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21.5. 개와 공주 (2)
* * *
깜짝이야, 심장 떨어질 뻔 했다.
이미 알몸도 서로 몇 번 본 사이에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다. 깜짝 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파비아의 몸은 몇 번을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한 몸이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는 것이 더 기가 막힌다.
거기다가 지금은 알몸에 타월 한 장 차림이다. 저건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역시 연금술사인가?
내 주변에서 요상한 일이 일어난다 싶으면, 그 중 9할은 연금술사와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짜에 사고방식도 괴상해서 파비아에게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진 못했을 거다.
연금술사에게 파비아를 맡기는 게 아니었나?
"……어, 근데 사제. 안 씻어?"
"씻기 전에 이 녀석부터 손질하고 있었지. 칼 들고 들어가는거 봤잖아."
"그랬구나."
파비아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파비아의 시선이 한 창 물을 끼얹고 있던 검왕검에 고정되었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 검왕검을 향해 손을 흔든다.
「파비아 아씨는 예의가 참 바르시네요.」
"예의는 무슨, 욕실에 갑자기 쳐들어오는데."
"잉?"
보통 그걸 예의가 바르다고 하나?
물론 파비아에게 악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질이 나쁘다.
아마 파비아는 진심으로, 내가 혼자 씻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도와주러 들어온 걸테니까.
잘못한 점을 지적해도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파비아, 잠시 물러나 있어. 나 지금 손에 칼 들고 있으니까. 잘못하다 베이겠다."
"아, 응!"
내가 파비아를 향해 검을 휘두를 가능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지만, 손에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파비아를 두 걸음 물러서게 한 뒤, 검왕검의 물기를 탈탈 털었다.
마른 헝겁으로 물기를 뽀득뽀득하게 닦아내면 손질 완료다.
「아, 개운해라. 역시 뜨끈한 물을 끼얹으니까 기분이 좋네요.」
백신아도 내 서비스에 만족했다.
검을 옆에 놓아두고 물기가 빠지게 세워 두었던 검집에 다시 손을 가져갔다. 길고 가느다란 집게로 헝겁을 쥐고, 검집에 밀어넣어서 습기를 꼼꼼하게 제거했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게 내 스타일이다. 검과 검집을 모두 손질한 뒤, 마지막으로 물기를 한 번 더 털어내고 결합했다. 검과 검집 모두 문제 없음. 습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질은 끝났다. 하지만 검을 욕실에 놓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손질한 검과 검집을 들고 욕실을 나오는데, 나는 그때 또 다시 코피를 터트릴 뻔 했다.
알몸이 된 루이스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완전한 알몸은 아니고 타월을 한 장 두르긴 했다.
……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꽃밭에 떨어진 건가?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지금!?
하지만 이런 때, 내가 가지고 있는 포커페이스의 재능은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나는 경련하다 못해 아주 쥐가 나버릴 것 같은 입꼬리를 수습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파비아를 뜯어 말려도 모자랄 판에, 넌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무, 뭐가."
진정하자, 진정.
에이, 이런 걸로 진정할 수 있겠냐. 머릿속에서 번뇌가 마구잡이로 휘몰아친다. 시선을 둘 만한 부위가 없다.
포커페이스로 나발이고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다.
돌겠다.
루이스는 이미 타월을 돌돌 감아서 중요한 부위를 모두 빠짐 없이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도 부끄러운 건 비슷한지, 오른팔과 왼손을 허우적거리면서 가슴과 허벅지를 가리려고 했다.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그 정도로 가릴 수 있는 몸이었으면 나도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파비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거든?"
"뭐?"
"넌 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환자잖아. 너 스스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좀 피곤하거나 아픈 부위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럼 당연히 몸이 멀쩡한 나하고 파비아가 도와주는 게 맞지. 아, 안 그래?"
그건 또 무슨 되도 않는 변명이야.
더 가관인건 흥! 하고 콧바람을 뿜으면서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는 루이스의 태도다.
난 루이스가 저러는 걸 스무 살 이후로 보지 못했다.
쟤도 이제 스물 다섯인데……, 진짜 심각하다, 심각해.
하지만 나도 루이스의 성격에는 익숙하다. 헛웃음만 한 번 터트리고 대충 넘기려는데, 그때 검왕검이 진동하면서 백신아의 의지를 쏘아 보냈다.
「검주, 인기가 절정이네요. 완전 꽃밭이네.」
"시끄러."
「아잉, 까칠하셔라.」
헛소리를 시작한 백신아를 다시 벽에 세워둔다. 해야 할 일은 끝났고, 이제 나도 씻긴 씻어야 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루이스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응, 응?"
루이스는 내게 손목을 잡혔을 때 오히려 당황했다. 얘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루이스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낮은 사람이었다.
공격하는 것도 시원찮지만, 공격 당할 때는 더 약해진다.
뭐라고 해야 하나, 참 쉽다고 해야 할까.
이 점은 열네 살 시절부터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루이스도 가끔 보면 내게 이런 식으로 요구되는 걸 즐기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루이스도 내 앞에서만 이러는 거긴 한데.
