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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30화 (230/287)

〈 230화 〉 23. 무? 그리고. (11)

* * *

나는 허유와 검을 부딪친 그 순간부터 모든 수순을 예측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수순이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지며, 내가 예상한 형태로 싸움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회피할 수 없는 패배라는 형태로.

나는 오래 전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 전투가 지속된 시간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을 테지만, 그 사이에 나와 허유 사이에서 오간 공방의 횟수는 약 수백만 회.

그 모든 수순이 내가 예상한 흐름으로, 내가 예측한 형태로 종결되었다.

다리가 꺾이고, 팔이 부러지고, 척추가 삐걱거린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승산 없는 싸움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째서 이 싸움을 지속해 나간 것일까.

애초에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물론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샤를로트와 함께 도망칠 수 없다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이 시점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올바른 형태로 수행했다. 지금의 나는 이 이상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없다.

그리고 이 시점의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지금의 허유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상대였다.

출력 문제와 기량 문제를 모두 포함한 문제이다. 출력이 부족하면 기량이라도 좋아야 하고, 기량이 부족하면 출력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나는 어느 쪽도 부족했다. 그것이 나를 패배시킨 원인이다.

과거에 비해서 높아진 상태이긴 하지만 허유의 영역에서 싸우기에는 부족했다. 그런 문제였다.

나는 그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어째서 이 싸움을 지속해 나간 것일까.

'기적을……, 바랬다……'

나는 허유와 검을 부딪친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 예측이 잘못되었기를 기도했다. 그보다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기적을 기다렸다.

내가 예측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한 수가 이 손끝에서 터져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한 수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내가 거쳐온 싸움은 모두 그런 것이었다. 알기 쉬운 대오각성 같은 것은 일어날 리 없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내가 거쳐온 모든 싸움은 저마다 당연한 형태로 끝을 맺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이겨왔고, 아무리 힘을 긁어모아도 이겨낼 수 없는 싸움 앞에서는 패배해왔다.

일시적인 대오각성에 의해서 찾아오는 깨달음이나, 순간적인 발상으로 상황에 알맞게 완성되는 새로운 기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

카가가가가가가각!!!!

흑백으로 물든 세계 속에서 나와 허유가 춤춘다. 공중에서 격돌한 두 전사의 주변에는 그들이 이제껏 부딪쳐온 흔적이 잔상으로 남아있다.

수백 명의 백신현, 그리고 수백 명의 허유.

수백 명의 백신현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수세에 몰려 있었고, 수백 명의 허유는 저마다 다른 형태로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천변무궁류의 기본 특성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초식을 끊임 없이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유의미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쿵!! 허유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순간, 나의 몸이 대각으로 추락했다.

바닥에 꽂힌 바로 그 순간, 몸을 돌려서 두 다리로 바닥에 착지한다. 하지만 충격은 쉽사리 분산시킬 수 없는 것이라, 나는 바닥을 두 다리로 딛은 상태로 쭉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신발의 밑창이 참혹하게 뜯겨 나간다. 나는 바닥에 칼을 세게 꽂으며 몸을 멈춰세웠다.

고개를 든다. 내 시야가 닿는 모든 범위에 허유가 있었다. 초고속으로 움직인 탓에 발생한 잔상이 사방팔방의 모든 공간에 들어차 있다.

수백, 아니 수천 명 이상의 허유가 일제히 달려든다. 나는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으로 맞서 싸웠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직!! 지금의 나는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마력을 다루고 있다. 제삼검의 크기도 그것과 비례해서, 수십 미터급 크기의 대검으로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앗!!"

푸르게 빛나는 마력검을 가로로 한 번 휘두른다. 그것만으로도 수천의 허유 중 절반 가까이가 쓸려 나갔다. 모든 것이 잔상이었다. 검을 휘둘러봐야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한 번 휘두른다. 오른팔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크게 부풀어올랐다.

나머지 절반의 잔상 중, 어느 하나에 칼끝이 걸렸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허유였다. 허유는 천변무궁류의 제삼검을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콱 틀어잡고 있었다.

콰직!! 허유의 팔뚝이 부풀어오른 것처럼 보인 바로 그 순간, 제삼검의 칼날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었다.

제삼검이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극심한 피드백이 뇌로 쏟아진다. 코피가 주륵 흐른다. 코어와 제이검에 의한 부하에 추가로 제삼검의 충격이 얹어진 탓이다.

수십 미터급의 칼날이 끝에서부터 산산히 흩어져간다.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던 마력 입자가 흩어지면서 나와 허유의 피부를 푸르게 비춘다.

울컥 올라오는 고통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고개를 돌린다. 허유가 다가온다. 요격.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이제껏 없었던 속도로 빠르게 휘두른다.

허유는 회피하지 않았다. 회피할 것도 없다는 듯,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향해 오히려 달려 들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최속의 공격이다.

하물며 현재의 나는 코어의 경계를 일부 무너트린 상태에서 제이검까지 중첩한 상태여서, 지금 이 순간 발해진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은 틀림없이 내가 지금까지 휘둘러온 그 어떤 일검보다도 강력하고, 재빠른 일검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일격은,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의 예측을 포기하고 새롭게 선택한 한 수이기도 하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이길 수 없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패배하는 것 이외의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장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에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과 속도의 차이는 내게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실망이군."

