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22. 전원 집합 (3)
* * *
"그럼 전, 아이샤에게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무학이 화제로 들어서면 스텔라는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한 번씩 숙인 후, 마그누스와 시선을 마주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스텔라는 연금술사와 협력할 생각인 거 같은데, 과연 일이 잘 풀릴까.
연금술사의 성격 상 스텔라하고 치고 받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파비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파비아, 너도 같이 가서 선생님을 좀 도와드리는 게 어때?"
"어, 나도?"
"응. 그래도 몸 쓰는 사람이 하나는 붙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겸사겸사, 스텔라의 행적도 감시하고.
파비아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스텔라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싸우면 이기기는 하겠지만, 순식간에 제압하긴 어렵다.
거기다 개과 수인의 날카로운 육감을 가지고 있어서 더더욱 속이기가 어렵다. 수상한 짓을 하려고 해도, 파비아 자신도 모르는 본능으로 감지해버린다.
스텔라를 감시하기에는 적절한 인선이다.
물론, 스텔라는 그때와 다르다. 마그누스와 친해지면서 성격이 좀 달라졌다. 그 사실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지금에 와서는 나도 스텔라에게 큰 부정적인 감정이 없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신뢰할 만한 상대도 아니다. 어찌됐든 그녀는 과거, 날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으응, 그럴까아……. 그치만 나도 센 아저씨들이 사제랑 수행하는 거 구경하고 싶은데에……"
"아, 아저씨라고……"
마그누스가 비틀거렸다. 제1위도 마그누스 정도가 아니다 뿐이지 만만찮게 충격 받은 얼굴이다.
그는 예전에도 파비아에게 한 번 아저씨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비교적 충격이 적어 보였지만,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파비아의 한 마디는 순수한 만큼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50대 초중반의 아저씨들이라, 함부로 부정하기도 어렵다.
코어에 쌓여 있는 마력이 워낙 많고, 무공의 경지도 높은 덕에 실제 나이만큼 늙어 보이지는 않고, 잘만 꾸미면 30대까지는 어찌어찌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파비아 입장에선 결국 아저씨다.
실제 나이는 파비아가 이 중에서 가장 연상이지만.
백신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전투광 기질이 있는 파비아는 조금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꽃이 피어나는 듯한 미소로 날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의 부탁이니까……, 들어줄게. 대신에 나중에 나한테도 배운 거 가르쳐 줘야 해?"
"알았어."
파비아는 의외로 사형제 관계에 대한 주관이 확실하게 서 있다.
그녀는 사저, 그리고 나는 사제. 사제인 내가 파비아에게 잘 대해주는 것처럼, 파비아도 사저로서 나를 잘 대해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조력은 파비아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파비아의 검술은 마력을 축기하는 심법부터 시작해서 투로, 초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존의 무예와 체계 차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애초에 계통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교류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사저의 부탁이다. 나는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식한 채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사형제라는 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 해준다고 해도 성립되는 게 아니니까.
파비아가 스텔라와 함께 연금술사의 공방으로 들어갔다. 연금술사도 아마 그들이 찾아왔다는 걸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나와 마그누스의 격돌은 어마어마한 마력의 충돌을 발생시켰으니까.
내가 연금술사의 공방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때, 제1위와 마그누스의 대화가 슬며시 들어왔다.
"마그누스. 본격적으로 수행하기에 앞서 그에게 맞는 심법을 전해줘야 할 거 같은데, 정해둔 건 있소?"
"아, 몇 가지 생각해둔 게 있어. 신현이의 코어는 여러 가지의 마력이 서로 섞여서 상승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 그 마력을 한 번에 장악할 수 있는 심법이 좋겠지."
"……흠. 내가 보기에는 그의 마력에 최소 네 개 이상 흐름이 추가로 섞여 있구려. 보통 이런 경우는 드문데."
"신현이는 인기가 좋거든. 아마 저 개과 수인 여자애하고 연금술사, 그리고 루이스의 마력이 섞여 들어간 결과일 거야."
"오호라, 이해했소. 영웅호색인가."
"하여튼 얌전하게 생긴 애들이 보면 더하다니까. 루이스 한 사람도 아니고, 도대체 여자가 몇이야?"
"청춘이구려……"
두 아저씨가 나잇값도 못하고 쑥덕거리는 게 들렸다. 나는 주먹을 들어서 그들을 침묵시켰다.
물론 내 주먹 하나로 그들을 위협할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젊은 나의 연애 사정이 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묘하게 포근하다.
아니, 아저씨라는 말에 충격 받을 게 아니잖아 지금. 척 봐도 아저씨 맞구만.
"껄껄, 그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마력에 추가로 더해진 네 개의 마력인가. 아마 네 번째 마력은 그 검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겠죠. 아, 그런데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주시겠어요? 기분 나쁘거든요?"
