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31화 (231/287)

〈 231화 〉 23. 무? 그리고. (12)

* * *

불과 몇 초 전의 일이다.

샤를로트의 내면에는 광기가 잠들어 있다. 그것은 샤를로트의 인격과 전혀 상관 없는 곳에서 비롯된, 혈통 속에 숨겨진 광기이다.

소녀의 광기는 창으로 인식한 물건을 손으로 쥐는 그 순간, 내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광기의 원흉은 샤를로트의 선조가 제작한 사악한 마공에 있었다.

샤를로트가 창을 손에 쥘 때마다 마공에 의해 변질된 혈통은 머나먼 이계에 존재하는 어느 거대한 존재를 끌어 들이게 된다.

사상 최강의 창술사, 스페트로의 혼을.

수녀원의 지하에는 삿된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주어진 성유물이 존재했다. 그 성유물은 황금으로 빛나는 창이었다.

그것을 손에 쥔 바로 그 순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포한 혼이 샤를로트의 몸에 찾아왔다. 하늘과 땅, 그리고 샤를로트가 일직선의 기둥으로 곧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샤를로트는 그 영혼의 존재감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육체는 이미 죽고, 혼은 오랜 세월을 육체 없이 방황하였지만 여전히 쇠하지 않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혼이 평범한 인간의 혼과 비교할 수 없는 별격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인간 쓰레기야.'

샤를로트의 영혼은 순식간에 짓눌려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샤를로트가 힘겹게 마음 속의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인간으로서도, 무인으로서도 문제 투성이인 쓰레기 같은 인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신이 '무인답게 싸우는 것'에 집착한다는 걸 알고 있어……'

샤를로트는 그를 무인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다.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수명으로부터 도망쳐서, 후손들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니까.

그는 인격적으로도, 그리고 무인으로서도 자격이 크게 미달되는 존재였다. 샤를로트는 그를 혐오했다. 이러한 형태로 창을 다시 쥐게 된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회피할 수 없다면 스페트로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스페트로의 거대한 영혼에 짓눌려 가면서도 샤를로트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그 날의 사건 이후로, 샤를로트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자리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영혼은 스페트로라 할 지라도 쉽게 뽑아낼 수 없다.

과거에 비해 샤를로트의 인격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스페트로 가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싸움과 수녀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샤를로트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샤를로트는 스페트로에게 짓눌리면서도 영혼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의 자리를 필사적으로 사수해내는데 성공했다.

촛불처럼 흔들리는 샤를로트의 혼이 거대한 존재를 향해 소리친다.

'당신의 인격은 자기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당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무인답게 싸우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거야.'

한때, 샤를로트는 스페트로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샤를로트가 가지고 있는 일신의 무력이 스페트로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 어느 때, 어느 상황이라도 스페트로를 쓰러트려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 샤를로트는 그를 신뢰하고 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당신은 신현 씨를 구할 수밖에 없어. 당신은 신현 씨에게 패배했으니까. 당신이 신현 씨에게 복수하기 전에 다른 상대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때, 스페트로를 패배시킨 건 백신현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스페트로는 백신현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 더해져서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었던 강력한 적이었다.

하지만 스페트로가 쓰러진 그 마지막 순간, 샤를로트는 스페트로와 의식이 일부 이어져 있었다.

샤를로트는 알고 있던 사실을 당당하게 입에 담았다.

'그때, 당신은 신현 씨에게 패배감을 느꼈어. 실력은 당신이 신현 씨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지만……, 신현 씨가 마지막 순간에 보인 무인으로서의 자세에 큰 패배감을 느끼게 된 거야.'

마지막으로 검과 창이 교차한 바로 그 순간, 스페트로는 정신적으로도 백신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때의 기억이 밑창에 달라 붙은 진흙처럼 떨어지지 않고 샤를로트의 영혼 속에 남아 있다.

"……."

시간으로 따졌을 때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사이에 벌어진 대화였다.

샤를로트의 영혼은 완전히 구석으로 밀려나서, 육체의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창을 오른손에 쥔 채 최강무적의 창술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현재, 샤를로트가 있는 위치에서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구역까지는 수십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샤를로트의 육체를 차지한 스페트로는 과거, 란즈 가주의 몸을 차지했을 때 이상으로 강력한 신체 능력을 손에 넣었다.

샤를로트는 스페트로가 쓰기에 매우 알맞은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자질로만 따졌을 때 샤를로트와 란즈 가주는 비교가 안 된다.

