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5. 신역?? (7)
* * *
흰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지금 파비아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허유의 분신이다. 그것은 일개 분신이지만, 이제껏 파비아가 경험한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했다.
설령 지금의 파비아라 할지라도 일대일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파비아는 뭔가 달랐다. 그저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나 속도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파비아의 부스스한 갈색 머리. 그 중에서 일부분만이 새하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병에 걸려서 털의 색이 달라진 너구리처럼.
"……."
루이스는 파비아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공격, 사각에서의 기습을 일일이 튕겨내고 있었다. 루이스조차 미처 튕겨내지 못하는 공격은 스텔라가 걷어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는 허유의 분신을 쓰러트릴 수 없지만 세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힘의 차이가 좁아졌다. 합격진이 무서운 이유가 이것이다.
제대로 된 합격진은 그저 두 사람의 힘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상승작용을 끌어낸다.
물론 합격진을 잘 짠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일개 개체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그에 대적할 수 있는 또 다른 일개 개체가 필요하다.
지금은 그것이 파비아였다. 갈색 머리카락의 끄트머리가 새하얗게 변색되어서, 새하얀 색으로 나부끼는.
스텔라는 잘 모르겠지만, 파비아는 마주한 전장의 특성에 따라서 전투 방식을 바꾸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투 방식의 변화는 머리카락의 색과 검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과거, 검왕검 내부에서 발생했던 검은 존재와 맞서 싸울 때는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었다. 속도를 중시한 형태로서, 파비아의 검은 좌우로 쪼개진 후 양손등과 결합되어서 일종의 손목검처럼 쓰이게 된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차이점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파비아의 머리카락은 붉은색이 아니라 일부분만이 새하얀 색채로 질해져 있었고, 또한 지금의 파비아는 검은 존재와 맞서 싸웠던 그 파비아가 아니다.
파비아 내부에 존재하는, 백신현의 진정한 사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또 한 사람의 자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녀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변화는 머리카락 이외의 신체 부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꼬리는 선인장처럼 털 하나 하나가 뾰족하게 서 있고, 바닥을 짚은 두 손과 발은 흰색으로 빛나는 마력이 보호구처럼 휘어감은 상태다.
바닥을 세게 짚은 양 손등에는 둘로 쪼개진 파비아의 검이 꽂혀 있다. 하지만 좌우의 크기는 다르다. 오른쪽은 파비아의 몸통 만한 길이였고, 왼쪽은 팔뚝 한쪽 보다도 짧다.
좌우에 서로 다른 크기의 칼날을 결합한 이유는 의도적으로 좌우를 불균형한 상태로 만들어서 파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지속력은 균형된 구조에서 나오지만 파괴력은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온다.
통상의 파비아가 모난 부분 없이 오각형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면 붉은 머리카락은 속도에 집중된 형태고, 지금의 파비아는 파괴력에 집중한 상태였다.
몽환夢?
"가아아아우!!"
파비아는 지금의 형태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마치 처음부터 이름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파비아는 이름을 정하는 행위에 일말의 고민도 드러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니르바나 사원에서 파비아의 실력은 천천히 높아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의 출력이나 전투 감각은 우수하지만 기술적인 면에는 하자가 많았던 파비아다. 그 점을 집중적으로 교정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파비아가 노력해도 이 정도로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하물며 고작 삼 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는 더더욱.
파비아의 갑작스런 실력 상승은 하룻밤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높아지던 실력이 갑자기 수직 상승했다. 마치 악마와 계약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흰……, 머리카락……'
파비아의 갈색 머리카락 중 일부분만이 흰색으로 덧칠되었다.
흰색, 루이스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백신아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고 말았다. 가상 공간 속에서 백신아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검사였다.
파비아와 백신아,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공통점은 하나 뿐.
검왕이다.
"아아아아아아아!!"
파비아의 오른쪽 대검이 허유의 분신을 세게 내려 찍는다.
