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21화 (221/287)

〈 221화 〉 23. 무? 그리고. (2)

* * *

"협! 그런가!"

요하네스가 감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확실히 절묘한 비유구려. 이 짧은 시간 동안 보아온 그대의 인격과 행동을 고려했을 때, 실로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소."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요하네스의 시선은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이 차분하게 젖어 있었다.

"몇주 전, 나와 마그누스가 충돌했던 그 모의 시합에서 그대는 최대한 마그누스의 의지를 존중하였지.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는 그의 의지를 인정하고, 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소."

"그건……, 저 역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대장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그누스의 고민을 이해하고, 그에 공감했지. 그리고 마그누스의 목숨을 위협하던 내게 온힘을 다해 맞서 싸웠소. 그것은 그대가 마그누스에게 보인 의리이며, 동시에 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바람이 분다.

나와 요하네스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협이라는 것은 꼭 긍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표현이 아니오. 의리가 두텁고, 불의한 것에 맞서 싸울 줄 알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절차나 법치를 무시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그의 표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그레이 존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난세라면, 협객의 방식은 잘 통하오. 난세란 사회 시스템의 붕괴로 법률이 세상을 쫓아가지 못하고, 개인의 의리와 양심에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하는 시대. 그런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들 이상으로 든든한 존재는 있을 수 없지."

요하네스가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협객을 논했다. 아무래도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만큼, 표현이 거칠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가 충분히 안정되어 있고, 법률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 받고 있는 경우, 협객의 방식은 여러 가지 사회적 논란과 부작용을 낳게 되오. 아마,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또한 대체적으로 협은 폭력과 상당히 밀접하게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기본 가치조차 유지할 수 없는 시대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폭력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경단과도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의도가 비틀리거나 엇나가는 사례도 상당하다.

현존하는 대다수의 무장 조직이 협과 의리의 가치 아래에 일어섰던 자경단으로부터 기원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루이스는 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표현으로 협을 골랐다.

실제로 협객의 논리와 나의 사고방식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루이스와 나는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 되었지만, 루이스는 그다지 나를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고려하고 있다.

협?이란 그러한 의미로 토해낸 한 마디임에 틀림없다.

"그럼……, 요하네스 씨 또한 그 협이라는 표현이 제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또한……, 그대가 '그쪽 세계'에서 계속 살았다면 순탄치 못한 삶을 보냈으리라는 것도."

그쪽 세계.

아마도 이것은 나와 요하네스가 태어나고 자라왔던, 그 세계를 두고 말하는 표현일 것이다.

"이 세계는 상당히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소.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구조가 안정 되어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문제가 상당하지. 마력이란 인간에게는 과분한 힘이니까."

마그누스의 엄지와 검지가 강하게 마찰한다. 그 순간 시꺼먼 불씨가 발생하더니, 그의 손바닥 위에서 사람 머리통만한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인 탓에 불씨는 불안정하다.

"장점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소. 신분에 관계 없이 개개인의 재능에 의지하는 그 특성상, 마력이 신분제를 철폐하고 공화국 시스템을 빠르게 발전시키는데 한몫 한 건 사실이니까."

"처음부터 공화국을 목표로 혁명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음, 그렇소. 잘 알고 있는구려."

우수한 학자인 연금술사의 조수로 일하고 있는 만큼, 나도 사회 전반의 지식은 빠삭하게 외우고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

특히, 마력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이 세계의 역사는 다사다난하기 그지 없어서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 나라는 물론, 현재 전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공화정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처음부터 공화정을 목표로 시작된 혁명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귀족의 핍박을 참지 못한 노예가 우발적으로 마력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면서 막무가내로 시작되곤 하였으니까.

대부분의 인간에게, 인간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이 깃들었다. 마력은 처음 출현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경직되어 있던 사회를 무너트리는 비수가 되었다.

하지만 마력은 안정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참으로 쓰기 곤란한 물질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땅히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수많은 사건사고의 온상이 되니까.

지금의 세계가 불안정하기 그지 없는 이유도 모두 마력에 의한 문제가 크다.

과거, 나는 이 세상을 지옥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불안정한 세계와 그대의 성향은 아주 잘 맞소. 사회 시스템은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피어나는 범죄는 한둘이 아니지. 법과 사회 시스템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존재하고, 그대는 그대만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어둠을 처치해왔소."

협은 혼란스러운 난세에 어울린다.