푸른색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수십 킬로미터 너머의 경치가 보인다. 백신현은 보이드의 육체를 차지한 거대한 적에게 목을 붙잡힌 채,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한 번에 넘나들었다. 양손으로 틀어쥔 창을 앞으로 내지른다.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그 존재는 스페트로의 창을 피해냈지만, 그 과정에서 백신현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오른손에서 힘을 빼고 말았다. 백신현의 몸이 힘 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백신현을 힐끔 돌아보며, 샤를로트의 몸을 차지한 스페트로는 조용히 샤를로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쓰러트리기 전까지…… 백신현을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스페트로가 샤를로트의 입술로 이죽거렸다.

'백신현을 쓰러트리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역할이다.'

* * *

시야가 일그러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산소가 차단되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턱을 들어서 최대한 기도를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조금씩 산소가 유입되면서 몽롱했던 시야가 천천히 제 모습을 찾아 나간다.

뇌에 산소가 돌기 시작한 그때, 나는 간신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샤를로트가……, 스페트로에게 몸을 넘겼다.

아마 스페트로가 강제적으로 샤를로트의 몸을 차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허유조차 보이드를 꼬드겨서 놈의 영혼을 어느 정도 굴복시킨 다음에서야 몸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정신 에너지로 활동하는 생명체인 만큼,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인간의 몸뚱이를 가져가는 데 여러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악마 소환과 비슷하다. 악마는 결코 인간의 몸에 조건 없이 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서 정신 에너지의 접촉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하고 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 육체에 손을 뻗는다.

그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스페트로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지만, 샤를로트가 빌미를 주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샤를로트의 몸을 노릴 수 없는 존재였다.

샤를로트는 그녀의 금발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창을 손에 쥐고 있었다.

창을 쥐는 행위가 샤를로트의 혈통 속에 존재하는 각인과 반응해서 머나먼 이계에 존재하는 스페트로의 혼을 끌어 들인다.

샤를로트는 이대로 싸움이 계속 이어졌을 경우, 내가 스페트로에게 살해 당하리라는 사실을 예측한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지금 이 순간 허유에게 목을 졸려서 살해 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까.

샤를로트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 이제 두 번 다시 들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손에 쥐었다.

"……."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샤를로트에게 있어 스페트로에게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악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샤를로트는 내게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 샤를로트는 스스로의 손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 정도로 내가 처해있던 상황은 심각한 위기였다.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샤를로트의 육체를 차지한 스페트로는 내게 등을 보인 상태였다. 나와 허유의 사이에 끼어들어, 스스로의 몸으로 벽을 만들었다.

"백신현, 일어나라. 아직 여력은 남아 있겠지."

"……샤를로트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샤를로트의 목소리 그대로 였음에도, 나는 그 목소리에서 샤를로트를 찾을 수 없었다. 차갑고 고요하며, 그리고 오만하다.

저것은 샤를로트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스페트로 그 자체였다.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를 끌어들인 것은 그 아이 자신의 의지였으니까. ……네놈이 못 미더웠던 탓에 최악의 악몽이었던 나를 판에 끌어 들일 수밖에 없었단 말이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너, 이 자식……!!"

그 말을 들은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스페트로를 향해 증오를 토해내는 것 이외에 다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허유에게 패배했고, 스페트로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꼼짝 없이 죽음을 맞이할 상황이었다.

나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네 녀석이 꼼짝도 못하고 패배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저 존재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설령 이 아이의 몸을 통해서 모든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고 해도……, 일대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는 아니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도전할 생각인가? 아깝지 않겠나? 내가 보기에 넌 머지 않아 우리와 같은 영역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조금 전 허유는 스페트로를 두고 '나와 닮은 자'라고 지칭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스페트로를 향해 조금 다른 평가를 내렸다.

'우리와 같은 영역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너는 백신현을 죽이겠지."

"맞아, 그러겠지."

허유의 목소리는 담백했다. 놈에게 있어, 나는 조금 재미있는 벌레에 불과하다. 거슬리면 밟을 수 있는 정도의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나와의 사투는 놀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거절하겠다. 이 젊은 놈을 죽이는 건 내 몫이다. 어디에서 굴러온 말뼈다귀에게 그 역할을 빼앗길 수는 없지."

"좋아, 나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는데 좋은 여흥이 되겠어."

