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21.5. 개와 공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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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아는 올리비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후 내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파비아는 의자에 앉는 것보다 이런 자세가 더 편한 거 같았다.
우리 같은 사람이 저런 자세로 계속 있으면 골반이 틀어질 텐데, 파비아는 개과 수인이라 관절의 가동 범위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인기가 좋군. 사방이 꽃밭이야."
"시끄러."
올리비아가 이죽거리며 날 놀린다. 건수 하나 잡았다는 얼굴이다. 녀석도 나의 괴상하기 그지없는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솔직히 나도 좀 괴상하다는 건 인정 하지만 이거 가지고 놀림 받는 건 싫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올리비아를 돌아본다.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양반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는지 궁금하다.
올리비아에게는 개인적인 시간이랄 것이 거의 없다. 친구 사이이긴 하지만 같이 술을 마신 적도 거의 없을 정도다.
오늘은 평일이고, 지금 같은 시간에 놀러 왔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뭔가, 용건이 있어서 온 거 같기는 한데.
나는 올리비아를 도끼눈으로 돌아봤다.
"어제 내려왔냐?"
"음, 그렇다. 네가 다녀간 후로 아가씨도 빠르게 회복되셨거든. 그날 저녁 즈음에는 기운을 회복하셔서, 어제 아침 열차로 바로 돌아왔다. 아가씨도 수녀원에 복귀하셨지."
아, 샤를로트도 회복되었구나. 다행이다.
내가 간섭하지 않았어도 며칠이면 회복했겠지만, 내 조력으로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다니까 기쁘다.
"그리고 다시 이 도시에 복귀해서 잠시 밀려 있던 일을 처리하던 참인데……"
"참인데?"
"음, 잠시만 기다려다오. 내가 지도를 가져왔거든. 그걸 보면서 설명하지."
올리비아는 납작한 서류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그 안에서 둘둘 말아서 통 안에 보관한 지도가 나왔다. 종이의 질을 보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으로 보인다.
지도는 모두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수도의 지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 도시의 지도다.
지도의 각 포인트에는 X자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도시 내부에는 X자가 하나도 없다. X자는 저마다 모두 도시 바깥에 있는 포인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지도와 올리비아를 돌아보면서 질문한다. 올리비아는 손끝으로 수도의 지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 괴물 같은 존재와 부딪친 게 사흘 전이라고 했지? 정확히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몬스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리비아와 스페트로 일파는 대단히 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시골인 제피로스나 구르제스 같은 도시에도 정보원을 두고 있을 지경이니, 이 나라, 이 대륙의 중심부인 수도에 정보원이 깔려 있지 않을 리가 없다.
사흘 전의 밤에 있었던 전투는 상당히 큰 싸움이었다. 나와 허유가 부딪치고 수도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가 새겨진 그 날부터, 각 조직의 정보원들은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활동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 날부터?"
"어쩌면 너와 그 존재가 부딪친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지. 어디까지나 최초로 정보가 수집된 시기가 다음 날 아침이었을 뿐이니까."
올리비아는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나와 허유의 싸움이 주변의 환경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야. 아무래도 그것과 같은 몬스터 활성화 사태가, 이 제피로스 근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았다."
"이 근처에서도?"
"그래, 느끼지 못했나?"
"솔직히 말해서 느낄 새도 없었지."
"음."
루이스와 파비아는 특급의 영역에 도달해 있는 괴물이다. 그런 두 사람이 발산하는 투기만으로도 주변의 몬스터들은 두려움을 품고, 감히 다가올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설령 몬스터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
올리비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지도에 표시된 지점은 몬스터가 활성화된 위치다. 지금은 대부분 출동한 모험가들에 의해서 쓸려나간 상태다.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서 상당히 수준이 높아져 있었던 탓에 쓰러트리기가 쉽지 않았다더군."
펜과 수첩을 꺼내서 올리비아가 말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다. 대륙 각지에서 활성화된 몬스터들은 아예 등급을 뒤집어버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위 등급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강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4급의 몬스터라면 3.5급 정도쯤 되는 수준으로 힘과 속도가 증가한 상태다.
개인차는 있지만 몬스터들의 상승률을 평균치로 계산했을 때 이 정도의 수치가 나온다.
수도, 그리고 이 도시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수도 외에 다른 도시에 파견 나가 있는 정보원들의 보고도 들어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올리비아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너를 노리고 있는 그 존재는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 같다. 인간의 몸을 빌려서 이 세계에 아주 일부분의 힘을 휘두른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현상을 일으키다니……"
나는 지도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비아와 시선을 마주친다.
