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22. 전원 집합 (7)
* * *
『……글쎄요. 그런 건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백신아는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여전히 그녀 답지 않다. 사상 최강의 무술가인 그녀는 자부심과 자신감도 다른 사람의 세 배는 된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등의 행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야, 저는 도구잖아요. 보통 그런 생각은 안 하죠. 굳이 말하자면 검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정도인데…… 이것을 제 무의 본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할 수는 있겠지. 조금 애매하긴 하겠지만.'
결국 그 사람이 생각하는 무의 본질이란 그 사람의 목표와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무의 최종 형태도 달라진다.
백신아가 추구하는 무예의 길이 그러한 것이라면 녀석의 무가 도달하게 되는 최후의 형태도 예상할 수 있다.
즉, 내가 쓰기에 적합한 최고의 무예를 제작하는 것이 백신아의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러한 백신아의 말이 나는 조금 껄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를 백신아가 골라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니까.
물론 지금까지 백신아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이다. 이제 와서 그 도움을 거부하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될 무예의 형태만큼은 내 힘으로 도달하고 싶다.
이러한 의견을 전달하자 백신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소리를 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전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해요. 주인이 가야 하는 길에 손을 대는 건 주제 넘은 일이죠. 검주께서 바라는 '최고의 무'는 검주 자신께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 그저…… 곁에서 그 완성을 도울 뿐이에요.』
백신아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의 존재를 도구로 규정하고 있었다.
물론 백신아는 도구가 맞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아를 가지고 있는 백신아를 평범한 도구라고 여기기에도 꺼림찍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녀의 사고 능력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니까. 오히려 계산 등의 분야에서는 오히려 인간을 크게 상회하기까지 한다.
그러한 백신아를 순수한 도구로 다루는 것은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신아더러 인간처럼 행동하라고 지시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면 모를까, 백신아는 스스로가 도구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인간에게 인간의 사고 방식이 있는 것처럼, 도구에게도 도구의 사고 방식이 있다.
그 점을 이해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과거에 있었던 싸움을 입에 담았다.
'예전에, 검은 검사하고 싸울 때 기억 나?'
『으, 그때의 기억은 제게 있어서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인데요.』
백신아가 싫은 소리를 냈다. 도구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백신아에게 그것은 꿈에서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억 나지?'
『그거야……, 기억이 나죠. 그런데 그건 왜 그러세요? 검주.』
'그때, 검은 검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 무술의 본질이란 대적하여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놈은 그러한 원칙 아래에 천변무궁류에 대항할 수 있는 검술을 제작해서 내게 덤벼 들었지.'
그의 견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는 결국 수단이다. 무 자체를 순수하게 추구한다는 표현은 존재할 수 없다.
무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무 그 자체를 추구하는 무인들 또한 그 속에서 획득하게 되는 향상심과 성취감에 빠져 있는 것이니까.
무?란 삶 앞에 놓여진 온갖 장애물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존재한다.
맞서 싸워서, 대적한다.
그것이 무?
무의 존재에 있어 대적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다.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무를 수행하는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서 무의 길을 걷고 있으니까.
외부에서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온갖 위협에 맞서 싸워서 이겨낸다. 스스로의 마음을 가로막는 온갖 번뇌, 망설임, 스스로의 약한 마음과 맞서 싸워서 이겨낸다.
그 끝에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해답이 바로 '무의 본질'이다.
스스로가 추구하고자 하는…… 무예의 본질.
'무예란 극기?己이며 대적??이야. 그리고 대적자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그것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나의 무?는 더더욱 높은 경지를 추구하게 될 테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검주, 그것이 지금의 대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간단한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넌 나를 세계제일의 검사로 만들고 싶어하잖아. 만약 네가 진심으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우선 너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무'에 대한 기준을 먼저 확고하게 잡아야 해.'
검은 검사는 천변무궁류를 쓰러트리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 천변무궁류에 맞서 싸우는 대항식을 구축해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적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목적과 필요.
무예에 있어서 이것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네가 '최고의 무'를 완성한 뒤, 나는 그 '최고의 무'에 도전한다. 그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무를 점점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아…….』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백신아가 탄식을 토해냈다.
'백신아, 너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도구라는 굴레 안에 집어 넣으려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네가 진심으로 나를 최고로 만들어주고 싶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감정 없는 도구는, 사람을 최고로 만들지 못해. 인간을 최고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건 도구가 아니라 위대한 스승이니까.'
『……그런가요?』
'네가 진심으로 도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네 머릿속에 있는 진부한 도구의 정의 같은 건 깨부숴버려.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검보다도 위대한 존재야. 평범한 도구하고는 달라.'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를 두고 초인이라 표현한다.
