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21.5. 개와 공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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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시간으로 치면 열 시간 넘게 행위를 지속한 셈이라, 루이스도 파비아도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셋이서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 상황이다. 샤워도 하고, 시트도 갈고, 늘 그렇듯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점잖은 척은 다 하고 다니면서 막상 시작하면 늘 이런 식이지. 솔직히 나도 내 꼴이 좀 우습기는 하다.
하지만 루이스나, 파비아 앞에서 성욕을 참을 수 있는 건 동성애자거나 성불구자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한 사람의 남자로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도 당연히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녀들의 성욕에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포커 페이스 때문인가.
……좀 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민에 빠진다.
"토, 토할 거 같아……"
파비아가 조금 창백해진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시선은 천장을 향하고 있다.
"하아……."
루이스는 파비아보다 조금 나아 보인다. 개과 수인의 특성상, 파비아의 체력은 나와 루이스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차이다.
두 사람은 내 집에 있던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분홍색과 녹색의 헐렁한 잠옷. 하지만 둘 다 내 건 아니다. 내 집에 가져다놓은, 두 사람의 물건이다.
오늘 같은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은 그 나름대로, 이러한 행위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를 사이에 둔 상태로 루이스와 파비아가 좌우에 누워 있다. 조금 전까지 정액으로 크게 부풀어 있던 두 사람의 배가 지금은 납작하다.
"있지, 사제. 누워 있으니까. 사제 게 잘 보여."
파비아가 눈짓했다. 나는 현재 헐렁한 잠옷 차림이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있는 탓에 헐렁한 바지는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져 있는 내 음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건 불가항력이다. 바지가 헐렁한 탓에 벌어진 현상이니까.
파비아의 시선 끝에서 욕망이 뚝뚝 흘러 내린다. 하지만 파비아는 금새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어제 낮부터 지금까지, 진짜 미친듯이 해댔는데도 아직 성욕이 끓어 오르는가보다. 발정기의 파비아는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그 파비아가 완전히 나가 떨어질 때까지 해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자각은 있다.
"할 때는 기분 좋은데, 하고 나면 뭔가 자괴감이 들어. ……부끄러워."
루이스는 늘 이런 식이다. 파비아의 표현이 녀석에게 딱 맞았다. 루이스는 상당히 약삭빠른 구석이 있어서, 즐길 건 다 즐긴 주제에 다 끝나고 나서는 이러고 있다.
"있잖아, 백신현."
그때,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서로 가까이 누워 있는 탓에 지금의 나와 루이스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벽안이 바로 앞에 있다. 조금만 고개를 아래로 미끄러트려도 입술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읏, 루이스가 신음 소리를 흘리면서 얼굴을 붉힌다. 이미 입맞춤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행위를 해온 주제에 이제 와서 부끄러움을 타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참, 특이한 성격이다.
루이스가 살짝 고개를 뒤로 물린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물러나 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다지 거리가 벌어지지도 않았다.
거의 침대 끄트머리에 걸치다시피 한 루이스가 헛기침을 두어번 반복한 후 다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솔직히 무척 꼴사나운 표정이다.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있다. 이게 다 그놈의 미모 덕이다. 멍 때리고 있어도 사색하는 것처럼 보이는, 타고난 외모.
간신히 표정을 수습한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부른다.
"있잖아, 백신현."
"응."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루이스가 아예 내쪽으로 돌아 누웠다. 헐렁한 잠옷 아래로 큼지막한 가슴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윤곽으로 드러난다. 잠옷 아래에 속옷을 입지 않은 루이스의 가슴이 중력에 붙잡혀서 아래로 쏠려 있었다.
상당히 자극적인 광경이라 나는 다시 한 번 하반신을 움찔 거리고 말았다. 루이스에게는 들키지 않았기를 빈다.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아니네, 들켰네.
루이스의 표정을 보면 뻔하다. 쟤는 안 그런 거 같아도 감각이 매우 날카로우니까.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짓을 해대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 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나도 그렇지만 루이스와 파비아도 간단히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성욕이 아니다.
새침하게 얼굴을 붉힌 루이스가 내 하반신에서 시선을 떼어낸다. 아예 모르는 척을 하기로 결정한 거 같다.
"지금 내게, 우리에게 주어진 기한은 삼 개월이잖아."
"그렇지. 놈이 지명한 건 나 뿐이지만."
"내가 그런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당연히, 나도 같이 싸울 거야. 놈을 이 세계에 끌어들인 1차적인 원인은 네 호기심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검왕검을 주워온 건 나라구."
"이 소리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나는 네가 검왕검 주워온 걸로 원망 같은 거 안 해."
루이스와 시선을 마주친 채, 확실하게 못을 박는다.
"정 찜찜하면 내가 아니라 선생님에게 사과하던가. 난 그래도 검왕검으로 많은 걸 얻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도 없잖아. 그 사람은 진짜 자원봉사야."