그리고 내 방식이 잘 어울리는 지금의 이 시대는, 그야말로 난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요하네스는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듯 했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본론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대가 이 세계에 오지 못하고, '그쪽 세계'에 계속 살았다면…… 그대는 어떠한 삶을 보냈을 것 같소?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긍정적인 미래는 아니었으리라 보오."

"……."

"'그쪽 세계'는 이 세계와 다르오. 마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설령 올바른 일이라고 해도 절차와 법률을 무시하면 문제가 되지."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나를 살핀다.

"그대의 성향이나 태도, 그리고 지적 능력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대가 계속 그 세계에 살아갔을 경우 그대에게 상당히 불행한 미래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하오."

요하네스는 마치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나의 과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연금술사도, 루이스도 모른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나와 같은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내가 그쪽 세계에서는 반사회적 인간으로 분류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 것 같았다.

이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양측의 세계를 모두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니면 맞추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맞습니다. 제가 계속 그쪽 세계에 있었다면 전 틀림없이 불행해졌을 거예요. 잘못된 것을 못본 척하지도 못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도 못한 채…… 잘못된 일을 저질렀겠죠."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그대가 이 세계에 온 것은 차라리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도 그렇다.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손에 넣었다.

그 모든 것이 이곳이 내 성향과 궁합이 잘 맞는 세계였던 덕이었다.

이 세계에 찾아온 이후, 내가 걸어온 길은 폭력으로 물들어 있는 길이었음으로.

그쪽 세계였다면 틀림없이 이러지는 못했겠지.

사건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고른 시점에서, 나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인간이니까.

나는 쭉 오래 전부터 이 세계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에 요하네스는 크게 공감하는 기색이었다.

그 또한 이 세계에 찾아온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찾아온 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것은 그 또한 '그쪽 세계'에 맞지 않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는 무예의 실전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그가 살아가던 20세기 말은 모든 무예가 스포츠의 일부로 통합되어서 실전에 거리를 둔 시대였다.

요하네스는 그러한 시대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고 수행을 거듭해나간 끝에, 어느 날 우연히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되었다.

실전의 무예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은, 도무지 20세기 말에서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그 세계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쪽 세계에 부적합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요하네스와 나는 크게 차이가 없다.

우리가 이 세계에 오게 된 건 기존의 세계에서 살아가기엔 도무지 맞지 않는 성향을 가진 부적합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요하네스도 기존의 세계에 계속 살았더라면 그다지 좋지 못한 운명을 걸었을 듯 싶다.

아니, 나는 실제로도 걷고 있었지.

이 세계에 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을 거다.

"그대의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통찰이 끝났소. 그렇다면 이제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대의 무?는 어떠한 형태를 이루어야 하는지……, 그걸 구상해야 할 때인데……"

요하네스가 이야기를 정리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아, 그 점은 괜찮아요."

"음?"

"사실, 루이스에게 처음 들은 그때부터 루이스의 평가가 맞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요하네스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더더욱 확신이 굳어졌구요."

루이스는 매우 빠르고 간단하게 나의 핵심을 잡아냈다.

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단어, 협?으로 나의 본질을 정의했다.

나 스스로도 루이스의 평가를 납득할 수 있었다. 협, 그렇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였던 무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협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의 무예는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야 하는가?

난 이미 구체적인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 * *

"과거, 내 인생에는 두 번의 큰 전환점이 있었어. 첫 번째는 이 세계에 떨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루이스와의 만남이었지."

나는 산의 정상에 서서 천하를 굽어보며 중얼거렸다.

백신아는 검왕검 내부에서 내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 자세하게 듣고 싶네요.』

"다음에, 그 녀석을 쓰러트리고 나면 이야기 해줄게."

제피로스의 산맥의 꼭대기는 매우 높았다. 봉우리는 구름을 뚫고 나간 그 너머에 있다.

이곳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두 사건 속에서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후회할 바에야, 움직이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확신이 느껴지면 바로 움직여야 한다고."

그때, 나의 결심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루이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에 있었던 내 인생 최초의 성공 체험에서 나는 그러한 교훈을 얻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교훈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사람의 목숨은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승산이 갖춰졌다면 망설여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현장에 도착해서 거대한 위협에 맞서 싸워야 한다.

즉……, 속도가 필요하다.

"나는 천변무궁류의 방향성을 속도에 특화시키고 싶어."

『속도라.』

"내가 즐겨 쓰는 천변무궁류의 초식이 제일검이잖아. 내가 그 기술을 선호했던 건 무의식적으로 내 목표가 투영된 결과일지도 몰라."

내가 추구하는 바는 명확해졌다.

방향성도 정해졌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수련을, 빠르게 시작해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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