을 통째로 들어낸 후, 부품을 교체하는 것.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는 부품을 새로 이식할 수도, 닳아 없어진 부분을 고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건……?"
"신아는, 검왕검은 단순한 검이 아니에요. 스스로 술식을 짤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발전한 가상 인격이죠."
검왕검을 돌아본다. 나는 백신아와 시선을 마주치려 했지만, 백신아는 면목이 없었는지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다양한 기능이 손상되었지만 신아의 가상 인격에는 큰 데미지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신아가 검왕검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술식을 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검왕검과 백신아는 다르다.
백신아는 천변무궁류의 효력을 극한까지 발휘할 수 있는 실력자.
그리고 천변무궁류는 사용자의 역량만 받쳐준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 검술이다.
"이론상으로 가능하지 않아? 네가 발휘하는 기기묘묘한 천변무궁류의 초식에 비하면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네 힘이 부족하면 내 힘까지 더할 수도 있고."
나 또한 천변무궁류의 사용에 꽤 숙달된 상태이다.
백신아와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걸림돌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가능은……, 할지도 모르지만……」
"마력이 부족하겠지. 대충 잡아도 너무 높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나도 천변무궁류의 사용자다. 자세한 수치를 뽑아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대략적인 근삿값은 빠르게 구할 수 있다.
단, 그저 마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방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고밀도로 뭉쳐 있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다.
아마 특급 모험가의 마력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 정도이겠지만, 나는 이것을 파괴하는 용도 이외로는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을 백신아에게 휘두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백신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쟈의 핵, 그 정도면 어때?"
「그건……」
백신아가 살짝 놀란다.
그리고,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그린다.
「참으로……, 재미있는 그림이네요.」
"그렇겠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목표는 나쟈의 핵을 손에 넣는 것 뿐이었어."
그리고 지금, 나쟈의 핵이 또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서.
"백신아, 나쟈의 핵이 있다면 할 수 있을까?"
「확답은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해보겠습니다. 검주가 그래오셨듯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선생님, 신아를 부탁드려요."
"알겠어. 너는?"
"전 파비아와 함께 나쟈를 찾아 볼게요. 저 말고도 다른 특급들이 나쟈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나쟈의 핵을 확보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들이 먼저 핵을 손에 넣더라도 넘겨 받을 방법은 있겠지만 괜한 부스럼은 피하는 편이 좋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나쟈의 핵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내 상태로 나쟈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미 예전에 한 번 해본 일이다. 두 번 해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혼자도 아니니까.
"파비아, 슬슬 가자."
"응, 사제."
비는 아직 그칠 것 같지 않다.
파비아는 천막의 끝 부분에서 쏟아지는 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대화에 맞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인지, 파비아의 표정이 상당히 떨떠름하다.
"가만히 듣고 있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무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오른손을 쥐고 조용히 들어올린다.
"오히려……, 지금 난 의욕이 솟는다고."
"사제……, 응. 나도 사제랑 신아를 도와줄게."
두 주먹을 꼭 쥐고 힘 있게 들어올린다.
파비아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기운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꽤 좋은 느낌이었다.
백신현과 파비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파비아의 도약력을 빌렸을 것이다.
검왕검, 그 내부에서 백신아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응."
연금술사는 검왕검의 곁에 쪼그려 앉은 채 신호를 체크하고 있었다. 검왕검과 백신아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대응을 바꿔나갈 생각이다.
「검주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아마 검주의 말씀처럼 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
그녀는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최소한 백신현이 제시한 이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이 경우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하나 뿐이다.
"네게 남은 시간이 부족한 거야……?"
「그렇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백신아의 형체가 흔들렸다.
잡음이 두세 번 튀어오른 다음, 천천히 백신아의 형체가 고정되었다.
성한 상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설령 검주께서 지금 당장 나쟈의 핵을 구해 오시더라도……, 아니, 몇 주 전, 눈을 뜨신 직후에 나쟈의 핵을 구하셨더라도 때에 맞추지 못했을 거예요. 틀림 없습니다. 제 인격은……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신현이를 말리지 않았지?"
「그건……, 저도 살고 싶으니까요.」
백신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검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담백한 목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미가 있었다.
담담하게 진심을 전했다.
「검주가 저를 능가하는 순간을 보기 전까지……, 전 사라지고 싶지 않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