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23. 무? 그리고. (10)
* * *
피로 물든 비가 내린다. 샤를로트의 뺨에 튄 피는 모두 백신현의 혈액이었다.
1초에도 수십, 수백 회 이상의 공방을 나누는 그들의 속도를 고려했을 때, 이미 공격과 방어의 횟수는 수만에서 수십만 회에 달한 상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백신현이 이미 피투성이인데 비해, 허유는 아직 긁힌 상처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입꼬리를 당긴 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한 것처럼.
콰직!! 공중에서 검과 검이 충돌한다.
샤를로트가 보기에 현재의 백신현은 일시적으로나마 최정상 수준의 특급 모험가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려운 공방이었다.
수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끝에 원래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백신현은 그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출력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상태였다.
비록 그것이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는 기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체급의 불리함이 어느 정도 상쇄된 현재, 지금의 그는 지금까지 샤를로트가 보아왔던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힘을 자랑하고 있다.
제이검의 효과가 유지되는 지금의 그라면 제1위와 2위를 상대로도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백신현은 틀림없이 샤를로트가 이제껏 보아온 그 어느 때의 백신현보다도 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싸움은 호각은 커녕,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사실은 하나 뿐이다.
'격이 달라'
힘의 단위가……, 너무나도 다르다.
* * *
이길 수 없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하고, 값을 달리해서 거듭 계산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실수 없이 걸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은 너무나도 가늘고 연약한 것이라, 설령 올바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실수를 저지르면 곧바로 끊어질 수 있다.
올바른 길을 선택한 뒤, 그 길을 실수 없이 나아간다.
하지만 그 길을 나아간 끝에 있는 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다.
올바른 선택을 실수 없이 나아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와 적 사이에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머나먼 격차가 존재하고, 내게 그것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와 백신아의 차이다.
나와 백신아는 모두 전투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실수 없이 나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지닌 안목과 계산력으로는 도무지 백신아를 쫓아갈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내가 도출해낸 올바른 결론과 백신아가 도출해낸 올바른 결론은 서로 다른 결론이고, 이것이 내가 백신아와 비교했을 때 절대적으로 뒤쳐지는 부분이다.
이 싸움, 내가 아니라 백신아가 나섰다면 이 정도로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일일이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백신아보다 못한 존재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이 싸움에 도전했으니까.
싸움에 나선 이상 승리 이외의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승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떠한 길을 나아가야 하는가?
이 문제만큼은 도저히 결론을 도출해낼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싸움과 비교해서, 오늘의 전투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이제까지의 싸움은 비록 승리하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긴 했지만, 최소한의 승산은 존재했다. 올바른 길을 실수 없이 나아가면 승리를 손에 쥘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도 승리할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포기해선 안 돼'
흐트러질 것 같은 정신을 다시 한 번 붙잡는다. 하지만 그 마음 속 외침은 너무나도 공허했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 표현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저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 필사적으로 검을 부딪친다. 지금의 내 눈에 비치는 세계는 흑백이었다.
지금의 내가 헤엄치는 세계는 1초를 수백 조각으로 쪼갠 초가속의 세계. 1초를 수백 조각으로 쪼갠 영역에서 불꽃조차 튀지 않는 속도로 검을 부딪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백신현이라는 남자의 본질인가. 검왕검과, 백신아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팔푼이, 이것이 지금의 나인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의 모든 전략은 백신아의 조력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나는 백신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반푼이다. 이 싸움은 나 혼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자존심이 차가운 현실 앞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 현실을 부정할 뻔뻔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유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어설프게 머리가 좋은 탓에 현실을 부정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큭!!"
바로 그때, 허유의 오른발이 내 복부에 꽂혔다. 내장이 뒤틀리고 피가 울컥 올라온다. 입안 가득 쇠의 맛이 퍼져 나간다.
나는 전투의 흐름을 거의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 지금의 공격도 마찬가지. 내가 예상했던 일격이, 예상했던 경로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예측했던 대로 그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였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회피할 수도 없었다. 배에 다리가 꽂힌 그 순간 다가왔어야 했을 즉사를 피해간 것이 고작이었다.