허유의 분신은 그 공격을 버텨냈지만 그가 딛고 있던 바닥이 버텨내지 못했다. 그의 몸이 그 자리에서 지면 아래로 쑥 들어간다. 허유의 분신이 지중에 파묻힌 만큼 주변의 땅이 요란하게 솟아 올랐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실력 상승을 보여준 파비아에게도 지금의 적은 버거운 상대였다. 파비아는 너무 깊이 들어간 탓에 오히려 반격할 기회를 주고 말았다. 경험 부족이 빗어낸 문제였다.
분신의 반격이 시작된다. 분신의 몸은 지중 깊은 곳에 꽂혔지만, 그 상태에서도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반격이 시작된다. 표적은 파비아의 목이었다.
루이스는 아슬아슬하게 파비아의 보호에 들어갔다.
위험했지만, 늦지 않았다. 루이스가 추구하는 검의 극의는 속도. 부족한 최고 속력을 빠른 눈치와 날카로운 반사 신경을 더해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늦지 않게 도착한 루이스의 검이 허유와 부딪친다.
이때, 루이스는 일부러 검의 강도를 믿고 무모하게 힘으로 부딪쳤다. 원래 그녀의 힘으로는 허유의 검을 멈춰 세울 수 없다. 출력의 차이를 잠시나마 무마하기 위해서는 검에 상당한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
까득! 까득! 까득! 까득!!
루이스는 한 순간 시야가 아득해지면서 손목이 빠져 나가 버릴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어찌됐든 죽지는 않았다는 소리고, 육체가 통각을 끊을 정도로 큰 부담도 없었다는 뜻이다.
시간으로 치면 1초를 아득히 쪼갠, 소수점 수십 개 아래의 짧은 여유.
파비아는 그 짧은 사이에 반격할 준비를 끝마치고 움직였다. 분신의 검을 향해 오른손을 세게 후려친다.
허유의 분신이 바닥을 깎아 내면서 물러선다.
짧은 여유를 얻었다. 루이스도 검을 다시 고쳐쥔다. 뼈에는 위화감이 없다. 그리고 검에도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강도에 있어서는 검왕검조차 능가하는 물건이다.
루이스는 검왕검이 허유의 분신에 의해서 한 번 부러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분신은 아마 백신현이 앞서 마주했던 분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의 검은 무사히 버텨냈다.
같은 금속임에도 잠재력을 소모한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이 이유였다.
'신아는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문득, 루이스는 궁금증이 들었다.
허유의 분신 앞에서도 검왕검은 버텨내지 못했다.
분신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본체를 상대로 검왕검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어쩌면 루이스의 검이 쓰일 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 * *
같은 시각, 연금술사는 성의 중간 부분에 존재하는 어느 별실에 도착해 있었다.
샤를로트가 품속에 가지고 있는 브로치에는 연금술사의 마력에 들어갔다. 그것을 추적한 끝에 어느 별실에 도착했다. 연회장을 연상케 하는 둥근 구조. 천장에는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다.
모두가 거짓이었다. 수정으로 제작된 모양만 그럴 듯한 가짜. 새하얀 빛이 서로 반사 되어서 내부에는 빛이 돌고 있었지만, 빛이 가져다주는 온기는 한 줌도 느낄 수 없었다.
모양만 그럴듯하게 재현한 연회상의 중심에 샤를로트가 존재했다.
거대한 수정 안에 갇힌 채 경직되어 있다. 하지만 마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브로치의 마력, 그리고 연금술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샤를로트의 마력이 수정 안쪽에서 함께 느껴진다.
수녀복 차림의 샤를로트는 여기저기에 베이고 쓸린 자국이 많았다. 백신현의 말에 의하면 스페트로가 샤를로트의 육체를 차지한 채 그 존재와 맞섰다고 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함께 싸웠던 백신현의 경우, 오른쪽의 반신이 아예 걸레짝이 되었고 수술이 아니면 지우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흉터까지 남았다. 샤를로트의 경우 오히려 손상이 적다고 판단할 여지도 있었다.
