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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56화 (256/287)

〈 256화 〉 25. 신역?? (12)

* * *

보이드와 마주 본 상태로 손과 발을 움직인다.

마력의 조력은 기대할 수 없다. 그 사실이 나의 움직임을 좀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

"……."

호흡하고, 무게 중심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기회를 모색한다. 무기를 쓰는 싸움은 격투기와 다르다. 공격을 한 번 허용하는 순간 곧바로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급소를 당했을 경우에는 일격으로 끝이 날 가능성도 높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금 더 치밀하게.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파고들 준비를 한다.

보이드가 검을 가로로 한 번, 그리고 두 번 휘두른다. 눈을 노린 첫 번째 공격을 허리를 젓혀서 피하고, 몸통을 향한 휘두르기는 몸을 반 바퀴 돌려서 흘려보냈다.

검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보이드의 몸통이 열렸다. 나는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몸통을 노린 찌르기. 보이드는 오른발을 축으로 두고 몸을 뒤로 반 바퀴 돌렸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했다.

보이드가 다시 검을 휘두른다. 나는 검이 아니라 검을 휘두르는 팔에 내 오른팔을 부딪쳐서 보이드의 움직임을 한 발 빠르게 가로막았다.

내가 보이드를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싸움은 초근접전의 양상으로 변했다. 거리가 가깝다.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주먹을 내지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거리다. 그리고 보이드는 검술은 몰라도 무기를 쓰지 않는 체술에는 재주가 없는 것 같았다.

쿵!! 보이드의 가슴팍에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보이드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면서 뒤로 밀려 나간다. 둘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검을 휘두른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루이스의 검은 보이드의 몸통을 사선으로 정확히 두 번 가로질렀다. 하지만 얕았다. 원래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보이드의 살점을 헤집어야 했는데.

나의 몸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보이드의 육체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나와 비교하면 아직 정상적인 수준이다. 그 때문일까. 기술은 내가 훨씬 앞서고 있는데도 파고들기 어렵다.

"윽……."

간헐적으로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기도 한다. 출혈이 문제일까, 눈이 문제일까. 그게 아니면 양쪽 다?

문제는 보이드도 나의 몸 상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블랙 아웃. 시야가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어두워진다. 보이드는 그 틈을 이용해서 나의 사각으로 돌아 들어왔다. 급하게 몸을 틀었지만 조금 늦였다. 왼쪽 뺨이 죽 그인다.

캉!! 캉!! 캉!! 캉!!

검을 부딪칠 때마다 나와 보이드는 동시에 균형을 잃었다. 균형을 잃어버린 채 크게 휘청거리고, 간신히 자세를 가다듬은 뒤 부딪치고, 다시 균형이 무너지고.

술 취한 사람끼리 싸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나와 보이드의 표정에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순간마다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쿵!! 다리와 다리가 부딪치고, 촤악!! 서로의 검이 뺨과 팔과 다리를 스치고, 콰직!! 검을 부딪칠 때마다 손잡이를 쥔 손에서 비명이 울리고.

"하아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쿵!!

몸을 반 바퀴 크게 회전하면서 힘을 실었다. 보이드도 같은 방식으로 검에 힘과 속도를 실었다.

검과 검이 파멸적인 소리와 함께 부딪치고, 그 순간 나와 보이드는 손에 쥔 검을 동시에 놓치고 말았다.

두 자루의 검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

이 순간 나와 보이드는 서로 다른 행동을 취했다.

보이드는 날아간 검을 되찾기 위해서 시선을 돌렸지만 나는 오히려 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보이드는 조금 늦게 내 의도를 파악했다. 하지만 늦었다.

보이드의 얼굴에 내 주먹이 사정 없이 꽂혔다. 놈의 상반신이 크게 젓혀진다.

하지만 위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보이드는 부러진 이빨과 피를 함께 뿜으면서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내 공격이 끝나고, 보이드의 차례가 시작됐다. 보이드가 왼발에 체중을 실었다. 굳세게 쥔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온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흐름이 다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고통은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고장난 몸뚱이는 내 의지와 관계 없이 간헐적으로 내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회피하지 못했다. 방어도 늦었다.

쿵!! 얼굴의 중심에 주먹이 꽂힌다.

고통은 언제나 열을 동반한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듯한 기분이었다. 시야가 붉다. 이것은 내 얼굴에서 터져 나온 피일까. 그게 아니면 고통에 반응해서 뇌가 보여주는 착각일까.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휘청거리던 몸뚱이에 힘을 주었다. 보이드의 공격은 끝났다. 다시 내 차례였다.

주먹을 꽂는다. 주먹이 꽂힌다.

고통을 삼키고 다시 한 번 주먹을 쥔다. 고통을 삼키고 내지른 주먹이 꽂힌다.

방어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주먹을 내지르는 것, 그 행위를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고통 위에 다시 고통이 겹쳐진다.

허유를 쓰러트린 시점에서 이 몸뚱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쓰러진 육체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차라리 쓰러지고 싶다. 쉬고 싶다. 한계를 넘은 육체가 정신을 붙잡은 채 빌고 있다.

'나는 왜 싸우고 있는 걸까'

그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의 목적은 샤를로트를 무사히 구해내고 허유를 쓰러트리는 것이었다.

허유를 쓰러트린 시점에서 나의 목적은 이루어졌다.

보이드와 싸울 이유는 없었다.

설령 싸우더라도 지금처럼 일대일을 고수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이드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싸우고 있다.

피를 토하고, 부러진 이를 뱉어내고, 고통을 씹어 삼키면서.

도대체 왜?

