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26. 개선 (5)
* * *
"아가씨, 몸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올리비아."
샤를로트가 구김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근래 들어 가장 맑은 날씨였다. 창문 너머로 비스듬하게 쏟아지는 햇빛이 샤를로트의 금발을 더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환자복에서 수녀의 옷으로 갈아입은 탓일까. 어떻게 보면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머리 부분은 조금 허전하다. 샤를로트의 수녀복에는 후드가 존재하지 않았다.
샤를로트 역시 허전함을 느꼈는지, 금색으로 빛나는 정수리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면서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 옷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제가 새 옷으로 구해오겠습니다."
"고맙지만, 괜찮아. 난 이 옷이 편해. 수선해서 입으면, 티가 심하게 나지도 않고."
샤를로트가 조용히 웃는다. 올리비아는 기분 탓인지, 샤를로트의 키가 예전과 비교해서 조금 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정말로 키가 자라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아마 올리비아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 샤를로트의 분위기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뒤, 그 후로 열흘.
샤를로트는 정밀 검사 끝에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육체와 코어 어느 쪽에도 큰 피해는 없었다. 올리비아 입장에선 천만다행이다.
"있지, 올리비아."
"네, 아가씨."
"오늘 신현 씨도 같이 퇴원하기로 했는데……. 같이 보러 갈래?"
"아, 백신현도 오늘 퇴원입니까? 회복이 빠르군요."
올리비아가 작게 소리를 내며 놀랐다.
큰 싸움이 끝난 후, 올리비아도 병원에 실려온 백신현의 모습을 잠시 살핀 적이 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팔과 다리, 허리나 골반 등의 부위가 하나도 남김없이 부서져 있었다. 내부에서의 파괴였다. 백신현의 몸을 파괴한 것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속에서 발생한 힘이었다.
올리비아는 인체의 구조에도 꽤 정통하다. 실력 있는 무인은 으레 인체를 파괴하는데 도가 튼 인간들이다.
정확히 언제쯤 회복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시일이 걸릴 거라고 판단했었다.
겨우 열흘로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상당히 강도 높은 회복마법이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인데……, 올리비아는 백신현의 끝을 알 수 없는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강력한 회복 마법은 모름지기 체력의 소모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리고 시술 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회복 마법은 오히려 몸을 해친다.
코어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한 지금, 그것은 온전히 백신현의 육체적 강인함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 뻔했다.
"그럼, 갈까. 올리비아."
"네. 가시죠."
준비를 마친 샤를로트의 뒤를 올리비아가 쫓아간다. 가지고 온 짐이 많지 않은 탓인지, 샤를로트의 개인적인 물건은 작은 손가방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였다.
백신현의 병실은 샤를로트의 병실과 같은 층이었다. 이 층 전체가 병원의 전체 병실 중에서 가장 비싸고 시설이 좋은 구역이다.
샤를로트의 병실 역시 마그누스가 잡아준 것이었다. 괜히 빚을 진 것 같아, 올리비아는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병실의 문은 옆으로 밀고 당기는 구조였다. 그런데 안에서 문을 닫을 때 제대로 닫지 않은 것인지, 문의 틈이 살짝 벌어져 있고 그 안으로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아……."
샤를로트를 닮은, 눈에 띄는 금발.
올리비아는 그와 같은 금발을 가진 여인을 한 사람 알고 있다. 액면가만 보면 샤를로트와 비교해도 얼마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동안의 여인.
루이스 파르네제.
특급 모험가 시스템이 탄생한 이후 역대 최단기간, 그리고 역대 최연소 특급 모험가의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루이스의 얼굴을 본 순간 세간이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을 떠올린다.
루이스는 언제나 백신현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문틈으로 살짝 보이는 루이스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상하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리비아와 샤를로트의 시선이 한 순간 부딪친다.
샤를로트는 눈에 보이지 않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병실 문에 노크를 똑똑 두어번 두드렸다.
목소리는 그 직후 들렸다.
"샤를로트지? 들어와."
"엇, 잠……"
백신현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들려온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 루이스의 아래, 바닥 가까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 들려온 루이스의 목소리도 조금 느낌이 이상하다. 궁금증이 더 깊어진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옆으로 드르륵 밀었을 때, 올리비아는 비로소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정답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백신현은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는 깁스를 감고 있었는데, 지금은 깁스가 보이지 않는다. 흉터투성이 뺨, 흉터투성이 팔, 흉터투성이 다리가 순서대로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 검지를 바닥에 붙인 채 푸시 업을 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의 상반신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있다. 백신현과 다르게 루이스는 지금의 상황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지 떨떠름한 얼굴로 샤를로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굴도 살짝 붉다.