그렇다면 백신아는 도구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초 도구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다.
도구의 영역을 초월한 도구인 백신아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기존의 기준이나 상식에 얽메일 필요가 없다.
『……검주도 참 너무하시네요.』
백신아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살짝 웃는 것 같았다.
『검주 자신도 스스로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 정의하지 못하셨는데, 검주도 해내지 못하셨던 일을 제게 요구하시다뇨. 너무 가혹하십니다.』
'나 혼자만 고민하는 거 같아서 불만이었거든. 너도 나하고 같은 고민으로 끌어들이고 나니까,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혼자가 아닌 거 같아서.'
『하여튼 성격 나쁘시다니까.』
백신아가 혀를 내두르며 끌끌 웃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거 같지는 않았다.
이로써 나와 같은 무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는 방랑자가 한 사람 새로 늘어났다.
나와 백신아 중 먼저 확고하게 무의 본질에 대해 정의 내리는 쪽은 과연 누구일까.
승리도 패배도 없는 조용한 경주가 막을 올렸다.
* * *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고개를 돌린다. 의자에 거만하게 앉은 루이스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작업이 다 끝났으니까 온 거지."
루이스는 이미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놓은 상태였다. 갈색 봉투 안에 두툼한 종이가 한 가득이다.
"1차 완성본이야. 이제 그걸 보면서 보이드의 술식을 성공적으로 중화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 체크를 해 봐야지."
"알았어. 지금 당장 확인해보자."
"그러려고 나도 온 거야. 그런데 신현이 넌, 어디에 다녀온 거야?"
"샤를로트에게 잠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이 시간이면 출입금지 아니야?"
"창문으로 몰래 들어갔지."
"……너한테 별 의도가 없으니까 망정이지, 그거 그냥 변태 아냐?"
루이스가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틀린 말이 없어서 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이고 말았다.
"하여튼…… 그러다가 나중에 걸려도 난 몰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루이스는 며칠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했는지 눈가에 기미가 내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샤를로트는 왜 찾아간 거야? 저번에 쓰러진 거 때문에 그래?"
"그것도 있고, 샤를로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거든. 샤를로트가 무의 길을 걷는 이유와…… 스스로 추구하고자 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
"무의 본질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루이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라 나는 시간을 들여서 보충 설명을 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갔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요하네스, 마그누스, 올리비아, 그리고 샤를로트.
처음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지만 루이스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의 이름이 나온 그 순간부터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집중한 표정으로 끝까지 듣고 있던 루이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현이 너는, 아직까지도 네가 추구하고자 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거고?"
"그렇지."
"내가 보기엔 간단한 거 같은데……?"
"간단하다고?"
"응. 내 생각이 맞는지는 네가 직접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내 생각에 네가 추구하고자 하는 무의 본질이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진동이 도시를 덮쳤다. 마치 커다란 지진이 울린 듯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훨씬 빠르고 맹렬했다.
충격파가 빠르게 통과한 탓에 여기저기 부서지고 금이 간 부분은 있었어도 그게 붕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와 루이스도 그 자리에서 살짝 비틀거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루이스가 득달같이 고개를 돌리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지금……, 뭐였지?"
"모르겠어. 나가봐야 할 거 같은데."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다.
검게 물든 밤하늘의 저편에서, 밤하늘의 어둠과 구별되는 좀 더 짙고 두꺼운 덩어리 같은 것이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탑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르다. 저것이 출현한 위치는 제피로스 근처에 있는 숲속이었고, 저것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물체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숨귀는 생명체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것은 꼿꼿하게 일어선 거대한 구렁이처럼 보였다.
"야, 백신현……. 어쩌면 이건 내가 잘못 본 걸지도 모르는데……, 저거 나쟈 아냐?"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나쟈가 이 시기에 나타날 리가 없는데?"
나쟈는 한 번 쓰러지면 몇 년의 텀을 둔 후 천천히 부활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 시기에 출현한 기록은 없다.
애초에 나쟈는 불과 반년 전에 내 손에 다시 한 번 쓰러진 적이 있다. 부활은 최소 5년은 기다린 후에야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불가사의한 현상에 눈을 깜박인다.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에선 바로 얼마 전에 올리비아에게서 들었던 말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허유가 출현한 이후로 몬스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허유의 힘은 아주 드넓은 범위에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은 보이드의 몸을 차지해서 활동하고 있지만, 놈의 본체는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격 높은 존재였다.
혹시…… 이 갑작스런 사건 또한 허유가 출현으로 발생한 현상은 아닐까?
하지만……, 아냐, 물론 나도 믿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아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은 후 다시 한 번 루이스와 시선을 맞췄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나쟈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