"……나도 알아."
루이스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다시, 헛기침을 두어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삼 개월이지. 그리고 난, 이번 주나 다음 주 안으로 보이드의 술식을 해체해서, 실전 테스트까지 모조리 해치울 생각이야."
보이드의 술식은 이쪽이 가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해석도, 그 파해식을 짜내는 것도 자유자재.
나와 연금술사가 해도 무방한 일이지만 나와 연금술사는 루이스의 검을 제작하고,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술식을 제작하는데 몰두해야 한다.
하지만 파해식을 제작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루이스가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몇 달이 지나도 파해식을 완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 파해식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는…… 바로 소림사에 찾아가서 니르바나 사원의 출입 자격을 획득할 생각이야."
"니르바나 사원에?"
"응."
루이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보통 겨우 한두 달의 수련으로 뭔가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하지만 나는,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뭣하지만 꽤 재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틀림없이 뭔가를 얻어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루이스의 말은 모두 이치에 맞았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무예의 길 또한 그것과 같다. 한두 달만에 간단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루이스는 다르다. 검을 쥐고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아서 지금의 경지에 도달한 루이스의 자질은 제1위나 2위조차 따라 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수련의 세월이 짧은 탓에 이 정도 수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 루이스가 몇 년만 더 일찍 검을 잡았더라면 지금쯤 제1위와 천하제일의 자리를 다투고 있었을 것이다.
보이드와의 싸움도, 스페트로와의 싸움도 내가 고생할 필요 없이 끝났겠지.
루이스 혼자서 모조리 정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아무리 너라도 한두 달만에 극적인 실력 상승을 보이기는 어려울 거야. 그리고 지금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그 존재는 설령 제1위나 대장이라도 이겨내지 못할 강적이지. 네가 니르바나 사원에서 수련한다고 해도, 그게 체감될 거 같지는 않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에서나 통하는 실력이다.
허유는 본체에서 불과 1%의 출력을 끌어 온 것만으로도 스페트로 이상의 힘과 속도를 드러냈다.
예를 들어, 삼 개월 후 허유가 본체의 10% 정도의 출력을 끌어왔다고 가정해보자.
그 정도 수준이면 제1위부터 13위까지, 특급 모험가 전원이 도전하더라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대다.
아무리 루이스라도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하물며, 겨우 한두 달의 수련으로는.
자질도 충분한 노력 아래에서 눈을 뜰 수 있는 법이다.
검을 늦게 잡은 루이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하고 싶어."
하지만 루이스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네 말대로, 겨우 한두 달로 뭘 얻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야. 하지만 너 혼자서만 싸우는 꼴은 내가 보기 싫어. 최소한 그 자식에게 한 칼 정도는 먹여줄 수 있게, 내 실력을 높이고 싶어. 그게 다야."
"……."
니르바나 사원을 찾더라도 극적인 실력 상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나도, 루이스도 알고 있다.
애초에 루이스는 천하제일, 궁극무적의 검사인 백신아와 매일 같이 쭉 대련을 해온 사이였다.
아무리 니르바나 사원이 대단하더라도, 백신아에게 수행을 받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물론 나도 니르바나 사원의 진짜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엄선된 한 줌의 초일류들만이 들어갈 수 있고, 구도자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효과가 대단한 곳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다다.
어쩌면 백신아와 대련하는 것 이상의 수련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잘 상상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루이스가 백신아와 함께 들어갈 수 있다면 양쪽의 수련법을 더해서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백신아는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루이스가 천재라고 해도…… 과연 혼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루이스의 의지는 존중하지만 이것은 루이스를 향한 존중하곤 별개의 문제다.
"있지, 있잖아. 사제. 루이스 언니이."
그때, 파비아가 뒤에서 내 팔을 꾸욱꾸욱 잡아 당겼다. 고개를 돌린다. 파비아도 우리의 대화를 쭉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 거 같다.
"그러면 말야. 나도 루이스 언니하고 같이 가도 돼?"
"네가?"
"응. 루이스 언니랑 같이 가고 싶어. 아니, 같이 갈래."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닌데."
그건 파비아의 자유니까.
물론 소림에서 파비아에게 출입 권한을 허락해 주었을 때의 경우지만.
"파비아라면 괜찮지 않을까?"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니르바나 사원의 출입 조건은 인맥과 실력, 그리고 인성인데. 파비아는 다 괜찮잖아.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은 오히려 백신현 너보다 낫지. 안 그래?"
"그건…… 나도 인정하는데."
대놓고 들으니까 묘하게 기분 나쁘네 그거.
사실이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파비아 너는 왜 갑자기?"
시선을 돌린다. 파비아와 눈을 마주친다.
하지만 파비아는 그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툴툴거렸다.
"왜애……, 나도 사제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파비아의 큼지막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잠깐만, 얘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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