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23. 무? 그리고. (3)
* * *
"……."
가부좌를 튼 상태로 호흡한다. 높은 지대인 탓에 호흡은 어려웠지만, 흡수되는 마력의 효율은 평소와 비교해서 조금 더 높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입산 수련의 효과다. 고산 지대로 상승하면서 공기는 줄어 들었지만, 마력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에 흡수하는 양은 더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고산 지대에 있는 건 나와 요하네스 뿐.
마력을 흡수하고 있는 사람이 이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효율로 축기할 수 있다.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마력의 양에 한계가 있어서 극적으로 늘어나진 않았지만 효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후로 일주일.
나와 요하네스는 매일 같이 등산과 하산을 반복하며 수행 속에 흠뻑 빠져 있었다.
산 정상에서 수행하면 마력을 흡수하는 효율은 높아지지만, 그 이외의 수행에 지장이 생긴다.
나는 하루에 흡수할 수 있는 마력의 최대치까지 흡수한 뒤, 저지대로 하산해서 보법과 검술의 수행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었다.
제피로스 근처에는 과거, 마그누스가 젊은 시절에 사용하던 수련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요하네스는 확실히 그와 절친한 관계인지, 정해진 방식대로 조작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두꺼운 문을 열고 나를 내부로 초대했다.
밀폐된 수행 공간에는 온갖 위험천만한 함정과 운동 도구들이 즐비하게 들어가 있었다.
마그누스는 딱 나 정도의 나이에 이 공간을 제작해서, 최고의 특급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 왔다.
세월이 오래된 탓에 낡은 부분은 있었지만 마그누스는 이곳의 문을 닫기 전에 꼼꼼하게 손질을 하고 떠났는지, 아예 못 쓸 정도로 고장한 물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집중하시오! 이 보법은 천변무궁류의 검사인 그대에게는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에 불과하오!"
요하네스는 수련할 적에는 호랑이처럼 매서운 부분이 있었다. 말하는 건 존댓말인데, 존댓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가 워낙 쩌렁쩌렁해서 그런 것 같다.
현재, 나는 좁은 외나무 다리를 마력 없이 돌파해나가고 있었다. 외나무 다리의 길이는 200미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이지만 이 외나무 다리의 주변에는 함정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다.
외나무 다리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꼬챙이가, 그리고 좌우로는 불규칙한 방식으로 쏘아지는 화살 함정까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지옥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보법을 익히기 위한 수행이었다.
이 보법은 화조비영승花??氷?이라는 이름으로, 요하네스가 보유하고 있는 무수한 무술 중 하나였다.
빠르지는 않지만 일정한 동작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천천히 힘과 속도를 높여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화조란 불사조, 즉 불꽃 속에서 다시 소생하는 불새를 의미한다.
불사조는 불꽃 속에서 타들어갈 때마다 조금 전보다 더 크고 거대한 날개로 훼를 치며 날아오른다. 이 기술 또한 그와 같았다.
장기전에 특화된 천변무궁류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편이고, 보법인 만큼 힘이 붙는 속도도 오히려 천변무궁류보다 빠른 편이다.
또한, 극한의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그 구조상 수행의 과정에서 보법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 자신의 능력치가 높아지는 느낌이 든다.
"발과 손은 함께 가는 법. 그대 정도의 무인이라면 보법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오."
요하네스는 화살 장치를 연달아 작동 시키면서 호통을 쳤다.
"설령 훗날 그대가 이 보법을 쓰지 않게 되더라도 오늘의 수행은 그대에게 피와 살이 되겠지! 자아, 제대로 집중 하시오! 난 설령 그대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수행을 멈추지 않을 테니!"
……이 양반, 살짝 눈이 맛이 간 거 같은데?
그 또한 특급 모험가 답게 일반인하고 구분되는 특이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애초에 특급 모험가에 정상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요하네스는 반쯤 수련에 미쳐 있는 광인의 모습을 내게 보였다. 이건 내 추측인데, 스스로 싸우지 못하는 분노를 내 수행을 통해서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도 겨우 이 정도에 나가 떨어지진 않는다. 나도 수행에 상당히 진지하게 임하고 있으니까.
질 수는 없다.
요하네스와의 수행은 오전 열 시에서 오후 여섯 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스케줄에 지나지 않는다.
"천천히 먹어."
안경을 쓴 연금술사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밥상머리 앞에서 와구와구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어 치우는 내 모습이 버릇 없게 보였나보다.
의외처럼 보이지만, 연금술사는 그다지 요리를 못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하는 것보다 내게 시키는 것을 더 좋아해서 지금까지 내게 맡겨 두었을 뿐.
다만 음식을 계량할 때마다 비커를 쓰는 점은 조금 찝찝하게 느껴진다. 깨끗하게 씻기는 했겠지만…… 뭐, 그냥 그렇다고.
저녁 식사를 빠르게 해치운 뒤에는 가벼운 런닝과 함께 올리비아를 방문했다. 올리비아는 이미 준비를 끝마쳤는지, 운동복 차림으로 어깨에 창을 걸치고 있었다.
"백신현 너, 잘 시간은 있는 거냐……?"
"물론 있지."
잘 시간은 있다.
수면에 든 뒤에도, 검왕검 내부에서 수행하고 있을 뿐.
몸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빠듯하게 커리큘럼을 짜 두었다. 올리비아에게 걱정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해서 30분 안에 채비를 끝마치고 연금술사와 함께 루이스의 검 제작.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요하네스와 함께 보법 수련.
