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22. 전원 집합 (5)
* * *
연금술사가 다리를 까딱거렸다.
"이번에 쓰는 심법은 효과가?"
"음, 전에 쓰던 심법과 비교해서 마력이 쌓이는 속도가 좀 높은 편이에요. 배율로 따지면 대략 1.3배 정도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의 내가 운용하는 심법의 이름은 우건심법雨?心? 이라는 것인데, 그다지 드라마틱한 상승치는 없지만, 그 대신 심법의 구조가 부드러워서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마력의 성질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내 마력은 여러 여인의 마력이 혼합되어 있는 탓에 궁합이 좋은 심법을 고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수준이 낮은 심법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한계치가 낮은 탓에 간섭할 수 있는 마력의 크기에도 상한선이 있으니까.
하지만 심법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심법의 성능 이상으로 사용자와의 궁합을 따지기 시작한다.
수준이 높은 심법일수록 익히는 조건이 까다롭다. 심법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력, 무공 등이 서로 맞물리지 않으면 주화입마와 비슷한 증상이 찾아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마그누스에게 전수 받은 이번의 심법은 한계치도 높으면서 주화입마의 가능성도 차단할 수 있는, 매우 수준이 높은 기술이었다.
마력이 축기되는 속도도 꽤 빠른 편이다. 심법에 따라서 조금씩 축기되는 속도가 다른 건 사실이지만, 사용자 자체가 특수한 체질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마력이 축기되는 속도는 대부분 거기에서 거기다.
가장 빠른 심법조차 삼류심법의 두 배를 넘기지 못한다.
루이스의 경우……, 심법의 특수성보다는 그녀 자신이 특이 체질이었던 덕을 크게 보고 있는 쪽에 가깝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마력이 축기되는 속도 자체가 차원이 다르니까.
나는 가슴 속에 충만한 마력을 인식한 채 천천히 호흡하기 시작했다.
"효과도 꽤 만족스러워요. 이걸 삼 개월 동안 계속 수련한다면, 최대치와 출력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가겠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편다.
원래라면 천금을 줘도 구하지 못할 심법이다.
이래서 사람은 인맥이 있어야 하는가보다.
"심법의 근간은?"
"향상심?上心 이에요. 제게 딱 맞는 심법인 셈이죠."
"하긴, 넌 강해지고 싶어서 환장하는 아이이니까."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 심법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보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녀의 말처럼, 나와 궁합이 좋다.
언젠가 백신아가 평가했듯, 나는 무?를 수련하고 강해지는 것에 미쳐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추구하는 무는 요하네스와도 어느 정도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느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 요하네스가 걸어가는 무의 길을 이해할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는데……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해야 하나?
내가 고민에 빠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내게도 취향은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 또한 존재한다.
여기에는 제1위와 2위에게 들었던 무의 본질 또한 존재한다.
내게는 요하네스처럼 보다 강하고 위대한 무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하는 향상심이 있고, 또한 마그누스와 마찬가지로 백신아와 함께 세계 제일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
그들이 걸어가는 무의 길은 나와 어느 정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다르다.
뭔가……, 내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이 있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마치 늦은 사춘기가 찾아온 것처럼 고민에 빠진다.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
내가 걷고자 하는 무의 길이란 도대체 뭘까.
간단히 결론 내릴 수 없는 고민 속에서 나는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음,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그러는 선생님은요?"
"나……?"
"네, 대충 짐작은 가는데 제대로 들은 적은 없는 거 같아서요."
사실 이게 정상이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라고 해도 심법은 함부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사람의 뿌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내면을 파헤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지금까지 그녀의 내면을 여러 번에 걸쳐 후벼 왔었다. 이제 와서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연금술사의 반응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다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졸린 듯한 눈동자를 두어번 감았다가 다시 뜨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대답한다.
"나도 너하고 같아. 향상심."
"역시, 선생님 답네요."
내가 강함을 추구하는 것에 미쳐 있다면 연금술사는 연구와 실험에 미쳐 있다. 순수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더 높은 지식의 차원을 향해 걸어 나가는 연금술사의 모습은 나와도 상당히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결국 결론은 네가 내리는 건데."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생각이 막혔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단서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죠."
연금술사는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그녀가 나의 방식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고, 나는 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 * *
"나 말이야? 으음……, 그다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에……"
바닥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파비아가 고개를 비비 꼬았다. 하지만 파비아 또한 무의 길을 걷고 있는 만큼, 무를 추구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무의 길을 걷는 데에는 커다란 고통이 동반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길을 나아가는 데에는 그 고통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며언……, 재미…… 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파비아가 부족한 어휘로 대답했다. 의외로 자신감이 부족한 파비아는 자신의 대답이 내 마음에 들었는지 살펴보는 듯한 기색이었다. 눈을 치켜뜨고 연신 눈을 감았다 뜨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파비아의 심법의 근간에 존재하는 건 재미, 락인가.
그녀답다.
"그리고……, 사제나 루이스 언니하고 실력을 겨룰 때도 무척 즐거워."
또한, 무를 서로 부딪치는 것을 파비아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에 오랜 세월을 바쳐온 우리에게 있어, 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드러내는 수단이나 마찬가지니까.
"있지, 사제. 어때? 내 대답, 괜찮았어?"
"눈치볼 거 없어. 좋은 대답이었으니까."
"진짜?"
파비아가 주먹을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내 대답이 그렇게 기분 좋았나보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꼬리를 흔들며 몇 바퀴나 회전했다. 어지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개과 수인은 어지럼을 적게 타는 거 같다.
