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22.5. 몸은 커졌어도 정신은
* * *
문을 열었다. 루이스를 방에 들인 순간, 묘한 향기가 풍겨왔다. 평소와 조금 다른 향기였다.
잘 보면 루이스의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기 전에 샤워를 이미 끝마친 모양이다.
"준비는 다 하고 왔어?"
"응. 내일 여권만 가지고 오면 충분해."
루이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온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침대 시트 위에 앉는다.
후우, 하아, 루이스가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심호흡했다. 루이스와 몸을 겹친 횟수도 이제 두 자릿수가 넘어갔지만, 루이스는 아직도 행위가 익숙치 않은 눈치였다. 처녀였던 그때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루이스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루이스가 이러한 행위에 익숙해지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가까운 위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루이스가 살짝 몸을 옆으로 옮겼다. 나와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 다시 한 번 가슴팍에 손을 얹은 후, 심호흡을 크게 두어번 반복한 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루이스와 나의 키 차이는 머리 하나 반 정도였다. 턱을 들어올린 순간 루이스의 깊은 눈동자 속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우, 하아."
키 차이가 있는 탓에 루이스 혼자서는 아무리 턱을 높이 들어도 입술을 맞출 수 없다. 살짝 허리를 굽히며 루이스의 눈높이에 맞췄다. 코에서 터져 나온 숨이 한 번 부딪치고, 입술과 입술이 부드럽게 맞물렸다.
혀를 다루는 솜씨 자체는 루이스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루이스는 긴장을 심하게 하는 성격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좀 더 잘할 수 있는데도, 혀를 움직이는 게 형편 없다. 떠듬떠듬 거리는 느낌이라 빈말로라도 잘한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루이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나도, 은근히 콩깍지가 씌여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혀와 혀가 섞이는 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루이스는 입술을 맞추고 있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입술을 살짝 떼어낸 뒤, 이제는 분홍색 혀만 삐죽 내민 상태로 엮는다. 얽히고, 떨어지고, 다시 붙었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견고하게 이어진다.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진 만큼, 나와 루이스의 가슴도 서로 바짝 붙어 있었다. 내가 루이스의 가슴에 흥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흥분하고 있는 건 루이스도 마찬가지인지, 허리와 엉덩이를 비롯한 하반신을 연신 움찔거리고 있었다.
"……능숙하네, 너."
"경험이 늘었으니까."
혀가 떨어졌다. 루이스는 혀를 다시 입술 사이에 숨킨 상태로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와 비교했을 때 루이스는 확실히 여유가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조금 불만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루이스는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그런데 최소한, 혀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는 내게 완패하고 말았으니.
하지만 루이스의 굳은 얼굴은 잠시 뿐이었다. 분한 듯 굳어 있던 얼굴이 조심스럽게 풀어진다. 다시 한 번 루이스가 고개를 들어 내게 입술을 맞췄다. 이번에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맞추고, 서로의 호흡을 한 번 교환하는 정도에서 끝을 맺게 되었다.
"그렇지만 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게 지는 거니까……. 크게 상관은 없나……?"
"그건 무슨 소리야?"
살짝 이해하기 어려운데.
루이스는 단순한 성격인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복잡하고 다각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외강내유의 성격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쉬운 거 같으면서도 복잡하다. 여자의 마음이 그렇게 어렵다던데, 루이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글쎄? 알아 맞춰 보시지……?"
루이스가 씨익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춘다. 표정은 조금 풀린 것 같지만, 혀의 움직임은 여전히 어색하다. 오히려 상당히 필사적인 듯한 느낌이 있어서 조금 거칠게 느껴지기도 한다.
입술이 밀착한 뒤, 다시 한 번 떨어진다. 그리고 루이스는 호흡이 부족했는지 살짝 지친 얼굴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팍에 오른쪽 뺨을 맞붙인 채 거칠게 호흡을 몰아쉰다.
천천히, 호흡을 몰아쉬면서 루이스가 말을 걸었다.
"조금씩 실감이 느껴져. 우리가 정말로, 어마어마한 녀석을 적으로 돌렸다는 게."
허유가 직접 움직인 것도 아니다. 그저 허유가 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해불가한 사태가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보이드, 스페트로, 해신, 검은 검사. 우리가 지금까지 맞서 싸워온 존재들도 물론 어마어마한 괴물들이었지만, 허유는 그들과 비교해도 결이 다르다.
그저 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펼치는 영향력이 무시무시하다.
허유와의 싸움은 아마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격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 최악의 적이었던 스페트로나 검은 존재조차도 합을 맞추는 정도는 가능했어. 하지만 그 녀석은 달라. 정말로……, 정말로 달라……."
그 차이를 루이스도 느꼈다.