"음? 제 표정이 뭐가 문제라는 거요."
"엄청 기분 나쁘거든요."
입꼬리를 꿈틀대며 히죽히죽 거리는 꼴이 몹시 꼴사나워 보인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나는 딱 그의 아들뻘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를 유망한 젊은이 보듯 쳐다보고 있는 거 같다.
그건 좋은데 표정이 좀 기분 나쁘다.
에라이, 특급 모험가가 그럼 그렇지.
하여튼 정상이 없어요.
"하하하, 내가 그대 같은 젊은이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구려.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용서를 못해줄 건 없다. 애초에 그렇게 큰 실례도 아니고.
하지만 쉴 새 없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용서하고 싶으면서도 그럴 마음이 싸악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그 뭐시냐, 딱 주책 맞은 아저씨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다시 말하지만 파비아의 아저씨 발언에 충격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 두 사람은 아저씨 그 자체였으니까.
그것도 매우 못난 아저씨.
제발 나이를 정상적으로 좀 드셨으면 좋겠다. 도대체 나이를 어느 구멍으로 드신 거냐고.
『검주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시끄러워.
게다가 따지고 보면 너도 그 '이상한 사람'에 들어가거든?
* * *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 호흡. 마그누스는 본격적인 심법의 전수에 앞서, 내게 매우 깊은 호흡을 요구했다. 60초에 걸쳐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후, 그것과 같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숨을 토해낸다.
호흡이 깊어질수록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은 공?에 가까워진다.
그것을 약 십분 가까이 반복한다. 그 후, 죽편을 어깨에 걸친 마그누스가 내 주변을 원형으로 걸으며 입을 열었다.
"팔식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지?"
"인간에게 존재하는 여덟 개의 감각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안식??에서 시작해서 이식??, 비식??, 설식??, 그리고 신식??에 이르기까지…… 즉, 눈, 귀, 코, 혀, 몸이 저마다 사용하는 다섯 개의 감각을 오감이라 한다."
탁, 탁, 죽편을 어깨에 두드리며 마그누스의 말이 이어진다. 죽편으로 어깨를 두드리는 소리에는 규칙성이 있어서,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거기에 여섯 번째 감각. 의식??이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을 총괄하여 사물의 본질을 통찰한다. 으레 '육감이 반응한다'라는 표현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오감을 조화롭게 조합하여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빠르게 결론을 고찰하게 되었다는 말이야."
요컨데, 육감이란 이성으로 논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초월적인 감각을 의미한다.
대기 중의 마력을 감지하고 끌어당길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것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심법은 육감의 존재를 크게 강조한다.
하나 하나의 감각으로는 대기 중의 마력을 감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감각을 의식을 통해 조화롭게 서로 엮은 그 순간 대기 중의 마력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육감으로 마력을 감지하였다면 이제 마력을 끌어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 마력을 끌어 당길 때, 너의 마음이 바라는 바에 따라 마력의 성질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마그누스가 손에서 죽편을 놓고 조용히 기수식을 잡았다. 그는 박투술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검이 없는 맨손으로 천천히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코어란 문門이다. 마력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지. 그리고 이 문의 성질은 네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소위 정파와 사파의 무공이 여기에서 갈라지지. 정파가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서 마력을 받아 들인다면, 사파는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서 마력을 흡수한다."
훙! 훙! 훙!
그가 한 번 주먹을 내지르고 다리를 휘두를 때마다 매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날카롭다.
"양쪽의 감정은 대등하며, 서로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마음 하나로도, 부정적인 마음 하나로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좌수?手와 우수?手가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의 두 손이 선명한 태극太?을 허공에 그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이 이러한 이치를 따른다. 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갑작스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하는 것이 있기에 힘을 추구한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움켜쥐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손에 쥐려 하는 것이다."
즉, 마력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마력을 추구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러한 마음에 마력은 끌려온다.
그런데 문득, 마그누스의 양손이 아래로 축 늘어진다.
집중 상태가 갑작스럽게 끝을 맺었다.
마그누스가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네 검술에서는 '마음'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원리와 계산, 그리고 합리적인 이치 뿐. 기존의 무술과 완전히 구분되는 별종이라고 볼 수 있지."
그때, 나는 과거 루이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천변무궁류는 인간이 쓰는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게 아닌 거 같다던, 그때의 말이.
"검술의 제작자가 이러한 결여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천변무궁류는 천하무적, 궁극무쌍의 최강검술. 그리고 그 제작자는 나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영역에 있는 존재일 텐데, 어찌하여 천변무궁류에는 이러한 결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마그누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 상태로 질문했다.
"어쩌면 네 검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술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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