샤를로트는 눈을 감은 상태로 조용히 잠들어 있다. 머리에는 후드가 없다.
연금술사는 백신현이 쓰러진 현장에서 함께 가져온 후드의 존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함정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연금술사는 마그누스에게 경계를 지시했다. 본인은 그 후 장갑을 꼈다. 직접 접촉하는 것이 어떠한 현상을 자아낼지 연금술사 자신도 알 수 없다.
갈색 가죽 장갑을 손에 끼고 수정에 손을 댄다.
구조 자체는 단순한 편이었지만 견고했다. 해체하지 못할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조금 시간이 소모될 것 같다.
'브로치 안에 내 마력이 들어있었지. 그것과 내 마력을 연동해서 바깥과 안쪽에서 동시에 파괴해 나가는 게 좋을까.'
집중하고, 구조를 파악한 뒤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리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연금술사는 별실의 한쪽 존재하는 거대한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 미터급의 괴물을 위해서 준비된 듯한 문이었다. 크고 넓다. 하지만 위험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문은 안쪽에서 훤히 젓혀진 채 내부의 광경을 그대로 드러낸 상태였다.
열린 문의 안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뭔가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인지, 내부에는 파괴흔이 상당했다.
'그런데 저건 뭐지……?'
파괴흔이 많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크기 뿐만 아니라 모양도 이상했다.
연금술사는 눈을 가늘인 채 파괴흔을 응시했다.
'마치 거대한 주먹으로 후려친 듯한……'
* * *
흥분은 없었다.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1년이 지금 이 순간 시험 받는다. 그런 중대한 사항이 걸려 있는 순간임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기는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전투에 필요한 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조차 적이 파고들 틈이 된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최적의 순간에 때려 박는 것.
"저것은 본체인가?"
바로 그 순간, 요하네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미 짊어진 봇짐에서 온갖 무기를 꺼내서 공중에 띄어둔 상태였다.
창, 도, 극, 채찍, 망치, 도끼. 온갖 무기에 강기가 맺혀 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른 이유이다.
요하네스에게는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강도로 마력을 끌어올리거나, 전투 시간이 길어지면 그의 이성은 매몰되고 광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작 강기를 몇 번 사용한 것만으로도 광기는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금은 광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목적이었다.
여러 개의 무기를 동시에 꺼내서, 하나 하나에 강기를 발생 시켰다. 그뿐인 행위에 그의 이성이 빠르게 소모된다.
광증에 빠진 요하네스는 기술적인 섬세함은 다소 떨어지는 대신 힘과 속도가 크게 늘어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전투 능력만 따지면 오히려 지금이 더 강하다.
전투 방식의 특성상 기교에 특화된 상대에게는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백신아에게는 크게 밀렸지만, 허유를 상대로는 지금의 그가 훨씬 도움이 된다.
허유는 강하다.
하지만 놈은 일류가 아니다.
다루는 힘의 자릿수가 너무나도 거대한 탓에 난적으로 군림하고 있을 뿐. 놈의 전투 기술과 마음가짐은 일류는커녕 이류 언저리에 간신히 걸친 수준이다.
광기로 뛰어든 요하네스의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광기에 완전히 몸을 맡기기에는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 온힘을 다해서 후려쳤는데 눈앞의 허유가 본체가 아니라면 끝장이니까.
보이드의 육체를 차지한 허유는 놈이 보유한 술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분신 술식에는 나도 충분히 데여 보았다. 상당히 까다로운 술식이었다.
"……."
