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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16화 (216/287)

〈 216화 〉 22. 전원 집합 (12)

* * *

마그누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물론이고, 마그누스 또한 주위의 시선을 끌어 당기는 인간이다. 인지도가 높은 인간이 둘이나 모여 있는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 되었다.

마그누스도 아차 싶었는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건 조금 그렇겠군. 어쩌지……?"

"근처에 회의실이 딸려 있는 카페가 하나 있어요. 그쪽으로 가서 이야기 하시죠."

"그게 좋겠군."

그는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나는 마그누스에게 카페의 위치를 알려줘서 그를 먼저 떠나 보냈다.

나와 루이스는 아직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직 덜 먹은 꼬치구이가 손에 남아 있었다. 이걸 다 먹은 후 움직일 생각이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들을 힐끔거리는 기색이었다. 그 시선은 껄끄러운 듯하면서도, 묘한 우월감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 자체는 나도 싫어하지 않는다.

"루이스. 조금 전에 그거 말인데."

"어, 왜 그래?"

루이스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갑자기 나타난 마그누스 때문에 루이스의 말이 도중에 끊어지긴 했지만,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네가 말한 것처럼 나도 참기 어려웠거든. 그러니까 음, 네가 수련하러 떠나기 전에 한 번 해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으, 역시 그렇지?"

루이스도 공감한다는 듯 치를 떨며 혀를 내둘렀다. 최근 들어 우리가 가장 오래 참아낸 기간이 한 달 정도인데, 그 한 달이 모두 지나갔을 때 즈음 우리 두 사람의 상태는 아주 말이 아니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뚜껑을 덮어 두었던 한 달간의 성욕을 한 번 토해낸 그 시점부터, 머리가 살짝 맛이 갈 정도로 해댔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고통이나 괴로움 같은 건 아무리 경험해도 참아낼 수 있었는데, 성욕에 있어서는 그게 잘 안 된다. 삼 개월 정도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숫총각이었던 시절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한 번 성욕에 눈을 뜨고 나니까 이런 꼴이다.

매일 아침마다 꼿꼿히 일어서는 걸 진정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금욕적으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그런 걸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스물넷에 경험 없는 숫총각이었다는 것도 좀 지나치게 늦은 편이긴 하지만.

"일단, 일어날까."

"그, 그럴까?"

대화하는 와중에도 꼬치구이는 술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쓰레기통에 꼬치구이를 던져 넣고, 뺨과 턱에 묻은 양념을 지참하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닦았다. 루이스의 경우, 아주 조심스럽게 입술을 움직였기 때문에 입술만 살짝 닦아내도 되는 수준이었다.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카페는 단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라,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마그누스는 문이 닫혀 있는 회의실에서 커피를 먼저 시켜 둔 상태였다.

"왔구나."

"네."

그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마그누스는 서로 가까이 앉은 나와 루이스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특하게 바라본 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그누스의 어깨에 걸려 있던 가방에서 지도가 나왔다. 이 나라, 이 대륙의 전체 지도였다. 이 대륙의 상당 부분을 이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륙의 대부분이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각지에 있는 정보원들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특급 재해가 출현하던 곳에서 일제히 특급 재해들이 출현. 어젯밤 우리들이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경질화된 상태로 대기 중이라더구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있었던 그 일이 나쟈에만 국한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기존에 이름이 알려져 있던 특급 재해 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거대한 괴물 또한 여기저기에서 잔뜩 나타났다는 것 같아. 아마 그들 또한 음지에서 동면 중이던 특급 재해에 버금가는 괴물들일 가능성이 높겠지."

"……백신현, 그렇다면."

"그래. 아마도, 해신 또한."

서로 얼굴을 마주본 채 고개를 끄덕인다. 해신? 마그누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는 그때, 구르제스에서 경험했던 일을 마그누스에게 설명했다. 그는 설명을 들은 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구르제스 이야기라면 나도 들은 기억이 있다. 구르제스 근처에 있는 거대한 항구 도시에도 정보원이 있었거든. 새벽 중에 거대한 뱀의 실루엣을 보았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었는데. 그럼 그것이 바로……"

"그게 해신이었을 겁니다. 늦은 밤에 한바탕 싸웠었거든요."

"너희들도 진짜 어마어마한 모험을 거쳐 왔구나."

마그누스가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검왕검을 손에 쥔 이후로 경험한 반년 간의 모험은 너무나도 수준과 밀도가 높은 탓에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루이스가 살짝 손을 들어서 의견을 드러냈다.

"그쪽은 제가 나가서 처리할게요. 해신하고는 예전에 싸운 적도 있으니까, 갑자기 깨어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자신이 있어요."

"음, 그럼 부탁해볼까."

마그누스가 팔짱을 낀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지도를 보면 모습을 드러낸 괴물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 대륙 전체에, 최소 오십 개가 넘어가는 특급 재해들이 즐비하게 출현한 상태였다.