허유는 오히려 재미를 느꼈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마력은 장난에 불과하였다는듯, 전신에서 시꺼먼 마력이 충천한다.

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은 여파만으로도 바닥을 찢고, 천공의 구름에도 영향을 끼쳤다.

피부가 떨린다. 그 출력에 스페트로조차 기가 질렸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한 걸음 물러서고 만다.

"……괴물 같은 놈."

스페트로의 입에서 상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뺨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린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허유의 칼끝에서 뿜어져 나온 대참격은 방대한 범위에 어마어마한 열기를 흩뿌렸다. 달궈진 공기가 대기에 간섭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스페트로는 허유의 출력에 기가 질린 목소리로 천천히 창끝을 흔들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금빛으로 빛나는 창끝에 모인다.

흑주대천신공,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스페트로의 독문무공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전과 비교해서 조금 다르다.

원래 흑주대천신공은 정순한 마력을 일점에 집중시켜서 힘을 보는 무공이다. 자연지기를 다루는 힘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

아마도 이 변화는 현재 스페트로의 그릇이 되어 있는 샤를로트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모여든 물방울이 창끝에 모인다. 창날의 부피가 모여든 물방울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다.

스페트로는 등을 돌린 채,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전장에 뛰어 들었다.

"일어나기 싫다면……, 좋다. 계속 누워 있어라. 네가 다시 구해줄 것을 믿고 내게 몸을 넘긴 이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다면."

"……."

지금까지는 정말로 놀아주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 허유의 공격은 조금 전과 비교해서 수 배 이상 크게 늘어나 있었다.

스페트로 또한 과거 우리와 맞붙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차이는 크다.

쏟아지는 빗줄기 모두가 스페트로의 무기였다. 수많은 습기가 기화되거나 냉각하면서 온갖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일종의 이기어창이었다. 물, 안개, 빙결, 제각각의 재질로 구성된 무수히 많은 창극이 허유를 노린다.

그 속도는 빠르다. 코어의 경계를 일부 해방하고, 그 위에 제이검을 덧씌운 지금의 나조차 스페트로의 모든 공격을 걷어낼 수 있으리란 보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하다. 그때, 샤를로트의 몸뚱이가 스페트로에게 넘어갔더라면 우리는 절대로 스페트로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일격, 일격에 사상최강의 창술사에 어울리는 힘이 실려 있다. 창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대기가 떨렸다.

드넓은 천지자연조차, 사상최강의 창술사의 움직임에 경의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

바로 그 순간, 불현듯 스페트로의 상반신이 뒤로 젓혀졌다. 상처 하나 없던 샤를로트의 뺨이 붉게 부어오른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속도는 그들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상당히 느린 수준이다. 스페트로의 몸이 시간이 정지한 듯한 빗줄기 속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바닥에 두 다리를 접지시킨 채 쫙 밀려난다.

스페트로의 등에 부딪친 빗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수라??……!!"

충격을 견뎌내지 못한 스페트로의 몸이 아주 잠시 갈피를 붙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허유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을 등뒤로 크게 젓힌다. 다시 한 번 발사된다. 칼끝에 집중된 시꺼먼 마력이 초승달 모양의 참격을 그렸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내가 한밤 중의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의 착각이었다. 검이 휘둘러진 바로 그 순간 내 시야에 잡히는 모든 범위에 시꺼먼 마력이 파도처럼 범람했다. 높이, 그리고 넓은 범위에 펼쳐진 짙은 마력은 천공의 빛조차 차단시켰다.

스페트로는 그 자리에서 창을 세 바퀴 회전시킨 후, 창극을 넓게 펼쳤다. 그대로 내지른다. 쏟아지는 마력의 파도 속에서 샤를로트의 몸뚱이를 지켜낼 수 있는 아주 조그만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쿵!! 창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스페트로의 몸이 밀리기 시작했다. 검은 마력은 그것이 접하는 모든 범위에 있는 물질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스페트로의 창은 당장은 파괴되지 않았어도, 절대적인 출력의 열세에 의해 끝에서부터 바스스 흩어지고 있었다.

열.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졌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나는 건조함을 느꼈다. 빗물로 젖어 있던 옷이 빠르게 마른다.

