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27. 나쟈, 또 다시
* * *
잃어버린 마력도 문제였지만 줄어든 신체 능력을 회복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예 기능이 멈춰버린 코어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회복은 가능하겠지만 나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한계 라인에 걸쳐 있었으니까.
단 한 순간이라도 날갯짓을 멈추면 추락하는 새처럼, 신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연찬의 시간이 필요하다.
꽤 고생하게 될듯 하다. 그렇지만 해야만 한다.
마력을 쓸 수 없는 지금, 내게 남은 유일한 무기는 신체 능력 뿐이니까.
운동은 물론, 식사량도 크게 늘었다.
평상시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내 체중은 10kg 이상 감소한 상태였다.
"신현아."
"네."
우물우물, 음식을 삼키면서 대답한다. 연금술사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조그만 체구처럼 입도 짧았다. 일찌감치 식사를 끝마치고 차를 홀짝이고 있다.
하지만 파비아와 루이스는 아직 식사중이다. 두 사람 모두 몸 쓰는 직업이다보니 체구에 비하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먹는 편이다. 사실 그렇게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다.
"슬슬 팔을 접합할 시기가 되었지 싶은데."
"아 뭐, 그렇죠."
병원에서 퇴원하고, 3일째 되던 날이었다. 파비아는 안색이 상당히 좋아졌는데 연금술사는 아직도 안색이 나쁘다. 워낙 체력이 부족하다보니, 한 번 무리하면 회복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연금술사는 한 번 몸을 쓰면 며칠은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체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제까지는 팔을 다시 붙이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안 하고 있었잖아. 하지만 이제는 붙여도 될 거 같아서."
그녀의 시선이 내 왼쪽 어깨에 머무른다. 내 왼쪽 어깨는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연금술사는 언제라도 다시 접합할 수 있게, 내 왼팔을 따로 보관하고 있다.
붙일 기회는 있었지만 붙인다고 끝이 아니다. 외팔이는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무게 중심을 잡는 방법이 전혀 다르니까.
허유라는 거대한 적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여유를 부리기는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는 팔을 접합하는 걸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허유도 사라졌고, 스페트로와도 당장 부딪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팔을 접합하기에는 적기일 듯 싶었다.
"날을 따로 잡을까. 나도 준비는 좀 필요하니까. 너도 몸이 건강한 상태여야 하고."
"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전 언제라도 괜찮아요. 원래부터 체력은 자신 있었으니까."
내가 입은 부상을 고려했을 때, 사실 나는 아직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나는 아주 멀쩡하다. 체력이 받쳐주고 있었던 덕에 강도 높은 치료에도 크게 고생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
효과가 좋은 치료는 체력의 소모를 동반하는 경향이 있다. 팔을 접합하는 것 또한 체력을 상당히 소모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날짜는 언제쯤이 좋을까."
"그건……"
나는 언제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 신체 능력은 좀 줄어들었지만, 줄어든 신체 능력을 고려해도 나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다.
오히려 연금술사가 걱정이다. 체력의 회복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음, 그래. 마침 잘 됐다.
연금술사도 고생했으니까, 몸보신이라도 시켜주는 게 좋겠지.
* * *
식사를 마친 뒤, 파비아와 둘이서 외출했다. 공방에는 연금술사와 루이스가 남았다.
몸보신 하면 역시 몸에 좋은 걸 구해와서 먹여주는 게 제일이다. 그리고 마침 내 주변에는 그런 것을 취급하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어느 건물의 지하에 존재하는 블랙 마켓이다.
나는 과거, 백신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 블랙 마켓 내부에 존재하는 지하 투기장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가면 검사'라는 이름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참가한 요하네스와의 싸움을 마지막으로 가면 검사의 활동은 끝났다. 지하 투기장에서 건질 수 있을 만한 건 거의 다 건졌다는 판단이 섰던 탓이다.
하지만 사실 블랙 마켓은 그런 용도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쓸만한 장소다.
그런 이유로 오늘 나는 블랫 마켓을 찾았다.
가면 검사가 아니라, 손님으로서.
하지만 얼굴을 들켜서 좋을 건 없었다. 나는 물론, 파비아에게도 가면을 하나 사서 씌웠다. 파비아는 얼굴이 간지러운지, 입꼬리를 씰룩이는 기색이었다.
"얼굴이 답답해……."
"잠시만 참아줘. 볼일만 보고 끝낼 생각이니까."
물건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블랙 마켓에 특이한 물건이 자주 돌아다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정적으로 유통하는 물품이 없는 건 아니라서.
내가 찾는 물건도 바로 그런 물건 중 하나였다. 갈아서 가루로 만든 후, 환약의 형태로 뭉친 데바스테이터의 내단??.
밤샘으로 체력이 크게 떨어진 연금술사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다.
데바스테이터는 곰을 닮은 거대한 몬스터인데, 등급으로 치면 3급이지만 사람의 몸에 좋은 재료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개체수가 상당히 적다. 남획에 의한 개체 감소였다.
어차피 몬스터, 많이 잡는다고 탓하는 사람도 없다.
이런 종류의 물건이 블랙 마켓에는 상당히 많다. 오늘은 그것 이외에도 연금술사에게 필요한 물건을 여러 개 사서 가져갈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도 피해가 심각하네."
"사람들, 되게 바빠 보여……."
벽이고 천장이고 할 것 없이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처럼 불안불안하다.
