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47화 (247/287)

〈 247화 〉 25. 신역?? (3)

* * *

'추워.'

샤를로트는 수정 속에 갇혀 있었지만, 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수정 속에 갇힌 이후로 샤를로트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했고, 호흡조차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식까지 남아 있었다.

최근 한 달 간, 샤를로트는 한 순간도 의식을 잃지 않았다.

아니, 잃지 못했다.

수정 속에 갇힌 이후로 대사 작용이 모조리 멈췄지만 의식만이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괴로웠다. 수정 속에 갇힌 샤를로트에게 대사 작용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의식이 살아 있는 이상 정신의 피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휴식도 없이 한 달 간 의식을 유지한 결과 샤를로트의 정신은 오래된 치즈마냥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인간의 뇌는 수면을 며칠 이상 취하지 못하면 망가지기 시작한다던데, 혈액순환부터 시작해서 모든 대사가 정지되어 있는 지금의 샤를로트에게는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될지 알 수 없다.

샤를로트는 육체가 고정되어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다. 눈동자를 굴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지금의 샤를로트의 육체는 정말로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거대한 문이 존재한다. 그 문 너머에는 허유가 있다. 허유는 한 달 전에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허유에게도 준비가 필요하다. 대화 속에서 언뜻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허유가 지금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보다 육체를 강인하게 완성시키기 위해서일까.

샤를로트는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사형을 선고 받은 이후, 하루 하루 사형만을 기다리는 죄수가 된 것 같다.

'앞으로 5일.'

스스로의 의지로는 몸을 움직일 수도 시선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샤를로트는 창의 바깥에서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보며 하루 하루를 곱씹었다.

샤를로트의 육체는 꼼짝없이 수정 속에 고정 되어 있었지만 해와 달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소한의 위안거리가 되었다.

이마저 없었더라면 샤를로트의 정신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마모되었을지 모른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경험한 탓일까. 샤를로트는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에 삼켜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걸까.

그때마다 샤를로트는 흔들릴 것 같은 마음을 몇 번씩 고쳐 잡았다.

'난……, 희생을 한 게 아니야…….'

바로 그때, 그 순간에서 가장 승산이 높은 길을 선택한 결과 그것이 희생과 닮은 형태가 되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샤를로트가 가만히 있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더 나은 상황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두 초인의 대결 속에서 샤를로트는 길가의 돌맹이만도 못한 존재였고, 간섭할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페트로를 자신의 몸에 불러들여서 백신현과 공투 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신현 씨……, 내 선택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았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승산이 높은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백신현은 살아 남은 채 또 다시 한 달의 시간을 준비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저 기다릴 뿐.

그녀의 신뢰에 백신현이 보답하는 그 순간까지.

한 달 간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샤를로트로 하여금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쫓아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백신현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샤를로트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씻겨 나가는 상황을 경험한다.

마음 속에 온기가 퍼져 나간다.

그런데 그때, 눈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한 달 전에 닫힌 이후로 이제껏 한 번도 움직인 적 없던 문이 조금씩 진동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환한 빛을 뿜어낸다.

투명한 수정 속에서 고정되어 있던 샤를로트는 여자의 직감으로 깨달았다.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허유의 성에서 빛이 솟아 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성에서 시작된 빛은 둥근 원기둥의 형태로 변해서, 빛이 발생한 성 자체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성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좌표에 존재한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보았을 때, 지면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두꺼운 빛의 기둥이 하늘과 땅에 걸쳐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 기둥이 갑자기 두꺼워지면서 세력 범위를 넓히기 시작한다.

내가 서 있는 위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제피로스의 대부분이 빛의 기둥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기둥은 지상에 드리운 밤의 어둠을 대부분 걷어낼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열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허유의 활동이……, 시작되려 하는 것일까…….

빛의 기둥은 제피로스의 중앙 구역을 포함한 대다수의 영역을 차지한 뒤 차차 확장을 멈추었다.

"루이스, 가보자."

"알았어."

나는 루이스와 시선을 맞춘 뒤, 빛에 삼켜진 영역을 향해 턱짓했다.

"파비아 너는 선생님을 데리고 나와서 같이 와 줘. 조사를 해 봐야 할 거 같아."

"응!"

파비아가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최근 들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연금술사는 공방에서 눈을 붙이고 있다.

그녀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잠을 자는 건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할 듯싶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5일은 빠르다. 보이드의 육체가 예정보다 빠르게 완성된 것일까?

더 늦기 전에 움직인다. 빛의 기둥이 솟아 있는 위치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패닉에 빠져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건물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혼란스러운 군중들의 머리 위로 전진해 나간다.

빛의 기둥은 멀리에서 보면 원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가까운 위치에서는 평면처럼 보였다. 지금 빛의 기둥이 집어 삼킨 범위는 수십 킬로미터에 달한다. 인간이 가진 좁은 시야의 한계였다.

아무래도 출현 자체가 너무 갑작스러운 탓이었는지 빛의 기둥 근처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검왕검을 뽑아서 빛의 기둥을 한 번 세게 후려쳤다. 쾅!! 딱딱하다. 하지만 빛의 기둥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가까운 위치에서 검을 휘두르는데도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신아야, 네 생각은?"