나는 허유와 시선을 마주친 상태로 조용히 놈의 정체를 살펴 보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허유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짧은 시간 허유를 노려본 나는 이윽고 지금 눈앞에 있는 허유가 본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체입니다. 제 생각도 같아요.」
최강의 검사 또한 나와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의구심이 느껴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보이드 역시 여러 개의 분신을 쉽게 다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보이드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분신을 동시에 다루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허유라고 해서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 파비아와 맞서 싸우고 있는 분신을 제외하더라도 또 다른 분신을 꺼낼 여유는 충분할 텐데……, 어째서 허유는 그러지 않는 걸까.
내가 허유라면 분신을 파견해서 나와 요하네스의 전략을 파악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특별히 머리를 잘 쓰는 게 아니라, 보통 수준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다.
그런데 허유는 분신을 쓰지 않고 본체로 우리를 맞이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다.
자만하는 것일까?
그게……, 전부인가?
갑작스레 제시된 수수께끼에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느긋하게 수수께끼 풀이를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요하네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상반신을 앞으로 굽히면서 야수처럼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오!!"
그 포효는 파비아를 닮았다. 광기의 영역에 접한 탓에 정신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광기와 함께 수많은 무구가 동시에 움직인다.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탓에 나의 눈에도 무기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차라리 한 줄기 빛이었다. 무수히 많은 섬광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허유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허유는 요하네스 쪽으로는 시선을 향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속마음을 간파하고 있는 듯한 시선이다.
나는 큰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나는 요하네스를 전면에 내세운 채 조용히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쥔 칼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뱀처럼 요사스럽게 움직인 끝에 내 심장, 코어가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코어를 콱 틀어쥔다. 그 순간 소름이 확 돋았지만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나와 백신아의 공동 작업, 코어의 경계가 상정했던 것보다 빠르게 파괴되어 간다. 10초, 그 정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최강의 특급 모험가를 전면에 내세운 상황에서도 나는 도무지 안심할 수 없었다.
최강의 특급 모험가조차 미덥지 못하게 느껴질 정도로, 허유의 존재감은 강렬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느껴진다. 아니, 그것은 정말로 착각이었을까.
허유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하네스의 무수한 공격은 놈에게 긁힌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칼끝이 그의 피부에 접촉한 바로 그 순간 검의 궤도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휘어졌다.
보이지 않는 역장에 의해 보호 받고 있는 것처럼.
검 뿐만이 아니다. 요하네스의 모든 무기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모조리 빗나가고 튕겨 나간다. 그때마다 속도는 줄어들기는커녕 조금씩 빨라졌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의 시점에서는 허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초가속한 요하네스의 수많은 무기가 그리는 궤적이 지나치게 많았던 탓이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내 눈에 비치는 건 지면을 딛고 서 있는 허유의 두 다리 뿐.
그리고 구두를 신은 오른발이 천천히 앞으로 움직인 바로 그 순간, 허유는 바로 내 정면에 서 있었다.
"……!!"
의외는 아니었다. 나는 허유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밑천은 그게 전부이니까.
예측은 하고 있었는데도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허유는 검조차 뽑지 않았다.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오른주먹을 곧게 내질렀다.
그뿐인 행위에 나는 내 몸뚱이가 잘게 찢어져서 파괴되는 미래를 보았다.
제대로 자세도 잡지 않은 상태로 내지른 주먹은 공기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가했다.
오른손 끝에서 폭풍이 일었다. 성의 한쪽 측면이 통째로 뜯겨 나갔지만 주먹에 의해서 발생한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폭풍은 수십 킬로미터 너머에 존재하는 결계를 세게 때린 끝에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고지대라서 다행이다. 지금과 같은 공격이 지상에서 벌어졌다면 도시가 통째로 쓸려 나갔을 테니까.
소리는 늘 그렇듯 조금 늦게 따라 잡았다.
키이이이이잉─!! 그 소리는 회전 톱날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소리를 수천 배 키워 놓은 것과 비슷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아직 내 몸뚱이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늦지 않게 검을 들어서 허유의 공격을 멈춰 세우는데 성공했다.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요하네스가 급하게 이동시킨 일곱 개의 무기가 허유의 주먹을 가로막는 형태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으니까.