허유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허유는 이미 내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힘과 속도가 모두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 순식간에 두 배 이상의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허유는 검조차 쓰지 않았다. 움켜쥔 주먹이 내 배에 꽂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등의 옷감이 찢어졌다.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피부로 그 사실이 느껴졌다.

결사의 각오로 휘두르려 했던 제일검은 휘둘러지지도 못했다.

"……."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릎에서 내 의지와 관계 없이 멋대로 힘이 빠졌다.

앞으로 쓰러지던 몸뚱이가 허유에 의해서 고정되었다. 목을 붙잡혔다. 몸이 힘 없이 위로 들어올려진다.

"두달 동안 적잖이 고민했다. 네게 어떠한 형태의 죽음을 내려줘야 할지."

"큭……!!"

목을 틀어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호흡이 순식간에 차단되었다. 목뼈가 부서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힘이었다.

"너를 죽이는 것이 이 몸뚱이를 가진 친구와의 약속이었으니, 나도 곰곰히 생각해봤거든. 그런데."

허유의 힘으로 내 목뼈를 부러트리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나 뿐. 놈은 이러한 형태로 내게 죽음을 선고하려 하고 있었다.

"검을 쓰지 않고, 산소 차단으로 죽이는 것. 이것이 썩 괜찮을 거 같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산소가 차단됨으로서 뇌의 기능이 지극히 저하 되어 있는 상태임에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째서 이 싸움에 뛰어든 거냐고.

샤를로트를 포기했다면, 이 상황에서 허유와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그랬다면 한달 간의 준비를 추가로 거쳐서 허유를 쓰러트릴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내 안에 존재하는 나약한 정신이 그렇게 말한다.

그럴 지도 모른다. 내 나약한 정신의 말처럼, 오늘의 싸움은 샤를로트를 포기했다면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을 싸움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싸움을 뛰어든 결과는 참혹했다. 패배, 그리고 죽음. 그리고 나의 죽음으로써, 샤를로트 또한 허유로부터 보호 받을 수단을 잃고 회피할 수 없는 죽음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나는 대부분 올바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싸움에 뛰어들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웃……, 기지…… 마……"

"음?"

그것은 허유를 향한 말이 아니다. 그 순간, 나약한 말을 토해낸 나 자신을 향한 일갈이었다.

그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해서는 안 된다.

샤를로트가 겪어온 모든 불행은 샤를로트의 잘못이 아니었다. 샤를로트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런 핏줄을 재수 없이 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샤를로트는 수많은 고난과 불행을 겪어왔다.

오늘 벌어진 일 또한 마찬가지다.

샤를로트는 또 다시,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저 그러한 혈통을 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허유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건 잘못된 일이다.

샤를로트는 좋은 아이였다. 수많은 고난, 수많은 불행 앞에서도 스스로의 선한 천성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선의를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 주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러한 소녀가 스스로 행한 선의에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한 채, 또 다시 그 피의 운명에 붙잡혀 전장으로 끌려 나왔다.

그 잘못된 일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나는 이 자리에 섰다.

그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배웠어……'

두 여자의 얼굴이 눈앞을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두 여자에 의해서 내 인생관은 크게 달라졌다.

그녀들이 사랑한 백신현은 이러한 남자였다. 이러한 남자였기에, 백신현은 그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나 자신마저 이러한 백신현을 부정한다면……, 나는 그녀들에게 사랑 받을 자격조차 스스로 져버리는 셈이 된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안 돼. 검주……!!』

검집 속에 들어 있는 검왕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조차 흐릿했다.

죽음이, 찾아온다.

* * *

바로 그 순간, 목을 틀어쥔 허유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중력에 붙잡혀 몸이 아래로 떨어진다. 기도가 확보되었음에도 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동안 지면에 주저 앉은 채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렸다.

"윽……, 하아……! 큭, 하아……?!"

허유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허유의 시선 끝에 내가 잘 아는 소녀가 서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느껴지는 마력의 질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리고 나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냈다.

조그만 오른손에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황금 재질의 창이 들려 있었다.

샤를로트가……, 창을 들었다.

스페트로 사건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내 기억은 또렷하다.

샤를로트가 창을 들었다는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뿐.

허유가 공교롭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나도 좀 의외인데. 왜 그대가 백신현을 구하려는 거지? 백신현은 그대를 쓰러트리고 그대의 야망을 저지한 장본인일 텐데?"

"착각하지 마라."

샤를로트는 짧게 대답했다. 그것은 샤를로트의 목소리 그대로였음에도, 전혀 그녀의 목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샤를로트 그대로다.

그런데 내용물이 조금 달라진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크게 차이가 벌어지는 건가.

"난 백신현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야."

최강무적, 궁극무쌍의 창술사가 천천히 자세를 잡는다.

그 또한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세여서, 나는 무심코 샤를로트의 모습에서 어느 최악의 적의 모습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저 나 이외의 상대에게 쓰러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뿐이다."

그 이름은 스페트로.

허유 이전, 내 최악의 적으로 군림하던 존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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