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21. 아우터 스페이스 (7)
* * *
방침은 정해졌다.
첫 번째, 검왕검의 기능을 봉인하는 술식을 파해하는 것.
두 번째, 나 자신의 출력을 높여서 허유와 정면 승부에 들어가는 것.
어느 쪽도 소홀하게 준비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장의 수단은 여러 개를 준비해둬야 하는 법. 싸움은 변수가 많은 것이니까.
보이드의 술식은 루이스도 기억하고 있다. 파해는 루이스에게 맡기고, 나와 연금술사가 코어를 무너트리는 술식을 준비한다.
역할 분담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귀향에 앞서, 나를 찾는 또 다른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 *
잠시 후, 나는 호위로 붙은 파비아와 함께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을 찾았다.
벨을 누르자 올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의 안내를 따라 샤를로트의 개인실로 안내 받았다.
샤를로트의 개인실은 샤를로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수수하고, 무늬가 적지만,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 든다.
"샤를로트."
"아……, 신현 씨……"
올리비아에게 안내 받은 샤를로트의 개인실에서, 침대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은 소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샤를로트였다. 듣기로는 지난 밤부터 고열에 시달렸다는 것 같았다.
샤를로트는 내 얼굴을 본 순간 상반신을 일으키려 들었지만, 그건 내가 만류했다. 척 봐도 샤를로트의 상태는 제법 심각해 보인다.
몸에 무리가 갈 만한 일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어제부터 갑자기 샤를로트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고개를 돌려서 올리비아와 시선을 마주친다. 올리비아의 말에 의하면, 샤를로트는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어제 저녁,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진동이 도시 전체를 한바탕 쓸고 지나간 직후 갑자기 샤를로트가 자리에 쓰러져서, 고열을 동반한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고.
"감기는 아니다. 의사를 불러서 진단은 끝마쳤어. 말하자면 원인 불명의 고열인 셈이지."
"……."
"내 생각에는 어제 도시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진동이 수상해 보였다. 그래서 아가씨를 눕힌 후, 진동이 발생한 장소로 찾아갔더니……, 제1위와 2위의 특급 모험가가 현장을 조사 중이더군."
올리비아가 조용히 눈을 가늘였다.
"제2위의 특급 모험가와는 예전에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어서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분은 나를 네 친구로 기억하고 계시더군."
"그건 대장에게 들었어. 내 친구가 현장에 찾아왔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렇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나는 이제 서로를 친구라고 호칭하는데 껄끄러움이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응."
"어제의 사건은 너와 관련이 있었던 게 아닌가?"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내 질문에 올리비아는 잠시 우물쭈물 거리는 듯 하더니,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어제, 도시 전체를 쓸고 지나간 파장 속에서 네 마력을 느꼈다. 가주님의 몸을 차지했던 그 존재와 맞서 싸우던 그때의 너와 비슷한 마력이 감지되었어."
"……하긴."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어제 일은, 나와 관련된 사건이었지. 정확히는 내 성격이 불러온 참사라고 할까."
"네 성격이 불러왔다는 소리는……?"
"보이드는 너도 알고 있지? 그 녀석을 추궁하다가 벌집을 건드리고 말았어. 그 녀석의 영혼 깊은 곳에는 '바깥에서 온 존재'의 파장이 심어져 있었는데, 내가 보이드를 추궁하다가 그 부분을 잘못 건드리고 말았거든."
"……잠시만,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나."
올리비아는 기반 지식이 없기 때문인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떠듬거리는 기색이었다. 나는 올리비아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어의 의미를 하나씩 풀어서 설명했다.
"맙소사."
그녀의 반응은 이 한 마디로 대신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가주님의 몸을 탈취하고, 아가씨의 몸에도 손을 대려고 했던 그 존재와 비슷한 존재가…… 보이드의 내부에도 숨어 있었다는 소리군. 너는 그것을 보이드를 추궁하다가 실수로 건드려 버린 셈이고."