일곱 개의 무기 중, 제대로 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무기가 없었다. 강기는 파괴되었고 무기는 모조리 분쇄되었다.
파괴되지 않고 버틴 건 검왕검 한 자루 뿐. 하지만 이것은 검왕검이 요하네스의 무기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강도로 따지면 물론 검왕검이 요하네스의 무기보다 우위에 있겠지만, 허유 앞에서는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근소한 차이다.
개미 사이에도 나름대로의 서열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시선에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왕검이 파괴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코어의 경계가 절반 정도 해제된 상태였던 덕이다.
조금 어설프지만 이제까지 내가 찔끔찔끔 경계를 무너트려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장악할 수 있는 마력의 자릿수부터 차이가 난다.
전투에 가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크게 늘어남으로써 허유의 공격을 한 번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리스크는 크다. 코어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트리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 행동에 들어간 탓에 무너지고 있던 코어의 경계가 조금씩 고쳐지기 시작했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건 아주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전투 행동과 병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작업을 방해 받게 된다면 나는 허유에게 쓰러지기 전에 나 자신의 마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지금도 상당히 위험한 행위였다.
코어가 삐걱삐걱 떨린다.
"큭……, 허억……!!"
뇌를 심하게 쓴 탓일까.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는 핏물도 올라오려고 한다.
"놈!!"
그때, 여러 조각으로 분쇄되었던 요하네스의 무기가 파괴된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허유를 노리는 공격. 그러나 여전히 빗나간다. 척력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요하네스는 어검술을 통해서 상황을 살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검을 틀어쥔 채 허유를 향해 달려 들었다.
동시에 내가 뒤로 후퇴했다. 전투 행위를 중지하고 다시 한 번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작업으로 돌아간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작업은 신축성이 있는 줄을 잡아 당기는 작업과 비슷하다. 온힘을 다해서 잡아 당겨도 늘리기 쉽지 않고,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다시 원래 길이로 돌아간다.
원래 멈추면 안 되는 작업이다.
나도 할 수 있다면 제대로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린 후 허유와 싸우고 싶었다.
내가 그러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보이드의 분신 술식이 문제였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보이드의 술식이 허유와의 전투를 더욱 더 까다롭게 만들었다.
허유가 본체를 파악한 뒤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쓰면 돌이킬 수 없고, 후유증으로 코어의 기능이 마비되는 커다란 리스크를 짊어진 작업.
기회는 한 번 뿐인데, 난이도는 최악이다.
"흐읍!!"
요하네스가 왼손을 높이 치켜든다. 허유의 공격을 방어하는 대가로 부러진 검을 강하게 틀어쥔다.
오른손의 장검과 왼손의 부러진 검을 동시에 내려친다. 하지만 그 공격은 허유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요하네스가 쏘아 보냈던 무기들이 그러했듯, 그의 공격 역시 보이지 않는 역장에 가로막혀서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튕겨 나가지도 않았다. 검에 실린 마력이 어검술을 쏘아 보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탓이다.
하지만 요하네스가 힘을 겨루고 있는 건 허유의 몸을 지키고 있는 역장에 불과하다. 정작 허유의 본체에는 아무런 압박이 되지 못했다.
이미 한 번 목격한 적이 있는 광경이다. 스페트로가 샤를로트의 몸을 사용해서 허유와 맞붙었을 때 역시, 허유의 방어를 돌파하지 못하고 반격 당했으니까.
허유의 시선이 획 움직인다. 허유는 요하네스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왼손이 빠르게 뽑힌다.
양 주먹을 굳게 쥔 상태로 등뒤로 당긴다. 그 자세에서 목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음 궤적이 훤히 보이는 텔레폰 펀치. 그러나 회피할 수 없다. 쿵!! 오른발을 세게 내딛으면서 힘을 준다. 내딛은 바닥이 버티지 못하고 파괴된다.
