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22. 전원 집합 (2)
* * *
"제 수행이요? 일은 어쩌시고요."
특급 모험가쯤 되면 스케줄을 짜는 것도 일이다. 사소한 일거수일투족 하나 하나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꼬이니까.
말석인 루이스는 비교적 느긋한 편이지만 순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루이스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특급이라는 건 그런 위치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소. 휴가를 냈으니까."
"휴가요? 세 사람 모두?"
"음."
제1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 하루 아침에 특급 모험가의 최상위 세 사람이 동시에 휴가를 내는 것도 충분히 눈에 띌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거 괜찮은 건가.
"여기에 찾아올 때도 변장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으니 너무 걱정할 건 없소. 그대에게 해가 갈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에이, 됐어.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뭐.
"그리고 지금은 그런 걸 일일이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이번에 그대를 찾아온 적은 역대 최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천하무적의 실력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마땅히 도와야 하지 않겠소?"
"그건 맞는데요. 음, 뭐, 됐나."
도와준다는 걸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상황이 여유롭진 않다.
당연히, 허유를 상대하는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
허유의 힘이 강하다지만 그들 또한 초인이다. 허유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 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최종적으로는 내가 코어를 해방시켜서 출력을 끌어 올리기는 해야 겠지만, 코어를 한 순간에 해방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도 어느 정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상당히 무방비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시간을 벌어줄 사람은 필요했다.
나는 요하네스의 얼굴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하네스 씨는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나 말이오?"
"네. 당장의 광증도 아직 해소하지 못하신 데다가…… 제가 예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지금 제가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는 요하네스 씨의 광증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적입니다. 광증이 더 심해질 게 뻔해요."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사람이 지금 다른 사람의 수행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인가?
그의 광증은 전투 상황에서 특히 빠르게 발전한다. 그것이 모의전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다. 애초에 그의 광증은 마그누스와의 모의전에서 한 번 크게 폭주한 전적이 있으니까.
지금의 그는 나 이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많은 환자였다.
이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자신의 광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니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는 내 질문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요하네스가 다시 턱을 든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전수가 대련 위주가 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나도 나의 광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소. 최대한 몸을 쓰지 않고 구결 위주로 전수할 생각이오."
"수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싸움에 한 칼을 보태는 건 너무 위험해요. 자칫 잘못하면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죠. 그 점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또한 각오가 되어 있는 바요. 그리고 내 생각에, 설령 내가 광증에 휘말린다 하더라도 그대나 마그누스, 스텔라에게 달려들지는 않을 것 같소. 아마 그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향해 덤벼들게 되겠지. 나의 광증은 그런 형태요. 그 점은 자신 있소."
……그런 식으로 과신 하다가 고생했던 게, 요전번에 있었던 마그누스와의 제1위 결정전 아니었나?
막상 허유와 마주쳤을 때 그의 광증이 어떠한 식으로 발전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요하네스를 미치게 만든 그 광증의 출처는 '바깥의 지식'일 것이고, 허유는 그 영역에서 이 세계에 찾아온 존재이니까.
최악의 경우 광증에 미친 요하네스가 허유에게 동조할 가능성도 있다.
요하네스의 의지는 굳건했다. 하지만 그의 광증이 정신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이전의 경험에 의해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그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그는 최후의 한 수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 대기한 후 위험한 상황에 참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거 참, 내가 도와준다고 하면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았건만."
요하네스는 조금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그는 현존하는 최강의 특급 모험가로서, 이런 식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경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요하네스와 동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또 하나의 최강무인이 깃들어 있다. 그의 힘에 동경심을 느낄 지언정 필요 이상으로 환상에 빠지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와 나는 이미 직접 검을 맞대본 경험도 있는 사이이니까.
"전……, 아이샤를 돕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방침이 정해졌다. 그런데 그때, 쭉 마그누스의 곁에 붙어있던 스텔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파란색 눈동자에 어깨 높이에서 자른 갈색 단발. 그런데 그녀는 요즘 들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는지, 머리카락의 길이가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것이 느껴진다.
"저는 전투 계통 위주이지만 연금술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은 있으니까요. 제가 그녀를 돕는다면, 뭘 하더라도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본인하고 직접 상담하시죠. 솔직히 선생님이 허락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연금술사는 스텔라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라서, 그녀에게 함부로 자신의 연구 자재를 만지게 할 거 같지는 않다.
지금의 연금술사가 다루고 있는 금속은 현존하는 그 어떤 금속보다도 우수한 물질이다.
그런 걸 스텔라에게 만지게 했다가 유출 되는 사태는 그녀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네, 아이샤와 상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텔라가 한 발짝 물러선다. 마치 교체하듯이 이번에는 마그누스가 거수했다. 내가 그에게 눈짓하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네 수행도 수행이지만,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서로 합을 미리 맞춰보기 위해서다. 나와 요하네스도 너와 맞서 싸운 적이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아. 전투의 흔적을 직접 보았으니까."
