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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32화 (232/287)

〈 232화 〉 23. 무? 그리고. (13)

* * *

지독하기 그지없는 고통이었다.

나는 그 짧은 사이에 몇 번의 기절과 각성을 반복했다. 밀려 들어오는 고통에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가면서도, 그 고통에 의해 다시 한 번 눈이 뜨였다.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몸이 경련하고 있었다.

육체와 코어 모두 한계에 달했다. 대가 없는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은 넘어서서는 안 되는 영역을 침범한 대가였다.

내가 쓰러지고 몇 초 뒤, 샤를로트의 육체를 차지한 스페트로가 거친 숨 소리와 함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흰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색으로 질려 있었다. 자세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스페트로 또한 허유의 그 무시무시한 출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리를 했을 것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그릇으로 존재하는 샤를로트의 육체에 가해졌다. 입술은 말라서 색이 바랬고, 피부 위로는 땀 한 방울 찾을 수 없다. 체내의 수분을 한 순간에 모조리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황금으로 제작된 창으로 쓰러지려던 몸을 억지로 세운다. 스페트로가 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창과 칼에 베여서 쓰러진 허유가 있다.

"……쓰러트린……, 건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 해야지……. 이젠 정말로……, 한줌의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나는 물론, 스페트로 또한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전투가 지속된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든 힘을 짜 내었다.

끊어지려던 의식을 힘겹게 붙잡는다.

시선을 돌려서 바닥에 쓰러진 허유의 몸뚱이를 바라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지금의 허유가 다시 몸을 일으킬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흙탕물 위로 쓰러진 허유의 육체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허유의 몸이 크게 고동친다. 그 소리는 상당히 무거우면서도 멀리까지 울려서, 마치 범고래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허유의 육체가 말단 부분부터 천천히 녹아내린다. 몇 초 뒤에는 몸통과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허유의 육체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까지는 6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두 사람은 다르다. 나는 보이드와 맞서 싸운 경험이 있고, 스페트로는 한때 보이드와 친밀한 관계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눈앞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나와 스페트로는 알고 있었다.

보이드.

놈이 가지고 있는 제일의 특기는 분신 술식이다. 본체가 가지고 있는 힘의 일부를 떼어내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분신을 생성한다.

천변무궁류의 제사검이 그 원리를 일부 참고해서 제작되었을 정도로 우수하고 범용성이 높은 기술이다.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 중에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분신 술식의 파해식은 알고 있지만, 눈앞의 허유가 분신이 아니라 본체로 찾아왔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눈앞의 보이드가 분신이 아니라면 분신 술식을 파해하기 위해서 검을 휘두른 모든 행위가 무의미한 악수로 작용하게 된다.

서로 번갈아서 말을 움직이는 보드 게임과 마찬가지다. 무의미한 몇 개의 수가 전체적인 틀을 어긋나게 하고, 나를 회피할 수 없는 패배로 이끈다.

거기다 허유는 지금까지 내가 싸워온 그 어느 존재보다도 강력한 존재였다. 나와 스페트로가 힘을 합치지 않았더라면 결코 쓰러트리지 못했을 강적.

그러한 존재가 힘의 일부를 떼어낸 분신에 불과하다면……, 애초에 내게 승산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 된다.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서 악몽 같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억지로 지워 없앴다.

그런데……

"이럴 수가……"

허유의 육체는 완전히 녹아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스페트로의 얼굴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감정이 떠오른다.

그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울이 없어서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내 표정 역시 그와 비슷한 형태로 일그러져 있을 테니까.

"말도……, 안 돼……"

우리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서 싸운 그 괴물 같은 존재가……, 그저 힘의 일부를 떼어낸 분신에 불과하다고……?

지금의 나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고통을 잊게 할 정도의 충격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훌륭했어, 두 사람 모두."

멀리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매우 느리면서도 크게 울렸다. 마치 거들먹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러한 행위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육체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높이 평가하마. 너희 두 사람은 가지고 있는 힘 자체는 나와 비교해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으나……, 서로의 장점을 더해서 놀라울 정도의 상승 효과를 발휘했지. 그 위업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멀리 떨어진 상공, 허유는 공중에서 나와 스페트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말쑥한 검은 정장에 뒤로 넘긴 머리카락, 놈의 육체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보이드의 것이었다.

"……헉……!"

그때, 불현듯 스페트로가 상반신을 앞으로 굽히면서 피를 토해냈다.

내가 스페트로보다 극적인 변화가 없었던 것은 이미 육체가 망가져서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머리 위에서부터 강하게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와 비교해서 스페트로는 아직 여력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잇몸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한 순간, 쏟아지는 압력을 풀어 헤치면서 몸으로 위로 내던진다. 온힘을 다해서 내지르는 찌르기. 스페트로의 모든 기량이 한점에 압축된 절대적인 일격이었다.

"대단해!"

