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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94화 (194/287)

〈 194화 〉 21.5. 개와 공주

* * *

저녁 열차를 타고 제피로스와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해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밤새 달린 셈이다.

기차 좌석에서 새우잠을 잔 탓에 허리가 조금 찌뿌둥하다. 열차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나서, 제피로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파비아가 앞장 서서 걷고 있다. 개과 수인인 파비아는 이족 보행과 사족 보행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불편한 자세로 잠에 들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인간하고 거의 같지만, 관절의 가동 범위나 근육의 질에서 차이가 있다. 파비아가 커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나아간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제피로스의 정문을 통과, 집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제사제, 이거 봐봐! 내 신분증!"

"그래, 우리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 따 뒀구나."

파비아는 지금까지 무연고자 취급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도시를 오갈 때마다 임시 통과증을 따로 발급 받아서 통과해야 했는데, 나와 루이스가 마그누스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서 잠시 제피로스를 떠나 있는 동안 시험을 치르고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수행해서 신분증을 획득해둔 모양이다.

파비아는 아는 게 적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한 번 본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이해력도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이전에 검왕에게 자질을 인정 받아서 제자로 들어간 나의 사저이니까.

파비아는 나 보라는 듯, 예쁘게 뽑혀 나온 신분증을 양손으로 쥐고 생글생글 웃었다. 기운이 워낙 넘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고만 있어도 내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연금술사의 공방과 내 자취방은 서로 붙어있다.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크게 지친 듯한 연금술사가 졸린 눈으로 눈꺼풀을 비비며 말했다.

"일단, 신현이 너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휴식부터 취하는 게 좋아. 코어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할 것도 없잖아. 그리고 소림의 치료도 네가 꾸준히 정양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알고 있어요."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 없는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하룻밤도 되지 않는 사이에 나를 회복시킨 소림의 기술은 기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수준이지만 연금술사의 치료가 그러하듯 상당히 강도가 높고 몸의 항체에 끼치는 영향도 막대해서, 부상이 회복되었다고 몸을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된다.

연금술사의 말처럼 일주일 정도 쉬어 주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말을 잘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검지로 내 턱을 슥 건드렸다.

"농담이 아니야. 그때 소림의 도움이 없었다면 넌 그저께 입은 부상으로 최소 한 달은 요양했을 게 뻔해. 일주일 정도 쉬는 걸 아깝게 여기지 마. 일주일 정도 쉬어서 그 부상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거니까."

"에이, 알고 있다니까요. 절 못 믿으시는 거예요?"

"반대야. 오히려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넌 틀림없이 내 말을 무시하고 몸을 쓰기 시작할 테니까."

이건 날 신뢰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아니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일주일을 얌전히 휴식에만 쏟을 거 같지는 않다.

지금은 내가 나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얌전히 있지만, 하루 이틀 쉬고 몸이 괜찮아지면 또 모른다.

일주일 동안 얌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을 가능성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높지 않다.

……어, 거의 연금술사의 말이 맞잖아?

"……."

"표정을 보니, 뻔하네."

연금술사가 루이스와 파비아를 한 번씩 돌아본다.

"너희 두 사람이 잠시 수고 좀 해줘야 할 거 같아. 신현이가 함부로 몸을 쓰지 않게 잘 지켜보고 있어줘."

"어, 그럼 선생님은요?"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한다.

그때 연금술사가 조그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나는 좀 자고 싶어."

"……알았어요. 뭐, 저하고 파비아는 아직 쌩쌩하니까."

루이스는 순간적으로 눈을 찌푸렸지만, 연금술사는 원래 저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두 사람은 허유와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아주 체력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연금술사가 하품을 하며 공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파비아에게 그대로 손을 붙잡혀서 내 자취방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나도 조금 피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이나 좀 건드려보려고 했는데, 내 손을 꼭 틀어쥔 파비아가 나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제, 휴식!"

"……책 읽는 것도 휴식이잖아. 그러면 안 돼?"

"안 돼!"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파비아의 순수한 눈동자에 매우 약하다. 마치 태양을 피하는 흡혈귀처럼, 파비아의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매우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알았어, 그러면 샤워만 하고 잘게. 그러면 되지?"

"응응."

파비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루이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반응이 차갑다. 파비아처럼 적극적으로 내게 달라붙지는 않아도, 생각하는 건 비슷해 보인다.

상의를 훌렁훌렁 벗는다. 얼굴에 생긴 상처나 흉터는 그때그때 약을 쓰거나, 술식을 써서 제거했지만 몸에 생긴 상처는 거의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하고 비교했을 때 상반신은 흉터로 상당히 지저분한 편이다.

몸에 생긴 흉터도 언제 한 번 지워야 하나? 하지만 그다지……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데.

옷을 벗은 상반신에 모르는 흉터가 또 여러 개 남았다. 어저께 있었던 허유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 그리고 소림이 내 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다.

"그거 한 번 지우는 게 좋겠다."

"그래?"

"보기 흉해. 네가 고생했다는 걸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루이스가 팔짱을 낀 채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하는 김에, 옆구리에 있는 노예 낙인도 지우고."

"그럴까. 이제는 거의 안 보이는데."

최근 반 년 동안 몸이 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옆구리의 노예 낙인도 거의 지워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 위에 화상 자국이나 칼로 찍힌 흔적 등, 수많은 상처가 켜켜이 쌓여서 낙인이 보이지 않게 된 쪽에 가깝다.

거울 앞에 서서 몸을 돌아본다. 루이스의 말처럼, 꽤 보기 흉한 몸이다. 얼굴은 그때그때 상처가 생길 때마다 지웠지만 몸은 그러지 않아서 균형이 안 맞는 듯한 느낌이 있다.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지우기는 어렵겠지만."