가까운 곳에서 그 열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스페트로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군청색 수녀복의 양쪽 소매가 천천히 타들어간다. 힘이 과하게 들어간 탓인지, 드러난 팔뚝 여기저기에 균열이 내달리면서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스페트로는 강하다. 그리고 그의 힘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그릇, 샤를로트의 육체를 손에 넣은 것에 의해 지금의 그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족하였다. 시꺼먼 마력이 조금씩 스페트로의 범위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창극의 균열이 점점 커져간다.

"……윽."

스페트로의 앞일 따윈 내 알 바 아니다. 스페트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페트로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 샤를로트의 육체였다. 샤를로트의 혼 또한 그 자리에 함께 있겠지. 놈이 샤를로트의 몸뚱이에 빙의하는 원리를 나는 오래 전에 파악했다.

스페트로는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놈이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 놈이 패배하게 놔두면 샤를로트 또한 함께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스페트로의 말이 맞다. 샤를로트도 스페트로에게 몸을 주고 싶어서 주도권을 넘긴 것이 아니다.

샤를로트의 외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 샤를로트가 스페트로에게 몸을 넘기는 선택을 했다.

나는 샤를로트가 가벼운 결심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죽음에 다가가는 무거운 선택.

그 선택의 이면에는 나를 향한 신뢰가 존재했다.

모든 싸움이 끝난 후, 내가 자신의 몸을 되찾아줄 거라는…… 커다란 신뢰가.

나는 그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

샤를로트는 나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으니까.

힘이 빠진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에도 손상이 간 탓일까. 몸을 곧추 세우려고 해도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이검의 효과를 응용했다. 제이검은 외골격처럼 나의 전신을 휘어감아서 내게 힘을 공급한다.

그 원리를 이용해서 쓰러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허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바로 그 순간 전신의 균열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헉, 하고 나도 모르게 헛숨을 삼키고 말았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옆으로 갸우뚱 굽어진다.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곧추 세우며 달려 나갔다. 제이검, 제일검, 그리고 제삼검. 푸르게 빛나는 칼날을 스페트로의 창극과 같은 방향을 향해 휘두른다.

스페트로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검은 파도에 힘을 합쳐 저항한다.

아니, 맞서 싸운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콰직! 콰직콰직콰직콰직!!

검은색 파도가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었다. 스페트로 한 사람의 힘으로도 해낼 수 없었다.

한때, 누구보다도 증오하고 두려워했던 강적과 힘을 합치는 것으로 간신히 검은 파도를 베어 찢을 수 있었다.

허유는 그런 존재였다.

서로 적대하던 두 전사가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시꺼먼 커튼이 마치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나갔다. 세계에 다시 빛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 결과에 만족은 없다. 강적과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그 강대함에 기가 질릴 뿐.

눈을 날카롭게 뜬 스페트로가 샤를로트의 눈동자로 나를 돌아본다.

"그 힘,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지?"

"대략 60초 정도. 지속 시간이 다 되면 코어의 기능이 정지하고, 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될 거야."

"나의 움직임에 쫓아올 수 있겠나?"

"널 쓰러트린 이후로도 쭉 네 움직임을 떠올리며 수련해왔어. 나 혼자만의 힘으로 널 쓰러트릴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나도 마찬가지다. 네놈에게 패배한 이후 단 한 순간도 너와 그 최강검사의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 언젠가 찾아올 재전?戰의 날을 기다리면서."

나란히 선 나와 스페트로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간다.

나와 스페트로는 사이에는 강한 악연이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싸우게 될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결판이 난 뒤에도 우리는 서로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그것에 맞춰서 수행을 거듭해왔다.

우리에게 신뢰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한다.

'이 남자에게만큼은 질 수 없어'

서로를 강하게 증오하고, 의식해왔기 때문일까.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기술을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스페트로는 동시에 허유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허유의 얼굴에 위기감은 없다.

"하아아아아…………"

오히려 이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더더욱 사납게 웃는다.

최후의 공방이 시작된다.

* * *

현재, 허유는 보이드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즉 보이드의 기억을 원하는 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허유가 샤를로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이유도 이 점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샤를로트의 내면에 존재하는 스페트로에 대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스페트로와 백신현이 대립했고, 그 결과 스페트로가 패배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도.

천변무궁류와 흑주대천신공.

사상최강의 검술과 창술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빠르게 파고든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칼날. 그리고 초고속의 찌르기.

두 사람은 동시에 공격할 것처럼 달려 들었지만, 접촉 직전 백신현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허유의 옆을 스쳐 지나간 뒤, 그의 뒤통수를 노리고 검을 휘두른다.

