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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23화 (223/287)

〈 223화 〉 23. 무? 그리고. (4)

* * *

서로 마주본 채 자세를 잡는다.

천변무궁류, 같은 검술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나와 백신아는 모든 것이 달랐다. 자세도, 표정도, 휘어감고 있는 마력의 성질조차도.

최종적으로 같은 형태의 검술로 수렴하더라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다르다.

자세만 보았을 때 나와 백신아의 검술은 같은 유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검주."

"그래."

나와 백신아가 동시에 천변무궁류의 제육검에 들어간다. 다중성???, 희미한 실처럼 뽑혀 나온 마력이 고치처럼 나와 백신아의 몸을 휘어감는다. 마력광은 녹색, 녹옥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고치를 휘어감은 채, 나와 백신아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는 60초만에 끝이 났다.

정확히 60초를 곱씹은 바로 그 순간, 나의 몸을 휘어감고 있던 고치의 표면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진다.

우화?化의 때가 도래한다.

콰직!!

고치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좌우로 쩍 갈라진 고치의 내부에서, 고치의 껍질을 밟아 부수며 걸어 나온다.

이곳은 검왕검에 의해서 제작된 가상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현실 세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마력을 느낀다.

현실 세계에서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면 나는 그 반동으로 최소 몇 달간은 마력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만다.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하물며 나의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힘이라면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혀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막상 손에 쥐었을 때, 그것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큰 힘에는 그에 걸맞는 제어 능력이 필요하고, 이 제어 능력이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뼈가 부서져라 노력하지 않으면 애초에 전장에 설 수조차 없다.

"……."

오른손이 벌벌 떨린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뇌를 프레스기에 대고 꽉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순수한 압력. 그것이 나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그대로 짓눌려버릴 것 같다.

이 가상 세계가 현실과 비교해서 통각이 조금 둔화되어 있는 가상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 세계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압력으로 짓눌리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움직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어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나와 천지자연의 마력이 하나로 이어졌고, 뇌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량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다.

연금술사는 언젠가 천변무궁류의 원리를 두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력 하나 하나의 모든 위치와 운동량을 이해하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검술"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림으로서 획득하게 되는 마력의 양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코어의 경계는 말하자면 대기 중의 마력과 통하는 문이고, 문이 무너진다고 해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마력의 최대 수치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나의 유파는 천변무궁류, 대기 중의 마력과 통하고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검술.

어마어마한 지각 범위와 마력의 최대 제어 수치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궁합이 좋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렸을 때, 비약적인 전투 능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효과에도 조건은 있다.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린 순간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정보의 홍수를 버텨낼 수 있는 기량을 요구한다.

호흡이 가빠진다. 뇌로 피가 빠르게 모인다. 지나치게 혈액 순환이 빨라진 탓에 코에서는 피가 주륵 흘렀다. 아니, 코 뿐만 아니다. 눈, 코, 입, 귀, 칠공이 동시에 붉은 혈액을 토해낸다.

이것은 나 자신의 각오나 정신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호흡한다. 호흡한다. 호흡을 조용히 안정시켜 나가면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간다. 단 하나의 수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집중한다. 불확정성이 높은 대기 중의 마력을 일괄적으로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씩 일일이 계산해서 수치를 맞춰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에는 규칙성도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 그 자체. 코어의 경계가 무너짐으로써 내가 파악하고, 계산해야 하는 범위가 수십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루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수련이 아니었다. 이 가상 공간 속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소모했음에도 나는 단 한 걸음조차 떼어내지 못했다.

"윽……, 학……!"

가상 공간 속에서, 나는 피투성이로 쓰러진 채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수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오늘이 처음도 아니다. 가상 공간 속에서 처음으로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린 그때부터, 나는 아직 한 걸음도 제대로 떼어내지 못했다.

지금의 내 수준을 고려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도전하고 있는 것은 천변무궁류의 원류, 검왕의 영역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경지이니까.

원래 내 수준으로는 도전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내가 이 이론을 처음으로 구상하고 연금술사에게 제시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급하게 수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수행하면서, 비장의 한 수로 쓸 생각이었는데.

고작 삼 개월 안에 완성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큭……!"

하지만 이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나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건 나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금까지 정상적인 대결이라면 승리할 수 없는 수많은 적들과 쉴 새 없이 맞서 싸워왔고, 그 모든 싸움을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삼 개월 뒤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늘 해오던 일의 반복에 불과하다.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다시 한 번 이겨낸다.

