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2. 전원 집합 (8)
* * *
"사제사제, 뭐야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공방의 문이 열렸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파비아가 뛰쳐 나온다.
파비아는 사족 보행으로, 연금술사는 파비아의 허리에 올라탄 상태였다. 번개처럼 뛰쳐 나온 파비아가 네 개의 발바닥을 바닥에 접지시킨 채 미끄러진다.
낮 시간 동안 수면을 보충했는지 연금술사의 낯빛이 썩 괜찮아 보인다. 그녀는 바깥으로 뛰쳐 나온 후, 곧바로 거대한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암운의 저편,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듯한 거대한 뱀의 모습이 보인다.
연금술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뭐야, 저거. 나쟈……? 어째서 저 몬스터가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거지?"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각지의 특급 재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군. 그 정도 규모의 존재라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펼쳐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연금술사가 턱에 손을 댄 채 중얼거린다. 파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쟈, 지금까지 파비아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물론 저희가 잘못 짚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가보자고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을 거에요."
"그렇겠지. 그럼……, 파비아."
"응, 선생님!"
"신현이 너는 쫓아올 수 있겠어?"
"신현이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루이스가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흐름을 타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루이스가 나보다 훨씬 빠르다. 루이스의 도움을 받으면 빠르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시선을 맞춘 후, 저 멀리 보이는 뱀의 그림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연금술사는 파비아를 타고 달렸다. 사실상 파비아에게 엎혀서 가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나의 경우, 루이스에게 손을 붙잡힌 채 그대로 날듯이 끌려 가는 중이다. 어마어마한 속도를 정면에서 받은 탓에 머리카락이 쉴 새 없이 나부낀다.
도시와 숲의 경계를 빠르게 통과했다. 거대한 뱀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워질수록 확신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표면은 검은색. 비늘은 흑요석처럼 뚜렷한 색채이며, 윤기가 흐르면서 빛을 반사하고 있다.
전체 길이는 수십 킬로미터에 이른다. 그것이 꼿꼿하게 일어서 있는 지금, 머리 부분은 성층권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나쟈의 모습이었다.
과거에 내가 맞서 싸웠던 나쟈보다도 훨씬 더 크고 완성되어 있다.
완전한 성체의 모습에 가깝다.
이미 현장에는 제1위와 2위가 한 발 빠르게 도착해 있었다.
"신현아! 루이스!"
"대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나도 모르겠다. 이제 막 도착한 참이야. 생긴 모습이 영락 없는 나쟈라서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움직일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마그누스는 마치 탑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나쟈의 표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깡깡, 하고 소리가 들린다. 생물체의 피부라기보다는 마치 쇳덩이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다.
"마치 지면 내에서 동면 중이었던 것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야 할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마그누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간다.
그의 말처럼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나쟈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쟈에게 존재하던 광대무량한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빈껍데기 같다고 해야 할까.
나도 나쟈의 주변을 돌면서 표면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려본다.
나쟈를 비롯한 특급 재해들은 저마다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의 나쟈에게서는 아주 미약한 수준의 마력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 그렇다, 나쟈를 비롯한 특급 재해들은 그 거대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마력을 필요로 한다.
물리법칙은 아주 정직하다. 특급 재해들의 거대한 몸뚱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의 도움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
오크나 오우거 수준의 덩치를 가진 몬스터들이 이족 보행을 하면,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관절에 무리가 가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스스로의 무게를 스스로의 골격과 관절이 이겨내지 못하는 탓이다.
기괴한 이형의 몬스터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력이 쉴 새 없이 순환하며 육체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력의 흐름을 단절 시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몬스터를 붕괴시킬 수 있다.
천변무궁류의 검사인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마력을 깊이 통찰할 수 있다. 제1위와 2위가 놓친 것이 있을지 나쟈의 주변을 돌면서 천천히 확인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쟈가 지하에서 솟아 올라왔을 리 없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뒤따르는 법.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쟈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이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
"글쎄요."
팔짱을 낀 마그누스가 나쟈의 측면을 훑어본다. 그는 몇 년 전, 이 도시의 수많은 모험가와 함께 나쟈 토벌에 나선 경험이 있다.
마그누스는 당시에도 이미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완전히 성장을 끝마친 나쟈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꽤 많은 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루이스는 그때의 활약을 인정 받아서 특급 모험가 자격을 얻게 되었다. 듣기로는 거의 루이스와 마그누스 두 사람의 독무대였다고 하던가.
그때 나는 토벌에 참가할 자격이 못 되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주워 들은 이야기 뿐이다.
"고민되는구만. 이걸 부숴봐야 하나, 아니면 일단 놓아두고 조사를 해봐야 하나."
딱딱하게 굳어서 석화한 나쟈는 금방이라도 용틀음을 하며 꿈틀거릴 것 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괜히 소름이 돋는 비주얼이라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고 부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는 조금 아쉽다. 우리는 아직 나쟈가 어째서 이 시기에 출현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
"일단……, 머리 부분을 조금 깨서 살펴볼까요. 나쟈의 핵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아, 그건 그렇겠지."
마그누스가 동의했다. 그의 시선이 위로 향한다. 지금 이 위치에서는 나쟈의 머리를 보기 어렵다. 나쟈의 머리 부분은 구름 너머까지 나아가 있었으니까.
