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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24화 (224/287)

〈 224화 〉 23. 무? 그리고. (5)

* * *

"제가요?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게 네 나쁜 버릇이야. 넌 네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실력에 비해서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해. 그 점은 나도 참, 마음에 안 드는 걸."

"으……."

연금술사가 드물게도 화를 냈다. 백신아는 꾸중을 듣고 얌전히 입을 다무는 기색이다.

백신아가 도움을 청하듯 나를 돌아보지만, 연금술사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라서 그다지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백신아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가치에 비해서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스스로는 그것을 도구로서의 긍지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백신아가 스스로를 억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

백신아의 의지를 존중은 한다. 하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그녀의 긍지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아. 신아 너는 검왕검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해."

연금술사가 백신아의 곁에서 떨어진다. 그녀가 발끝으로 바닥을 두어번 두드린 순간 그 자리에 칠판이 솟아올랐다. 이곳은 검왕검 내부의 가상공간, 현실에서 일으킬 수 있는 대부분의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하물며 그녀의 주특기는 토 속성의 창생이다. 분해와 재조립이 일상인 연금술사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칠판, 그리고 분필을 꺼내서 선을 슥슥 긋는다. 칠판에는 검왕검의 소재로 쓰이는 금속의 재질과 용량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나간다.

구르제스에서 검왕검의 제작 노트를 발견한 이후, 그녀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성과였다.

"앞서 말했듯, 이 금속은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금속 중에서도 최고의 강도와 용량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금속은 금속일 뿐이야.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내가 파악한 한계를 고려하면…… 이 검 한 자루에 모든 기능을 부여하는 건 불가능해."

연금술사가 손가락을 하나씩 꼽는다.

"아무리 효율 좋게 배치하더라도 자가수복 기능이나 강도, 그 이외의 사소한 몇 가지 기능이 고작일거야. 지금의 가상 공간처럼 말도 안 되는 세계를 수납하는 건…… 검왕검의 용량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그 점은 제가 검왕검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제가 정말로 검왕검의 모든 기능을 수납하고 있다면……, 그런 제가 가지고 있을 '용량'도 어마어마할 게 뻔하잖아요. 검왕검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요."

"맞아. 원래라면 네가 가지고 있는 용량 역시 검왕검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거야. 그래서 기능을 여러 개로 분산하지 않고 한 점에 집중시켜서 간신히 너를 검왕검 안에 들여놓은 거지."

연금술사가 다시 분필을 칠판에 가져간다.

그녀의 말처럼, 여러 가지 일에 쓸데없이 마력을 분배하는 것보다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이 더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검왕검에 서로 다른 종류의 기능을 동시에 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을 내부에 수납하고 있는 백신아를, 칼 내부에 가두는데 검왕검에 허용되어 있는 모든 용량을 사용한다면 아슬아슬하게 수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법도 한 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검왕검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능을 설명할 수 없어. 아예 불가능한 일과 불가능에 한 없이 가까운 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로서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백신아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이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백신아에게 있어서 이것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것을 어설픈 형태로 납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이쪽은 선례가 이미 존재해. 란즈 가주의 몸을 차지한 스페트로, 그리고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그 존재'."

"아."

구체적인 예시가 제시된 그 순간, 백신아가 작게 소리를 냈다. 그 생각을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백신아에게 있어서도 꽤 기념비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 왔던 수많은 상대 중에서 수위를 다투는 강적이었으니까.

"양쪽 모두 기생 당한 대상과 기생한 주체의 격의 차이가 무시무시하게 컸지만, 기생 당한 대상의 격이 떨어져서 진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지언정 격의 차이가 난다고 기생 자체가 안 되지는 않았어. 너 역시 그들과 비슷한 경우일 수 있겠지."

"이건 내 생각인데."

연금술사의 설명이 끝난 직후,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백신아와 연금술사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인다.

나도 루이스의 검을 제작하기 위해서 금속을 만지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많다. 연금술사처럼 거의 달라붙어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신아 네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금속이 가지고 있는 모든 포텐셜을 끌어내서 널 잡아두는 것에 집중한 끝에 간신히 너를 검 속에 가두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기능이 손실된 거지. 보이드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그 녀석처럼."