마그누스의 눈빛이 깊어진다.
대외적으로 그 사건은 제 1위가 수행하던 중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알려졌다.
어차피 요하네스는 곧 특급 모험가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이다. 그 사건으로 그에게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혼자서 이길 수 없는 적이라면 당연히 우리도 협력을 해야지. 하지만 미리 서로의 실력이나 호흡을 맞춰두지 않으면 중요한 전투에서 손이 꼬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 네 수행을 도와주러 온 것도 맞지만, 연계 훈련을 좀 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이해해요."
"그렇지? 물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고 어떻게 될 만한 상대는 아닌 거 같지만……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너도 그러고 있는 거 아니겠냐. 그런 생각으로 찾아온 거지."
마그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말처럼, 나도 패배할 게 뻔한 싸움은 안 한다.
맞서 싸워서 이겨낼 가능성이 있으니까 맞서 싸우고 있는 것 뿐.
물론,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마그누스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네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겠지. 서로 절차탁마할 수 있는 동료를 이런 곳에서 잃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니까…… 함께 싸워보지 않겠냐?"
"고맙습니다, 대장."
그의 손을 마주 잡는다.
지루하지 않은 삼 개월이 될 거 같았다.
* * *
특급 모험가와의 협력 체제가 이루어진 후, 나와 마그누스는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검을 한 차례 부딪쳤다.
마그누스와는 검을 부딪친 횟수가 꽤 잦아서 그도 나의 실력은 대체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오차를 줄이는 차원이었다.
그는 아직 나의 실력으로 벅찬 상태였다. 피지컬도 피지컬이지만, 기술에서도 밀린다. 그 사실을 확실히 이해했다.
지금의 나는 코어에 부상이 있어 마력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고, 마그누스도 그런 나의 수준에 맞춰서 마력 없이 검을 부딪쳐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
수를 읽는 능력이나 운영은 내가 조금 더 높은 것 같았지만 그 정도로 좁힐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바닥에 대자로 쓰러졌다. 하지만 마그누스도 상당히 피곤한 얼굴이었다. 대검을 바닥에 꽂은 채 무거운 숨을 몰아쉬는 중이다.
"무시무시한 성장세로군……. 어째서 루이스가 너를 선택했는지 알 거 같다."
마그누스가 웃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 솔직히 그에게 승리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삼 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딱 두 가지를 중점으로 수련하는 게 좋을 거 같구나."
그의 뺨에는 희미한 상처 자국이 있다.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 상처 자국의 출처는 당연히 나였다.
지금의 나는 도무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예 상대가 안 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조금만 더 수련 기간을 길게 잡으면, 언젠가 따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그누스가 손을 내밀어서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마력을 수련하고, 그 다음에는 보법 위주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 이봐, 요하네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음. 내 생각도 같소."
제1위는 골목길의 벽에 등을 기대고 우리의 모의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끼어 들고 싶은 듯, 손이 근질근질한 눈치였지만 광증을 가진 그는 모의전에 참가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요하네스는 상당히 따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력은 우수하오만 마력을 축기하는 심법心?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듯 하군. 마력이 일반인 수준에서 거의 늘어나지 못했어. 내 말이 맞소?"
"그렇습니다."
백신아가 내게 가르친 것은 천변무궁류의 요결과 초식 뿐. 심법에 대해서는 검왕검 내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마력의 크기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의 내가 쓰고 있는 심법은 배우기는 쉬워도, 한계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심법이라 마력의 효율이 낮다.
루이스의 심법을 배워볼까 했지만 그쪽도 심법 자체는 평범한 편이다. 루이스의 체질이 마력을 잘 끌어 들이는 편이라 어마어마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뿐.
"그리고 보법도 조금 서툰 거 같구나."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천변무궁류에도 보법 비기가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수련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바쁘기도 바빴던 데다가 애초에 수련 기간이 짧았던 탓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천변무궁류와 마주친 건 반년이 조금 넘어가는 수준이다. 그런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보법에 조금 서툰 편이었다. 천변무궁류의 요결과 초식을 익히기도 바빴던 탓이다.
또한 한동안은 다른 천변무궁류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해서, 보법에 들어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뻔하다.
"기술과 운영이 워낙 탁월해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우리가 개선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군. 마침 네게 맞는 심법이 하나 있으니까, 내가 심법 수행을 좀 도와주마. 그러니까 요하네스 자네는……"
"보법은 내가 도와주도록 하겠소. 나의 기술을 고스란히 알려줄 수는 없지만, 나도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습득한 보법이 여러 개 있지. 그 중에서 그대와 맞는 것이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오.'
제1위와 2위의 시선이 한 순간 마주쳤다.
검왕검 속의 백신아는 흥분했다.
『그야말로, 기연??이네요. 검주.』
'응.'
최고 수준의 고수들에게서 가르침을 배울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이 삼 개월은 내게 있어서도 쉽게 잊을 수 없는 삼 개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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