올리비아와 샤를로트의 얼굴을 발견한 루이스가 백신현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야, 야, 사람이 왔는데 꼭 그러고 있어야 해? 그만하고 좀 일어서……!!"
부끄러움을 심하게 타는지, 루이스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붉어진 것 같다. 백신현은 루이스가 여러 차례 타박하고 나서야 비로소 운동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리비아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서 샤를로트의 눈을 가렸다. 상반신은 탈의한 상태였고, 하의는 기장이 조금 짧은 헐렁한 바지였다. 아직 순수한 샤를로트에게는 자극이 심한 광경이라고 판단했다.
"왜 그래 올리비아. 손 치워줘."
샤를로트가 올리비아의 손등을 두드리면서 부탁했지만 올리비아는 드물게도 아가씨의 의지를 거부했다.
올리비아는 크게 한숨을 쉰 후, 백신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백신현, 그 꼴은 도대체?"
"재활 중이었거든. 그동안 쉬면서 빠진 근육이 상당해."
"아니, 그건 알겠는데. 루이스 님을 태우고 있었던 건?"
의도가 제대로 전달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뒤,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백신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루이스를 돌아본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 그건 루이스가 꽤 무거……"
"으아아!!"
"……해서 운동 부하를 늘리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거든."
백신현이 루이스의 시선을 살피며 눈을 찌푸린다. 중간에 루이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올리비아도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올리비아는 다시 질문하고 싶었지만, 어째 백신현의 오른쪽에 서 있는 루이스의 표정이 사납다. 올리비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에너지에 압박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눈치를 살피다가, 찔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일단 그, 옷이나 입는 게 어떻겠나. 아가씨 말로는 같이 돌아가기로 하셨다면서."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운동에 상당히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올리비아와 샤를로트를 잠시 나가게 한 뒤, 병실 문이 닫혔다.
"……잠깐만. 루이스 님은?"
병실의 문이 뒤에서 닫히고, 샤를로트의 눈에서 손바닥을 떼어내고 나서야 올리비아도 위화감을 깨달았다. 너무 자연스러웠던 탓에 올리비아도 잠시 동안 잘못된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을 때, 갑자기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루이스가 나왔다. 얼굴은 붉었고, 호흡은 거칠었다. 씩씩 거리면서 성을 내는 얼굴이다.
쾅! 하고 문이 시끄럽게 닫힌다.
아무래도 백신현의 실수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루이스 본인도 잠시 동안 잘못된 걸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따질 자격은 없어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오묘한 거리감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올리비아가 그들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관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일 것이다.
"루이스 언니, 얼굴이 붉어."
"……백신현이 나쁜 거야."
"아냐, 아무리 봐도…… 쌍방과실 같았어."
"으. 그건 맞는데."
명백히 토라진 듯한 루이스의 곁에 샤를로트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루이스도 샤를로트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는지, 크게 투덜거리지 않고 입술만 삐죽이고 말았다.
대화 내용만 들어보면 나이 관계가 서로 뒤바뀐 듯한 느낌이다.
그, 명확하게 설명하게 어려운 관계 속에 샤를로트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올리비아는 상당히 오묘한 감각을 경험했다.
스스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백신현의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문이 열리고, 평상복 차림의 백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도 짐이 많지 않았는지, 가벼운 종이 가방 하나만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럼, 갈까."
* * *
마치 다른 동네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도로가 제피로스의 도로가 맞는 건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제피로스의 거리가 맞는 건지.
바닥 타일은 벗겨져서 흙이 보이고, 건물은 표면이 뜯겨 나가거나 아예 무너진 것들이 많다.
사방팔방에 부서진 유리조각이 보이는 건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로 심각했나.
지금 나는 쉴 새 없이 드나들었던 제피로스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나름대로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게 멀리서 싸웠는데, 그것도 부족했던 건가.
이 정도면 제피로스만 박살이 난 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다른 도시에도 문제가 벌어졌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어."
오른쪽에서 걷고 있던 루이스가, 갑자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아마 허유의 마지막 일격과 초신성의 격돌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상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너머에 존재하는 공중의 어느 지점에서 거대한 마력이 충돌했다. 그때 발생한 충격파가 이와 같은 파괴를 만들었다.
진짜, 용케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구나 싶다.
아, 한쪽 팔이 없으니까 삼지三?라고 표현해야 하나.
병원의 공원을 산책할 때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 느끼는 실감은 그 이상이다.
솔직히 스케일이 너무 커서 따라가기 벅차다.
"신현 씨, 저기 봐."