백신아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격에 맞지 않는 그릇에 억지로 내용물을 투입한 결과물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허유는 보이드의 몸이 나약한 탓에 활동 시간이 제한 되어 있었고, 나는 그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백신아도 검왕검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신아의 기억 상실 또한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사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 검왕검에 쓰인 기술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 기술로 널 제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이신가요? 검주."

"검왕검의 경우, 나나 선생님이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금속을 다루거나 조작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어. 지금 기준으로도 꽤 수준 높은 기술이 쓰인 건 사실이지만 재현하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야."

연금술사와 함께 금속을 만지면서 배운 점이 많다.

그리고 검왕검의 구조 자체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지금의 기술로 어떻게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백신아는 다르다.

지금의 기술로도 백신아 같은 수준 높은 가상 인격은 제작할 수 없다.

이것은 아마 10년, 20년, 어쩌면 100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백신아는 내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 표현하면 인격을 가진 인공 지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력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도 아직 가설의 형태로만 존재할 뿐, 제대로 된 이론 하나 나오지 못한 상황이다.

이 정도 수준의 가상 인격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면 검왕검이 고작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칠 리가 없다.

백신아와 비교하면 검왕검은 석기시대의 돌뭉둥이나 마찬가지다.

검왕검이 대단한 물건인 건 사실이지만 백신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가설을 세우게 된 거지. 넌 검왕이 제작한 가상 인격 같은 게 아니라…… 지금 보이드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그 존재와 마찬가지로, 아주 고차원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일 가능성이 있어."

아직은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연금술사도 그 점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가설을 제시하지 않으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백신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에 도달해 있다.

검왕검조차 백신아를 담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과학자인 연금술사의 밑에서 10년을 고생했다. 눈앞에 명백하게 드러나는 수치를 의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건 연금술사 또한 마찬가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백신아와 시선을 맞춘다.

"신아 너는 네가 어떠한 존재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스스로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까."

연금술사가 흘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이건, 나도 아직 확신이 안 서서 하는 말인데."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쓴다. 휘날리는 듯한 필기체였다. 칠판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그 이외의 동물의 차이는 뭘까? 바로 인지력이야. 넓은 범위의 사회를 인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고하고, 이해함으로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지."

분필을 멈추고 돌아선 연금술사가 한쪽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너희 두 사람에게 질문."

칠판에 등을 기댄 연금술사가 양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나와 백신아를 내려다본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 마법적 현상을 재현할 수 있는 이 세계와, 이 세계를 관리하고 있는 백신아 너는 도대체 어떠한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건 나도 아직 마땅한 표현을 찾아내지 못했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인 현상을 계산하고, 시뮬레이트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에 걸맞는 이름은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악마.

또는 신.

* * *

연금술사는 검왕검 내부의 가상 공간에서 모습을 감췄다. 나와 백신아, 두 사람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것 같았다.

새하얀 공간, 무릎을 세우고 앉은 백신아가 살짝 찝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의 말을 모두 믿는 건 아니랍니다. 선생님의 생각도 아직 가설의 차원이잖아요. 제대로 증명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백신아는 고집을 부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설이 옳다는 가정 하에 생각을 하면……, 제게도 본체가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 허유라는 존재처럼."

그 추측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추측이었다.

백신아가 허유와 같은 존재라면 허유가 그런 것처럼 백신아에게도 본체가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백신아의 본체에 문제가 있어서 검왕검에 들어오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짜 육체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스페트로처럼.

백신아도 그런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을 테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가능성은 무시했다.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으음, 본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현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몸뚱이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하긴, 검 안에 갇혀 지내는 것도 많이 불편하겠다."

"그것도 있구요. 검주하고 현실에서 싸워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무리 잘 만들어 졌어도 이곳은 가상 세계. 현실의 손맛하고 비교하면 아무래도 좀 아쉽잖아요."

가상 세계에 바람은 없다. 그런데 불현듯 백신아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나부끼기 시작했다.

"가상 세계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전 역시 현실 세계에서 당당하게 검주와 검을 겨루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 날을, 기다리고 있어."

나와 연금술사는 여전히 검왕검의 비밀을 파헤치는 중이다. 검왕검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내가 모험가로서 평생에 걸쳐 추구하게 될 과제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검왕검과 백신아의 진실에 도달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백신아를 검왕검에서 해방시키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르지.

그때가 오면 싸울 수 있다.

이런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세계에서.

서로의 검으로 맞서 싸우는 날이.

* * *

"……."