"그, 악……!!"
나는 다시 작업을 중단하고 허유의 공격에 맞섰다. 재차 폭풍이 불었다. 이번에는 회오리가 두 개였다.
이번에도 버텨냈지만 공격을 받아낼 적에 데미지가 심상치 않았다. 코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강렬하다. 뭔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절반 쯤 해방되었던 코어가 다시 쪼그라든다.
내가 허유의 공격을 버티고 있는 동안 백신아는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백신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모든 신경을 코어의 해방에 쏟고 있었다.
하지만 진행 사항이 좋지 않다. 백신아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코어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 그때마다 허유의 공격으로 작업이 멈춰버리니까.
발판이 불안하다. 나는 기적적으로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공격을 버텨냈지만, 내 배후에 존재하는 바닥은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조리 쓸려 나갔다.
고작 두 번.
두 번 주먹을 내질렀을 뿐인데 이렇게 되었다.
허유의 주먹은 이제껏 내가 보아온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했다.
바닥을 향해 내지르면 땅이 갈라질 것이고, 수면을 향해 내지르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하늘을 향해 내지르면 천공이 찢어질 것이다.
신은 어째서 이러한 존재를 세상에 내놓았단 말인가. 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듯한 괴물을 앞에 두고 나도 모르게 전의가 꺾일 것 같았다.
이윽고 허유는 허리춤의 검에 손을 댔다. 검을 손에 쥔 것만으로도 투기가 크기를 배로 늘렸다. 숨이 턱 막힌다.
그리고 그때, 허유의 시선이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돌아 보았다. 광증에 휩싸인 채 허유의 사각으로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요하네스. 그의 공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유효타가 없을 뿐.
허유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요하네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요하네스의 공격은 허유에게 전혀 위협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와서 요하네스를 돌아본 이유는 무엇인가. 나조차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직후 벌어진 현상은 더더욱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윽……?!"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니다.
아마 마력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도 그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요하네스를 휘어감고 있던 광기는 껌딱지처럼 달라 붙어서 떼어내고 싶어도 쉬이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게 붙어 있었다.
백신아조차 그의 광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허유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놈은 그저 요하네스를 향해 눈을 돌렸을 뿐.
그러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요하네스의 광기가 꼬리를 말았다. 요하네스 자신을 파멸시킬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광기가 그의 내면 깊은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요하네스의 표정에 경악이 아로새겨진다. 허유를 향해 달려들다 말고 그 자리에서 휘청인다. 그의 의지와 관계 없이 탈력감이 다리를 붙잡았다.
허유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날파리라도 쫓아내려는 것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칼끝이 가속한다.
"이런, 젠……!"
요하네스는 필사적으로 무너진 자세를 수습하려 하였지만 그의 몸은 쉽사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회피할 수 없다. 회피가 늦는다.
나는 그 순간 최강의 특급 모험가가 절명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빗나갔다.
허유의 검이 요하네스의 허리를 끊어내기 직전, 그들의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창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미사일의 포격처럼 어마어마한 열기와 모래먼지를 동반했다.
상대적으로 먼 위치에 서 있는 내 몸뚱이를 날려 보낼 정도로 위력적인 폭격이었지만 허유에게 유효타를 내기에는 부족했다. 한 순간의 짧은 경직을 부여했을 뿐.
나는 그 경직을 틈타 요하네스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그를 허유의 공격 범위에서 빗겨 놓았다.
주먹이 그러했듯, 허유의 검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어마어마한 폭풍을 동반했다. 검을 횡으로 휘두른 순간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기가 수백 킬로미터를 횡단했다.
나는 요하네스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몸을 위쪽으로 잡아 당겼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양 다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호."
허유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놈은 조금 전의 공격에 관심이 생겼는지 아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짧은 여유. 나는 요하네스의 뒷덜미를 놓았다. 요하네스와 내가 차례로 바닥에 착지한다.
