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50화 (250/287)

〈 250화 〉 25. 신역?? (6)

* * *

"무슨 기분이오?"

"뭐가 말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허유의 기척을 쫓아, 위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았을 때, 허유는 이 성의 최상층에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체력적으로 크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층수가 많다 보니 올라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요하네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이 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전혀 생각조차 않고 있었던 화두와 함께 내게 말을 걸었다.

"이 세계의 운명이 우리의 어깨 위에 걸려 있는 상황이지 않소, 부담감이 느껴지진 않는가 해서."

"솔직히 잘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전 일개 개인일 뿐이에요. 일개 개인으로서 세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고작해야 제피로스 하나.

그리고 제피로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내 인간 관계.

그 정도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다. 갑자기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솔직히 실감하긴 어렵다.

오늘 뿐만이 아니다. 보이드 때도, 스페트로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힘과 간악한 성질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그들을 쓰러트리지 못했다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왔겠지. 그들은 세계 규모로 큰 사건사고를 벌일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 사실은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싸움을 헤쳐 나온 내가 이 세계를 위해서 싸운 건 아니다. 나 같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유치한 인간은 그런 규모의 사태나, 나비 효과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 싸움에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나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싸웠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를 위해서? 당치도 않다.

그런 건 실감할 수도 없고, 실감해서도 안 되는 종류의 것이다. 세계의 무게는 한 사람의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가. 그대에게는 그 정도의 싸움인 것인가."

"어차피, 지금까지 저보다 약한 상대와 붙어본 적은 없거든요. 제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워야 했던 이들은 모두 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초중량급의 상대였으니까요."

강적을 상대 한다는 점을 보면 이제까지와 크게 다른 것도 없다.

그 적이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인 탓에 굴욕적인 패배를 연달아 겪었지만……,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아니, 물러설 곳도 없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경찰이나 군대가 해결해야 하는 일을 저희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는 이 상황이 좀 신기하게 느껴진다는 것 정도? 사실 그게 제일 신경 쓰입니다."

물론, 지금의 사태는 설령 군이 개입하더라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다.

군에 소속되어 있는 최고 수준의 고수라고 해도 특급 모험가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니까. 제1위와 2위, 그들과 비슷한 수준에 서 있을 따름이다.

아마 군의 도움을 받더라도 유의미한 승산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껄끄럽게 느껴진다.

경찰이나 군대가 해야 하는 일을 우리가 나서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소.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 기억이 있고."

"정말입니까?"

"그렇소. 나는 그대와 같은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

내 고민을 들은 순간 요하네스는 충분히 이해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나 그대 정도 수준의 실력에 도달하게 되면 그런 시시한 고민은 하지 않게 되는 법이라오. 그대는 여러 명의 특급과 친밀한 사이이니 아마 알고 있겠지. 마그누스도, 루이스도, 특급에 있는 그 누구도 그대와 같은 고민을 하진 않소. 나를 제외하고."

요하네스는 수십 년 전에 이 세계에 떨어진 전이자였다. 나의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와 나 사이에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세계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개인이 소유한 무력이 거대한 세계이고, 특급은 그 정점에 위치한 존재요. 특급 모험가의 절대다수는 그대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

나는 이상할 정도로 특급 모험가들과 인연이 있었다. 나와 알고 지내는 특급 모험가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 중에서 인격에 하자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 이건 그들의 인격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들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고, 나는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다.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괴리였다.

"나도 그대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이오. 그래서 그대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같은 고민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소."

"그런가요?"

"음.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규칙이 있소.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세계의 인간이지. 예전에 살던 세계의 규칙을 신경 써봐야 어디에 쓰겠소?"

요하네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조언했다. 사실, 그에게 조언을 들을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나 역시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상 이 세계의 규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걸까?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알고 있는 나는, 설령 세계가 다르더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타인의 권리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특급 모험가라고 불리는 걸어다니는 전략 병기를 자유롭게 풀어두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과연 이 세계의 규칙이라는 간단한 표현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늘 품고 있던 의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은 아니지만, 그다지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친 전이자는 요하네스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군."

"네.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

"물론 그대의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니오. 아마 높으신 분들도 할 수 있다면 특급 모험가 같은 힘을 가진 인간들을 풀어두고 싶진 않겠지. 거대한 마력을 가진 개인이 잘못 힘을 쓰면 권력자들이 쌓아 올린 법칙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을 테니까."

요하네스는 나와 같은 전이자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어온 탓일까. 내가 쭉 품어온 의문에도 쉽게 대답하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마력과 마력을 통한 기술이 억누른다고 해서 억누를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오. 마력 그 자체를 이 세계에서 제거하지 않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완전히 억누를 수 없지. 실제로 노상에서 마력을 쓰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쓰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지 않소?"