야한 꿈을 꿨다.

루이스는 옆으로 누운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무술가의 성지, 니르바나 사원에 들어선지 벌써 한 달하고도 석 주의 시간이 흘렀다.

지정된 결전의 날까지는 정확하게 한 달이 남은 셈이다.

"욕구불만인가?"

하품을 하면서 루이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텐트의 입구를 살짝 걷어서 태양을 본다.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아직 아침이었다.

최근 들어 야한 꿈을 꾸게 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얼추 짐작이 가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스스로의 입으로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몰랐을 때는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한 번 눈을 뜨고 나니까 성욕을 억제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점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텐트의 입구를 넓게 열고 바깥으로 나온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준비 운동을 시작한다.

공기는 조금 희박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니르바나 사원은 하늘에 떠 있는 섬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니르바나 사원은 어디까지나 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배를 타고 어느 외딴 섬에 도착하면, 소림의 관리자들의 안내로 하늘에 떠 있는 진짜 니르바나 사원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니르바나 사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섬이었다. 소문으로는 소림의 초대 조사부터 이곳에서 수행을 시작했다고 전해지니, 그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하고 심오하다.

무인의 성지라는 그 별칭처럼 니르바나 사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괴상하기 그지없는 시설이 많았다.

루이스가 얼마 전까지 수행하던 수백 배에 달하는 중력이 작용하는 특수 공간이나 관성을 완전히 움직이는 함정 지대가 대표적이다.

또한 이 니르바나 사원에서는 마력이 코어에 쌓이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루이스는 수행을 시작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과거와 비교해서 눈에 띄게 강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감할 수 있다.

특히 루이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마력이 축기되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루이스의 체질과 니르바나 사원의 특이점이 더해져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준비 운동을 마친 루이스가 몸을 돌린다. 텐트의 입구를 옆으로 치워놔서 햇볕과 찬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는데도 파비아는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였다.

배를 드러낸 상태로 늘어져라 잠들어 있다.

어제도,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전에도 이 근처에 죽치고 앉아서 수련만 했다. 고중력지대부터 시작해서 사방천지에 넘쳐나는 온갖 함정과 시련 등, 니르바나 사원은 수련에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모포 위에 쓰러져 있던 파비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허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아이이잉, 사제에에……"

백신현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파비아 또한 니르바나 사원에 들어온 이후 쭉 욕구불만 상태였다. 그것을 꾹 참으면서 수행 중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이상한 꿈을 자꾸 꾸고 있는 것 같다.

욕구불만인 건 루이스도 마찬가지지만 두 사람 모두 수행이 시작되면 욕구불만을 잠시 내려놓고 수행에 집중한다. 몸을 움직이다보면 일시적으로 욕구도 잊을 수 있으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다시 일상을 되찾게 된 그 순간 백신현은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수준으로 성욕을 발산하는 두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잠시 파비아의 몰골을 바라보던 루이스가 발끝으로 파비아의 옆구리를 간질렀다. 파비아가 기성을 지르며 일어난다.

"어, 사제는?" 파비아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것 같다. 루이스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파비아의 이마를 검지로 살짝 밀었다. 아으 소리와 함께 파비아의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샘에서 좀 씻고 와."

"으응……"

파비아가 하품을 하면서 네 다리로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 동안 훈련을 준비했다.

니르바나 사원에는 그녀들을 제외하면 극소수의 수행자만이 존재하고, 그마저도 사원이 너무 넓은 탓에 서로 마주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이 지대에는 루이스와 파비아 두 사람 뿐이다.

하나, 둘, 셋, 넷, 루이스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눈앞의 동굴에 세워진 동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림이 본격적으로 니르바나 사원을 관리하던 그때부터 세워져 있던 것으로, 현재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소림은 이 동상이 니르바나 사원의 제작자이거나, 니르바나 사원을 제작한 이가 추앙하는 존재를 동상으로 세운 것이 아닐까 추측 중이다.

동상에는 무신?? 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동상의 모습이 루이스가 알고 있는 어느 인간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어째서지?"

루이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니르바나 사원에는 바깥과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런 게 있었더라면 루이스는 오래 전에 백신현과 통화를 나누고,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고스란히 전달했을 것이다.

동상의 형태로 제작된 그 존재는 그녀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상최강의 검사, 백신아의 모습을 닮아 있었음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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