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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15화 (215/287)

〈 215화 〉 22. 전원 집합 (11)

* * *

낮보다 밝았던 밤이 끝나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나와 루이스는 나의 자취방에서 함께 밤을 지샜다. 루이스가 구축한 술식의 검증을 위해서였다.

보이드의 술식의 내용물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검왕검 내부에 있는 가상 공간에서 한 번 시험하고, 새벽 일찍 자취방에서 나와서 최대한 유사한 조건을 준비한 뒤 다시 한 번 시험했다.

루이스가 구축한 술식은 더 손을 댈 부분이 없었다. 술식의 완성도는 완벽했다. 술식의 난이도 자체가 높은 편인 것도 아니라서, 나도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늘따라 길거리 음식이 땡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여는 시장으로 나가서 닭꼬지를 몇 개 구입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루이스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아침. 현재 시각 오전 일곱 시.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떴지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침잠이 적은 편이다.

루이스와 나란히 자리에 앉아서 꼬지를 하나씩 해치운다. 막 먹어치우는 나와 다르게, 루이스는 입술이 조그만 편이라 음식을 해치우는 속도가 꽤 느리다. 뺨이나 턱에 소스가 묻는 것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고.

"출발은 언제 할 생각이야?"

"오늘 준비하고 나서, 내일 아침에 바로 나갈 생각이야. 도중에 구르제스도 한 번 들려야 하잖아.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루이스가 조곤조곤 대답한다. 내가 허유를 대비해서 수행하고 있듯, 루이스도 결전의 날을 대비해서 니르바나 사원에 찾아갈 예정이다.

굳이 니르바나 사원에 찾아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니르바나 사원에 찾아 간다고 해서 무조건 실력이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아니, 실력이 늘어서 돌아오기는 하겠지. 루이스는 천재니까. 하지만 니르바나 사원에 다녀와서 실력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게 루이스의 재능이 대단해서인지 아니면 니르바나 사원의 효과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루이스는 니르바나 사원이라는 비밀스런 성역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관심 자체는 나도 있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내가 말리더라도 루이스는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루이스를 말려야만 하는 이유도 마땅찮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루이스가 니르바나 사원에서 뭔가 얻어올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열심히 할 생각이야."

"그래?"

"물론,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왔지만 그것보다 더 열심히 할 거야. 진심으로."

루이스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입술을 다문다. 조그만 입술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너만 위험한 상황은 아닌 거잖아. 그 녀석이 너를 쓰러트리고 나서 순순히 이 세계에서 떠나가 줄까? 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해."

"그렇겠지."

"너 혼자만의 일도 아니고.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내가 원인을 일부 제공한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까 열심히 할 거야."

그렇다고 해서 루이스가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루이스의 눈가에는 기미가 내려와 있다.

아마 루이스도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검왕검을 봉쇄하는 보이드의 술식을 해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이 들어갔을지 짐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는 가볍게 어꺠를 으쓱였다. 보다시피, 루이스는 맺고 끊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다. 강인한 거 같으면서도 유약한 면이 있다.

은근히 외강내유다.

정확히는 정신력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약하게 느껴질 때가 명확하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루이스는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내성을 가지고 있다. 투지와 근성도 어마어마하다. 잠시나마 초신성을 검에 실은 채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루이스는 정신적인 나약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인다.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끝까지 툴툴거린다.

이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물론 루이스의 매력이 이런 점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루이스의 이러한 성격은 과거 나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니까.

이건 내 생각이지만, 아마 루이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완전 쓰레기 같은 놈이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루이스의 영향을 받은 덕에 회색지대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뿐.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진짜 쓰레기 같은 놈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다.

"있잖아, 루이스. 난 네가 검왕검을 주워서 내게 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래……?"

"예전에 보이드가 말한 적 있었거든. 난 아마, 지금까지 있었던 검왕검의 계승자 중 가장 최고에 가까운 남자일 거라고."

보이드의 말에 의하면, 검왕검은 한 자루만 있는 게 아니다. 검왕은 백신아가 들어 있는 검왕검 이외에도 여러 자루의 검왕검을 제작했고, 나 이전에도 다른 검왕검의 계승자가 있었다.

보이드는 나 이외의 계승자와도 충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보이드의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나를 싫어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강한 탓에, '바깥'에 존재하는 허유조차 끌어당긴 남자의 평가였다.

그 평가가 립 서비스일 가능성은 낮다.

"내 생각도 그래. 난 내가 스스로 우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든."

