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25. 신역?? (11)
* * *
균열은 하나가 아니었다.
총알이 여러 번 관통한 유리창처럼, 검왕검의 각 부위에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쩍, 쩍, 쩌억, 균열은 점점 더 크게 영역을 넓혔다.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검왕검은 성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빛을 내던 칼날도 색을 잃었다.
검왕검의 검신 부분은 불타다 못해 아예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처럼 색이 변해 있었다.
"신아야……, 쿨럭!!"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러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입은 부상 역시 검왕검 못지 않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곤죽이 되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에 가까운 몸 상태다.
나는 피를 쏟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쪽 무릎을 뚫은 채, 간신히 상반신을 지탱한다. 학, 학, 학, 학, 숨을 몰아쉬는데 호흡이 잘 되지 않는다. 누가 폐를 꽉 쥐고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하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힘에 도달했다. 지금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기능이 정지한 코어, 곤죽이 된 육체. 하지만 아마 내가 치르게 될 대가는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오랜 기간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겠지.
그건 각오했다. 각오하고 맞이한 고통이었음에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의식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백신아.
백신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검왕검의 강도로 견디기 어려운 출력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금속에 투입할 수 있는 기능에 용량이 있고, 최대 용량을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검왕검은 특수 기능에 99%의 용량을 소모하고 나머지 1%를 예리함과 강도에 집중했으니까.
100의 용량 전부를 강도와 예리함에 집중한 루이스의 검과 비교했을 때 강도에 하자가 있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겨우 이 정도로 사라질 리가 없다.
최강의 검사의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신아……, 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부른다.
"백신현."
그때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굵은 목소리였다.
피를 지나치게 쏟은 탓일까. 시야가 희미했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서 흐릿한 시야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혔다.
검은 남자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정장, 검은 구두, 검은 칼날.
그리고 검은색 마력까지.
머리가 산발이 된 보이드가 등뒤에서 서 있었다.
검을 든 채, 내 이름을 부른다.
"……."
보이드의 육체는 거의 재생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보이드의 몸에서 허유가 떨어져 나간 그때 어마어마한 마력이 발생했고, 그것은 손상된 보이드의 육체를 그의 의지와 관계 없이 회복시켰다.
하지만 회복한 건 육체 뿐이다.
"크……"
거기다 그마저도 불안정하게 보인다.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코어가 여러 번 깜박이더니 빛을 잃었다.
지금의 나와 같았다.
코어의 기능이 정지했다.
보이드의 몸이 휘청인다. 분쇄된 보이드의 육체는 허유의 마력으로 재생되었지만 이것은 허유가 발휘한 마력이 거대한 탓에 발생한 우연에 불과하다. 보이드의 육체를 재생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생한 마력이 아니었다.
재생된 건 눈에 보이는 부위 뿐.
보이드의 안쪽은 여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겉만 멀쩡할 뿐, 속은 완전히 곪아 있는 내 몸뚱이와 대동소이했다.
비슷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내가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드 또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보이드는 두 다리로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른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그 자세에서 보이드의 목적을 읽어냈다.
"그래……, 맞아……. 네게는 아직 정산할 게 남아 있었지……."
"일어나라. 시작한 싸움은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
허유와의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검왕검과 함께 시작했던 보이드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도 보이드도 아직 살아있다.
이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다리와 허리에 힘을 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꼿꼿하게 일어선 순간 상반신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를 꽉 깨물고 버텨냈다.
"……후우."
하지만 무기는 어쩌면 좋지. 균열이 크게 달린 검왕검을 이 싸움에 쓸 수는 없다.
지금의 검왕검은 사람이 아니라 두부를 썰어도 부러져 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검을 포기하고 검집으로 싸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오른손에 조용히 힘을 준 그때,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백신현!!"
고개를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지형은 원래 울퉁불퉁한 지형이었지만,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발생시킨 후폭풍에 의해 분지 지형처럼 움푹 들어간 상태였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가 원형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루이스는 지형이 움푹 들어간 경계에 서 있었다. 상당히 무리를 했는지 이쪽도 안색이 나쁘다. 다리 근육이 경련하는게 보인다. 다리를 혹사시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눈에 크게 띄는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허유의 분신은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끝난 모양이다.
루이스는 소리 높여 내 이름을 부른 후, 허리춤에 꽂혀 있던 검을 검집 째로 집어 던졌다.
검집은 내 발치에 푹 소리와 함께 꽂혔다.
검왕검과 같은 금속으로 제작되었지만 용량을 모두 예리함과 강도에 몰아넣은 또 하나의 검.
루이스의 검이.
루이스는 이걸 내게 전해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검왕검의 한계를 처음으로 지적한 건 루이스였으니까.
한계에 달한 검왕검을 검집에 밀어 넣고, 검집을 허리춤에서 쑥 뽑아냈다. 그리고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면에 내려 놓았다.
바닥에 꽂힌 검집에서 루이스의 검을 뽑아낸다.