루이스가 조급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허유와 나의 첫 격돌 당시,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맞서 싸웠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억지로 전개하고, 코어의 경계 부분을 일부 무너트리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사용해서 맞서 싸웠지만 불과 세 번 합을 나눈 것만으로도 내 몸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소림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나는 뇌에 중대한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보이드도, 스페트로도, 해신도, 그리고 그 검은 존재조차도 허유에게는 맞설 수 없다.
삼 개월 후, 허유는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을 획득한 채 내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나도 두려움은 있다. 긴장도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그런 억울한 생각도 당연히 있다.
물론 내가 검왕검의 계승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더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납득하는 건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 싸워서 이겨내는 것.
그 사실을 루이스도 알고 있다. 니르바나 사원을 찾으려는 건 루이스가 홀로 고민한 끝에 내린, 그녀 자신의 대답일 것이다.
"……사실, 오늘 밤을 너와 같이 보내고 싶었던 건…… 있잖아."
"응."
"꼭 내가 성욕을 못 참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야. 내일……, 니르바나 사원으로 출발하기 전에……,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지고 싶었어."
루이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으로 내 뺨과 턱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진다.
"사실, 너도 참을 수는 있었잖아? 네가 오늘 밤 나를 받아들여준 건…… 나를 배려해서 그런 거지?"
"그런 것도 있지만, 나도 참기 어려웠던 건 맞았거든. 양쪽 모두의 사정을 고려한 셈이지."
"넌 늘 그런 식이더라. 사람이 고맙다고 말하면 그냥 받아들여 주면 될 것을."
"그런가?"
아, 루이스에게 내 사고방식이 읽히고 있는 건가.
루이스의 말처럼 녀석을 배려해서 오늘 밤의 권유를 받아들인 건 사실이다.
참기 어려운 것 뿐이지, 작정하고 참으면 못 참을 정도까진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내가 성적인 자극에 취약하다고 해도 진짜 그 정도까지는 아냐.
그것도 못하면 그건 그냥 짐승이지.
배려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런 태도를 보이곤 했는데, 이젠 패턴이 읽힌 것 같다. 루이스 상대로는 이제 안 통하겠다.
항복이다. 나는 오른손을 루이스의 등뒤로 돌려서 그녀를 품안에 조심스럽게 안았다.
품에 안긴 루이스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불이 타오르는 듯한 효과음이 들린 것 같다. 아, 이건 루이스의 심장 고동 소리인가. 심장 소리가 엄청나게 크고, 엄청나게 빠르게 뛰고 있다.
한참 동안 루이스와 몸을 겹치고 있었다.
옷도 벗지 않고, 성욕을 해소할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서 그냥 가만히.
흥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음경은 이미 딱딱해진 상태였고, 루이스 또한 크게 흥분한 듯 호흡이 상당히 거칠었다.
하지만 한 순간, 성욕조차 누를 정도로 커다란 감정이 가슴 속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름을 따로 붙이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감정이었다.
루이스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렇다고 너하고 하지 않겠다는 건 아냐. 오늘 밤, 너하고 할 생각으로 온 건 맞으니까……. 들리기 전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피임약도 받아왔고."
"선생님도 알고 계셔?"
"응. ……좋은 밤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어."
그걸 무슨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까.
하여튼 그 사람도 마음을 읽어내기 어려운 사람이다.
한참 동안 겹쳐져 있던 몸이 잠시 떨어졌다. 루이스가 품속에서 알약 형태의 피임약을 꺼내서 꿀꺽 삼킨다. 우리가 거의 짐승이나 다름 없는 수준으로 몸을 섞어대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 건 모두 연금술사 덕이었다.
연금술사가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루이스는 홀몸이 아니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연금술사 자신도 그렇게 됐을 테고.
"루이스."
"왜 그래……?"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루이스가 고개를 돌린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충동에 눈을 깜박였다.
마치 낚싯대를 드리우듯이 슬며시 운을 띄운다.
"언젠가, 약을 쓰지 않고 할 생각은 있어?"
"……."
루이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또 다시 루이스의 뺨 근처에서 마치 불이 붙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스슥! 거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루이스가 빠르게 물러섰다. 마치 소중한 부위를 지키려는 듯 본인의 가슴팍을 양손으로 감싸 안은 후, 붉어진 얼굴로 오랜 고민에 빠졌다.
"그, 그건, 그러니까, 그건, 음, 그게, 으으으으으……"
말이 떠듬떠듬 이어진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몹시 인위적이면서도 어색한 탓에,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마치 기계로 만든 합성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하게 당황한 것 같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질문인 건 사실이다.
깊은 고민 후 루이스가 오른손을 튕겼다. 검지를 꼿꼿하게 세워서 나를 겨눈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마도?"
어중간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열네 살 시절의 루이스를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 무심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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