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38화 (238/287)

〈 238화 〉 24. 합체 (4)

* * *

이야기를 끝마친 후 마그누스가 코트를 들고 일어섰다.

"늦은 밤에 들러서 미안하다. 빨리 회복하렴."

"네, 감사합니다."

"요하네스 쪽도 한 번 찾아가봐야겠군. 아마 전례 없는 대규모 작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물론, 그때는 너도 호출할 생각이다. 지금의 넌 상당히 훌륭한 전력이니까."

마그누스와 스텔라가 공방을 나선다. 그들을 배웅한 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대규모 작전이라."

나를 부축하느라 여념이 없는 연금술사는 마그누스의 말을 천천히 곱씹고 있다. 전례가 없는 대규모 작전. 군인들은 물론 당연히 수많은 모험가들이 작전에 차출될 것이다.

"신현이 너도 꽤 성장한 거 같네. 제2위에게 저런 소리까지 듣고."

"그건 아마 제가 아니라 저 녀석을 두고 하는 말 같은데요."

고개를 돌린다. 벽의 한켠에 검왕검이 비스듬하게 기댄 채 보관되어 있고, 백신아는 그 검왕검에 손을 접한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물리적 형체가 없는 백신아에게 자세는 크게 의미가 없지만, 지금은 저런 자세를 취하고 싶은 기분인 것 같다.

「…….」

꽤 오래 전부터 백신아는 눈을 감은 채 집중 상태에 빠져 있었다. 쉴 새 없이 입을 나불대는 스타일인 백신아가 이 정도로 오랫 동안 침묵 상태를 유지하는 건 드문 일이다.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의 백신아는 고도의 집중 상태로 들어가, 수행의 준비에 힘을 쓰고 있었다.

「검주.」

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나 가만히 굳어 있었을까. 불현듯 백신아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전에 없는 고요함이 감돈다.

「지금의 저희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는 절대로 허유를 이길 수 없을 거예요. 가지고 있는 힘의 자릿수가 너무나도 다른 탓입니다. 하물며 한달 뒤의 허유는 더 강해져서 돌아올 텐데, 그렇게 되면 저 역시 감당할 수 없게 될 거예요.」

귀에 앉도록 들은 소리다. 우리와 허유의 사이에는 개미와 코끼리 정도의 격차가 있고,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나는 그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허유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 검주의 코어를 완전히 해방해서, 천변무궁류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 허유에게 통하는 수준까지 출력을 높이면 검주도 제대로 마력을 제어할 수 없게 될 거에요. 지금껏 검주가 다뤄온 수준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출력일 테니까.」

이 점은 이미 검왕검 내부에 존재하는 가상 공간 속에서 검증한 문제였다.

천변무궁류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으나, 나의 육체와 정신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타오르는 불꽃은 스스로의 몸뚱이마저 불태우는 법. 어쩌면 나는 허유의 공격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력에 의해 불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그 출력을 무사히 제어하게 되더라도 문제는 존재한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기 위해서는 최소 60초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데, 이것은 일 초를 수십, 수백 조각으로 쪼갠 시간 속에서 맞서 싸우는 우리에게 있어 지나치게 가혹한 준비 조건이다.

이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백신아가 제시한 수단이 바로 합체였다.

검왕검을 매개로 백신아가 나의 코어에 직접 접속, 일시적으로 내 코어의 제어권을 획득해서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과 동시에 막대한 출력의 제어를 홀로 해낸다.

스페트로나 허유가 보여주었던 혼의 빙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백신아가 나의 육체를 완전히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검왕검 속에서 나의 코어에 손을 댈 뿐이니까.

이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나는 검왕검에서 단 한 순간도 손을 떼어내서는 안 된다.

합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검왕검 내부에는 5분간 나의 육체를 백신아가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첨부되어 있다. 합체는 그 기능의 응용이다. 효과 범위를 내 육체 전제가 아닌 코어 하나에 집중해서 조작 효율을 높이는 원리였다.

이것은 즉, 백신아 또한 내 코어의 제어 하나에만 집중해야 간신히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코어의 완전해방이 리스크가 큰 기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코어의 해방과 한계를 넘어선 출력의 제어는 백신아가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허유와 맞서 싸워서 쓰러트리는 것.

지금까지처럼 5분이라는 시간 제한을 두고 나와 백신아가 교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최대치의 전투 능력을 끌어낸다.

예전부터 가능했던 묘기는 아니었다. 허유와의 2차전에서 획득한 몇 안 되는 성과 중 하나가 이것이다. 검왕검이 한 번 부서지고 접합되는 과정에서 백신아가 새로이 습득했다.

백신아가 허유의 앞에서 장담했던 한 달이라는 기간은 충분히 현실성 있는 수치였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지금의 검주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저의 접촉을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벽에 등을 기댄 백신아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처럼 검주의 몸을 간접적으로 조작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요. 저 자신이 검주의 코어에 직접 접속하면 검주의 육체와 정신에도 큰 부담이 걸릴 겁니다. 육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신이 문제예요. 검주의 정신이 싸그리 불타서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죠.」

끔찍한 말을 백신아는 큰 표정 변화 없이 입에 담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어차피 패배하면 다 끝장인 상황이다.