「서로 다른 성질의 결계가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 벽은 물리 결계, 두 번째 결계는 마법적 결계, 세 번째는 공간 왜곡, 그리고 네 번째는 다시 물리 결계.」

루이스를 눈짓한다. 나와 루이스 또한 네 겹의 결계를 모조리 분석하진 못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까지는 파악하고 있었다.

조금 늦게 파비아의 등에 실려 연금술사가 나타났다. 그녀의 속눈썹 끝에서 졸음이 뚝뚝 떨어진다.

연금술사는 거대한 가방을 같이 들고 왔다. 그 자리에서 장갑과 고글을 쓴 뒤 뾰족한 꼬챙이를 꺼내서 결계를 향해 내질렀다. 콰직!! 꼬챙이는 결계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끝 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연금술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결계가 4중으로 쌓여 있는 것 같아. 첫 번째는 물리적 타격에 대응하는 결계, 두 번째는 마법적 타격에 대응하는 결계, 세 번째는 공간 왜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물리적 타격에 대응하는 결계. 아마 마지막 네 번째는 내부에서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쌓아 올린 결계일 거야."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을 사용한 걸까요?"

"자세한 수치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마 이 도시에 한 달 동안 공급되는 마력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너도 알다시피 공간 관련 마법은 어마어마한 마력량을 요구해. 나라에서도 그 마력 소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연구가 정체되고 있을 정도이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금술사가 눈을 깜박인다.

그녀의 말처럼 공간에 간섭하는 마법은 어마어마한 마력 소모를 동반한다. 숙련된 마법사 수십이 모여서 종이 한 장 정도 되는 범위의 공간에 간신히 간섭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을 다른 결계와 동시에 전개하면서도 수십 킬로미터 이상의 범위를 커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양의 마력이 소모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 벽 너머에 갇히게 된 사람들의 마력을 모두 더하더라도 이 결계에 쓰이는 마력보다 못할 테니까.

허유가 이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허유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결과가 존재한다.

고개를 돌린다. 빛의 기둥은 환하게 빛을 내고 있지만, 잘 보면 흐릿하게나마 내부의 풍경을 비쳐 보인다. 기둥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탈출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 같다.

무기로 후려치고, 마법을 쏘고, 빛의 기둥의 표면에 마법진을 그려서 폭파 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모든 수단이 의미가 없었다. 공간을 왜곡하는 벽에 도달하기는커녕 가장 외곽에 있는 물리적 결계조차 파괴할 수 없다.

현역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마그누스라고 해도 이 결계를 파괴할 수 있을까? 나조차 혼자 힘으로 이 결계를 파괴할 자신이 없다.

거기다 결계가 이거 한 겹만 있는 것도 아니고, 네 개의 장벽을 모조리 돌파해야 하는데……

「검주.」

"신현아."

그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두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백신아와 연금술사. 우연히도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치고 말았다.

검왕검의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백신아가 연금술사와 시선을 맞춘다. 짧은 시선 교환 끝에 두 사람은 도출해낸 결론이 서로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 같았다.

백신아와 연금술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결계 내에 문제는 없어 보여요. 마력 입자가 떠 다니는 것 같지도 않구요.」

"독가스 같은 게 퍼져 있지도 않은 것 같아. 결계 내부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명확하지."

「하지만 위험해요.」

"이 결계를 빨리 어떻게 해야 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결계 내에 위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서 결계를 파괴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 모순된 것처럼 들리는 지금의 말이 내 귀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즉, 이 결계를 통과해서 쏟아지는 빛이 위험하다는 건가요?"

결계 내에 위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결계 자체가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내가 판단하기에 이 결계의 가장 큰 특징은 네 겹의 결계를 다닥다닥 붙여서 매우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내부의 풍경이 비쳐 보일 정도로 투과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즉……, 이 결계를 필터처럼 거쳐서 결계 내부의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빛이 위험하다.

내 귀에는 그런 식으로 들렸다.

「네, 그렇습니다.」

"식물을 예로 들어볼까. 같은 씨앗을 같은 흙에 묻고, 같은 양분을 주더라도 쏟아지는 빛의 성질에 따라서 결과물은 달라지잖아. 그것과 비슷해. 인간의 몸은 햇빛을 통해서 영양소를 합성하기도 하는데 이 4중 결계를 통과한 빛은 인간의 몸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시킬지 알 수 없어."

파비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비유였다. 그녀의 말처럼, 내려쬐는 햇빛이 사람의 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그 빛을 조절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가능할 터.

이 벽은 4중 결계에 의한 필터에 의해서 빛의 성질을 조작한 후, 결게 내부의 사람들이 내려쬐게 만든다.

「최악의 경우, 이 결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다른 존재'로 거듭날 가능성도 낮지 않아요. 어쩌면 그 자식의 목적이 이게 아닐까요. 여기에 있는 인간 모두를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한 뒤, 권속으로 삼는다거나.」

허유에게 인간 따위의 힘이 필요할까? 허유의 힘을 직접 경험한 나는 그런 생각을 가슴 속에 품으면서도, 함부로 속단하려 하지 않았다. 눈앞의 결계가 인간에게 위험한 결계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시간으로 치면 불과 1초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내 두뇌 속의 시간은 가속 되었다.

현 시점에서 결계를 파괴하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선생님, 그리고 파비아. 잠시 날 좀 도와줘야겠어."

두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결계를 필터로 통과하는 빛이 위험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