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22. 전원 집합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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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쟈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를 끝마친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나쟈에게는 핵이 없으며, 내부에서는 특수한 마력 패턴이 느껴진다는 사실까지 공유했다.
루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기생 술식과 비슷한 마력이 느껴진다는 건…… '뭔가'가 지하에서 동면 중이던 나쟈에게 기생해서 지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소리가 되는 건가?"
"아마도. 지금의 나쟈는 마력이 모이는 핵조차 관측되지 않는 상태야. 빈껍데기 뿐이지."
"……즉, 언제라도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네."
루이스가 눈을 날카롭게 뜬다. 녀석의 말처럼, 나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지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어야 했을 나쟈가 굳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
이 거대한 크기를 고려했을 때, 가만히 방치하면 얼마 가지 않아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것도 있고, 이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 올라왔다는 점도 문제야. 이 나쟈의 크기를 봐. 이 정도로 큰 녀석이 지하 공간에서 갑자기 없어지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지반이 통째로 무너져내릴 가능성이 높아."
연금술사가 설명을 보충했다.
그녀의 말처럼, 나쟈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나쟈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지반을 지탱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께만 수십 미터, 길이는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괴물이니까.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 아래는 지하수가 모조리 빠져 나간 지반처럼 상당히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싱크홀 문제로 주변의 지반이 통째로 가라 앉을 지도 모른다.
나는 제1위와 2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이 나쟈를 좀 치우고 나쟈가 튀어 나온 구멍을 좀 봐야 할 거 같아요. 지금은 큰 문제가 없지만, 이대로 있다가 지반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테니까요."
"나쟈를 치운다고……?"
마그누스가 고개를 돌려서 나쟈의 모습을 돌아본다. 나쟈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 마그누스도 조금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어떤 식으로 해야 완전히 치울 수 있을지 생각 중인 거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대답하기 전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지상 위로 올라온 부분은 제가 치울 수 있어요."
"치울 수 있다고?"
제1위와 2위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들의 기준에 있어서도 이 정도 크기의 나쟈를 치우는 건 쉽지 않은 일로 치부되는 거 같았다.
하물며 나는 코어의 출력을 비교했을 때 그들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쟈를 치울 자신이 있다.
확신을 담은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그누스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한 번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시켜볼까? 요하네스, 네 생각은 어떠냐?"
"음, 그대가 함부로 말을 뱉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디 한 번 해보시오."
요하네스가 손을 내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전에 나쟈의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소? 내 생각에 이 일은 모험가 길드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해야 하는 사안이 아닐까 싶소."
"저도 어차피 준비가 좀 필요합니다. 최소한 한 시간은 잡아야 해요."
"겨우 한 시간으로……? 아니, 아니지. 알았소. 그럼 나는 그 동안 길드에 제출할 사진 기록을 남기도록 하겠소. 그대는 서둘러 나쟈를 치울 준비를."
"네."
품에서 사진기를 꺼낸 요하네스가 그 자리에서 바람처럼 모습을 감춘다. 나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떨어트린 후, 검왕검을 한손으로 뽑았다.
"……잠깐만, 신현아. 내 생각이 맞다면, 너 혹시……"
"네,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게 맞아요."
"그 기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
"모두 날려버리진 않을 거예요. 위력을 조절해서 머리 정도는 남겨둘 생각입니다."
요하네스와 다르게 마그누스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듯한 얼굴이다. 하긴, 그는 스페트로와의 싸움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단을 본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짐작대로, 내가 지금부터 시도하는 기술은 스페트로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입혔던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었다.
그 기술의 힘을 빌리면 여기에 있는 나쟈의 몸뚱이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릴 수 있다.
예전에는 백신아의 도움 없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기술이었지만 스페트로와의 싸움이 끝나고 4개월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나도 그 동안 놀고 있었던 게 아니다.
마력도, 기술도 늘었다.
백신아가 시도할 때와 비교해서 수준은 천지차이이겠지만, 긴 준비 시간을 거치면 시도는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올라왔다.
특히 검은 검사와의 싸움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남자는 천변무궁류에 대항하는 검술의 사용자였다. 그것과 맞서 싸우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나쟈로부터 10미터 정도 거리를 둔 후, 그 위치에서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一?必??, 초신성???의 준비가 시작된다.
오른쪽 다리를 지면에서 떼어낸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비스듬히 세우고, 검무??에 들어간다.
검은 움직이는 움직임 속에는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실전에서는 쓰이지 않을 어설픈 일참이 허공을 찢는다.
그것은 무?라기보다는 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춤사위를 닮아 있었다.
