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2. 전원 집합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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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종료되고 약 수십 초.
밤하늘을 밝혔던 빛이 천천히 잦아 들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직경 수십 미터의 넓적한 물체가 추락하는 게 보였다. 일식필살검을 출수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남겨 둔 나쟈의 머리 부분이었다.
목에서 머리 부분까지, 거대한 뱀의 머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크기로 미뤄 보았을 때, 뱀의 머리의 크기만 해도 수십 톤에서 수백 톤을 넘나드는 수준이겠지만 이 중에서 저걸 받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나 한 사람 뿐이다.
"……."
뱀의 머리가 추락하는 광경을 지켜본 파비아가 지면을 세게 박차며 뛰어 올랐다. 뱀의 머리를 공중에서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파손되지 않도록 무게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천천히 내려앉는다.
직경 수십 미터, 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일식필살검은 지면에서 수직으로 곧게 나아갔지만, 나쟈의 경우 꼿꼿하게 서 있긴 했어도 완전한 수직은 아니었다. 그 결과 나쟈의 목과 머리까지의 부분이 소멸하지 않고 남았다.
처음부터 의도한 일이었다.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르는 나쟈의 몸뚱이를 그대로 그 자리에 온전히 방치해둘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도 좋지 못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쟈의 비율을 따졌을 때 코어가 있어야 하는 자리인 목과 머리 부분을 소멸시키지 않고 남겨 두었었다.
모조리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애초에 수직으로 날아오른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경로상에 존재하는 나쟈의 몸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채 드넓은 천공 너머로 나아갔었다.
경로 상에 있었기 때문에 나쟈의 몸이 삭제되었을 뿐, 일식필살검의 한계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또한, 내가 지운 것은 지상 위로 드러나 있던 부분 뿐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는 위에 붙어있는 부분이 삭제된 탓에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나쟈의 하반신이 있다.
이 부위부터는 지면 아래에 파고들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나쟈 정도쯤 되는 질량 덩어리를 한 번에 제거했다가 지반에 악영향이라도 끼치면 곤란해지고.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몸을 구성하는 마력이 몇 달에 걸쳐 천천히 분해되면서 지면에 다시 흡수될 것이다. 대지에 흡수된 마력이 부실해진 지반을 활성화시키고, 내용물이 비워진 지면에 다시 안정감을 돌려 놓아 주겠지.
나쟈의 머리 쪽도 마찬가지. 특수한 처치를 하지 않는 이상, 나쟈의 머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파비아가 조심스럽게 받아낸 나쟈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제1위와 2위는 팔짱을 낀 채 나쟈의 머리를 살피던 중이었다.
"신현이 네 말처럼 정말 코어도 없고,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혼자 힘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대상의 마력에 기생하는 술식……, 이라."
"지금도 그 마력 패턴은 유효해."
연금술사가 나쟈의 머리에 거대한 침 같은 것을 꽂았다. 아니, 그것은 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안테나에 가깝다. 실제 용도도 대상에 접속해서 마력의 파형을 추출하는 물건이니까, 안테나라는 표현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 내가 해도 되겠지만, 난 지금 바쁘거든. 나쟈의 머리는 그쪽에서 분석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연금술사가 제1위와 2위를 노려본다. 그녀의 나이는 두 사람보다 연하이지만, 그녀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제1위와 2위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이 정도 크기면 내가 연구소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 거 같군. 내가 연구소까지 가지고 가마."
마그누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상반신이 삭제되고, 그 단면만이 남아 있는 나쟈의 하반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연구원을 파견해서 조사할까? 신현이 네가 상반신을 날려 버린 데다가 머리는 이쪽에 있으니까. 서로 따로 떼어 놓고 조사하면 갑자기 눈을 뜨진 않겠지."
마그누스가 조용히 작업의 인선과 청사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나쟈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해도 좋았겠지만, 그러한 경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나쟈의 마력 패턴은 검왕검과 같이, 사용자의 육체에 기생하는 마력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 나쟈를 분석하기 위해서 연구 시설을 제작했다가 나쟈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로 이어지고 만다.
조금 아쉽지만, 딱 이 정도가 현실에 타협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후, 하지만 그 기술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나쟈의 거대한 몸뚱이를 한 번에 절단하는 건 요하네스는 물론이고 내게도 불가능한 일인데."
허리에 손을 얹은 마그누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방에 있어서, 마그누스는 요하네스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그의 출력을 아득히 넘어선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마그누스가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가.
그는 과거, 내 칼끝에서 뿜어져 나온 일식필살검이 루이스에게 토스되고, 그 루이스의 칼끝에서 다시 한 번 분사되는 그 순간을 지켜 보았으니까.
하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최고의 위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위력이 크게 차이 나는 경향이 있고,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최대의 위력과 비교하면 이것도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신현아.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이 도시에만 국한되어 있는 일이 아닌듯 싶다."
마그누스가 나를 돌아본다. 내 생각도 그와 같았다.