블랙 마켓 위에 세워진 건물 역시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지만 내부는 더 심했다. 지하에 위치하긴 했지만, 지하는 제대로 짓지 않으면 오히려 지상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법 따윈 무시하고 지은 블랙 마켓이다보니 벌어지는 한계이다.
오래 있어서 좋을 환경은 아니다. 물건만 어서 사서 나가야겠다.
"사제, 사제, 저것 좀 봐."
옆에서 걷고 있던 파비아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파비아는 여우 가면을 쓴 상태였다. 머리 위로 삐죽 솟아오른 귀가 가면하고 무척 어울린다.
어차피 파비아를 데리고 나온 시점에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파비아에게 이런 걸 보여주는 게 공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파비아가 왜 요란한 반응을 보였는지 바로 이해했다.
파비아는 블랙 마켓의 한쪽 구역을 통째로 써서 진행되는 경매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경매 그 자체보다도 경매에서 거래되고 있는 품목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문이 닫힌 경매장, 그 옆에는 팻말이 하나 서 있다. 팻말에 쓰여 있기를, 지금 경매 중인 품목은 '나쟈의 가죽'이라는 물건이었다.
나쟈, 그렇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그 나쟈가 맞는 것 같았다.
나쟈 역시 나와 여러모로 얽혀 있던 존재다.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경매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사실, 나쟈의 이름과 핵은 유명해도 가죽 자체가 명확한 쓰임새가 있는 건 아니다보니 나처럼 흥미를 느끼고 찾아온 사람이 전부인 것 같다.
"……."
경매장에 올라온 나쟈의 가죽을 본 순간 내 눈이 찌푸려진다.
나쟈의 가죽이 블랙 마켓에 올라온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허유의 출현 직후, 나쟈도 지하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으로 나쟈의 몸통을 지우고 머리만 남겨서 연구소에 보낸 건 바로 나다.
아마 그쪽 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어차피 되먹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고, 이번에는 연구소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 뿐이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력으로 구성된 나쟈의 가죽이 마력 입자로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력 입자가 흩어지지 않게 처리하고 가공하면, 몸뚱이에서 가죽을 떼어내도 입자로 분해되기 어렵다.
물론 단순한 마력 덩어리일 뿐이라 장식 이상의 가치는 없다. 마력의 크기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라 핵처럼 복용하는 용도로도 꽝이고.
그러니까……, 내가 나쟈의 핵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아마 다른 사람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나는 지금 코어가 기동을 정지한 상황이라 마력을 통한 감각 증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나는 지금 나쟈의 핵을 천변무궁류의 감각으로 보고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감각으로 보거나, 혹은 파비아처럼 놀라울 정도로 감각이 강화되어 있어야 비로소 통찰할 수 있는 위화감이다.
"파비아……"
"응, 사제."
내가 잘못본 건 아니었다. 파비아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했으니까.
나쟈의 가죽이……, 아주 조금이지만 활성화되어 있었다.
어째서……?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추측이 떠오른다. 가능성이 떨어지는 몇 가지 사실을 제거한 뒤,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추측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실제로 검증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고민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나쟈의 가죽은 가격이 높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저기요."
손을 들고 가격을 제시했다.
나쟈의 가죽을 낙찰 받는데 성공했다.
* * *
나쟈의 가죽을 낙찰 받은 뒤, 필요한 물건을 블랙 마켓에서 구입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하늘이……, 뭐야. 왜 이렇게 깜깜하지?
아직 낮이다. 그런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어둡게 보인다. 흐린 정도도 아니고 거의 한밤 중 수준이었다. 보통 구름이 아니었다.
짙고 짙은 먹구름인데,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신기한 광경이다.
"사제."
"왜 그래? 파비아."
"나……, 눈이 간지러워."
가면을 벗은 파비아가 손등으로 눈가를 부빈다. 나는 파비아의 이 반응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비아의 초월적인 감각이 다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을 캐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내 감각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코어가 살아 있는 상황이라면 달랐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상황이 많이 답답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린다. 내 허리춤에는 끈으로 묶여서 고정된 주머니가 하나 있다. 나쟈의 가죽은 이 안에 들어 있었다.
나쟈의 가죽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
내게는 그것이 마치 환영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환영? 도대체 누구를?
나쟈의 발생 원인을 떠올린다. 나쟈는 원래 제피로스 인근 지하에서 수년 간의 시간을 거친 후 모습을 드러내는 특급 재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때가 오기도 전에 허유의 출현으로 억지로 지상으로 끌어 올려진 상태였다.
즉, 지금의 나쟈는 허유와 아주 밀접한 관계로 엮여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허유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아직도 이 손에는 그때의 감각이 남아있다.
허유의 머리를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으로 날려 버리고, 숨통을 끊었던 그 순간의 감각이.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나쟈의 가죽은 무엇을 환영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미처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쿵!!
"……저건."
멀리서.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제피로스의 외곽에는 연구소가 하나 있다. 현지의 날씨 및 생태를 조사하는 연구 기관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쟈의 머리를 해부하기 위해서 수도의 연구팀이 와 있었다. 현지의 시설이나 조사 도구로는 알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정밀한 검사를 위해서 수도의 발전된 기술이 필요했다.
지금의 소리는 그쪽 방향에서 들렸다.
아니, 이제는 소리로 쫓을 필요도 없다.
연구소가 있던 바로 그 방향, 그 위치에서.
나는 천공을 향해 솟아 오르는 뱀의 모습을 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