정면에는 창, 배후에는 칼날. 허유가 몸을 오른쪽으로 반 바퀴만 틀었다. 왼손에 든 장검으로 창을 튕겨내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칼날을 붙잡는다.

"……."

두 사람은 동시에 대응했다. 스페트로가 그 자리에서 연격을 퍼부어서 허유의 행동을 봉쇄하고 백신현은 칼날을 비틀어 검지와 중지를 억지로 벌렸다. 칼날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조금 약해졌다. 붙잡힌 칼날을 뽑아내서 세 걸음 물러선다.

허유의 검은 반 박자 늦게 허공을 찢었다. 그리고 그 순간 대지가 쩍 찢어지면서 비스듬하게 미끄러진다.

정확히 세 걸음. 그 이상 물러나거나, 그보다 부족하게 물러났다면 그 순간 백신현의 몸통은 절단 되었을 것이다. 허유의 공격은 무시무시하게 범위가 넓어서, 안전지대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았다.

세 걸음 뒤의 안전지대를 정확히 파악한 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에 내딛었다. 회피, 그 후 다시 한 번 공격에 들어간다.

"……?"

문득, 허유는 두 사람의 공격에 조금씩 속도가 붙어 가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조금 전과 비교해서 분명하게 대응하기 까다롭다.

보이드의 지식이 멋대로 해석을 내놓는다. 합격진의 원리였다. 서로의 힘과 기술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양자의 능력치를 전체적으로 높이는 기술.

두 사람의 무공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변무궁류?????

흑주대천신공??????

허유를 사이에 두고 백신현과 스페트로가 동시에 움직인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팔이 어깨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빨라진 탓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초고속의 난무기와 초고속의 찌르기가 허유의 좌우에서 별무리처럼 쏟아졌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무수히 많은 불씨가 사방으로 튀었다. 허유는 칼 한 자루로 무수히 많은 난무와 무수히 많은 찌르기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걷어냈다.

이 1초 사이에 양자 사이에 오간 격돌의 횟수는 수만 회에 이르러 있었지만, 들려온 소리는 아주 찰나의 짧은 폭음에 지나지 않았다. 수만 회의 격돌은 짧은 소리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후우, 백신현과 스페트로가 동시에 숨을 몰아쉰다.

지금의 그들에게 있어 발판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들의 초월적인 각력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충격파를 일으키고, 인간의 몸뚱이 하나를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전후상하좌우, 백신현과 스페트로는 허유의 모든 방향에서 저마다 다른 일격을 수없이 내질렀다. 그 중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었으며, 동시에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완벽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굉장해. 놀라운 호흡이로구나!!"

허유의 양팔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유는 조금 전의 두 사람과 같다. 지나칠 정도의 속도가 팔을 눈에 비치지도 않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백신현과 허유의 몸이 나란히 바닥에 처박혔다.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방어하는데 성공했지만 허유의 공격은 방어를 부수며 꽂힌다.

치명상은 아슬아슬하게 회피했지만, 백신현과 스페트로의 팔다리에 무수히 많은 자상이 나타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출력은 도저히 허유를 쫓아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힘을 합쳐도 여전히 부족하였다.

"컥!!"

"크흑!!"

두 사람의 주춤한 그 사이 허유가 백신현을 돌아본다. 이상한 일이다. 강함으로 따졌을 때, 샤를로트의 육체를 차지한 스페트로는 지금의 백신현보다 전체적으로 우수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허유의 흥미는 스페트로보다도 백신현을 향해 있었다. 그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신현과 검을 부딪칠 때마다 그가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허유의 내려베기는 백신현 혼자서 받아낼 수 없는 공격이었다. 따라서 함께 받아낸다.

쿵!!

백신현과 스페트로가 다시 한 번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허유의 검은 서로 교차한 검과 창 사이에 끼어서 도중에 멈춰서고 말았다.

완벽한 호흡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 창을 상정해왔다. 내 삶에 있어 사상 최강, 최악의 상대. 설령 다시 대결한다고 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강적.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끝난 이후에도 쭉 그 창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그 검을 상정해왔다. 내 삶에 있어 사상 최강, 최고의 상대. 실력은 틀림없이 이쪽이 우위임에도, 나는 놈의 검에 패배감을 느꼈다. 그 검과 다시 한 번 맞붙을 수 있는 날을 쭉 고대해왔다.'