애초에 제피로스는 나와 허유가 직접적으로 부딪친 전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제피로스에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이 대륙에 존재하는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가 진짜로 허유와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혹시 다른 지역의 특급 재해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이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나와 요하네스가 데리고 있는 각지의 정보원들에게 부탁해서 정보를 좀 조사해보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찾아가서, 여기에 있는 나쟈처럼 위험을 제거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
나도 시선을 돌린다. 머리만 남은 나쟈는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생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여러모로 소름 돋는 광경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네 수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놈들을 방치해둘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급 재해가 작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마그누스가 새삼 진지한 눈으로 나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선에 가까운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제피로스의 모험가들로부터 대장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신현아. 너만 괜찮다면 내가 움직여서, 각지의 위협에 대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해해줄 수 있겠냐?"
"괜찮습니다. 어차피 심법과 보법의 요결은 모두 전달 받았으니까요. 남은 건 단순수행 뿐이죠."
"고맙구나."
마그누스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 시선이 흡사 자식을 보는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 조금 떨떠름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나와 란즈 가주, 스텔라와 스텔라를 따르는 특급 모험가 세 사람 정도다. 여기에 신현이 너하고 루이스, 그리고 저 수인 아가씨 정도가 포함되겠지."
현재, 이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급이나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는 이 정도다.
특급 수준의 실력자가 아홉.
이 정도쯤 되는 전력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함께 투쟁하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 정도로 지금의 사태가 심각하다는 의미도 된다.
허유는 현존하는 특급 전원이 달려 들어도 이기지 못할 상대이니까.
놈이 출현한 여파를 수습하는 것조차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신현이 너는 수련에 집중 해야 하니까 여기에 남아있고, 실질적으로는 여덟이서 각지의 사태에 대처하는 게 좋을 거 같구나."
"그게 좋겠죠. 조금 아쉽긴 하지만요."
"어허,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말거라. 일은 서로 나눠야 하는 법이니까."
마그누스가 준엄하게 호통을 쳤다.
"일단 내일까지 기다려 보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자꾸나. 그리고, 다른 지역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때에는……"
"지금처럼 머리만 남겨두고 모조리 제거해버리도록 하죠. 그 많은 놈들이 한 번에 날뛰기 시작하면 피곤해질 겁니다."
"음, 전대미문의 초강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불안 요소를 남겨두는 건 좋지 않지. 그 정도가 좋을 거 같구나."
핵은 보이지 않고, 특급 재해가 가진 고유의 거대한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지만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놈들은 상당한 위협이다.
'기생 술식에 특화된 마력 패턴'이 문제다.
갑자기 눈을 뜨고 활동하기 시작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니까.
"……두 사람 모두, 나는 전력에서 제외하려는 생각이오?"
"어쩔 수 없지 않냐, 이 친구야. 네가 폭주해버리면 특급 재해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협이 될 거라고."
요하네스는 조금 힘이 빠진 얼굴이었다. 그도 스스로가 전력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가 전장에 나섰다가 잘못해서 폭주하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더욱 곤란해진다.
폭주한 그를 제어할 수 있는 건, 백신아 정도밖에 없으니까.
"요하네스 너는 여기에 남아서, 신현이의 수행을 계속 도와주는 게 좋을 거 같다. 어차피 우리가 모든 위협을 제거하더라도 신현이가 그 존재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이야. 내가 신현이의 수행을 봐주지 못하는 만큼, 자네가 노력을 해 줘야지."
"알겠소. 어쩔 수 없군."
요하네스는 자존심이 크게 구겨진 듯한 얼굴이었다. 사람 좋은 인상의 얼굴에 한숨이 떠오른다.
저마다의 방침이 정해진 후, 일단 이 자리에서 해산이 결정되었다. 지하에 남아 있는 나쟈의 하반신에는 어중이떠중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연금술사가 결계를 쳐 두었다.
내일 아침, 교회 측에 부탁해서 나쟈의 출현에 의해서 약해진 지반을 보수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제1위, 2위가 차례로 모습을 감추고 그 자리에는 나와 각별히 친밀한 사람들만이 남았다.
루이스가 천천히 팔짱을 낀다.
"사태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체감 되는 거 같아.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그렇겠지. 그리고 루이스, 내 생각에는 구르제스에도 한 번 들려봐야 할 거 같아."
"구르제스? 거기는 왜?"
구르제스는 샤를로트가 태어난 마을로, 규모가 넓지 않은 조그만 어촌이었다.
검왕검의 제작공방이 있었던 마을이기도 하고.
우리는 그 마을에서 파비아와 만났다.
하지만 이때, 내가 구르제스를 언급한 건 조금 다른 이유였다.
"해신??"
"……."
루이스의 표정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 괴물도 특급 재해로 분류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전체적인 특징은 특급 재하와 거기서 거기야. 그 녀석에게도 무슨 문제가 벌어지진 않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돌려서 파비아를 응시했다.
해신은 특히, 파비아와 연이 깊은 존재였다. 파비아에게 광증을 부여한 존재는 '바깥의 지식'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바깥의 지식'에 의해 피폐해져가고 있던 파비아의 정신에 마무리를 지은 건 해신이었다.
해신은 그때 나와 루이스의 손에 의해 쓰러지게 되었지만, 혹시 또 모른다.
여기에 있는 나쟈 또한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비교해서 불합리할 정도로 빠르게 출현한 상황이니까.
위협은 해신 뿐만이 아니다.
그때 획득한 정보에 의하면 검왕이 전성기 시절에 쓰러트렸던 괴물은 한둘이 아니었다.
어쩌면 세간에 알려져 있는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숫자의 특급 재해가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허유가 이 세계에 나타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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