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22. 전원 집합 (4)
* * *
마그누스가 새로이 말을 이었다.
"마력을 흡수하는 심법에는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그것이 칠식이지. 오감을 조화롭게 조합해서 생각을 이루고, 그것이 대기 중을 부유하는 마력을 감지하였다면…… 이제 그 마력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를 논하게 된다."
스으으으윽.
길게 뻗은 마그누스의 오른발 끝이 바닥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 순간 바닥이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둥근 원판의 형태로 일어섰다. 길이는 직경 2미터 정도였다.
"앞서 말했듯, 힘이라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힘을 얻은 자에게는 힘을 추구하는 이유가 저마다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 인간은 그러하다. 원하는 바가 있기에 힘을 추구하고, 피를 토하고 뼈를 깎아내며 마력의 전당에 올라하는 것이지."
마그누스가 자세를 잡는다. 무겁게 호흡한 뒤, 일권一?을 내질러 솟아오른 대지를 부순다.
"모든 심법, 그리고 마법과 무공에는 추구하는 바가 존재한다. 그것은 심법을 탄생시킨 무인 개인의 바람일 수도 있고, 그 유파에 소속된 무인 전원의 바람일 수도 있지. 이것은 무공과 마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공통된 점이야."
잔해가 흩날린다. 잔해 속에서 마그누스가 나를 돌아본다.
"그것이 칠식과 팔식이다. 오감이 물리적인 감각이고, 육감이 그것을 통합한다면, 칠식과 팔식은 오롯이 마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마그누스가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의 검술은 그렇지 않아. 지금까지 내가 본 바로는 검술의 흐름, 그리고 그 원리마저도 철저하게 이성과 계산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마음이 개입할 요소는 일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상한 건가요?"
"이상하지. 감정으로 코어의 마력을 뽑아 쓰면 더 빠르고 확실하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네 검술은 그러한 길을 거부했다. 내면의 마력을 뽑아 쓰는 대신, 대기 중의 방대한 마력을 끌어오는 길을 선택했지."
『…….』
마그누스의 화두는 백신아에게 있어서도 제법 흥미로운 것이었는지, 녀석도 입을 다문 채 경청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그게 아니면 따로 결여된 것이 존재하는 탓인지 항상 해답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서고 만다.
"이 경우,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감정……, 마음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염두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마음'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을 빼 놓은 걸지도 모르죠."
"음, 어,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마그누스는 내게 할 말을 빼앗기자 조금 난처해하는 얼굴이었다.
그 점은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경험은 마그누스가 더 많을 지 몰라도, 천변무궁류를 고찰해온 세월은 내가 더 기니까.
"목표 없이 태어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죠. 모든 기술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목표로 하는 지향점이 있습니다. 소림은 자아실현과 번뇌의 극복, 무당은 우화등선을 목적으로 누대에 걸쳐서 무학을 발전 시켜 나가고 있죠."
"그렇지. 너도 알고 있었구나."
"뭐, 저도 고민을 많이 했으니까요."
나는 허리춤의 검왕검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천변무궁류에는 그런 지향점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천변무궁류의 극성에 도달하게 되면 전 아마도 그 어떤 기술이라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게 될 거에요. 대기 중의 마력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건 그런 의미죠."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처음부터 마음을 싣는 것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면 천변무궁류에 '마음'과 '지향점'을 정하는 것을 계승자의 재량으로 남겨두었을 경우다.
천변무궁류는 찰흙처럼 그 어떤 형태로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다. 그 변화와 가능성은 무한대에 가깝다.
그 무한에 가까운 형태 중, 자신에게 적합한 마음과 지향점을 설정해서 도전하는 것 자체가 계승자에게 주어진 역할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사실, 과거에 이 녀석에게 비슷한 화두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이 녀석?"
"네, 이 녀석이요."
나는 허리춤의 검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신아가 제게 비슷한 화두를 던진 적이 있었어요. 아주 먼 옛날, 이 검을 제작한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라며 제게 전해준 말이었죠."
"그 검의 개발자라……"
"그때, 신아는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무?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무, 무의 본질……?"
마그누스가 조금 곤란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살짝 떨어진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1위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했을 거다.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보충 설명에 들어갔다.
"어쩌면 그 말은 그가 먼 미래의 계승자에게 전하는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무의 본질이라는 건 사실 저마다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지, 그건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지."
마그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즉, 그때 이 녀석이 제게 던진 무?의 본질에 대한 화두는 천변무궁류에 대한 저만의 확고한 기준과 마음, 그리고 지향점을 찾으라는 이야기였을지도 몰라요. 제가 결론을 내린 무?의 본질이야말로, 제 천변무궁류가 가야 하는 길이 될 테니까."