서로의 무?를 두려워했다. 목표로 삼았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재전?戰의 날을 기다리면서.

그렇기 때문에 호흡이 맞는다.

누구보다도 서로의 무서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호흡에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전사의 포효가 겹친다. 사상최강의 검술과 사상최강의 창술, 서로의 상승작용이 극한에 도달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찰나, 1초를 무수히 쪼개고 쪼갠 그 한 순간.

그들의 힘이 일시적으로 허유의 출력에 도달했다.

능가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합격진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더라도 가지고 있는 출력에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출력에서 허유에게 뒤지고 있을 뿐, 기술에서 허유에게 뒤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무?란 강자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서 약자들이 이어온 기술이다.

보다 강한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무?의 맥은 시작되었다.

절대적인 출력의 차이가 한 순간 대등한 수준에 도달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즉, 기술.

무?라는 이름의 영역에 있어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검과 창이 마치 뱀처럼 서로 반대되는 궤적으로 허유의 검을 휘어감았다. 허유를 구속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힘의 방향을 조작한다. 허유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서, 그에게 되돌리는 기술이다.

허유와 백신현, 그리고 스페트로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금의 작업은 둘 중 한 사람만의 능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호……!!"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허유의 몸이 붕 떠오르면서 뒤로 나가떨어진다. 그 자체는 큰 충격이 아니었다. 그저 그에게 아주 짧은 한 순간의 경직을 가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 경직이 치명적인 빈틈이 된다. 하물며 그들의 내달리고 있는 속도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파직! 파직! 파직! 파직!!

나란히 선 백신현과 스페트로의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현상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밀도를 가진 마력은 물리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품은 마력이 최고, 최대 수준으로 집중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완전히 동일했다.

생각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싸움 속을 헤쳐나온 육체가 전신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 기회를 놓치는 순간 다음은 없다.

천변무궁류와 흑주대천신공.

최강의 검술과 최강의 창술이 극한까지 날카롭게 벼려졌다. 서로의 마력광이 눈부시게 빛을 내며 흐린 구름이 드리운 대지를 화려한 채색으로 덧칠한다.

'천변……, 무궁류……'

'흑주대천신공……"

그 순간 쏟아지는 빗줄기가 일제히 정지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다.

소리조차 쫓아올 수 없는 초가속의 세계에서 천변무궁류와 흑주대천신공이 동시에 달려 나갔다.

공중에 멈춰선 빗방울이 그들의 질주에 부딪쳐서 산산히 부서져 나간다. 그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는 고열에 의해 용해되어, 붉게 달구어진 용암처럼 변질되었다.

흑백으로 덧칠된 세계 속에서 그들이 나아간 자리에 남은 마력 입자만이 환하게 빛을 내었다.

모든 것이 정지한 세계 속에서 오직 그들만이 살아 있었다.

"……."

이때, 허유에게는 어느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경직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한 순간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이것이 백신현 한 사람에 의한 참격이었거나, 스페트로 한 사람만의 찌르기였다면 허유는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틈이 보이지 않았다.

백신현과 스페트로가 나아간 궤적이 서로 교차한다. 그것이 허유에게 남아있던 기회를 완전히 봉쇄했다.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는 형태로 천변무궁류와 흑주대천신공의 합격진이 완성되었다.

둘 사이에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합의가 없었음에도 그 일격에는 오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회피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변무궁류를 피하기 위해서 몸을 던지면 흑주대천신공이 심장을 관통하고, 흑주대천신공을 피하기 위해서 움직이면 천변무궁류가 몸통을 찢는다.

방어 역시 마찬가지.

어느 한쪽을 방어하기 위해서 대응하면 다른 한쪽이 소홀해진 틈새를 파고들어서 때려 부순다.

허유에게 무예에 대한 소양이 존재한다면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살려 회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허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다. 그는 압도적인 출력과 보이드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올바르게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

검과 창에 스며든 무의 이치가 허유의 혼을 때려 부순다.

다음 순간 두 무인은 허유의 몸을 지나쳐, 그 너머에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백신현은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의 의지와 관계 없이 몸이 쓰러지고, 전신이 바들바들 떨린다.

한계를 넘은 힘을 휘두른 대가였다.

흑백으로 덧칠되었던 세계에 본래의 색이 돌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허유의 일격이 구름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한 것처럼 그들의 일격 또한 대기 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 위로 허유의 몸이 쓰러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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