그리고 지금 이 시각부터 오후 열 시까지, 올리비아와 합동 훈련.
올리비아는 내 모습이 너무 여유가 없게 느껴졌는지 조금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올리비아의 관점이고, 내 시점에서 보면 이 정도가 딱 마음에 든다.
허유는 아무리 수행하더라도 따라 잡을 수 없을 듯한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러한 적을 아무런 고생 없이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 개월 동안 침식을 잊고 수련해도 승산을 1%나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1%라도 올릴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최대한 승산을 높이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올리비아와의 수련이 끝난 후, 다시 자택으로 복귀했다. 20분으로 샤워를 끝마친 뒤, 가벼운 옷차림으로 연금술사의 공방에 방문.
그녀와 함께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술식의 연구에 들어간다.
연금술사는 하루 일정을 둘로 쪼개서, 낮에는 루이스의 검 제작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술식 제작에 열중했다.
그녀에게도 상당히 지독한 일정이었던 탓인지, 잠은 제대로 자고 있음에도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체력이 좋다고는 빈말로라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쓸데없이 배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학자로서 살아온 세월은 그녀가 나보다 길다. 여기에서 배려를 하거나, 걱정하게 되면 그건 그녀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다.
늦은 밤, 그녀와 함께 짧게 보내는 휴식 시간 동안 나는 연금술사의 어깨를 손으로 안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행위로도 그녀를 격려하는 게 가능했다.
"내일."
어깨에 담요를 덮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연금술사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내일, 왼팔을 접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쩔 거야?"
"절 위해서 노력해주신 건 고맙지만 잠시 보류 해두려고 해요."
"균형 감각 때문이구나."
"네, 좌우의 팔이 모두 달려 있을 때와 왼팔이 떨어져 있을 때의 균형 감각은 전혀 다르니까요. 팔을 다시 접합한다 쳤을 때, 그 상태에 적응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거에요. 어쩌면 귀중한 수행 시간을 낭비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과거, 왼팔을 잘랐을 때 나는 한동한 균형 감각을 잡는데 상당히 고생을 했다. 외팔이에 익숙해지기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린 듯한 느낌이 든다.
허유와의 결전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지금, 왼팔을 접합하고 균형 감각을 되찾는 수련을 다시 시작하는 건 지나치게 리스크가 크다. 어쩌면 결전 당일까지 균형 감각을 되찾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암기를 제거하느라 고생한 연금술사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왼팔의 접합 수술은 한동안 보류해두려고 한다.
왼팔을 되찾는 건 허유를 쓰러트린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내 삶은 허유와 맞서 싸운 이후로도, 쭉 뻗어 나가 있을 테니까.
연금술사가 가볍게 하품을 했다. 체력이 부족한 그녀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강행군이겠지만, 부디 힘을 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손등으로 눈을 부비는 연금술사의 어깨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는다.
"제 팔을 고치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이런 식으로 미루게 되서 죄송해요."
"중요한 건 네 의지잖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연금술사는 도저히 졸음을 참기 어려웠는지 한 번 하품을 시작한 이후, 짧은 주기로 하품을 반복했다.
커피도 이제 효과가 없을 것이다. 커피를 늘상 달고 다니는 그녀는 이미 카페인 내성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길러져 있을 테니까.
"그럼, 누울까요?"
"정리만 해두고."
그녀가 또 다시 하품을 했다.
자리가 조금 어지럽혀진 상태였다. 그녀가 쉴 수 있게 침대 주변을 먼저 정리한 뒤, 늘 하던대로 공방의 정리를 시작했다. 그녀의 머슴……, 아니 조수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이 정도 노동은 이제 쉬운 편이다.
"신현아, 이리로."
"네."
그녀는 먼저 눈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노동이 끝날 때까지 등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 발 빠르게 이불 속에 들어간 그녀가 이불을 들고 나를 안쪽으로 초대했다.
물론, 이상한 의미는 없다.
연금술사는 허유와의 결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인내할 생각인 것 같았다.
성욕이 강한 연금술사로서는 상당히 큰 결단을 내린 셈이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기도 해서."
"기대요?"
그녀가 내 어깨에 바짝 붙었다.
"응. 네가 한 달 동안 참은 뒤에 나를 안았을 때……, 어마어마하게 기분이 좋았었거든. 그러니까 석 달 정도 참은 후에는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그걸 기대하며 지금도 참고 있어."
연금술사는 욕구와 호기심에 솔직했다.
인내 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을 더 커다란 욕구와 호기심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 답지 않은 행동에 무척 기특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대로 그녀를 꽉 안아줄 뻔 했다.
하지만 그건 허유와의 싸움이 끝난 뒤로 미뤄두기로 그녀와 합의했다. 나 역시 참아낼 수밖에 없다.
눈을 감는다.
그녀도 나도,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침대에 누운 것이 아니었다.
연금술사의 안에 깃들어 있는 나의 마력이 그녀의 의식을 검왕검 내부로 끌어들였다.
"신아야."
"네, 검주."
끝 없이 뻗어 있는 지평선. 검왕검 속의 내부 공간은 바깥과 시간 흐름이 다르다.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의식만 따로 떼어내서 들어온 공간이니까.
그리고 바깥과 비교해서 내부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약 두 배.
밤 열두 시부터 오전 여섯 시까지 수면한다고 가정 했을 때, 최소 열두 시간의 시간을 획득할 수 있다.
백신아가 히죽 웃으면서 터벅터벅 걸어온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