그의 말에는 나도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나 역시 들키지 않았을 뿐,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서 수도 없이 마력을 사용해 왔으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현상인가? 그건 아니다.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마법을 쓰는 사람은 거리에 널려있고,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들 역시 그런 행위 하나 하나에 일일이 터치하진 않는다. 도를 넘어서지 않는 수준의 마력 사용은 다소 넘어가는 식의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은 통제하고 억제한다고 해서 완전히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력을 다루는 기술은 꼭 배워야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오. 타고난 감각에 의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 시켜 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지. 마력 교육을 금지하거나, 마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강하게 탄압하더라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외다."

"완전히 탄압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부작용이 발생하겠죠. 마력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의 숫자가 곧 국가의 군사력에 직결되는데, 마력을 다루는 기술은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 크게 좌우되니까요. 함부로 탄압하다가 우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놓쳐 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겠죠."

이 나라가 마력을 탄압한다고, 다른 나라까지 마력을 탄압하는 건 아니다.

세계 각국이 마력 기술을 연구하면서 파워 게임을 벌이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 타국에게 뒤쳐지지 않을 길은 우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끊임없이 발굴하는 방법 뿐이다.

요하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의 말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건, 그에게 질문하기 전부터 나 스스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이 세계의 규칙에 대해서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나 스스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상태였지만, 솔직히 궁금증이 들었다.

나보다 먼저 이 세계에 떨어진 후, 무척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대의 말이 맞소. 마력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마력을 휘두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손을 놓아 버리면 이 나라는 순식간에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말겠지. 모험가라는 직업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소."

요하네스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 순간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그의 손바닥 위로 모험가 조합의 마크가 떠오른다.

방패를 배경으로 검과 총이 십자로 교차되어 있고, 중심에는 불꽃이 타고 있다.

"제대로 된 시험을 거쳐 합격한 모험가의 경우, 마력 기술의 사용에 있어 상당한 관용이 주어지게 되오. 모험가 조합이 공증한 정당한 의뢰를 수행하고 있을 경우, 노상에서 마력을 사용하더라도 처벌이 내려지지 않지."

요하네스는 모험가의 기원을 이러한 한 마디로 정리했다.

"즉 마력 기술이 억제되어 있는 현 사회에서 마력 기술의 사용을 부분적으로 허가 받은 몇 안 되는 직업이라 할 수 있소."

"마력 기술의 사용을 강하게 탄압하는 건 큰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죠. 그러니까 탄압의 수위를 높이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마력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모험가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불만을 돌리는 역할로 사용했다……, 그렇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 혹시 전부터 알고 있었소?"

"네."

나는 선천적으로 마력을 축적하지 못하는 체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력과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존재하지 않는 힘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강하게 갈구해왔다.

마력 사용 욕구를 분출 시킬 창구로 모험가를 만들고, 그 전체적인 숫자와 비율 등을 집계해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한다.

관리하는 방식이 꽉 조여져 있는 듯한 느낌은 아니다. 강하게 조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니와, 마력을 휘두르는 개개인이 살상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마력 사용을 들키지 않거나, 너무 크게 일을 벌이지 않으면 경찰들도 심하게 추궁하지 않는 것처럼 이 '느슨함'이라는 개념은 마력 사회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중심부에 존재한다.

좋게 보면 유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보면 그냥 헐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거지 같은 마력 사회에서 완전한 사회 질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모든 인간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를 거부하고, 사회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욕구를 참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의 불안정해 보이고, 느슨하기 그지없는 정책은 마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탄생한 궁여지책이었다.

나는 내가 과거에도 몇 차례 입에 담았던 표현을 다시 한 번 목구멍 속에서 굴렸다.

마력은 인간에게 과분한 힘이다.

"모험가 중에서 특히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특급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하는 것 또한 마력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오."

특급 모험가 필두에 서 있는 남자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아니었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력을 제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모범이 되는 것이지."

"특급 모험가는 품위 유지 의무도 빡세게 들어가죠. 루이스에게 들었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 나는 백신아의 권태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하 격투계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수수께끼의 절세무인, 가면 검사로서.

하지만 그때 루이스는 가면 검사의 활동을 보지 못했다. 특급 모험가가 가지고 있는 품위 유지의 의무가 원인이었다.

특급 모험가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물론 그들의 속사정에 빠삭한 나는 특급 모험가가 인격 파탄자들의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로 보았을 때, 그들은 모범적인 행동으로 존경을 받는 최강의 모험가 집단이었다.