허유의 공격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힘과 속도가 너무나도 강력한 탓에 나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으면서도 허유의 공격에 감히 반격할 수 없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은 낮은 마력과 출력이다. 그리고 나는 두달 간의 수행과 리스크를 짊어진 코어의 해방으로 그 약점을 어느 정도 벗어던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나와 허유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체급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다리로 세게 걷어차인 내 몸뚱이가 흑백의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십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넘나 들었다. 나는 아주 비스듬한 각도로 지면에 꽂혔다.
정확히는, 지면에 꽂히기 직전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래서 지금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허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전달될 수조차 없는 초고속의 영역이었음에도, 놈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하게 내 귓가에 전달되었다.
내가 추락하는 것보다 빠르게, 허유는 이미 지면에 멈춰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락하던 내 몸을 허유가 다시 한 번 걷어찬다.
추락하던 몸이 다시 한 번 상승하기 시작한다. 허유는 또 다시 그런 나를 추적했다. 지그재그로 복잡한 궤적을 그리면서 추락할 때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던 내 몸을 앞서 나간다.
'그렇다면……!'
나는 검을 쥔 오른손목을 살짝 까딱거렸다. 그 순간 바닥에서 갑작스레 솟아오른 칼날이 허유의 배후로 파고들었다.
반으로 찢어진 채 바닥에 꽂혀 있던 검왕검의 나머지 파편이다. 반으로 찢어졌다고 해도 검왕검은 검왕검.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검왕검을 오랫동안 다뤄온 세월을 통해 검왕검의 마력 파형을 거의 외우도록 머릿속에 박아두고 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오검은 마력이 깃들어 있는 사물의 방향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상대가 발사한 마법, 투척한 무기, 이기어검 등 마력을 휘어감은 채 날아오는 공격의 궤적을 꺾어두거나 때로는 오히려 제어권을 빼앗아서 반격하는데 사용된다.
검왕검의 경우 내가 그 마력 파형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제오검의 원리를 잘 쓰면 지금처럼 변칙적인 운용도 가능하다.
궤도가 직선적이라 진짜 이기어검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 하지만 지금의 검왕검은 반으로 쪼개진 탓에 무게가 평소에 비해 상당히 가볍다. 그 점에 주목해서 검왕검의 반쪽을 무척 빠른 속도로 끌어 당기는 것이 가능했다.
허유는 검을 감지조차 하지 못한 채 뒤통수에 칼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허유는 감속하기는커녕 몸을 움찔 거리지조차 않았다. 애초에 날이 피부에 박히지도 않았다.
뒤통수에 꽂힌 후, 힘을 잃은 검왕검의 나머지 반쪽이 다시 한 번 지면을 향해 추락한다. 허유는 알고도 맞아줬다는 듯, 실망한 티를 숨기지 않았다.
"시시하군. 역시, 오늘 싸워서는 안 되었어."
허유가 다시 한 번 나를 추월해서,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놈은 어느 새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고 있었다. 칼끝에 검은색 마력이 강맹하게 맺힌다.
"수라??……"
그 뒤로 이어진 말은 차마 들을 수 없었다.
허유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 직후, 그 궤적으로부터 검은색 마력이 일직선으로 쭉 터져 나갔다.
나는 그것을 아슬아슬한 차이로 회피했다. 칼끝에서 마력을 분사, 그 작업을 통해 급격하게 위치를 틀었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허유의 참격을 회피한 그 직후,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힌 검은 섬광은 그 지점을 가루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열기와 폭풍을 동반한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사람이 없는 지형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 저것이 사람들이 사는 구역에 꽂혔다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충격파가 무지막지하게 퍼진다. 버섯 구름은 저 멀리에 있는 도시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허유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런데도 오른팔을 비롯한 우반신이 마치 불이라도 데인 것처럼 따끔했다.
스페트로가 초신성에 스친 것만으로도 왼팔을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공격은 그때의 초신성,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이 공격에도 한 번 춤 추어 보거라!!"
하지만 그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허유의 칼끝에는 아직도 시꺼먼 마력이 맺혀 있었다. 허유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공격은 시도하는데 부담스럽지도 않다는 듯,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다시 한 번 칼끝에서 터져 나갔다.
칼끝에서 검은 참격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지형이 달라졌다. 산은 깎이고 대지는 갈라진다. 이 싸움이 끝나면,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언제나 아주 아슬아슬한 차이로 회피했다.
말 그대로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내가 조금만 더 늦게 회피했더라면, 오른팔도 예전에 떨어져 나간 왼팔과 같은 꼴이 되는 걸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왼팔하고는 궤가 다르다. 루이스의 검만 그 자리에 남겨두고 오른팔이 통째로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르니까.