"한 번에 다 지우려고 하면 전신의 피부를 아예 다 갈아야 하는 수준이겠지?"

그 정도가 아니면 고치기 어려울 거 같다.

최근 반년 동안 나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너희 두 사람도 내가 씻고 나서 씻을 거지?"

"응, 그래야지. 냄새 나잖아."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금방 씻고 나올게."

지금에 와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내 욕실에는 루이스가 파비아가 쓰는 입욕제가 놓여 있지만, 그런 걸 서로 신경 쓰는 단계는 애저녁에 지났다.

나는 상의만 훌렁 벗은 채 검왕검을 손에 쥐었다. 루이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신아도 데려가서 씻으려고?"

"어, 이 녀석도 요 며칠간 흙먼지를 많이 뒤집어썼잖아. 이 기회에 한 번 씻어 줘야지."

다행히 날을 세울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검왕검에는 스스로 기능을 수복하는 기능이 붙어 있어서, 칼날은 언제나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검왕검을 손에 쥐고 욕실에 들어간다. 조금 이상해 보이겠지만, 수도꼭지가 여기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검집에서 검을 빼고 검집부터 손질하기 시작했다. 대야에 물을 가득 채우고, 미리 가지고 들어온 칫솔과 핀셋, 그리고 행주를 써서 검집에 끼어 있는 먼지와 돌조각 등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검왕검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검과 검집 모두 조금 수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편이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수수하고 건실한, 기능미로 충만한 검.

얼마나 멋져. 난 그런 게 취향이다. 겉멋만 든 건 좋아하지 않는다.

검집 깊숙한 위치까지 긴 솔을 넣어서 닦아내고, 물로 헹군 후 물이 빠지게 위쪽에 세워 두었다.

그 다음은 검이다.

스스로 자가 수복할 수 있는 검이라 공들여 손질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백신아는 지금의 시간을 매우 좋아했다. 검신의 평평한 부분을 솔로 살짝 간질어주면 매우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낸다.

「아, 거기요 거기. 아아…… 가려운 부분이 긁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 매우 행복하네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도대체 이 녀석은 어디가 어떤 식으로 신경이 연결되어 있는 걸까?

검을 만져줄 때마다 좋아하는 걸 보면 감각이 서로 이어져 있는 거 같기는 한데 도통 애매모호하다.

검신 부분을 모조리 손본 다음에는 검을 돌려서 손잡이에 솔을 가져갔다. 손잡이에는 검을 쥔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무늬 같은 게 음각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특히 때가 잘 탄다.

흰색 손잡이가 내 손때로 번들번들했다.

백신아는 손잡이 부분을 문지르면서 때를 벗겨낼 때마다 야릇한 음성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야, 도대체 얘는 뭘 어떤 식으로 감각이 연결되어 있는 거냐고.

하지만 백신아는 내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한다. 그냥 "숙녀의 비밀이예요"하고 넘어가버린다.

그러면 좀 이상한 신음 소리라도 내지 말던가.

이러면 그, 바깥에 있는 두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잖아.

내가 한 마디 하려던 바로 그때, 백신아가 검신을 진동시키면서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진짜 겨우 살아 남았네요.」

"이번에? 아, 그 녀석?"

나는 허유의 이름을 실수로라도 입에 담지 않게 노력했다. 나 자신은 녀석의 이름을 들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이름이 어떠한 효과를 보일지 알 수 없으니까.

「네. 지금까지의 강적들도 대단했지만, 그는 정말로 격이 달랐어요. 솔직히 말해서……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럴 수도 있다.

허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맞붙었던 그 어떤 적도 초월하는 강적 중의 강적이었다.

본체의 티끌만한 힘을 끌어온 것 뿐이었는데도 그 정도였다.

하물며 놈은 보이드의 술식을 써서 검왕검의 기능을 봉인하기까지 했으니까.

보이드의 몸이 허유의 힘을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검주의 능력에는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왜?"

「보이드도, 그리고 그저께의 적도 모두 저 때문에 나타난 거나 마찬가지인 적들이잖아요. 저 없이도 잘 돌아가던 검주의 인생에 갑자기 제가 끼어드는 바람에 검주의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해요.」

"그 이야기는 예전에 다 끝난 거 아니었냐. 너도 참 징하다."

내가 지금 고생하고 있는 건 검왕검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사실이지. 실제로 이 반년 간, 검왕검과 관련 없이 벌어진 사건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페트로를 둘러싼 그때의 사건조차도, 놈과 보이드가 지인이었기 때문에 아주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와 백신아는 과거에도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나는 그때 이미 결론을 지은 바 있다.

검왕검 때문에 내가 고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덕에 좀 더 잘 풀린 일도 있었다고.

샤를로트는 내가 검왕검의 힘을 손에 넣지 못했다면 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와 백신아의 만남에는 가치가 있었다.

나는 그때 이미 결론을 지었고, 검왕검을 손에 쥔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잉, 그건 그렇지만요. 그때 검주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이번 일은 너무 심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결심이 흔들릴 정도로, 백신아는 허유의 전투가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보이드의 술식에 의해서 검왕검 내부에 꼼짝 없이 묶여 버린 백신아는 그 싸움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

애당초 내가 검왕검을 쥐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보다 덜 고생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이 세상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은 그 정도로 깊고 깜깜하다는 것을 최근 반년 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니까……"

"사제! 씻는 거 도와줄게!"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욕실의 문이 열렸다. 흠칫거리며 몸을 돌린다.

그리고 코피가 나올 뻔 했다.

알몸에 타월만 두른 파비아가 문앞에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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