"나와 요하네스, 그리고 스텔라의 영향력을 모두 더하면 아마 특급 모험가 전원을 동원할 수 있을 거다. 그 녀석들을 최대한 끌어 들여서, 특급 재해들이 눈을 뜨기 전에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 그게 좋을 거 같다."

"나라에서 무슨 말은 없었나요?"

특급 모험가는 이 나라, 이 대륙에 즐비한 수많은 모험가 중에서도 최강으로 손꼽히는 이들이다. 혜택도 많지만 제약도 많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그들도 비슷했다.

마그누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 점은 문제 없을 거야. 사실 특급 모험가 최상위권의 세 사람이 일제히 휴가를 내는 것도 좀 수상하잖냐. 휴가를 낼 적에 최근 들어 잦은 빈도로 발생하는 이변을 조사하려는 목적이라고 이야기를 해 두었단다."

세 사람의 휴가가 빠르게 통과 되었다는 게 조금 의아했었는데, 그들의 휴가에는 그런 뒷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이 좋아서 휴가일 뿐, 사실상 특별 조사관으로 출전하는 쪽에 가까우니까.

허유와 나의 격돌은 수도에서 시작되어 이 나라 전체에도 충격파를 흩뿌리는 수준이었다. 나라에서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들하고 통화를 했어. 우리 세 사람의 영향력이 닿기 어려운 다른 나라에서 출현한 재해 쪽은 그쪽이 맡아주기로 했다. 아마 해외의 높으신 분들과 이야기가 오가게 되겠지. 그러니까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특급이 대단하긴 하지만,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요원 중에도 실력자는 많다. 제1위와 2위 수준에 버금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특급 모험가 시스템은 그들 전원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구축할 수 없는 체제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마그누스와 함께 서로의 담당 구역을 정했다. 마그누스가 여기에서 여기까지, 스텔라는 여기까지. 그리고 루이스는 이 정도를 처리하고.

지도에 선을 그어 가면서 서로의 담당 구역을 정했다.

담당 구역은 이 중에서 마그누스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스텔라다. 담당해야 하는 구역은 순위가 낮아질수록 줄어들었고, 담당 구역이 가장 좁은 것은 루이스였다.

마그누스는 수련을 떠나야 하는 루이스를 배려했는지, 루이스에게 많은 구역을 할당하진 않았다. 구르제스를 포함한 극소수의 구역을 분배했을 따름이다.

"나와 스텔라는 오늘 바로 출발할 예정이다."

"전……, 내일이에요. 표도 끊어놨고요."

"최근 밤을 좀 새었다지? 충분히 휴식한 뒤에 출발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나는 좀 서둘러야 하니까 먼저 일어나 보겠다. 푹 쉬다 가거라."

"네, 고맙습니다. 대장."

등을 돌린 마그누스가 손을 흔들면서 회의실에서 나갔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갑자기 루이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입술을 우물거렸다.

"갑자기 죄책감이 좀 느껴지는데……"

"뭘 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으, 하지만 말이야. 겨우 성욕 때문에 이러는 게 좀 한심해서……"

손을 마주잡은 채 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린다. 하지만 루이스가 좀 서두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루이스가 내일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서다. 니르바나 사원은 이 나라의 국경에서 아주 조금 벗어난 위치에 있는, 해외에 있는 장소다.

출국에는 여권이 필요한데, 그 여권이 준비되는 게 딱 내일 아침이다.

어차피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소리다.

"일단 일어날까."

"그, 그럴까."

어차피 커피도 다 마셨겠다,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루이스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자택으로 복귀해서 출발할 준비를 끝마칠 필요가 있다.

루이스는 보이드의 술식을 해석하기 위해서 최근 며칠 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수행에 앞서 휴식도 좀 취하고, 준비도 하고, 술식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뒤로 미뤄둔 일이 꽤 되는 편이다.

카페 앞에서 루이스와 잠시 헤어졌다. 루이스도 루이스지만 나도 스케줄이 있다.

제1위, 요하네스와 함께 수행할 시간이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은 묘하게 수행이 술술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하네스에게서도 칭찬을 여러 번 들었다. 오늘따라 집중력이 높아 보인다고.

……설마 이거, 루이스랑 할 생각에 들떠서 그러는 건가?

도대체 나란 놈은 얼마나 단순한 인간인 것인가. 나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오늘은 시간도 잘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다지 오래 한 거 같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행이 끝을 맺었다.

수행이 끝난 이후에도 체력과 의욕이 흘러 넘치는 탓에 나 스스로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요하네스가 떠난 후에도 혼자서 검을 휘두르며 살짝 오버워크를 저질렀을 정도다.

수행을 끝마치고, 샤워를 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 앉았다.

시곗바늘은 저녁 여덟 시를 가리키는 중이다.

그리고.

"백, 백신현. 나 왔는데……"

문 바깥에서, 루이스의 노크가 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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