효과는 충분했다. 올바른 것과 정의를 향해 냉소를 던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올바른 행동을 향한 동경이 존재한다.

거대한 힘을 올바르게 방식으로 휘두르면서 사회적 이익에 공헌하는 특급 모험가의 존재가 마력 사회의 안정에 어느 정도 이바지 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특급 모험가의 진실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실소가 나올 상황이지만, 진실이라는 건 원래 다 이 모양 이 꼴인 것 같다.

하여튼 거지 같은 세상이다.

내가 벌레 씹은 얼굴로 표정을 구기고 있으니, 요하네스는 슬쩍 웃으면서 이야기를 정리했다.

"대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건 우리도 군인들도 마찬가지오. 목적이 같은 이상, 우리가 그들의 일을 조금 대신하고 있다고 해서 고민에 빠질 이유가 없지. 떳떳하게 가슴을 펴시오. 우리는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역시 그렇겠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하네스가 너무 진지하게 대답해서 오히려 놀랐다.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대단한 고민도 아니고, 그냥 조그만 가시가 박혀 있는 정도에 불과한 문제였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건지.

하지만 그 덕에 나도 마음 속에 남아있던 조그만 껄끄러움을 완전히 걷어낼 수 있었다.

지금의 문답이 전투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기분은 홀가분했다.

내가 과거에 어느 세계에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고, 아마 이 세계에서 내 삶을 끝내게 될 것이다.

과거의 상식에 사로잡혀 있을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상식이 존재한다.

거지 같은 마력 사회에서 최소한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상식. 선인들의 무수한 노력 위에 쌓아올려진 금자탑.

나는 잠시 고민한 후, 요하네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조금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마력을 철저하게 탄압하는 게 정답은 아닐 거에요. 예를 들어 전 세계의 정부가 갑자기 합의를 이루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 기술을 봉인하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게 조금 편해지겠지만……, 이 세계에는 다른 차원에서 찾아온 괴물들이 있잖아요."

허유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광기의 영역 저편에 있는 초월적인 괴물인 놈은, 놈의 본체는 우리들 인간과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에 존재한다.

"마력을 다루는 기술을 탄압하기 시작하면 정작 그런 놈들이 나타났을 때 대응할 방법이 없어져요. 아무리 사회 질서가 중요하더라도,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죠."

나도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마력은 이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준 존재였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다수의 혼란 역시 마력에서 비롯되었다.

마력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을 탄압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이득과 손실.

양쪽의 가치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실감하게 된다.

마력은 인간에게 과분한 힘이다.

하지만 아마 이 세계에서 인간 스스로 마력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력에 의해 발생하는 트러블 같은 건 사소한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허유는 공포 그 자체의 존재였다.

사회질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인류 전체의 생존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하물며 머나먼 이계에 살고 있는 것은 허유 뿐만이 아니다. 그와 동격 이상의 존재들이 그와 같은 이계에 다수 존재한다.

마력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마력을 탄압한다고 모든 문제가 짠, 하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마력이 없는 세계에는 뭐 싸움이 없었나? 마력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 자체에 선악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일 뿐."

"그렇소. 마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마력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마력 그 자체와 이별하는 것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일이지. 우리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뿐이오. 마력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

요하네스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가 고르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하루 이틀 고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와 나는 마력이 없는 세계를 알고 있다.

그런 인간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존재한다.

"이계에서 찾아온 괴물들의 존재가 확인된 지금, 마력을 억제해서 인류 전체의 힘을 줄이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소?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이 표현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군비증강에는 어마어마하게 돈이 드는 법이고, 군비에 쓰이는 돈을 복지에 쓰면 당장 굶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의 표현이 이 세계에 가장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의 존망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가 입증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아직 개화하지 못한 재능을 찾아내고 육성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력을 쌓아 올리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스스로의 재능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루이스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스스로의 재능을 알고 싸움의 길에 들어섰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 고작 몇 년만에 특급 모험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루이스는 이따금씩 검을 늦게 잡은 것을 후회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착했구려."

"네."

이윽고 우리는 성의 최상층에 도달했다. 허유는 이 문 너머에 존재한다.

코어의 리미터를 미리 해제하고 돌입하는 게 좋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이 너머에 존재하는 허유가 분신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허유와 비등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뿐.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오히려 내가 끝장난다.

커다란 힘을 끌어내는 것 이상으로 그 힘을 쓸 타이밍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하얀 문에 손바닥을 대고 힘을 주어 밀었다.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타일이 빼곡하게 깔린 넓은 공간, 허유는 그 중심에 등을 들리고 서 있었다.

"……."

허유와 나 사이의 거리.

타일 서른 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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