나는 아직 백신아의 수준을 쫓아가지 못했다. 실전적인 검술과 초신성을 양립하는 건 지금의 내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초신성 하나만을 보고 준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허공을 찢는 일참과 일참 사이에는 희미한 연결 고리 같은 것이 존재해서, 그것이 대기 중에 부유하는 마력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
휘두른다. 찌른다. 짓쳐 올린다. 내려 찍는다. 이미 검을 허공에 대고 휘두른 횟수는 수천 회를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쉬지 않는다. 한 순간이라도 멈춰서거나, 잘못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 순간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붕괴한다.
"……."
나는 호흡을 최소화한 채 무?를 완성 시키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대기 중의 마력이 초신성의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수천 회 정도로는 기별도 가지 않았다. 검을 휘두른 횟수가 다섯 자리를 넘어선 그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대기 중의 마력이 끌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움직임에 이끌렸을까. 바닥에 소복하게 쌓여 있던 나뭇잎이 나의 칼끝에 걸려서 부드러운 나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수많은 나뭇잎이 나선의 구조로 회전하면서 나의 주위를 멤돌았다.
일참, 일참, 일참.
검을 휘두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칼끝에는 기묘한 무게감과 속도가 감돌았다. 칼끝에 나뭇잎이 걸렸다. 그 자리에서 나뭇잎은 수십 조각으로 갈갈이 찢어져서,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달을 가리고 있던 암운이 조용히 위치를 옮겼다. 검은 장막으로 점철된 대지 위로 달빛이 쏟아진다.
어느덧 나의 검무는 한 시간을 넘어 있었고,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두른 횟수는 여섯 자리에 도달한 상태였다.
대기 중의 마력이 조금씩 충만하게 차오르고, 그것이 어느 지점을 넘어선 바로 그 순간 허공에 뻗은 검왕검의 칼끝에 강맹한 마력이 휘어감겼다. 나는 바닥 위로 신발 밑창을 유려하게 미끄러트리면서 검무를 멈추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검왕검의 칼날에 여러 가지 색채가 겹겹히 쌓여 있었다.
녹색, 붉은색, 푸른색.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은 천변무궁류의 제일검과 제이검, 그리고 제삼검의 원리를 모조리 접목시켜서 완성되는 기술이다.
검을 등 뒤로 크게 젓힌다.
변모는 그 직후였다.
파직! 파직파직파직파직파직!! 칼끝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여러 가지의 색채를 가진 마력 입자가 서로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상반신을 살짝 앞으로 굽힌다. 턱을 몸쪽으로 당긴 상태에서, 눈동자를 움직여 나쟈의 몸뚱이를 확인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요하네스 씨. 사진은 모두 찍으셨습니까?"
"물론이오. 뒤늦게 구경하기 위해서 나타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안전지대에 물려 놓았지. 바로 시작해도 좋소."
고개를 든다. 나는 완전히 검무에 집중하고 있어서, 이 주변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천변무궁류의 모든 감각을 이 기술을 완성시키는데 소모했다. 그러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기술이다.
파직!!
번갯풀이 크게 튀었다. 그 순간 나의 칼끝에서 터져 나온 섬광은 너무나도 강렬한 것이어서, 부지불식간에 밤의 어둠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밤의 어둠을 무지개색의 초신성이 밝힌다.
"간다."
준비는 끝났고, 나는 이 이상 칼끝에 모여 있는 마력을 붙잡아둘 자신이 있었다. 잠시 동안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뇌의 혈관이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쿵!! 바닥을 세게 내딛으며 검왕검에 모여 있던 마력을 아래에서 위로,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오르듯이 강하게 내질렀다.
칼끝에 걸려 있던 마력이 한 순간에 해방되었다.
긴 준비 시간을 거쳐,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이 빛을 뿜는다.
천변무궁류?????
일식필살검一?必??
홍?
초신성???
빛이 터진다. 시공간이 찢겨 나간다. 칼 끝에서 뿜어져 나온 무지개색의 섬광은 마치 하늘을 관통한 뒤, 그 너머로 나아갈 것처럼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칼끝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은 밤의 어둠을 모조리 걷어냈다.
나쟈의 육체는 잿더미 하나 남기지 못했다. 온도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그 온도에 노출된 사물은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증발해버리고 만다.
완성된 초신성의 위력은 그 정도였다. 지상에 존재하는 나쟈의 몸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린 후, 밤하늘의 저편에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새겼다.
섬광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흔적이 남았다. 대기가 뽀각뽀각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
초신성의 지속 시간이 끝을 맞이했을 때, 그 자리에 더 이상 나쟈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쟈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동안 노려본 후, 큰 기술을 시도한 피드백으로 움찔거리는 오른손을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납검했다.
천변무궁류를 처음으로 접하고, 일조일석으로 수행한 지 어언 7개월.
이제야 비로소, 천변무궁류의 검사라고 자칭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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