왼쪽에서 걷고 있던 샤를로트가 내 소매를 잡고 끌었다. 고개를 돌린다. 거리의 한쪽에서는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워 올리느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내가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벽돌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잿빛 바지에, 편하게 입는 티셔츠. 근육질에 키가 큰 남자.
마그누스가 목공 하나를 앞에 두고 합판에 톱질을 하고 있었다.
"힘을 줄 때는 이렇게, 제대로 잡고 톱질을 해야 잘 밀리지. 톱 줄 테니까 다시 해 봐."
"아, 알겠습니다!"
저 양반, 이런 쪽에도 소질이 있었나.
신기하면서도 어울리는 광경이다. 원래 대장장이 출신이라서 그런가, 머리에 두건을 쓴 것도 멋스럽고.
"아, 잠시만. 나 아는 사람 온 거 같은데, 먼저들 하고 있어."
그쪽에서도 이쪽을 발견했다. 다른 인부들에게 대략적인 작업 지시를 마친 후, 가까이 다가왔다.
쏟아지는 분진 탓일까. 나와 올리비아는 가만히 서 있었지만 루이스와 샤를로트는 한 걸음씩 물러서고 말았다.
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
"뭐야, 벌써 퇴원했냐?"
"네, 뭐. 대장께서는?"
"일 하는 중이지. 내가 시골 출신이라 이런 건 잘 하거든."
마그누스가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돌린다. 인부들을 바라보는 눈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너도 고생했다. 내가 이것저것 뒷처리 때문에 바빠서 병문안은 못 갔는데, 무사히 퇴원한 것 같아서 보기 좋구만."
그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 치려다가, 손바닥 상태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그만뒀다. 엉거주춤하게 멈춰선 후, 흰색 가루로 범벅이 된 손바닥을 바라보며 쓰게 웃는다.
"루이스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뒷처리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네 조언을 구해야 할 때도 있을 것 같아."
"상황 돌아가는 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피해 규모도 역대급이고, 엮여 있는 조직도 많다보니 해결하는 것도 일일 거야.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는 최소 몇 년이 걸릴 거라고 본다."
마그누스가 질린 듯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내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 피해규모를 고려했을 때,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오가는 상황이 찾아올 게 뻔하니까.
나는 장기전을 예상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네 존재를 공언할 생각도 하고 있다. 일단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기로 합의는 되었지만, 상황이라는 건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럴 것 같았습니다."
마그누스를 비롯한 유력자들은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해냈지만, 이번 일과 같은 대형사태는 그들에게도 첫 경험이다.
한 번에 완벽한 결론이 나올 리가 없다.
그리고 이런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때와 상황에 따라 수단을 바꿔 나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방식이다.
확정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언제라도 기존의 방침이 뒤집어질 수 있다.
"……물론 네가 회복될 때까지는 최대한 내가 커버칠 생각이다. 아주 아니다 싶은 상황이 아닌 이상, 내가 널 호출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동안은 푹 쉬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대장."
"뭘……. 훈장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괜히 신경 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마그누스와는 웃으면서 헤어졌다.
참 괜찮은 사람이다. 멋있게 늙은 중년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분위기라서 개인적으로 존경하게 된다.
나도 나이를 먹는다면 저런 멋진 아저씨가 되고 싶다. 그런 소망이 있다.
추하게 늙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으니까.
보이드처럼, 그리고 스페트로처럼.
그들을 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나도 조금만 엇나갔으면 그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실감이 있다.
내가 그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동족혐오라고 해야 할까.
씁쓸한 기분을 뒤로 하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머지 않아 샤를로트가 신세를 지는 수녀원에 도착했다.
"……이쪽도 상태가 좀."
"신현 씨하고 그, 나쁜 사람하고 여기에서 싸웠었잖아. 그거 때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샤를로트의 말처럼, 나와 허유의 2차전은 바로 이 수녀원에서 이루어졌었다.
그때의 흔적과 며칠 전 발생한 충격파에 의해 수녀원의 상태도 개판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수녀들과 인부들이 뒤섞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샤를로트의 눈치를 살폈다.
"아가씨……, 괜찮겠습니까? 보수가 완료될 때까지 잠시 별장에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괜찮아."
하지만 샤를로트는 오히려 꿋꿋했다. 앙다문 입술에선 투지가 느껴지고, 부릅 뚠 눈동자에서 의욕을 뿜었다.
"나도 수녀원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식구인걸. 당연히, 나도 같이 해야지."
"그렇지만…… 아직 방이 덜 고쳐진 수녀들은 천막 아래에서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올리비아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과연, 올리비아의 말처럼 여기저기에 수녀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천막이 보인다. 올리비아 입장에선 샤를로트를 저런 곳에서 재우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동감한다. 내가 올리비아라도 극구 말릴 것 같다.
