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26. 개선 (2)
* * *
연금술사가 의사에게 부탁해서 붕대와 약을 가져왔다.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한 탓일까. 꿰맨 상처가 살짝 벌어졌다.
어이 없는 이유로 수술을 다시 받을 뻔했다.
간신히 상태를 안정시킨 뒤, 나는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직도 머리가 조금 멍하다. 하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멋대로 착각하고, 흥분했다가 쓰러진 건 완전히 자업자득이다.
샤를로트는 눈앞에서 내가 쓰러지는 꼴을 본 탓인지 상당히 허둥대는 기색이었다.
어린 애 앞에서 못볼 꼴을 보이고 말았다.
침대에서 상반신만 일으켰다. 검왕검은 연금술사의 품안에 안겨 있었다.
검왕검에 연장되는 형태로 백신아가 공중에 떠 있다.
"몸은 좀 어때……?"
「상태는 좀 안 좋지만 천천히 회복할 생각이랍니다. 검주와 비슷한 상황이에요.」
백신아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다. 기분 탓인지 혈색이 조금 나빠 보인다.
검왕검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차라리 부러지는 게 나을 정도로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
많이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완전히 재생될 때까지는 뽑으면 안 돼. 도저히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검왕검을 품에 안은 연금술사가 못을 박듯이 말했다. 검집에는 잠금쇠가 제대로 걸려 있었다.
"이 아이가 회복할 수 있게 내가 돕고 있지만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혼자서 수복할 수 있는 수준의 손상이 아니니까."
"그런가요."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연금술사가 검지를 들어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신현이 너, 지금 코어의 상태는?"
"……감각이 안 느껴져요."
나는 오른손을 들어서 가슴팍에 가져갔다. 심장보다 조금 옆, 정확히 이 자리에 나의 코어가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은 코어의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팍에 감은 붕대 아래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도대체 지금 내 코어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
회복할 수는 있을까.
"아예 못 쓰게 된 상황은 아니야. 하지만 손상이 너무 커서 자연치유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거야."
"재활을 한다고 치면 얼마나 걸릴까요?"
"길면 몇 년, 짧아도 수 개월은 잡아야 할 거야."
"……그런가요."
나는 천천히 입맛을 다셨다.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목숨을 건진 대가치고는 싸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다가 회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되었다.
우울해하고 있을 틈이 없다.
"검왕검, 이 아이의 회복도 그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어. 어쩌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연금술사는 그녀의 손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검왕검의 잠금쇠를 꾸욱 꾸욱 눌렀다.
꽤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이제 내가 좀 말해도 될까?"
루이스의 손을 들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루이스도 부상은 있었지만 거의 찰과상 뿐이었다. 파비아와 비슷한 수준의 부상이었다.
"신현이 네가 그 자식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거야. 군대와 모험가가 협력한 끝에 사살했다, 이 정도로만 발표하고 끝내기로 합의가 됐어. 지금 네 상태를 고려했을 때, 함부로 유명세를 얻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그건 루이스의 판단이었을까.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아마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유명세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동반되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큰 싸움을 거치고 극도로 약해진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큰 유명세가 아닐까 싶다.
유명세는 악의를 동반하는 법이고, 이 거지 같은 세계에서 그것은 생각보다 큰 위험성을 가진다.
21세기의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물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군대 쪽 사람들에게는 네 이름이 꽤 팔렸어. 네가 일어나면 보여주라고 명함도 건네더라."
루이스가 품에서 명함첩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는 꽤 많은 숫자의 명함이 다닥다닥 쌓여 있었다.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것은 훗날 내가 다시 기량을 회복했을 때 큰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잃은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이 싸움에도 소득은 있었다.
"……피해가 꽤 큰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복도 쪽을 바라 보았다. 복도를 다니는 환자들의 숫자가 꽤 많다.
여러 차례 이 병원에 신세를 져 왔던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꽤 부자연스러운 숫자였다.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관련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루이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미간을 구겼다.
"뭐, 싸움의 규모가 좀 컸어야지. 방공호가 아무리 견고하게 지어졌어도 그건 특급 재해 정도 수준에 맞춰서 제작된 거야. 그런데 이번에 너희 둘이 싸운 적은 겨우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잖아."
주먹을 쥔 루이스가 엄지만 펴서 창밖을 가리킨다.
"나중에 좀 회복되고 나서 외출하면 깜짝 놀랄 걸? 도시도 아주 쑥대밭이야. 도시에서 싸운 것도 아닌데."
"그 자식을 직접 쓰러트린 사람을 알리지 않는 것도 그거 때문이지?"
"맞아. 우리 입장에서야 최선의 결과를 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아니잖아.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겠지만, 대중의 분위기도 이상한 상황에서 괜히 유명세만 얻어봐야……, 귀찮아지기만 할 거야. 유명세도 유명세 나름이잖아."
"그래서 뭉게기로 했다고."
"맞아. 그래도 돈은 넣어주겠다니까, 너도 나중에 체크는 해두고."
쓸 일도 없는데 돈만 계속 쌓이는 느낌이다.
돈도 써본 사람이 안다고, 뼛속까지 서민인 내가 쓰기에는 돈이 좀 많다.
이대로 쌓아두기도 아깝고, 어디에 쓰면 좋을까.
차라리 투자를 해서 불려볼까.
이런 쪽에 빠삭한 올리비아에게 상담을 부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고개를 돌려서 시계를 보던 샤를로트가 손끝으로 내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저기, 신현 씨. 나 먼저 가 볼게. 진찰 시간이야."