"올라갈 수 있겠냐?"
"그래도 제가 올라가봐야죠. 저보다 마력을 잘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것은 천변무궁류의 특성에서 유래된 사실이다.
가지고 있는 마력이 부족한 탓에 감지 범위가 아주 넓은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사소한 마력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도 좀 도와주세요."
"응, 그럴까."
내가 나쟈의 핵이 있는 머리 부분으로 올라가서 마력을 잡아하고, 연금술사가 기록해서 연구한다. 내가 보기에는 나와 연금술사가 함께 올라가는 것이 최적의 인선이다.
연금술사는 공방에서 나올 때부터 기재를 챙겨서 나왔다. 마치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음, 내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아, 그건 괜찮을 거 같아요. 둘이서 올라가도 충분할 겁니다."
"실수로 미끄러지더라도 내가 받아줄 테니까. 너무 긴장하진 말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마그누스의 재미 없는 농담을 받아친 후, 연금술사를 옆구리에 낀다. 그녀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서 한 손으로 들어도 큰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나쟈는 꼿꼿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수직은 아니다. 가파르긴 하지만 경사가 있어서, 비늘의 사이 사이를 잘 보고 내딛으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상태에서 나쟈의 등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지금의 나쟈는, 나와 맞붙었을 때를 기준으로 세 배 가까이 덩치가 커진 상태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하에서 몇 년에 걸쳐 회복하던 중, 내 부름에 이끌려 나타났던 나쟈조차 그 정도 크기였는데, 그 후로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이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는 것이.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쌓아 올려진 기록을 전면부정하는 수준의 이변이다.
나쟈의 몸뚱이는 사후 경직이라도 걸린 것처럼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몸의 경직된 정도는 한 없이 직선에 가깝다.
하지만 머리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경사가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목과 머리가 이어지는 부분이 갈고리처럼 아래로 휘어진 상태였다.
"……."
고도가 높아진 탓에 숨 쉬는 것이 조금 버겁다. 하지만 견딜 만 했다. 마력이라는 게 그냥 있는 건 아니니까.
나보다 마력량이 더 충만한 연금술사는 훨씬 여유롭게 호흡하는 기색이었다.
10분 정도 걸려서 나쟈의 머리에 도착했다. 나쟈는 두께만 해도 수십 미터 단위에 이르는 초대형 몬스터. 머리의 면적도 넓었다.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은 이상 여기에서 떨어질 일은 없지 싶다.
거의 운동장 만한 머리 위에 올라서서 조사를 시작한다. 과거에 있었던 나쟈와의 전투 경험을 떠올린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이쯤에 핵이 있을 거다. 나쟈의 크기는 다르지만 비율 자체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이쯤이다 싶은 위치에 검왕검을 박고, 눈을 감은 채 집중에 들어간다. 백신아도 입을 다문 채 집중하고 있다. 백신아는 나보다 천변무궁류를 훨씬 더 잘 다룬다. 그런 만큼 감지할 수 있는 범위와 감도가 높다.
집중을 유지한 상태에서 한참을 탐색했다. 나쟈의 머리부터 목 부분까지 비늘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탐색하기를 약 20분.
나는 검왕검을 그 자리에서 뽑아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핵이 없잖아?"
「역시 그렇죠? 느껴지는 게 없어서, 저도 제가 뭘 잘못 감지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백신아가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 나쟈는 내용물이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상태였다.
핵도 보이지 않는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외형 뿐.
조금 아쉽다. 핵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내가 먹어서 비약적인 마력의 상승을 노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돌린다. 내가 탐색한 파장을 연금술사는 그래프로 기록하는 중이다.
"……."
심사숙고 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신현아 이거……, 이 그래프를 한 번 봐줄래?"
연금술사가 건넨 종이를 손에 쥔다. 붉은 선과 푸른 선으로 연금술사는 두 가지의 파형을 구분했다. 그래프가 파도처럼 굽이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종이에 그려진 파형이 눈에 익다.
내가 그걸 어디에서 봤지? 나는 그 자리에서 5초 정도 생각에 빠진 끝에, 나는 그 의문의 정체를 깨달았다.
과거, 연금술사가 보여줬던 논문에서 나는 지금과 같은 파형을 본 기억이 있다.
"기생 술식의 파형이네요."
"응, 맞아. 검왕검에서도 관측할 수 있는 파형이지. 검왕검 내부에 들어 있는 신아가 네 몸을 장악할 때 발생하는 파형과 대동소이한 패턴이야."
연금술사의 시선이 허리춤의 검왕검에 향한다.
"어째서지?"
그녀의 목소리에 의문이 섞인다.
"어째서 검왕검의 마력과 동일한 패턴의 파형이…… 나쟈의 몸에서 검출되고 있는 거야?"
"……."
나는 침묵에 빠진 채 얼마 전에 있었던 허유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나쟈는 아마도 허유의 출현에 의해서 촉발되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오른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허유의 소행인지, 그게 아니면 허유가 그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쟈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쟈의 출현이 허유와 관련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생각을 좀 해 보자고.
허유는 나나, 천변무궁류 앞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는 가소롭다는 듯 웃어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허유가 관심을 가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검왕검이다.
허유는 검왕검을 두고 친숙함이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검왕검.
백신아와 허유.
둘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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