훨씬 더 커다란 절망과 마주한 상황이기 때문에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나는 백신아가 제시한 리스크에 큰 궁금증을 느꼈다.

허유와 스페트로에 의해 나도 이제 인간의 몸에 스며들어서 그 육체를 대신 조작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상황이다.

그리고 그 두 강적을 통해서 획득한 경험에 비춰 보았을 때 백신아의 말에는 한 가지 큰 의문점이 존재했다.

"잠깐, 질문이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검주.」

"스페트로의 경우, 그릇의 수준이 떨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 란즈 가주나 샤를로트의 육체에 스며들어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정신도 멀쩡해 보였고. 그런데 어째서, 네가 내 코어에 접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그런 리스크가 따르는 거지?"

그릇이 혼을 쫓아가지 못해서 발휘할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었을지언정, 그 혼이 그릇에 스며드는 것 자체는 스페트로가 질리도록 해온 일이다.

하지만 놈의 행위가 육체를 빼앗긴 당사자의 정신에 문제를 일으킨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아마, 허유에게 몸을 넘긴 보이드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

허유는 보이드의 기술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보이드의 정신과 감정에 동조해서 보이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욕구를 해결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보이드의 정신은 불타지 않고 아직 육체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물며 백신아는 그들처럼 내 육체를 아예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코어라는 극히 조그만 일부분에 접속하는 것 뿐이다.

그런 식으로 가정했을 때, 내가 백신아에게 코어의 접속을 허락함으로서 짊어지게 되는 리스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육체, 코어를 모조리 탈취하고 주도권을 빼앗은 스페트로, 허유와 비교했을 때 내가 백신아에게 허락하는 건 코어의 제어권 뿐.

술수의 강도로 따지면 오히려 스페트로나 허유보다도 부드럽다.

어째서 내가 짊어지는 리스크만이 이토록 무거운 것일까.

나의 솔직한 질문에 백신아는 보기 드문 미소를 드러내보였다.

「검주,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스페트로와 허유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리스크가 여기에 있다……. 이건 즉, 스페트로와 허유가 숙주에게 가하는 부담보다 제가 검주에게 거는 부담이 훨씬 더 크다는 소리죠.」

'그들'의 접촉이 숙주에게 부담이 되는 건, '그들'의 격이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이다.

그리고 백신아는 스페트로, 허유와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의 부담을 숙주에게 가한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건 단 한 가지 사실밖에 없다.

"네가……, 그 두 존재보다 거듭 높은 차원에 속한 존재라는 뜻인가."

백신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씩 웃었다.

* * *

새벽, 올리비아가 주고 간 영약을 복용한다.

검사 결과, 영약에 크게 문제되는 성분은 없었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오히려 아쉬워하는 얼굴이다. 영약에 문제가 있기를 바란 건가. 진짜 성격이 베베 꼬여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말한 것처럼 마력의 최대치가 높아진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복용 직후 코어에서 느껴지던 따끔따끔한 통증이 크게 줄어든 걸 보면 내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효과를 다 소모한 듯 싶었다.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허유는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마력이 조금 늘어난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준비를 끝마치는 것이 더 낫다.

내게 주어진 기간은 한 달이지만 당연히 허유가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내가 먼저 습격하는 쪽이 낫다. 샤를로트를 언제까지 그곳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복용을 끝마치고, 그 자리에 앉아서 마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영약의 효과인지, 손상 되어 있던 코어의 기능이 상당히 회복되어 있다. 지금 바로 수행을 시작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검왕검을 손에 쥔다. 나와 백신아는 검왕검을 함께 손에 쥔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말씀 드렸죠. 제가 검주의 코어에 접속하면 그것만으로도 검주의 정신이 불타 버릴 수 있다고.」

"응."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에요. 검주가 저의 존재감에 불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혼과 정신을 단련하는 것.」

"그건 정확히……, 어떠한 형태의 단련이지? 애초에 강한 혼과 정신은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거야? '강한 혼'의 기준은?"

소위 말하는 의지력과 인내의 문제인가?

고통을 참고 견뎌낼 수 있다면 그것을 강인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짧은 사이에 나는 정말로 많은 의문을 토해냈다. 신경 쓰이는 점이 워낙 많았던 탓이다.

하지만 백신아는 수많은 질문 중 단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나를 검왕검 내부의 가상 세계로 이끌었다.

「제게 듣지 않아도 곧 알게 되실 거예요.」

지금의 검왕검은 주변의 마력을 모두 끌어모으는 듯한 소용돌이 같았다. 의식이 검왕검의 눈부신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나의 머릿속에는 백신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다니고 있었다.

「제가 검주에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단 하나 뿐.」

의식이 혼탁한 탓에 내 눈이 잘못 본 것이었을까.

「검주는 지금부터, 이제껏 보지 못한 저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자물쇠를 채워 두었던 저의 본성을 일부 해방할 생각이에요.」

시야에 들어온 백신아의 눈동자에서 뿌리 깊은 어둠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동자의 흰색 부분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동공은 루비색으로 요염하게 빛났다.

「부디 충격 받지 않기를. 저의 본질은 검주가 혐오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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