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23. 무? 그리고. (6)
* * *
가부좌를 튼 채 호흡한다.
나는 이것이 참 어려웠다. 몸을 움직이는 수련은 오래 해왔지만, 정신을 수양하는 수련은 지금까지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다.
내 집중력이 모자란 건 아니다. 그냥,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조금 버벅거리는 것 뿐.
승려들의 위대함을 느끼게 될 거 같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식의 수련을 하루에 몇 시간 씩이나, 그것도 수십 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는 소리가 되니까.
딱! 내 주변을 원형으로 돌던 요하네스가 죽편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내려쳤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커서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그대는 몸으로 하는 일에는 능숙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는 것에 약하구려. 성취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대가 보여주는 무위나 전투 능력을 생각하면 조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 말대로, 지금의 내 성취는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상당히 우수한 수준이다. 마력이 쌓이는 속도도 꽤 빠르다.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굴러먹던 짬이 있는 데다가, 대기 중의 마력을 감지하고 끌어당기는 것은 천변무궁류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고려하면 이것보다 더 빠르게 발전해야 정상이다. 내가 무술 경험자인 데다가 천변무궁류를 심도 깊이 익힌 천변무궁류의 검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건 내가 가부좌 수련과 그다지 맞지 않다는 뜻이 된다.
집중력이나 두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까 좀이 쑤셔서 내가 나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전투 상황에서 보여주는 비상한 집중력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일이다.
"그대 같은 부류의 무인이 드문 것은 아니오.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한 무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지. 그들은 실전을 중시해서 눈에 보이는 힘에만 집중한 탓에 정신적인 부분에서 취약함을 보일 때가 있소."
"……뭐, 쉽지 않네요."
나는 입맛을 다시며 씁쓸하게 현실을 인정했다. 그의 말처럼, 나는 앉아서 집중하는 수행이 도무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내가 지금까지 실전과 육체적인 단련을 통해서 발전해온 수련 과정에 있다.
요하네스는 나보다 먼저 무의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물론 실전은 중요하오. 아니, 실전에서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무?의 탄생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의 수양을 게을리하게 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그는 다시 내게 가부좌 자세를 요구했다. 나는 무릎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면서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혀를 갈무리한 채 속으로 호흡을 한다.
"하지만 그대가 회피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했을 때, 수행으로 쌓아올린 마음의 강함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법이오. 무의미한 수행 같은 건 존재하지 않소. 그리고 내가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겠지."
"……."
마음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갔을 때,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맞서 싸우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순간.
굳게 단련한 마음은 100%의 기량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실전을 통해서 검과 육체를 단련한다 한들, 그것을 언제나 100%로 발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수행으로 안정된 정신은 실패를 우려하는 불안감,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죄여오는 긴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최고 최대의 효율로 기술을 휘두르는데 크게 기여한다.
실전 속에서 살다 보면 좋든 싫든 마음과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내가 요하네스의 수행에 말 없이 집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의 수행은 내 정신을 단련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어렵네요."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고관절이 조금 저리다. 내 몸이 꽤 유연한 편인데도 압박감을 느끼게 될 정도로 가부좌는 쉬운 자세가 아니었다.
"하하, 처음에는 다들 그렇소. 그대는 오히려 꽤 수행 진도가 빠른 편이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천재라고는 할 수 없으나, 배우는 것이 빠르고 응용력이 높은 수재라고 할 수 있을까."
요하네스는 보기보다 웃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전도유망한 후배인 내가 꽤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 입산 수련 중이라 산 꼭대기에서 도시락 뚜껑을 열게 되었다.
보통 고산 지대에서는 식욕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들은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게는 그런 증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식욕이 어마어마하게 돌고 있다. 그 정도로 수련에 빠져 있기 때문일까.
연금술사가 싸준 도시락을 목구멍으로 팍팍 집어넣는다.
"오늘로 두 달째로군."
그때, 맞은편에서 과일을 집어먹던 요하네스가 한 번에 알아 듣기 어려운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한 번에 이해했다. 나 또한 그와 같은 문제를 머릿속에 계속 담아두고 있었으니까.
내가 허유와 맞부딪친 그 날로부터 오늘로 정확히 두 달째가 된다.
그리고 허유는 두 달이 지났을 때, 내게 한 차례 찾아올 거라고 공지한 전적이 있다.
싸우러 오는 건 아니다. 진짜 결전은 지금으로부터 한달 뒤, 하지만 그 전에 허유는 스스로 생각한 '놀이'의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서 찾아오겠다고 선언 했었지.
놀이.
나와 루이스, 연금술사. 그리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앞으로 한 달 뒤에 찾아올 허유와의 결전을 필사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자식에게는 그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분하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허유와 우리 사이에는 인간과 개미 수준의 차이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유의 오만한 마음가짐을 얌전히 인정하겠다는 건 아니다.