"우연 같지는 않지? 이게."
"최소한 나는 인과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가 이 세계에 나타남으로써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게 틀림없어.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아마 이와 같은 현상이 대륙 저편에서도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올리비아는 처음부터 내게 지도를 줄 생각이었는지, 다른 원통에 보관해놓은 다른 지도를 하나 더 꺼내서 내밀었다.
"판이 이 정도로 커진 마당에 우리의 조력이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부탁할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다오. 가주 님께서도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말하셨으니까."
"알았어. 생각 나는 게 있으면 그때 부탁할게."
"그럼 나는 이만 일어나 보겠다. 네게 필요할 거 같은 정보가 새로 들어오면, 그때 다시 찾아오지."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올리비아를 현관까지 배웅한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건넨 후, 파비아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파비아는 고개만 까딱이고 말았다. 파비아는 여전히 올리비아가 껄끄러운 거 같다.
그녀를 돌려 보내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아, 그래도 씻긴 씻어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땀이 말라서 상당히 끈적끈적하다.
"음……"
씻기는 씻어야 하는데, 지금은 살짝 머리가 복잡하다.
물론 이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늘의 사태는 진짜 지독히 재수가 없었던 탓에 벌어진 사건에 불과하니까.
비유하자면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을 우연히 건드려서 폭파시켜버린 상황에 가깝다.
그 악의의 근간에는 보이드와 허유가 있다. 보이드가 내게 가지고 있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악의가 허유를 그의 몸에 불러 들였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아니, 이름만 말하지 않으면 크게 문제가 없다면서.
그게 왜 내 앞에서만 예외로 작용하는 건데.
진짜 어이가 없다.
하여튼 보이드 그 자식은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내 발목을 붙잡지 않은 순간이 없다.
오직 내 인생을 가로막기 위해서 준비된 돌부리 같다.
"사제, 왜 그래애? 저 아줌마가 사제한테 무슨 나쁜 말이라도 했어?"
파비아는 내 옆에서 올리비아의 말을 모두 경청했지만, 올리비아의 어휘가 꽤 어려운 탓에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이 알아듣지 못한 말 속에 송곳이라도 들어 있었는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 건 아니다. 올리비아는 그냥 실제로 있었던 일을 곧이 곧대로 일러준 것 뿐이니까.
오히려 내 입장에선 그게 고맙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알게 되었을 사태를 조금이라도 먼저 듣게 되었으니까.
"그런 건 아냐."
나는 올리비아를 두둔하면서 파비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런데 파비아는 올리비아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가?
음, 뭐, 노총각 취급 받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나이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딱딱한 태도라서 더더욱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거 같다.
불쌍한 올리비아…….
「검주, 올리비아 씨의 말씀이 신경 쓰이세요?」
"뭐, 살짝.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처럼 궁상을 떨어서는 안 될 일이지. 삼 개월 뒤, 내가 그 녀석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더더욱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 테니까."
아마, 허유는 삼 개월 후까지 활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그는 보이드의 육체를 개조하느라 여념이 없을 테니까.
보이드의 육체는 약하다. 놈의 육체로는 허유의 일부분조차 감당할 수 없다.
허유가 보이드를 젊은 육체로 회춘시킨 이유 또한 마찬가지.
그가 보이드의 육체로 싸우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개조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이번 사태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진짜로 잘못한 놈들은 따로 있는데, 그 일에 재수 없이 엮인 죄로 궁상을 떠는 것도 좀 웃긴 일이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서, 내 마음 속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묘한 껄끄러움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마음 속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
내 손으로 허유를 쓰러트릴 수밖에 없다.
「뭐야, 제가 따로 말씀드릴 필요도 없었네요?」
백신아는 내가 혼자서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검왕검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내가 느낄 필요도 없는 죄책감 때문에 궁상을 떠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내가 너도 아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한테 그런 말을 하신 주제에, 정작 검주께서 죄책감을 느끼시면…… 그건 좀 이상하잖아요.」
"이상한 게 아니라 웃긴 거지.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을 실천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그것을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지금의 고민은 그것을 위한 행위였다.
나는 살짝 굳어 있던 목을 오른손으로 주무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찾아온 올리비아 때문에 샤워를 하려다 말았었지. 상의를 훌렁 벗었다.
파비아도 기다렸다는 듯 상의에 손을 댔다.
파비아에게 의도는 없을 테지만 내게는 그것이 유혹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파비아의 몸뚱이는 위험성이 상당했다.
어마어마한 몸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그 몸이 수컷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참아야지. 이제부터는 정말로, 허유를 쓰러트리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삼 개월……, 상당히 괴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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