그 정도 자신감도 없으면 마력이 없는 몸뚱이로 모험가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나는 마력 하나 없는 몸뚱이로도 지하 투기장에서 최강의 실력자로 군림했고, 마력이 없는 시절에 거쳤던 상급 모험가 검정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 시험에 참여한 수많은 모험가 중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마력이 없다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과 판단력,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또 한 사람의 파비아'의 말에 의하면 아마 내가 굳이 그 놈을 자극하지 않았더라도 '바깥의 존재'들은 언젠가 이 세계에 마수를 뻗쳐 왔을 거야."

가볍게 숨을 삼킨다.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인간들은 모두 내게 동정한다는 식의 말을 남긴 채 떠나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저나 보이드, 검은 검사 같은 검왕검의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절망의 문을 열어 젓혔다'라고 표현하진 않겠지."

허유와의 대전 역시, 운이 없어서 조금 앞으로 당겨졌을 뿐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놈이 검왕검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 또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오히려 네가 검왕검을 주워서 내게 오게 한 것이 훗날 신의 한 수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신의 한 수……?"

"그래. 언젠가 진짜로 '바깥의 존재'들이 마구잡이로 이 세계에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다고 생각해봐."

루이스의 표정이 빠르게 구겨진다. 내가 상상하라고 해서 상상하긴 했는데, 머릿속에 그려진 미래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표정을 찡그리게 된 거 같다.

하지만 루이스의 상상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내 생각도 그렇다.

아주 조금 접한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광기에 물들게 하는 그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아마 전 인류의 멸망에 준하는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아무리 검왕검과 천변무궁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강적들이 즐비할 텐데, 그때 나 대신 검왕검을 계승한 사람이 실력 부족으로 그 싸움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어? 다 끝장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가 검왕검을 주워서 내게 가져다준 것이 오히려 천만다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껏 천변무궁류를 거쳐간 여러 계승자 중 최고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제일 높은 남자다.

이 세상의 이면에 암약하고 있는 수많은 위협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나 이상의 인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고생도 이런 개고생이 없지.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나 너도 고생하고 있으니까."

루이스와 시선을 맞춘다.

"하지만…… 혹시 네가 검왕검을 획득하지 못하고 내게 검왕검을 전달하지 못한 결과…… 보이드가 검왕검을 획득하거나, 나였다면 헤쳐 나갈 수도 있었던 위협을 제거하지 못하는 식으로 상황이 흘러 갔다면 그건 그것대로 최악이었을 거야."

전례는 이미 존재한다.

이전에 맞서 싸웠던 '검은 검사'는 또 다른 검왕검을 소유했던 인물이지만, '바깥에서 온 존재'는 커녕 그것과 맞서 싸우기에 앞서 검왕검이 제시했던 시련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으니까.

검왕검이 제시하는 시련의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 검왕검의 계승자가 맞서 싸워야 하는 진짜 적들의 수준은 대략적으로 추측이 된다.

괜히 어설픈 사람에게 검왕검이 넘어갔다가 저항할 기회도 없이 무너지느니, 차라리 최고의 인재에게 검왕검이 넘어온 지금의 상황이 더 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인류 전체는 물론, 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나도 고생하는 건 싫다. 하지만 내가 고생하지 않은 결과 그 피해가 세계적인 규모로 커지고,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인간들에게도 퍼지는 꼴은 더더욱 보기 싫다.

루이스가 검왕검을 주워 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검왕검의 주인이 되지 못했더라면 그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갔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금이 낫다.

검왕검과 함께 싸워 나가는 하루 하루가 보람찼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거 좀……, 잘난 척하는 거 같아서 재수 없네. 백신현 주제에."

"그래?"

"하지만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내가 네게 계속 투자해왔던 것도……, 네 실력이 언젠가 반드시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넌 우수한 사람이야. 응, 그게 맞아."

루이스가 손가락을 꾸물거린다.

"……야, 백신현. 있잖아……."

"어, 왜?"

"나, 내일 출발하면 최소 두 달은 못 보는 거잖아."

정확히는 두 달하고도 석 주 정도다.

허유가 내게 삼 개월의 기한을 제시한 건 벌써 지난 주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으음……, 절대로 내 몸이 쑤셔서 이러는 건 아니고……, 네가 밤에 좀 외로워할 거 같아서 그러는데……"

루이스가 입술을 살짝 떼었다가 다물고, 조심스럽게 혀를 햝짝거렸다.

"오늘……, 있잖아……"

"신현아! 루이스!"

루이스의 입술이 열리기 직전, 멀리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굵은 목소리. 마그누스였다.

그는 우연히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면서 뛰어 오는 중이었다.

"정보가 들어왔어!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특급 재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거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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