"괜찮아."
하지만 샤를로트의 의지는 확고했다.
올리비아는 크게 한숨을 한 번 토해낸 뒤, 내게 도움을 부탁하듯 시선을 돌린다.
내가 도움을 부탁해서 뭘 어쩌려는 건지. 상식적으로 올리비아가 못 말린 걸 내가 말릴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절충안을 꺼냈다.
"샤를로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어때?"
"하지만……"
"대신에 감시 인력은 좀 붙이기로 하고. 샤를로트도 그 정도로 어때?"
"……신현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샤를로트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표정이 조금 울상이다. 인상까지는 아니고, 살짝 서운한 정도.
그렇지만 이 풍진 세상에서 샤를로트를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다. 샤를로트를 걱정하는 마음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리비아는?"
"그것밖에 없겠군. 알았다."
이쪽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그럼……, 신현 씨도 조심해서 들어가."
"그래, 너도."
수녀원 앞에서 샤를로트를 배웅한다. 나도 지금까지 입구 앞에서 여러 차례 샤를로트를 배웅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당히 싱숭생숭한 기분이다.
자식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부모의 기분이 이럴까.
나는 왜 이런 나이에 부성애를 느끼고 있는 건지.
"신현 씨,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그때, 샤를로트가 갑자기 수녀원 앞에서 몸을 돌렸다. 오른손이 조그만 손가방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샤를로트의 손에는 수수한 무늬의 브로치가 들려 있었다.
내가 준 물건이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여전히 기능부전 없이 잘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나중에 한 번, 때가 되면 한 번 점검을 해보는 건 좋을 것 같다
"이걸로 연락할게."
"응, 조심해서 들어가."
씁쓸한 기분과 함께 샤를로트를 수녀원 안으로 들여 보냈다. 나는 몸을 돌려서 올리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넌 이제 뭐해? 돌아갈 거야?"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백신현 너는?"
"나도 마찬가지야. 바로 돌아가야지. 뭐, 험하게 굴릴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니까."
지금 내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활이다.
줄어든 근력을 회복하고, 기능 정지한 코어를 되살리고.
거기다가 백신아의 상태도 한 번 봐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럼 이쯤에서 헤어지지. 쉬어야 하는 사람을 오래 붙잡아둘 수는 없으니까."
"그럴까."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내가 알아야 할 거라고?"
눈을 깜박이며 되묻는다. 슬쩍 살펴본 올리비아의 시선은 농담을 하는 눈이 아니었다.
"싸움이 끝나고 나서, 보이드의 시체는 군대 쪽에 회수되었다. '거대한 존재'가 한 번 머물렀다가 떠난 신체인 만큼 중요한 샘플로 취급될 예정이야."
"보이드의 말로치고는, 꽤 끔찍한데."
보이드의 처지에 동정을 느끼는 건 아니다. 내가 놈에게 품고 있는 악의는 그 정도로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다소 꺼림찍한 건 사실이다.
이건 인간으로서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회수 과정에서 뭔가 트러블이 있었는지, 보이드의 시체는 회수됐는데 보이드의 검이 회수되지 않았어."
"그건 무슨 소리야?"
"회수반이 보이드의 검을 회수하기 위해서 찾았는데,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더군. 이건 중요한 문제야."
"그야……, 그렇겠지. 보이드의 검은 보이드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그 존재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무기야. 그리고 내 검왕검과는 다르게 놈의 출력에도 부서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했지."
이것은 보이드가 검에 마력을 공급하는 것과 동시에 그 검이 자기 자신의 마력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추가적으로 마력을 덧씌운 결과물이다.
신체 강화 마법으로 치면 강화된 근력에 관절이나 골격이 파괴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마력을 둘러서 완충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거대한 힘을 휘두르는데 있어 필요한 건, 거대한 힘 그 자체보다도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이니까.
검왕검이 파괴되고, 보이드의 검이 파괴되지 않은 건 그 차이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물질보다는 허유의 마력을 오랫동안 쐰 보이드의 검에는 그에 맞는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신의 자식'을 찌른 창이 성유물??物로 판정된 것처럼.
허유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보이드의 검의 성유물화??物化였다.
"그 검이 스스로 사라졌을 리는 없어. 마지막으로 내가 그 검을 봤을 때, 그 검에 마력은 남아 있지 않았으리까."
"그렇다는 건……"
올리비아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새겨졌다.
나는 불편한 진실을 기꺼이 입에 담았다.
"이 싸움에 참여한 누군가가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