그것은 내게 자주 있는 일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몸에 힘을 주고 일으켜 세운다. 비틀거리면서도 허리를 곧추 세워서 꼿꼿하게 일어선 다음, 검을 중단세로 들어올렸다.

일주일 간의 성과였다.

* * *

삼 개월 중 제일 처음의 한 달은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는 데에만 한 달을 소모했다.

한 걸음을 떼는 데 석 주가 걸렸다. 그 정도로 뇌와 육체에 걸리는 부담이 큰 상태였다.

다시 보름이 지났을 때, 나는 느릿하게나마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백신아와 합을 나눌 수도 있었다.

나와 다르게 백신아는 수월하게 몸을 움직이는 기색이었다. 나와 백신아의 기량 차이가 보이는 것 같다.

아마 백신아는 처음부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천지자연의 마력을 다루는 법에도 통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백신아는 수많은 전투에서 한계를 보여왔다. 하지만 그것은 백신아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육체와 마력이 백신아의 기량을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니까.

아무리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썩어갈 수밖에 없다. 고화질의 영상을 화질이 낮은 티비로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천지자연의 마력과 통해 있는 지금의 상태 또한 백신아의 한계를 보기에는 부족했다.

녀석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가상 공간 속에서 나는 단 한 순간도 무의미하게 소모하지 않았다. 검을 휘두른다. 조금씩 나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굼벵이처럼 느린 속도로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수련의 나날이 정확히 60일째를 가리켰을 때, 나는 비로소 천변무궁류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과거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천지자연의 모든 마력과 이어진 상태에서, 천변무궁류가 끌어올 수 있는 출력에 한계는 없다.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나와 백신아의 검이 서로 부딪친다. 소리는 없었다.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져 나가면서 천지자연에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새긴다.

검과 검이 부딪친 그 순간, 그 충돌 지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삼차원의 광석이 발생하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이글루를 짓고 숨어들어가 있던 연금술사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검과 검의 충돌 지점에 발생한 광석을 손으로 주워서 관찰한다.

연금술사가 고개를 든다.

"이거, 보아하니 높은 차원에 간섭한 거 같은데."

"차원이요?"

"응, 삼차원을 자르면 면이 되고, 이차원을 자르면 선이 되잖아. 검과 검이 충돌한 순간 삼차원의 물질이 튀어 나왔다는 건, 너희 두 사람의 충돌이 높은 차원에 간섭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황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연금술사를 크게 놀래키진 못했는지, 그녀는 관심이 없다는 듯 삼차원의 물질을 획 던져버렸다.

연금술사의 초록색 눈동자가 백신아를 돌아본다. 딱 평균인 백신아와 비교해서 연금술사는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다.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연금술사의 턱이 위로 들린다.

"중요한 건 이게 아냐. 바로 너지."

"어, 저요? 선생님?"

백신아가 눈을 뜨고 검지로 얼굴을 가리킨다.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세계는 현실 세계와 유사하지만 현실 세계가 아냐. 어디까지나 검왕검 내부에 존재하는 가상 공간이지. 즉, 인공적으로 제작된 세계에 불과한데…… 어째서 이 세계에서 고차원의 영역까지 간섭할 수 있는 거지?"

연금술사가 백신아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손을 얹은 채 뒤로 돌아가서 백신아의 배후를 점했다.

"나도 처음에는 검왕검의 기능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루이스의 검을 제작하면서, 검왕검의 소재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용량이 부족하다는 소리입니까?"

"응, 검왕검의 소재는 확실히 대단해. 현존하는 그 어떤 금속보다도 우수한 물질이지만……, 부족해."

내 질문에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의 제작에 손을 보탰다. 짐작 가는 게 있다.

"검왕검에는 이 정도로 수준 높은 가상 공간을 수납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내 기술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냐. 그냥 불가능한 거니까."

연금술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단언했다.

학자로서, 그녀의 자존심이 스며들어 있는 한 마디였다.

"검왕검에는 도저히 이 가상 공간을 수납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그렇다면……, 이 가상 공간은 도대체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 기능인 것일까."

백신아의 흐릿한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인다. 두 여자의 시선이 한 순간 공중에서 부딪쳤다.

"즉, 너야."

연금술사의 말에 백신아가 헛숨을 삼킨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보기에 진짜 대단한 건 검왕검이 아냐. 바로 신아 너지."

그녀가 완전히 백신아의 배후로 돌아 들어간다.

친근한 태도로 백신아의 목에 오른팔을 걸고, 그 눈부시게 새하얀 목덜미에 검지를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넌 일개 가상 인격 따위가 아니라 훨씬 더 대단한 존재일 가능성이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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