"그래. 어디 크게 아프고 그러진 않지?"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
샤를로트는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번씩 고개를 숙인 후, 연금술사의 품에 안겨 있는 검왕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신아 너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어머, 감사합니다. 샤를로트 아씨.」
샤를로트는 백신아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백신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나와 마력이 섞여 있는 사람 뿐. 하지만 대화는 통한다. 샤를로트는 검왕검을 살짝 쓰다듬은 뒤 발소리가 나지 않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병실을 나섰다.
백신아를 볼 수 없는 샤를로트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녀석은 무척이나 기특한 얼굴로 샤를로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나중에 샤를로트에게 말해주면 좋아할 것 같다.
"백신현, 우리도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아."
내가 상당히 늦은 시각에 눈을 떴기 때문일까, 면회 시간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연금술사도 루이스도 바쁜 사람이다. 큰 싸움은 끝났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루이스는 뒷처리, 연금술사는 검왕검의 수복이다.
쪼그려 앉은 파비아의 머리 위로 연금술사가 손을 올린다.
"파비아는 남아서 신현이를 돌봐줘. 부탁할게."
"응응, 알았어. 사제는 나한테 맡겨줘!"
"병원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파비아가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 했지만, 연금술사는 늦은 시간에 소란을 피우지 말라며 파비아에게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삐죽 솟아있던 파비아의 귀가 순식간에 축 늘어진다. 하지만 파비아는 상식이 부족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다. 제대로 알아 들었을 거다. 연금술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잠시만, 루이스."
"어, 왜?"
나는 채비를 끝마치고 몸을 돌린 루이스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싸움이 끝난 후, 스페트로는 란즈 가주에게 다시 몸을 돌려줬다고 했지?"
"응. 그런데 왜?"
"난 솔직히, 란즈 가주와 스페트로를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샤를로트가 있을 때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아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란즈 가주는 샤를로트, 올리비아와 다르다.
신뢰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최강의 괴물이었던 허유는 쓰러졌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역시 스페트로와 란즈 가주였다.
어쩌다 보니 협력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방심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경계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 대신 그쪽을 좀 감시해줘. 수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알겠어. ……우리가 파비아를 남겨 두려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너하고 스페트로 사이에는 악연이 있잖아. 그 괴물 같은 존재가 쓰러지고, 네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루이스도 나와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내게 손을 흔들며 병실을 나선다.
연금술사는 여전히 검왕검을 품에 안은 상태였다.
그녀의 품 안에 있는 손잡이 쪽에서 연기 같은 것이 피어 오르더니 백신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파비아 아씨의 실력은 검주도 보셨으니 아시죠? 안심해도 될 거예요. 그러니까 부디 푹 쉬시길.」
"그래, 너도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
「물론이죠. 내일도 놀러 오겠습니다.」
백신아가 어울리지 않는 허세를 부리며 검왕검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연금술사와 파비아의 등을 향해 파비아가 손을 흔들었다. 꼬리도 같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의식하고 흔드는 건 아니다. 파비아의 꼬리는 언제나 그녀의 기분 따라 움직였다.
파비아는 옆에서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나는 그 행동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파비아라면 의자가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을 것 같았는데.
거기다가 파비아는 꼬리에 천으로 된 주머니 같은 걸 뒤집어 쓰고 있었다. 털이 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쓰는 물건인 것 같다.
어느 쪽도 나를 배려하는 행동이었다.
"사제는 있잖아."
"어, 왜?"
"진짜 생각이 많구나."
"신경 쓸 게 워낙 많으니까."
파비아의 순수한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다. 나도 당연히 쉬고 싶다. 하지만 내 주변에 이상한 놈들밖에 없는 걸 어쩌겠나, 그래도 이 악물고 필사적으로 살아 봐야지.
물론 란즈 가주와 스페트로도 바보는 아니다. 함부로 일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경계하지 않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물며 지금의 나는 허유와의 싸움에서 입은 후유증으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몸을 쓸 수 없다면 머리라도 쓸 수밖에.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있으니까."
"응! 내게……"
파비아가 소리를 높이려다가 말고 갑자기 입을 다문다.
그리고 어깨를 비롯한 전신의 힘을 쭉 빼면서 소곤소곤 말한다.
"……나한테 맡겨, 사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연금술사의 충고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눈 좀 붙일게. 슬슬 몸이 한계야."
"응. 사제는 푹 쉬어야 해. 열심히 했으니까."
파비아가 내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의 체온이 높다. 접한 순간 내 근육이 이완되고, 빠르게 졸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사저에게 물어볼 게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강해진 이유에 대해서 질문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문제가 층층이 쌓이는 바람에 잠시 잊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조금 늦었다.
눈이 멋대로 감겼다.
졸음이……, 쏟아진다………….
"사제에, 자……?"
백신현의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파비아가 질문한다. 백신현은 대답이 없었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이 조용히 호흡했다.
그의 얼굴은 오른쪽 뺨 부분이 흉터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파비아는 그 모양새가 싫지 않았다.
대상이 사제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비아 같은 무술가에게 흉터는 일종의 훈장 같은 것에 가깝다. 호감을 느꼈으면 느꼈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파비아는 날이 밝을 때까지 쭉 백신현의 얼굴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파비아는 좋아하는 대상과 싫어하는 대상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고, 좋아하는 대상이 앞에 있을 때 더더욱 의지와 체력이 솟아나는 성격이다.
"사제랑 짝짓기 하고 싶다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오히려 파비아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크게 놀랐다.
살짝 앞으로 굽히고 있던 상반신을 꼿꼿하게 세우고, 양 손바닥을 자신의 뺨에 가져갔을 정도로.
"……핫,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그녀는 환자가 되어 누워 있는 사제에게 몹쓸 마음을 품은 스스로를 심판하는 의미로 자신의 양 뺨을 집게 손가락으로 꼬집고 쭉 잡아당기는 벌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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