완력은 내가 더 높지만 마력 앞에서 그런 사소한 우위는 쉽게 뒤집히는 법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내가 손을 쥐고 당겼을 때, 크게 저항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끌려왔다.
"……."
욕실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나도 씻긴 씻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검을 손질하느라 상의만 벗어둔 상황이었다.
두 여자가 보는 앞에서 바지를 벗는 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대체 뭐냐고, 이게.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바지를 벗는다. 그래도 보여주기 부끄러운 몸은 아니다. 상체도 하체도 꾸준히 단련해 왔으니까.
하지만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 몇 번씩이나 알몸을 보고, 몸을 겹쳐왔는데도 아직도 숫총각이던 그 시절처럼 굴고 있으니까.
……나도 좀 변해야 하나? 경험 많은 남자처럼, 쿨하게?
바지를 벗고 속옷도 훌렁훌렁 벗는다. 음경은 이미 속옷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어서, 두 사람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
음경을 본 순간 파비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포커페이스에 재주가 없는 파비아는 식욕과 성욕을 숨기지 못했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깊은 내적 갈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음경에서 시선을 떼어내려는 파비아의 모습에서 진솔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루이스가 내 등 뒤에 자리를 잡고, 파비아는 정면에 앉았다.
손이 닿지 않는 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파비아는 내 정면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그런데 갑자기 파비아가 왼손으로 내 턱을 쥐고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세살 배기 어린애를 씻겨주는 보모 같은 손길이다.
내 나이가 한두 살도 아니고, 스물다섯이나 되서 이런 꼴을 당하니까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하지만 파비아는 지금 마력을 써서 완력을 강화한 상태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뿌리치기는 어렵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놀림은 꽤 능숙해 보인다. 어디에서 따로 배우기라도 한 걸까.
아, 이것도 혹시 연금술사의 소행인가.
"선생님에게 배운 거야……?"
"응! 지금은 나 혼자서도 잘 씻지만 얼마 전까지는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도와주셨어."
역시나.
연금술사는 파비아가 아직 언어 능력도 회복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녀석을 돌봐주고 있었다. 파비아의 사고방식에도 알게 모르게 연금술사의 버릇이나 행동 가치가 스며 들어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파비아가 내게 하고 있는 행동은, 과거 연금술사가 파비아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파비아의 손길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나는 최근 반년 간 와병 생활을 자주 경험했고, 도저히 혼자서 움직일 수 없을 때에는 연금술사나 루이스의 손을 빌려서 세면을 했다.
파비아의 솜씨는 연금술사를 많이 닮아 있었다.
"사제, 아프지는 않아?"
"아프지는 않아. 보기보다 제법인걸."
"선생님을 흉내낸 건데, 사제가 마음에 들어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다……. 이히히."
파비아는 내 칭찬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하지만 진짜로,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는데……. 왜 두 사람 다 내 말을 안 믿어주지?
내가 의문을 표하자, 루이스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그야 그저께 네 꼴을 봤으니까 그러지. 그게 얼마나 심한 부상이었는지 넌 아마 모를 거야."
"아, 듣기는 들었어. 저주 때문에 치료가 늦어져서, 잘못하면 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었다고."
"그거까지 들었어? 그럼 파비아가 왜 저러는지 너도 짐작일 갈 거 아냐. 그냥 얌전히 있어. 괜히 또 사람 걱정 시키지 말고."
내가 너무 위기감이 없었던 걸까? 나는 새삼 내가 나 자신의 고통이나 통증을 무덤덤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을 고생시키면서 싸우는 데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부상은 연금술사가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쳐주니까.
하지만 나와 친밀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런 내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치기는 어렵겠지.
최근 반년 간의 경험이 나의 감성을 살짝 비틀어놓은 걸지도 모르겠다.
목숨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조차도 미끼로 내놓아야 하는 싸움 뿐이었으니까.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내 이마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루이스의 말이 맞다. 몸을 축내고 고생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의 마음까지 무시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나는 난데없이 내 코를 집게 손가락으로 쥐고 코를 풀게 하려던 파비아를 만류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어차피 그 말도 이 순간 뿐이겠지. 또 몸 축낼 거 알아."
"응응. 나도 루이스 언니의 마음을 알 거 같아."
윽, 루이스는 내 마음 속을 정확히 읽어냈다. 파비아도 동조했다.
하지만 나도 고생하고 싶어서 고생하는 건 아니다.
다치고 싸우는 것 자체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싸움 뿐이라 결과적으로 다치면서 싸우게 되는 것 뿐이다.
아프지 않게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고르고 싶다.
나는 남은 목욕 시간을 두 여자에게 꾸중을 들으면서 보냈다.
몸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표백제에 절인 듯 진이 쭉 빠진다.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서 반박하기도 뭣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그러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제, 왜 그래?" 파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얼굴을 살핀다. 그리고 그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음경에 살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제 막 피가 돌기 시작한 참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꺼떡거리며 각도가 높아지고 있다.
나도 성욕에 지나치게 솔직한 나 자신의 몸뚱이가 싫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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