무한하게 뻗어 있는 가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길을 향해 걸어 나간다.
나의 지향점을 찾는다.
팔짱을 끼고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던 마그누스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질문했다.
"그렇다면 신현아, 네 지향점은 뭐지?"
"……."
갑자기 내가 입을 다물자 마그누스는 당황한 듯 눈을 깜박였다.
나는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여기에서 생각이 자꾸 멈추고 있습니다. 전 아직도, 제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뭔가 감은 올 거 같은데, 그걸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게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있다. 그것이 아마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일 거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나 스스로도 조금 버벅이는 기분이다.
"그러는 두 분은, 스스로의 무?에 대해서 확고하게 주관이 서 있으신가요?"
"으음……"
두 아저씨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들은 나보다 훨씬 오랜 기간 무의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다.
마그누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무?란 증명의 수단이다. 나의 목표는, 내가 등에 짊어진 이 검이 세계 제일의 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 내가 이 검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이 검 또한 세계 제일의 검이 되는 거니까.'
그가 조용히 등뒤로 손을 뻗는다. 대검의 길쭉한 손잡이를 여러 번 쥐었다가 다시 편다.
"다른 검은 필요 없어. 나는 이 검이 있으면 충분하다. 아니, 이 검과 함께 최고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그것이 나의 길이다. 어떠냐,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까?"
"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다음은 요하네스 차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었다.
"내게 있어 무?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오. 무의 길을 걸으며, 나날이 새로운 경지를 쌓아 올려 나갈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잊을 정도로 무에 푹 빠져 있었지."
시선을 맞춘 요하네스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다. 그는 자신이 정의하는 무의 본질에 상당히 충실했다.
의심도 방황도 없다.
그는 스스로가 정의한 무의 길을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이오. 이를테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
무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지향점인 셈인가.
스스로의 명예와 긍지를 위해서 무의 길을 걷는 마그누스, 무를 쌓아 올리는 것 자체에 빠져 있는 요하네스.
둘 모두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결론이었다. 또한 그들의 말에는 흔들림이 없어서, 그들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방황을 훨씬 오래 전에 극복한 선배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음, 그래도 전 여전히 감이 안 오네요."
그들이 추구하는 무의 본질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을 들어도 여전히 내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을 결론 짓는 게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해서, 그 대답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탓에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네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마그누스가 나를 보며 질문한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 번씩 물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들의 대답을 하나씩 듣다 보면, 제가 추구하는 무의 본질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아무래도 내 고민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만한 것이 아니지 싶다.
하지만, 이 고민을 해결하고 본질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내게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제대로 된 목표 지점의 유무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지니까.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코어부터 회복해야 겠죠."
"그 점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부터 내가 네게 알려줄 심법 자체가 코어 회복력이 상당히 높은 심법이거든. 코어가 멀쩡할 때도 좋은 심법이지만, 지금의 너처럼 코어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더더욱 빛을 발하는 심법이야."
"그거 좋은데요."
난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은 후, 천천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심법 전수, 잘 부탁드립니다."
* * *
마그누스의 심법을 전수 받은 결과 코어의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당초 일주일은 정양해야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정되었던 코어가 빠르게 회복되어서, 나는 심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나흘 째 되는 아침에 코어의 완전회복을 진단 받을 수 있었다.
실험 도구를 손에 쥔 연금술사로부터 몸을 돌려, 조용히 와이셔츠의 단추를 다시 잠그기 시작한다. 아직은 아침이라 특급 모험가 삼인방도 여기에 없다.
그들은 변장으로 신분을 숨긴 상태에서 제피로스의 호텔 방을 하나씩 잡고 숙박 중이었다.
점심 즈음에 찾아와서 저녁까지 같이 수행을 하는 식으로 스케줄이 짜여 있다.
백의를 걸친 연금술사가 커피를 가져왔다. 그녀는 조금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제야 좀 안심이 돼."
"그래요?"
"응. 스텔라고 마그누스고 뭐고, 죄다 시끄럽고 걸리적거려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거든.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하지만, 체질상 도무지 안 맞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사실, 그녀는 사람을 대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 구석에 있는 빈집촌에 둥지를 튼 괴짜였다.
이러한 협업 자체가 그녀에게는 맞지 않는 작업일수밖에 없다.
나도 그녀의 성격은 잘 알고 있으니까.
판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의자에 앉은 연금술사가 앉은 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말했다.
"신현이 너는, 오늘도 수련?"
"네, 그리고 수련이 끝나고 나면 올리비아를 좀 만나러 가볼 생각이에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난 걔 싫어."
연금술사가 딱 잘라 말했다.
그녀다운 단호한 목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