보이드는 그때까지 나를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무척이나 차분해서,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보이드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단순히 피가 부족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나와 보이드의 몸 상태는 거의 비슷하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붕괴하기 직전이다.
"……."
"……."
서로를 마주본 채, 검을 써서 거리를 잰다. 앞으로 내민 다리를 떼어내려다 말고, 시선을 바쁘게 움직이며 서로의 빈틈을 통찰한다.
그때 보이드의 입이 움직였다.
"지금 내 기분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느냐?"
"글쎄."
"상당히 허무하다."
보이드의 눈꼬리가 꿈틀 거린다.
"그 존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너는 알고 있나? 나도, 그 개 여자도.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온 모두가 그 존재를 두려워했다. 검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감히 그 존재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어."
도대체 언제였을까.
예전에 허유한테서 들은 말이 있다.
과거, 보이드가 바깥에 존재하던 허유와 우연히 접촉한 적이 있었고, 허유가 보이드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그때 보이드의 혼에 새겨진 단말 때문이라고.
즉 보이드는 이미 바깥 세계에서 온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인간과 바깥 세계의 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격차를 보이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넌……,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나……? 난 널 죽이기 위해서 검왕의 적대 세력인 바깥의 존재에게 육체까지 넘겨줬다. 그런데……, 그런데 그 허유마저 네게 패배했다고……?"
허유의 손이 벌벌 떨린다.
그는 왼손으로 가슴을 콱 움켜쥐며 날 향해 적의를 쏘아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끝이냐?"
글쎄, 그에게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충격이었을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지금 보이드가 하고 있는 것은 엉뚱한 화풀이에 불과 하다는 것.
"애초에 이 싸움의 막을 올린 건 네 쪽이야. 네가 멋대로 시작한 싸움에 나와 루이스는 크게 다쳤고, 선생님은 죽을 뻔 했어.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너는 그 꼴이 된 게 그렇게 억울하셨나!?"
이때, 나는 나답지 않게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내 참을성이 한계에 도달했다. 보이드의 엉뚱한 원한에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이드에게 닥친 모든 불행은 모두 보이드의 자업자득이었다.
검왕검을 얻기 위해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건 그 자신이었고, 나는 그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을 뿐이다.
보이드의 나이는 수백 살이 넘어간다. 그런데 사고방식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미취학 아동 수준의 정신이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보이드처럼 되는 걸까.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뻑뻑해지는 기분이다.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분노가 나의 육체에 힘을 부여했다. 흥분한 탓일까, 고통도 조금 둔해진 듯한 착각이 느껴진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나는 나쁜 놈의 사연 같은 건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괘씸하게 느껴진다.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이유로 나와 루이스는 다쳤고, 연금술사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보이드가 그 어떤 소리를 입에 담아도 나는 아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이해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나는 보이드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조용히 호흡을 다스리면서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는 행위에 온 정신을 쏟았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끝내자꾸나.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질투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질투.
보이드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추접한 감정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놈은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 그 동안 거쳐온 검왕검의 계승자도 여럿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보이드는 그 중 누구도 내게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 점 때문일까.
보이드가 내게 이 정도로 큰 질투를 품은 이유는.
애초에 이것은 보이드에게도 무의미한 싸움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에는 루이스가 있고,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연금술사와 파비아, 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이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보이드가 해야 하는 일은 내게 증오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상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가장 높았다.
그런데 보이드는 그것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섰다.
오직 나를 향한 증오와 질투 때문에.
다시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사람은 분노가 임계점을 넘으면 오히려 미소를 짓는 생물이다.
내 입에서 힘 빠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 여기에서 끝장이다. 어디로 도망칠 곳도 없지. 내게 남겨진 길은 지옥 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네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남겨 주겠다."
"……그래, 이제 그만 끝내자."
나와 보이드가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다.
서로의 조건은 거의 대등했다.
육체는 피차 곤죽이고, 코어는 한계 이상의 출력을 오랜 시간 감당한 끝에 기능을 상실했다. 나의 코어가 그러하듯 보이드 또한 허유의 마력을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있었다.
허유가 막대한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던 때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싸움에 마력은 없다.
무기는 서로의 육체와 검 한 자루 뿐.
도대체 얼마 만일까. 마력 없이 싸워 보는 건.
마력의 획득과 함께 나는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휘두르는 마력의 크기가 거대해질수록, 나는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보이드와 처음으로 싸웠던 날이 떠오른다.
그후로 일 년이 흘러, 나는 다시 그때처럼 마력 없는 육체와 검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일 년 전의 그때와 비교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손에 넣고, 또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그 대답이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 속에 있을 것 같았다.
"간다, 보이드."
"언제든지 오거라. 어린 것아."
매서운 바람이 나와 보이드의 사이를 지나간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무기는 서로의 육체와 칼 한 자루 뿐.
마력에 대한 건 잠시 잊어두고.
인간 본연의 힘에 의한 투쟁을 시작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