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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33화 (233/287)

〈 233화 〉 23. 무? 그리고. (14)

* * *

허유는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검을 휘둘렀지만, 그렇다 하여 그 일격에 하자가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전신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은 검을 휘두르는 간단한 동작조차 폭풍으로 바꾼다.

지금으로부터 1초 뒤, 백신현의 목은 몸통에서 절단되어 바닥을 뒹굴게 될 것이다.

허유는 1초 뒤의 미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눈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쿵!!

검을 통해서 터져 나온 충격량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충격파는 반구체의 형태로 주변 일대에 균등하게 쏟아졌고, 그 여파는 천공의 구름까지 도달했다.

조화로운 형태로 뭉쳐 있던 구름이 네 조각으로 찢어져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

하지만 검이 꽂힌 그 자리에 허유가 머릿속에 그리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백신현은 여전히 꼼짝도 못한 채 쓰러져 있었지만, 검이 목에 꽂히는 것보다 먼저 그 사이에 끼어든 존재가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뽑혀 있었던 것일까.

칼날의 절반 가까이가 소실된 검왕검이 허유의 검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 허유조차 간신히 인식한 찰나의 순간 검왕검은 스스로의 의지로 검집의 잠금쇠를 풀고 전장에 뛰쳐 나왔다.

검왕검은 허유가 힘을 가하는 순간 살짝 밀리는 거 같으면서도, 결코 그 자리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인?'

허유의 눈으로도 그 존재를 완전히 인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검왕검의 손잡이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실루엣 같은 것이 허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검왕검을 쥔 존재는 전체적인 형상으로 보았을 때 여인에 가까워 보였다.

그 모습은 아지랑이처럼 흐릿하다.

공기가 응축되어 있는 것처럼 검왕검이 떠 있는 주변의 형태가 조금 일그러져 있다.

나부끼는 머리카락은 흰색이었다.

「……이 이상 검주를 상처 입히게 두진 않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도대체 어느 곳에서 들려온 소리였을까.

허유의 눈에는 마치 검왕검 자체가 스스로의 의지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콰직!! 그 순간 허유의 무게를 버티고 있던 검왕검이 한 순간 어마어마한 수준의 힘을 내었다. 허유의 오른팔이 확 들리면서 그의 전신이 들썩거린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허유는 힘에서 일시적으로 밀린 탓에 상반신이 살짝 뒤로 젓혀진 자세였다. 오른발을 살짝 들었다가 바닥을 향해 세게 꽂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일대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고 저지른 행동은 아니었다. 허유의 목적은 그저 균형을 잡는 것 뿐이었으니까. 가지고 있는 힘이 지나치게 어마한 탓에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지독한 후폭풍을 낳는다.

"좋구나!!"

재차 균형을 잡은 허유가 상반신을 앞으로 굽히며 검왕검을 노려본다. 하지만 그 자리에 검왕검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허유가 힘으로 밀리면서 시선이 살짝 위로 들린 찰나, 그의 시야 바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검왕검은 도대체 어디에? 허유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 바로 그때, 그의 배후로 갑작스럽게 검왕검이 찔러 들어왔다. 허유는 몸을 돌리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 받아냈다.

그 순간 그의 두 다리가 지면에 붙은 채로 쭉 밀린다.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검왕검에 실려 있는 힘이 범상치 않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증거였다.

허유는 불과 몇 미터를 밀려 나갔을 뿐이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거두지 못한 성과다.

스페트로의 온힘을 다한 돌격조차 허유의 피부 한 장 잘라내지 못했으니까.

"넌 그 검 내부에 잠들어 있던 녀석이냐? 좋구나, 하지만 부족해. 네 힘으로는 나를 쓰러트릴 수 없다!"

「…….」

검왕검을 손에 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입술을 다문다. 하지만 허유의 통찰은 실로 정확한 것이어서, 그녀는 지금 정확하게 정곡을 찔린 상태였다.

검왕검은 절반 가까이 되는 조각을 잃어버린 탓에 부서진 단면에서 끊임없이 마력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물탱크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검왕검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 조금씩 고갈되어 가고 있다.

검왕검의 파손이 덜한 상황이었다면 가능성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애초에 지금 이 순간, 검왕검 내부에 있는 존재가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행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검왕검이 크게 파손되면서 그 내부에 존재하는 구속이 느슨해진 탓이었으니까.

하지만 상관 없었다.

검왕검을 손에 쥔 투명한 실루엣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상관……, 없습니다…….」

"음……?"