허유는 연이어 다섯 번의 대참격을 뿜어낸 후 천천히 양손을 늘어트렸다. 칼날에 덧씌워져 있던 시꺼먼 마력이 끝에서부터 바스스 흩어져간다.
하지만 그것 뿐. 나는 회피에 집중해서 반격에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내 예상대로였다.
이 공방이 끝없이 이어진 끝에, 나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의 패배에 이르게 된다.
천변무궁류에 의해서 발달된 계산력은 이미 승부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회피할 수 없는 패배라는 결말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금의 나는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을 공방의 그 순간 순간마다 제시하고 있다.
정해진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다른 행동을 취하면, 패배가 더 일찍 찾아올 뿐이다.
내가 지난 두달 간 쌓아올린 모든 수단이 통하지 않았다. 마그누스와의 수련을 통해서 획득한 마력도, 요하네스에게서 전수 받은 보법도, 연금술사와 함께 완성한 루이스의 검조차도.
백신아가 무력화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쌓아올린 모든 수단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인가.
백신아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나란 말인가.
패배하는 것보다도 그 사실이 괴롭다. 검왕검이라는 허울 아래에 감춰져 있던 백신현이라는 인간의 본질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망이 나의 팔과 다리를 천천히 옥죄어 오고 있었다.
이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악몽이 다시 한 번 천천히 재생된다.
* * *
몇 가지의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그'는 백신현을 숙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가 샤를로트의 몸을 차지한 바로 그 순간, 오히려 백신현을 적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샤를로트도 '그'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그'는 상당히 비틀려 있는 존재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무인이라는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는 쓰레기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무인으로서 당당하게 결착을 짓는 데 집착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지금의 백신현을 적대하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공공의 적을 해치우기 전까지는.
지금의 백신현이 싸우고 있는 적은 백신현과 '그'가 힘을 합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이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러한 존재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백신현을 적대할 수는 없다.
'알고 있어. 이건 그냥 내 희망사항이야. 상황이 더 최악의 형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해.'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천천히 호흡한다. 그 이외에도 따져 보아야 하는 문제는 많았다.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도 샤를로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고려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 샤를로트의 눈에도 보인다. 백신현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아마 신현 씨에게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거야. 그런 사람인걸.'
이 마지막 순간, 샤를로트는 스스로의 안전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 근육이 조금 굳어있을 뿐, 감정 표현은 상당히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간상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샤를로트도 이 선택의 결과가 그의 마음에 어떠한 상처를 남기게 될 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현 씨도 알아야 해. 신현 씨가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싸워줬던 것처럼……, 나도 같은 일을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아니……, 신현 씨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빚을 갚는다……,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샤를로트는 백신현에게 그다지 부채 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불편하게 대할 생각은 없다.
진짜 친밀한 관계라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부채 의식을 느낄 필요 없이, 서로를 향한 선의로 서로를 돕는 것.
샤를로트는 백신현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것이 아니다.
'돕고 싶어. 신현 씨가 패배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그걸 위한 선택이야.'
호흡한다.
호흡한다.
샤를로트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매우 중대한 선택이다. 과거, 종이 한 장 차이로 벗어났던 지옥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는 행위나 마찬가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지옥은 그때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지옥. 샤를로트는 감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아. 잠시 몸을 빼앗기게 되겠지만, 지금의 이 상황만 어떻게 모면하는데 성공하면……, 그 다음은 신현 씨가 다시 구해주면 돼.'
샤를로트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이것은 백신현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 또한 아니다. 틀림없이 백신현은 다시 한 번 샤를로트를 되찾아줄 테니까.
백신현을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수단을 선택했을 따름이다.
'물론 겁은 나. 하지만……'
머릿속에 백신현의 얼굴을 떠올린 그 순간 다시 한 번 용기가 났다.
백신현은 알고 있을까.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소녀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고민은 끝났다. 샤를로트는 지금부터 행동에 들어간다.
수녀원의 지하에 숨겨져 있던 성유물??物.
'신을 상처 입힌 창'을 강하게 말아쥔 바로 그 순간, 아주 머나먼 이계??와의 접속이 시작된다.
"……."
최강무적, 궁극무쌍의 창술사가 그 피에 새겨진 운명을 쫓아 소녀의 육체에 내려앉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