놈은 개미에게 물어 뜯기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경험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석 달은 그것을 위한 석 달이다.
"그 자는 그대를 찾아오겠다고 선언 했다던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대를 찾아올 거 같소? 설마 그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건 모릅니다. 그 녀석의 능력에는 한계가 보이지 않아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확실히 허유에게 나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놈이라면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한 확신이 있다.
그것은 놈이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신뢰라고도 부를 수 있다.
허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맞서 싸워온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무적의 최강자였다.
스으으으으으……, 바람이 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
전조는, 그 직후에 있었다.
* * *
'길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 속에서 허유는 조용히 목소리를 토해냈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그 또한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두달 전, 백신현과의 첫 격돌 이후 그는 손상된 보이드의 육체를 수복하고, 스스로의 영혼을 견뎌낼 수 있는 그릇으로 개조하는데 두 달의 시간을 소모했다.
'참으로 길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두 달의 시간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그의 개념으로 따졌을 때, 두 달은 그야말로 찰나와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이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참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수백 년의 권태 속에서, 두 달 전의 격돌은 그의 영혼에 유의미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기준에서 인간은 벌레나 다름없다. 그러한 벌레가, 그의 영혼에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다.
그 행위에 흥미를 느꼈다. 호기심을 품었다.
보이드의 그릇 따위, 그 자리에서 파괴되어도 상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보이드의 육체가 파괴될 때까지 싸우고, 이 세계에서 쫓겨 나가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이 세계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보이드가 파괴되는 것 따위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저 그 순간만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러한 길을 거부하고 허유는 보이드의 몸을 온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오직 백신현과의 재대결을 위해서.
그와의 싸움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에.
보이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보이드의 육체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의 혼이 지니고 있는 커다란 존재감을 감당하기에 보이드는 육체도 정신도 자격미달인 어중간한 존재였다.
최소한 한 달은 더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유는 그러한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동굴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책의 시간이었다.
* * *
"……!!"
몸이 휘청거렸다. 커다란 충격이 몸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에 있는 어느 지점에서 충격파가 구체의 형태로 퍼져 나갔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세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나와 같은 것을 요하네스 또한 느꼈는지, 그 또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떨리는 어깨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대도 지금 느꼈소? 이것은……!?"
"네, 놈입니다. 정확히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 없어요."
이 거대한 존재감, 그리고 이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마력을 잘못 볼 리가 없다.
놈이다.
『검주, 저도 지금 느꼈습니다. 놈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어요.』
허리춤의 백신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마, 허유의 마력을 감지한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산 아래에 있는 연금술사, 올리비아, 샤를로트.
그리고 어쩌면, 저 멀리 니르바나 사원에서 수행 중인 루이스조차 지금의 마력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존재감이 느껴졌다.
일개 인간이 발생시킬 수 있는 존재감이 아니었다.
놈은 그대로 날 찾아올 생각인가? 나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지금 발생한 커다란 마력을 제외하면 허유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지? 도대체 어디에서, 날 찾아올 생각이냐……?
허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꽉 죄여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싸움은 내가 지금까지 거쳐온 싸움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전투였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내 뇌리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입이 바짝 마른다.
하지만 허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마력을 감지해도 잡히지 않는다.
10초, 20초, 30초……, 그리고 5분이 흘렀다.
아직 나를 찾고 있는 걸까. 긴장감으로 뇌신경이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바닥에 벗어둔 내 상의에서 큰 진동 소리가 울렸다.
"……?"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박이는 요하네스를 뒤로 하고 바닥에 벗어둔 상의로 달려간다. 상의의 안주머니에는 꽃을 본딴 모양의 장신구가 들어있다. 소리와 진동은 여기에서 울린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장신구를 손에 쥔다. 손에 쥔 순간 다시 한 번 소리와 진동이 울린다.
고장난 건 아니었다. 틀림없다.
………………………………,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오? 그 장신구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샤를로트예요."
"뭐?"
요하네스는 샤를로트를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점의 나는 그런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조급해진 상태였다.
나는 장신구를 꽉 틀어쥔 채 고개를 돌렸다. 포커페이스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전 샤를로트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신호를 보내라고 마도구를 만들어서 줬어요. 그 마도구와 연결되어 있는 게, 바로 이 물건입니다."
나는 올리비아에게 샤를로트를 부탁 받았다. 하지만 꼭 올리비아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나는 샤를로트를 꼼꼼하게 챙길 생각이었다. 샤를로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샤를로트에게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점을 고려해서 제작한 게 바로 이 마도구다.
서로 한 쌍으로 제작된 이 마도구는 보이지 않는 마력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샤를로트가 위험을 감지하고 마도구를 작동시키면 그 신호가 바로 내게 전달되는 간단한 구조였다.
그리고 이 마도구가 지금 울리고 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사실이 현 상황에서 의미하는 건 하나 뿐이다.
허유가 샤를로트를 찾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