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24. 합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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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무술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대답은 당연히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이다.
나는 꽤 세속적이고 자기보신적인 성격이라 불가능한 일에 무모하게 달려들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에 굳이 지금 도전할 이유는 없다. 설령 도전하더라도 충분한 준비를 거친 후에 도전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신념 같은 건 내게 없다.
하지만 현실은 선택을 강요하는 곳이다. 때로는 회피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준비할 여유도 없이 찾아오는 문제와 마주칠 수 있다.
회피할 수 없고, 준비할 여유도 없이 다가오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현실에는 때때로 그러한 문제가 찾아오곤 한다. 내가 실수하지 않고 최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그러한 문제 앞에서 나는, 무술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애초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그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리고 백신아는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싸움 역시 승산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고, 나는 그 싸움 중 단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
백신아는 그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다시 한 번 내게 대답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각오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내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겠다.
백신아는 내 결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지금의 시련을 준비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이러한 시련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백신아의 눈치를 보면서 나 자신의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허유와 맞서 싸워서, 이기고 말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각오를 굳게 다져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 나는 허유는커녕 백신아 앞에서도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
"윽……!!"
첨예하게 펼친 방어의 틈새로 칼날이 파고들었다. 칼끝에 눈동자가 걸린다.
퓻,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양쪽 눈이 모두 파괴되었다.
고통. 이런 종류의 고통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공격으로 백신아는 나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고 내 눈만 파괴해두었다. 나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생소한 고통에 신음했다.
"검주."
어둠 속에서 목소리에 집중한다. 천변무궁류는 마력의 흐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유파. 시각이 없어도 충분히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서로의 실력이 어느 정도 비슷할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나는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백신아의 공격을 보지 못했다.
다음 순간 코드를 뽑은 것처럼 의식이 사라졌다.
나는 어느 부위가 어떤 식으로 날아가서 내가 죽음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을 겪은 육체가 몇 초의 시간을 거쳐 다시 회복되었다. 파괴되었던 시각도 돌아왔다.
"제 목적은 단순히 검주를 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주의 마음을 꺾는 것, 그것을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어요."
"즉, 한 번에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일부러 살려둔 채 고통을 주는 방법도 있다는 건가."
지독한 수단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지독하게 느껴지는 수단은 상대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마음을 꺾는 데 있어 가장 유효한 수단은 고통.
녀석은 의도를 숨기지 않고 뻔뻔스럽게 늘어놓았다.
"네, 그렇답니다. 검주."
코트 차림의 백신아가 검을 양손으로 쥐고 살짝 당긴다. 마차 9회말에 타석에 선 4번 타자 같다. 자세에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백신아의 다음 공격은 검을 아래에서 위로 걷어 올리는 어퍼 스윙.
자세를 보고 그 공격에 대응하기 가장 적합한 방어 자세에 들어간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그 자리에 둥실 떠오른다. 공격이 꽂히는 그 순간 나와 백신아는 동시에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을 펼쳤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판단이 제삼검이라는 점에서 둘의 의견이 일치를 보였다.
완전히 동일한 선택을 보였음에도 그 차이는 크다. 기술적 능력에서 나는 아직 백신아를 도무지 쫓아갈 수 없다. 같은 기술을 동시에 사용했음에도 차이가 벌어지는 건 그때문이다.
"헉……!!"
몸이 붕 떠오르면서 등뒤의 벽에 부딪친다. 쿵!! 쿵!! 쿵!! 나는 그 자리에서 연달아 세 개의 벽을 파괴한 뒤, 어느 건물의 침실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 가상 세계에 나와 백신아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파괴 행위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이유였다.
백신아는 쓰러진 내가 다시 일어날 틈도 주지 않고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었다.
나도 천변무궁류의 초반 삼검에 대해서는 숙련도를 꽤 높여 놓은 상태였지만, 백신아의 솜씨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는데 성공했지만 칼끝이 바닥에 꽂히는 순간 건물이 그 자리에서 붕괴되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지만 서로 실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한 번 말리기 시작하면 뒤집을 방법이 없다.
불과 삼 초식도 버티지 못하고 나는 또 다시 한 번의 죽음을 체험하게 된다.
"교육에 있어 목표의 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무 낮은 목표를 제시하면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목표를 제시하면 의욕이 꺾여 버려요. 같은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목표에 따라서 결과물이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 속에서 백신아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저 나를 도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내게 화두를 던짐으로써 뭔가를 이끌어 내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제가 검주에게 제시해온 목표는 모두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검주의 한계를 빠듯하게 넘어서는 수준으로 목표를 설정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검주의 최대치를 높여 왔지요."
다음 순간, 아래에서 걷어 올리듯이 휘두른 칼날이 내 몸을 좌우로 찢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몸이 반으로 쪼개진 시점에서 내 육체는 이미 죽음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데 귀로 소리가 들리고 뇌가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이 가상 세계의 특성인 걸까.
"지금껏 겪어온 수많은 교육과 실전 속에서 검주는 조금씩 실력을 높여 왔습니다. 성취감도 있었을 거예요."
부활한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부러 내 공격에 맞추고 있는지 백신아는 내가 천변무궁류를 휘두를 때마다 정확히 동일한 기술을 사용했다. 제일검에는 제일검, 제이검에는 제이검, 제삼검에는 제삼검.
천변무궁류의 제사검이 서로 교차한다. 나와 백신아가 서로의 잔상을 베어 찢는다.
역시 완성도에서 차이가 났다.
턱 위의 머리가 칼에 베여서 날아갔다.
"하지만 오늘의 싸움은 다릅니다. 실력의 차이가 너무 큰 탓에 데이터를 축적하거나, 연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고통. 쏟아지는 죽음의 체감이 시시각각 검주의 정신을 잠식해나갈 겁니다."