「목적은 이미 달성 했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검왕검이 모습을 감추었다. 보이드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던 허유는 그 이해불가한 현상의 정답을 내놓았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은 그 자리에 질량이 있는 잔상을 남겨서 적의 눈을 속이는 기술이다.

허유가 눈을 돌린다. 검왕검을 쥔 투명한 검사는 어느 새 지면에 쓰러진 백신현의 지척에 도착해 있었다.

참혹하게 파괴되어서,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던 백신현의 육체를 그 존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그 움직임은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는 움직임과 크게 닮아있다.

"놓칠 것 같나!!"

허유는 몸을 통째로 틀어서 공격에 들어갔지만 검왕검을 손에 쥔 존재는 간발의 차이로 그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양자의 거리가 10미터 정도 벌어진다.

초인의 영역에서는 대단치 않은 거리였지만, 눈앞의 존재에게는 조금 다르다.

그 누구도 그녀처럼 움직일 수는 없다. 백신현도, 스페트로에게도 불가능했다.

검왕검을 손에 쥔 존재는 격에 있어서 허유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였다.

허유를 쓰러트릴 수는 없겠지만, 허유 또한 쉽게 쓰러트릴 수 없다.

회피에만 집중하면 도저히 맞출 자신이 없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허유에게도 한계가 존재했다. 본체의 힘은 한 없이 무한에 가깝지만, 보이드의 그릇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한계를 넘어선 힘을 쓰는 순간 보이드의 육체는 붕괴, 허유의 혼은 이 세계를 떠나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쫓아올 수 없을 겁니다. 지금의 당신에게는 불가능하겠죠. 활동 시간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검왕검을 쥔 존재는 허유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보이드의 육체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도.

허유가 3개월이라는 기간을 제시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보이드의 육체를 한계까지 개조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필요한 기간이 정확히 3개월이다.

분신을 현장에 투입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허유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자신감, 호전성 등을 고려했을 때 그가 분신을 보내는 행위에서 큰 위화감을 느꼈다.

준비가 끝나지 않은 건 허유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뒤의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한 달 뒤의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입니다.」

검왕검을 쥔 존재의 기척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투명해진 육체에 질감이 연하게 감돈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여인의 얼굴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부산스럽게 나부낀다.

그녀가 등을 돌렸지만 허유는 추적하는 것을 포기했다. 눈앞의 상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하지만, 격으로 따졌을 때 허유와 대등한 존재였다.

추적해도 제대로 붙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리고 허유 개인의 흥미도 있었다.

오늘의 싸움은 썩 재미난 것이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준비할 시간을 주었을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크게 기대가 되었다.

「검주는 강해질 겁니다.」

"네가 싸우려고 들진 않는군."

「제 역할은 검, 주제에 맞지 않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좋다……. 그것이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나 또한 그것을 존중하마."

허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에 쓰러진 샤를로트의 몸을 한손으로 들었다.

"너도 눈치 챘겠지? 이 아이는 죽지 않았다."

「보았습니다. 수도에 꿰뚫린 그 순간, 호신강기를 둘러서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지켜내었죠.」

"대단하지 않나? 나는 그 일격으로 확실하게 이 아이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어."

허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축 늘어져 있던 백신현의 오른팔이 다시 움직였지만, 크게 의미는 없는 행위였다.

"이 아이는 살려둘 가치가 있을 것 같군."

조금 전까지는 그런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 허유는 스페트로의 기량에 크게 실망하고 샤를로트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수도를 세웠으니까.

검왕검에도 한계는 존재했다. 아직 제약이 다 풀어지지 않은 탓에 짊어지게 된 한계였다.

바닥에 쓰러진 샤를로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는다.

「……죄송합니다, 샤를로트 아씨.」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한 뒤 선택에 나선다.

허유는 샤를로트의 탈취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백신현을 빼내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운이 좋았다. 그가 방심한 덕을 크게 보았다.

색이 짙어진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한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털어내며 그녀는 다시 한 번 허유를 노려보았다.

「추후, 검주는 샤를로트 아씨를 되찾기 위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잠시만 인내해주시기를.」

허유는 그 대답에 크게 만족했는지, 환한 웃음과 함께 몸을 돌렸다.

"한 달 뒤를 기대하겠다. 부디, 나의 유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허유와 샤를로트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흔적을 감추었다. 백신현조차 그 움직임을 쫓을 수 없었다.

마치 아지랑이 같았다.

"……윽, 아……"

차라리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였다면 좋았을 것을, 백신현은 그러지도 못했다.

가시처럼 쏟아지는 고통은 그로 하여금 눈꺼풀을 감을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느슨하게 열린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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