끼이이이익! 신발 밑창을 바닥에 강하게 마찰시키면서 파비아가 멈춰선다. 파비아가 나를 돌아보면서 히죽 웃는다.
"그럼 있잖아, 사제. 그 아저씨들 오기 전에, 우리끼리 미리 한 번 붙어볼까? 나 사제하고 붙고 싶어."
"매일 붙고 있잖아. 그게 굳이 그렇게까지 무게 잡으면서 해야 하는 일이야?"
"응, 사제하고 싸우는 건 몇 번을 해도 두근두근거리는 걸."
파비아가 헤죽 웃으며 대답한다. 하지만 나도 파비아의 권유가 싫지 않다. 그녀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내게도 전투를 즐기는 성향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재미, 그렇다. 내가 무의 길을 추구하는 데에는 그러한 요소도 물론 존재할 것이다.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또한 내가 추구하는 본질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내가 추구하는 무에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직 그것만은 아니다.
뭔가 좀 더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한 마디가 없을까.
이번 고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길어질 듯하다.
* * *
나는 하루에 여섯 시간 씩, 사상 최고의 특급 모험가들과 절차탁마하며 실력을 겨루었다. 시작 시각은 낮 열두 시, 그리고 종료 시각은 오후 여섯 시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최고의 특급 모험가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샤워도 하면서 외출할 채비를 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집을 나섰다. 내가 먼저 찾아간 곳은 올리비아가 현재 숙박 중인 호텔이었다. 올리비아는 아직도 그 위치에서 체류 중이다.
호텔방 앞에서 노크를 하자, 그녀는 나라는 걸 알았는지 빠르게 다가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어서 와라, 백신현. 그런데 어쩐 일이지? 이런 시간에."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
"내게? 음, 뭐, 아무튼 일단 들어와라. 나도 조금 전에 저녁을 먹은 참이라 식곤증 때문에 일이 손에 안 잡히던 참이었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도 일하는 건가? 얜 도대체 언제 쉬는 거야?
아무리 실질적인 스페트로 일파의 이인자라지만, 얘 하나에만 일이 너무 몰려 있는 거 아닌가?
저러다가 올리비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지.
나는 눈을 깜박이며 올리비아가 안내한 소파 위에 걸터 앉았다. 올리비아는 아직도 홍차 취미에 몰두하고 있는 중인지, 나를 잠시 기다리게 한 후 훌륭한 손놀림으로 홍차를 우려냈다.
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수준 높은 테크닉도 나왔다. 올리비아도 손재주가 대단하다.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이라?"
홍차를 한 모금 머금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올리비아가 추구하고 있는 무에 대해서 질문했다.
올리비아는 처음에는 다소 의아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내 표정이 진지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숙고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한참을 고민한 올리비아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신의??를 위해서다."
"신의?"
"그래, 믿음과 의리. 내게 있어 소중한 이들이 내게 베풀어준 신뢰와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무의 길을 추구하고 있어."
올리비아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고아에 불과했던 이 아무개를 거두어서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중용해주신 가주님을 향한 은혜. 상처 입었던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아가씨를 향한 은혜."
다시 눈을 떴을 때, 녀석은 나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너라는 벗을 향한 의리. 나는 그들이 내게 보내준 신뢰와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서 무의 길을 걷고 있다. 언젠가, 내가 쌓아올린 힘이 그들에게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올리비아의 동기는 상당히 크게 공감이 되었다. 내게 선의를 베풀어주고, 의리를 보여준 사람들을 위해서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걸."
"멋지기는. 결국 이러한 신념도 힘이 없으면 무의미할 뿐이다. 실제로도 나는, 네게 걸리적거리기만 하였으니까."
낮은 목소리로 자조한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으로 다가간다. 그 벽에는 올리비아의 애창이 붉은 천으로 포장되어서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응, 말해봐."
"식후 소화도 할 겸, 나와 한 곡 추지 않겠나? 오랜만에 너의 그 아름다운 검극과 합을 나눠보고 싶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볼까."
현재 시각, 오후 여섯 시 반.
위치는 호텔 뒤편에 있는 산책로.
한 자루의 창과 한 자루의 검이 서로 교차하며 매섭게 부딪쳤다.
* * *
"아, 일곱 시다."
수녀복 차림으로 개인실에 돌아온 샤를로트가 시계를 바라본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
샤를로트가 신세 지고 있는 수녀원에서는 매일 이 시간마다 종을 크게 친다. 오후 일곱 시는 저녁 기도의 시간이다.
새벽 기도나 낮 기도와 다르게 저녁 기도는 개인실에서 혼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샤를로트는 정식으로 입적한 것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 수녀원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수녀원의 일정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샤를로트는 규칙에 깐깐한 성격이다.
조용히 옷차림을 정돈하고, 자리에 꿇어 앉아 양손으로 깍지를 낀다.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은 바로 그때, 똑똑 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눈을 감았던 샤를로트가 조용히 눈을 뜬다.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창가로 다가가서 문을 연다. 창문은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지만, 그는 바깥에서 샤를로트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샤를로트가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이 흰 커튼을 나부끼게 만들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에 쓴 후드가 날아갈 것 같아서 샤를로트는 급하게 손을 움직여서 후드를 잡았다.
바람은 빠르게 그쳤다. 다시 고개를 든 샤를로트는 창밖으로 찾아온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정말, 신현 씨. 이런 시간에 찾아오면 안 되는데."
"미안해.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검은 머리카락의 키가 큰 남자, 백신현이 창밖에 매달려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