일순천격一??
다음 순간, 백신아는 나의 등뒤에 멈춰섰다. 신발 밑창에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뒤늦게 들렸다.
내 육체는 그 자리에서 다진고기가 되어 흩어졌다.
피보라가 흩뿌려지고, 그 자리에 다시 육체가 재생된다. 나는 피웅덩이 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괴롭게 느끼실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애초에, 그 허유라는 존재는 이 시점에서 검주가 맞붙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시련을 돌파하는 방법 뿐이에요."
그 말이 내 귀에는 일종의 모순처럼 들렸다.
불가능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 불가능한 과제를 돌파해야 한다는 소리가 되니까.
백신아가 차갑게 웃는다.
그 미소에는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이 스며들어 있어서, 묘하게 껄끄러운 느낌이 있었다.
"시련은 교육하고 다릅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이를 악문다고 넘어설 수 있는 것을 시련이라고 부르진 않죠. 으레 '인생의 큰 시련'이라고 불리는 사건 중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몇이나 될까요?"
불현듯 백신아의 검이 강한 빛을 내었다. 칼날에서 천방지축으로 뿜어져 나온 수많은 실이 주변의 건물 하나 하나에 수십 가닥씩 꽂힌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건물이 쭉 뽑혀 나온다. 공중에 떠오른 건물의 개수는 수십 개에 달했다. 그것을 한 점에 뭉치는 것으로 백신아는 그 자리에 수백 미터급 규모의 거대한 철퇴를 만들었다.
수십 개의 건물이 한 자리에 뭉친 만큼 무게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백신아는 무게검을 느끼지 못하는지 수백 미터 크기의 철퇴를 마치 야구 방망이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검으로 받아낸다. 하지만 그 순간 검을 쥔 오른손을 제외한 나의 신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그 자리에 흩뿌려졌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크기의 철퇴를 휘두르면서도 내가 충격을 분산시키지 못하게 기술을 조정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기교가 있어야 이런 짓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제 말을 부정하고 싶다면 불가능에 도전해서 뛰어 넘어 보세요. 제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세요!"
그 짧은 사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경험했을까.
백신아는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내 육체를 파괴하려 했다. 아마 내가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신아가 바라는 것은 내가 지금의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인데, 죽음과 고통에 익숙해져서 저항 의지가 약해지면 의미가 없으니까.
그 과정에서 백신아는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천변무궁류의 응용을 보여주었다. 불현듯 내 주변의 산소에 간섭해서 나를 질식시키거나, 기후에 간섭을 해서 낙뢰를 떨어트려 숯처럼 구워버리는 등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효율이 떨어져서 차마 고를 수 없는 까다로운 선택지를 수도 없이 제시했다.
몇 번씩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나의 무력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백신아에게도 이 정도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과연 허유에게 도전할 수는 있을까.
목표는 조금 더 먼 곳에 있는데, 나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벽 하나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아직 저항 의지와 오기가 절망과 권태를 누르고 있지만, 이러한 정신 상태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이 가상 공간 속에서 시간은 현실 세계와 비교해서 두 배 정도 빠르게 흐른다. 나는 이 세계에 열여섯 시간 정도 있었고, 그 동안 백신아의 옷깃 하나 붙잡지 못했다.
실력의 차이는 물론, 백신아는 나의 검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 자신의 패가 모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더더욱 싸우기 껄끄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백신아의 진짜 실력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검을 부딪쳤는데도 공격 패턴에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소꿉장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싫어도 알게 된다.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다.
"……."
나는 피웅덩이 속에 파묻혀서 간신히 호흡하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한 바로 그 순간, 백신아가 칼에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은 핏물을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죠."
"……아직 할 수 있어……."
"검주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저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기회가 무한대로 주어지는 경우가 있나요? 그렇진 않죠. 도전할 수 있는 횟수는 한정되어 있고, 불쑥 다가온 기회가 불썩 사라지기도 합니다."
가상 공간 속에서 백신아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져간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이건 교육이 아니에요. 검주를 괴롭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련입니다. 저는 검주가 제일 싫어할 행동만 골라서 할 생각이고, 검주는 그 시련을 뛰어 넘으셔야 해요."
흰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가상 공간 속에 세워진 도시가 모습을 감추고, 바탕에 존재하던 새하얀 세계가 그 자리에 남았다.
"부디 오늘 저녁까지는 정양하시길. 이 정도로 오랫동안 검주의 정신에 고통이 가해진 만큼, 현실의 육체에도 충격이 쌓여 있을 겁니다. 여기에서 더 수행을 진행하면 쇼크사할 가능성이 있어요."
"……."
한 순간 얼이 빠졌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건전하지 못한 정신은 오히려 육체에 영향을 끼쳐 상태를 악화 시키기도 하니까.
이 경우, 노시보 효과라고 불러야 할까.
극악한 난이도, 한정된 도전 기회, 끊임없이 마모되는 정신력. 아마 이 시련이 길어질수록 내가 이 시련을 이겨낼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정신력이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속도보다 백신아가 깎아내는 속도가 더 빠를 테니까.
'……생각 해야 해……'
이대로는 안 된다.
강한 위기 의식이 내 정신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신아의 권한에 의해서 나의 정신은 검왕검 바깥으로 순식간에 튕겨 나오고 말았다.
"……."
나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한 상태로 다시 눈을 떴다.
묘한 탈력감과 함께 뜨뜻한 것이 얼굴의 일곱 구멍에 느껴진다. 다시 보니 핏물이었다.
백신아가 말한대로 가상 공간에서 경험한 고통의 시간은 현실에 존재하는 나의 육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 얼굴의 칠공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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