'내 손으로 끝장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런 이유가 있었다.

나는 보이드가 싫었다. 사사건건 내 행동에 방해를 거는 쓰레기 같은 놈. 보이드는 마치 내 발목을 붙잡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 같았다.

그래서 내 손으로 치워 버리고 싶었다.

'그때, 내 손으로 쓰러트리지 못한 게 분했기 때문이야.'

그런 이유가 있었다.

보이드는 내게 열등감과 질투를 품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내 힘으로 보이드를 쓰러트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쭉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보이드를 쓰러트리는 순간을.

'멋지게 폼 잡으면서 도전을 받았는데, 보이드에게 지면 무척 부끄럽겠지.'

또 하나,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떠올랐다.

루이스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나와 보이드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다시 인식한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조금 부끄럽다.

보이면 안 되는 추태를 드러낸 듯한 기분이라서.

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건 루이스 뿐만 아니다.

백신아가 사라지지 않고 검왕검 속에 남아 있다면……, 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다.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이상 부끄러운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쿵!!

나와 보이드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에 꽂혔다. 거의 동일한 타이밍이었다. 두 남자의 몸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바닥을 구르던 몸이 뭔가에 부딪쳐서 멈췄다. 고개를 돌린다. 바닥에 꽂힌 루이스의 검이 나를 멈춰 세웠다.

"……윽."

보이드도 상황은 비슷했다. 바닥에 쓰러진 보이드의 몸이 검에 부딪쳐서 멈췄다.

서로의 시선이 부딪친다.

조용히 검을 쥔다.

보이드의 표정이 구겨진다. 힘을 주는 얼굴이었다. 놈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검을 지팡이 삼아 힘을 다한 몸뚱이를 느릿하게 일으킨다.

이쪽도 남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있는 힘을 다 쥐어 짜냈는데도 몸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으켜 세우는데만 한 세월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에도 호흡을 고르는데 몇 초를 더 소모해야 했다. 보이드도 비슷했다. 모가지를 꼿꼿하게 세운 상태로 힘겹게 숨을 몰아쉰다.

"다음으로 끝내자."

"좋지."

보이드는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움직인다. 하지만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앙쪽 모두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기는 것처럼 나아간다.

나와 보이드 사이의 거리는 일곱 걸음에 불과했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아가도 순식간에 좁힐 수 있는 거리다.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를 베어 쓰러트릴 수 있는 공격 범위에 들어갔다.

예리한 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

"……."

공격 범위에 돌입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검은 서로가 서로를 베어 찢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찢었을 따름이다.

나는 검을 휘두른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1초……, 2초……, 짧은 침묵 속에서 시간이 도도하게 흐른다.

결착은 그 직후였다.

"커헉……"

보이드가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 쓰러진다.

하나의 싸움이 이렇게 끝을 맺었다.

* * *

"……어."

보이드는 하늘을 향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상반신에 새겨진 상처는 상당히 깊었다. 설령 연금술사가 오더라도 살릴 수 없는 부상이었다.

패배. 그리고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임에도 보이드의 표정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보이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작 백신현은 그다지 관심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보이드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뒤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호흡을 반복할 뿐.

그의 시선이 움직인다.

백신현이 짐작했듯, 보이드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움직인 것은 백신현을 향한 질투와 증오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보이드가 진짜로 싸우고 싶은 상대는 따로 있었으니까.

수백 년 전의 먼 과거, 어느 오래된 마도검식???? 유파의 계승자였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검왕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위대한 무위와 독자적인 마도이론을 보유한 검왕에게 보이드는 스스로 구배지례를 바쳤고, 검왕검의 제작과 천변무궁류의 편집에도 관여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도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이드는 자신이 검왕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검왕은 끝내 보이드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왕검은 여러 개가 제작되어 천하에 뿌려졌지만 보이드는 그 중 한 자루도 손에 넣지 못했다.

보이드와 검왕의 결별도 이때였다.

보이드는 약 수백 년간 무예의 역사 속에 숨어 지내면서 여러 명의 계승자를 거쳐왔다.

비록 그 중 한 자루도 손에 넣지 못했지만, 보이드는 계승자들과 충돌할 때마다 자기 자신의 자질이 계승자와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를 인정하지 않은 검왕은 잘못 되었다.

망집에 지배 되어 살아온 수백 년이었다.

그 믿음이 이 1년간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었다.

이제까지의 계승자는 달랐다. 보이드를 쫓아내기는 했어도 그를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보이드의 습격을 물리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 정도로 철저하게 짓밟은 것은 백신현이 처음이었다.

그 패배를 겪은 순간 보이드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남자다.

검왕은 이 남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검왕검을 만들었다.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느낀 그 순간부터 증오와 질투를 함께 느꼈다.

보이드가 맞서 싸운 진정한 적은 백신현이 아니라 그의 삶에 평생토록 들러붙어 있던 검왕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는 이 시점에 이르러 비로소 현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쏟은 싸움에서 패배한 끝에, 비로소.

'내가……, 틀린 거였어…….'

보이드의 눈이 천천히 닫힌다.

눈동자를 덮은 눈꺼풀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

문득 백신현의 시선이 움직였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던 그는 보이드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이드에게도 투쟁의 이유는 존재했다. 하지만 백신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백신현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보이드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수많은 사람을 해치고 상처 입힌 존재에 불과했다.

설령 그가 보이드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이 평가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적의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

보이드의 진실된 소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치한 것이었음으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끝을 맺은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백신현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정은 없다.

이해도 하지 않는다.

"보이드."

그저 백신현은 승자로서 해야 하는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기 없이 완수했다.

"괜찮은 승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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