허유의 박수 소리가 멈춘다. 하지만 그것 뿐, 스페트로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페트로의 창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허유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창극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그것 뿐. 스페트로의 창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콰직!! 가해지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창이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어 간다. 그 충격은 창 뿐만 아니라 창을 쥐고 있던 팔뚝에도 전해졌다. 샤를로트의 양 팔뚝, 그리고 어깨의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이 산산조각으로 파괴된 직후, 공중에서 흩어지는 조각 사이로 허유가 조용히 파고들었다.

놈의 오른손이 가지런히 모였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곧게 편 상태로 수도를 세운다.

내 눈에 그 움직임 하나 하나가 명확하게 비친다.

"아아."

이런 상황에서, 나의 두뇌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한 발 앞서 상상하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의 상상은 잘 맞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머릿속에 떠올린 악몽 같은 광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왔다.

그 수단이 효과적으로 통할 때가 있었고, 그러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뼈는 부서지고, 근육은 깨어져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지금의 내게는.

한 자리에 모인 다섯 손가락이 샤를로트의 가슴팍을 향해 나아가고, 샤를로트의 몸을 차지한 스페트로에게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기술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아아아."

샤를로트의 가슴팍에는 어느 새.

날카롭게 세운 허유의 수도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 *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도약한 순간, 오른쪽 다리가 복합 골절 되었다. 이미 부러져 있던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 대가였다.

그 속도는 실로 대단치 않아서, 허유에게는 최소한 수백 회의 회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허유는 회피하지 않았다.

회피할 가치조차 없는 느려터진 일참이었다.

그는 특별한 자세조차 취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백신현의 일참을 받아 내었다. 칼날은 그의 이마에 꽂혔지만 피부 한 장 찢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후려친 백신현의 오른팔을 비롯한 우반신이 통째로 골절 되었다. 팔과 어깨를 비롯한 반신이 기괴한 형태로 비틀리면서 피를 뿜었다.

"……!!"

백신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의 그는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검을 쥔 오른손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부러지고 비틀린 다섯 손가락이 실타레처럼 검의 손잡이에 얽혀 있었다. 검과 오른손은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었다.

아주 지독하고, 후유증마저 동반하는 형태로.

부서진 반신으로 다시 한 번 후려친다. 그때마다 백신현의 반신, 아니 전신에는 참혹한 후유증이 따라왔다. 전신의 골격 자체가 부서져 가고 있었다.

전신의 파괴를 대가로 휘두른 세 번의 참격. 하지만 허유는 피를 흘리기는커녕 흔들리지도 않았다.

허유의 오른손이 백신현을 향해 다가온다.

백신현은 그 오른손을 칼로 내리쳤지만, 부서진 것은 오히려 이쪽의 오른손이었다.

목을 잡혔다. 허유는 그대로 몸을 아래로 던졌다. 전신의 체중을 실어서 10미터 아래의 지면에 백신현의 몸을 때려 박았다.

쿵!!

흙탕물이 사방으로 튄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허유의 몸에는 조그만 오물 하나 묻지 않았다. 바닥에 꽂힌 백신현의 몸뚱이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백신현의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즉사는 면했지만, 목뼈에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건 틀림 없었다.

진흙과 피로 백신현의 얼굴은 지저분하게 절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는 건 그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다.

목까지 부러졌다. 이대로 방치하면, 그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의 눈은 절망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샤를로트……"

백신현의 입술에서 어느 소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절망으로 흐려지던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빛이 돌아온다.

강한 증오를 품은 백신현의 시선에는 섬짓한 느낌이 있었다.

"음, 그래. 부족한 힘으로 열심히 노력했으니 그대에게도 상을 주어야 겠지."

백신현의 목을 그 자리에 놓고 몸을 일으킨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내서 백신현의 목에 가져갔다. 거리를 가늠하기 위한 작업이다.

고통을 주지 않고 한 번에 베어내기 위해서는 거리를 잘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넌 열심히 노력했어. 그런 네게는 상을 주어야겠지. 고통 없이, 깔끔하게 보내주겠네. 그것이 네게 걸맞는 아름다운 죽음이야."

완전히 파괴되어서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는 오른팔을 가볍게 밟았다.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다.

검을 높이 치켜든다. 주저 없이, 백신현의 목을 노렸다.

"……샤를로트……"

오른쪽 눈밖에 뜨지 못한 백신현이 다시 한 번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

그때, 허유는 알지 못했다.

백신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미 부러져서 못 쓰게 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무의미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든, 그렇지 않든 현실은 움직인다.

그리고 허유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움직이고자 했던 존재가 여기 또 하나 존재한다.

검왕검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이 필사적으로 검왕검의 기능을 찾아 헤메고 있었다.

검왕검은 이 정도로 망가지지 않는다.

백신아의 그 말은 주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검왕검은 이 정도로 파괴되는 물건이 아니다. 기능에 다소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가수복 기능에 의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왕검의 날이 파괴된 바로 그 순간, 백신아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어쩌면 검왕검은 백신아를 묶어두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연금술사의 추측은 검왕검과 백신아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었다.

부러진 검을 수납한 검집의 잠금쇠가 스스로 열린다.

『……검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

검왕검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봉인을 깨부수고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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