고개를 돌린다. 허유가 시선을 향한 그 자리에는 내 최악의 숙적이 서 있었다.
당연히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스페트로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르지만 허유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그 생각 하나는 일치하고 있었으니까.
스페트로는 아마 결계의 범위 내에서 홀로 실력을 가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결계의 강도를 고려했을 때 스페트로 혼자서 결계를 돌파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란즈 가주의 거죽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표정에서 느껴지는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스페트로가 허유와 시선을 마주친다. 놈 역시 허유의 존재감에 큰 압박감을 느끼는지 표정에 여유가 없었다. 입술까지 바짝 말라서 핏기가 없다.
"스페트로……, 그쪽에게 도움을 받다니."
"요하네스."
스페트로는 나 뿐만 아니라 요하네스와도 악연으로 엮여 있다. 두 남자는 한 순간 시선을 마주친 후 나란히 앞으로 나섰다.
요하네스는 허유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스페트로와 함께 최대한 버텨 보겠소."
그는 광기가 내면 속으로 도망쳐버린 상황에 크게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없다.
사상 최강의 특급 모험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스페트로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창을 쥔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질 것 같았다.
최강의 특급 모험가와 내 최악의 숙적이 서로 협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협력한 상황에서도 전혀 승산을 논하지 못하고 있었다.
"……."
허유가 다시 움직인다. 그것과 동시에 요하네스와 스페트로가 동시에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큭!!"
"어억!!"
한 합을 겨루었을 뿐인데도 요하네스와 스페트로는 전신의 피부가 갈기갈기 찢어져서 피를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예상밖의 선전이다. 협력하지 않고 일대일로 맞붙었다면 틀림없이 둘 중 하나의 목이 날아갔을 테니까.
저 몰골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그들이 힘을 합쳐서 시간을 벌어주더라도 나는 코어를 완전히 해방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다. 예측조차 넘어선 확신이 느껴진다.
절망적인 차이가 있다.
현 시대 최강의 무인들이 이 자리에 서 있음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야."
이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책략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모한 수단이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코어의 해방에 골몰하는 한편, 나는 검을 쥔 손으로 스스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심장은 아니다. 심장과 가깝지만 조금 떨어진 위치……, 그래 여기에 내 코어가 있다.
무모한 방법이지만 제때 맞추기 위해서는 이 방법 뿐이다.
나는 검왕검을 빙글 돌려서 칼끝을 내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검왕검이 움찔했지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백신아는 초집중 상태였다. 내게 말을 걸 여유가 없을 거다.
코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물리 공격으로 부수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력으로 파괴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검에 마력을 휘어감기만 해도 쉽게 파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칼끝으로 코어를 건드릴 수 있다.
푹!!
물론 내 코어를 파괴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나는 코어의 일부분을 건드려서 외곽 부분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코어의 경계를 스스로 파괴해서 해방을 앞당긴다.
갑작스럽게 떠올린 방법은 아니었다.
코어의 경계를 해방해서 허유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그때부터 쭉 이 방법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어서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고 이제껏 보류한 상태였다.
코어는 아주 복잡한 기관이다. 칼끝으로 잘못 건드리면 전체적인 기능이 박살이 나서 본전도 못 건진다.
적어도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코어에 손을 대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느껴진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보이지 않는 손이 내가 스스로 파괴한 코어의 경계까지 포용해서 제어 범위에 집어넣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코어의 기능이 해방되어 간다.
각성은, 그 직후였다.
* * *
그때.
파비아와 루이스는 저 멀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보았다.
빛의 기둥……, 이라고 불러야 할까. 눈부신 빛이 저 멀리, 허유의 성에서 하늘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허유의 색은 아니었다.
그 빛은 녹색.
초록색 마력 입자를 흩뿌리며 솟아오른 빛의 기둥은 백신현의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