"맞아. 쓸데없이 계속 추궁하다가 벌집을 건드려버린 셈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건 내 성격이 불러온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추구하지 않고, 어중간한 형태에서 타협하고 묻어 두었다면 허유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하지만 성격 상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끝까지 파헤치고 보려는 내 성격이 보이드의 내면에 존재하던 어느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해하기 어렵군.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거대한 존재가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유는 무슨. 따지고 보면 샤를로트도 마찬가지잖아. 창을 손에 쥐기만 해도 스페트로를 불러들일 수 있으니까."
"아……"
올리비아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존재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우주의 저편에서 날아와, 보이드의 육체를 차지하게 된 허유.
그리고 샤를로트가 창을 손에 쥐기만 해도 불러들일 수 있는 스페트로.
두 괴물이 서로 닮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잠시만, 백신현. 그렇다면 혹시 스페트로는……"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서로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 자식 또한 '바깥의 존재'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지."
나는 샤를로트의 뺨에 손등을 가져가며 말했다.
샤를로트는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려서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네가 갑자기 쓰러진 건, 아마 네 안에 존재하는 스페트로의 단말이 그 파장에 반응했기 때문이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서로 닮은 것끼리는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마법의 세계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샤를로트가 통증을 느끼는 걸 보면 스페트로와 허유는 닮은 것 같으면서도 서로 반발하는 관계에 가깝다.
"네 통증은 내가 해결해줄 수 있을 거 같아. 네게 영향을 끼친 파장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파장을 부딪쳐서 중화시키면 그만이거든."
물론,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차차 몸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샤를로트가 아파하는 모습은 내가 도저히 못 보겠다.
내가 손을 쓰는 게 좋을 거 같다.
"올리비아. 잠시 검을 뽑아도 좋을까?"
"어? 아, 그래. 괜찮다."
남의 저택에서 함부로 검을 뽑는 건 무례한 짓이니까, 예의상 한 번 물어봤다. 올리비아의 허락이 떨어졌다.
'시작하자, 신아야.'
『네, 검주.』
샤를로트와 시선을 마주친 상태로 천천히 검을 뽑는다.
나도 이제 외팔이 신세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검을 꼿꼿하게 세운 상태로 천천히 휘두른다.
샤를로트의 내면에 소용돌이 치는 시꺼먼 암기가 보인다. 그것은 어젯밤, 나의 회복을 방해하던 정체불명의 기운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운을 검술로 중화시킬 수 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연금술사도 그때, 성질을 완전히 파악하기만 했다면 소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나를 회복시킬 수 있었을 거다.
중화시키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성질을 파악하고, 알맞은 수단과 방법을 제시해서 끼워 맞추는 것.
검을 휘두른다. 휘두른다. 휘두른다. 밀폐된 샤를로트의 개인실에서 바람이 불었다. 지금의 내 코어는 기능에 문제가 생겨 마력을 추출할 수 없지만, 천변무궁류는 코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마력의 흐름을 제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마력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력의 흐름은 그 자리에서 몇 바퀴 회전하더니 부드러운 기세로 샤를로트의 가슴팍에 짓쳐 들어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샤를로트의 가슴팍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몸에 상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베어 찢은 것은 샤를로트의 코어 내부에서 호흡하던 검은 파장이었으니까.
샤를로트의 표정이 조금 느슨하게 이완되었다.
조용히 납검한다.
"어때, 샤를로트? 한결 낫지?"
"응……. 머리는 아직, 조금 아프지만……"
"나는 원인을 제거한 거 뿐이니까. 떨어진 체력까지 회복시켜주긴 어려워. 하지만 이대로 한숨 푹 자고 나면, 많이 회복될 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신현 씨."
"고맙기는. 내가 시작한 일인데."
인사치레를 나누고, 샤를로트가 다시 잠들 수 있게 방을 나선다. 같이 따라나온 올리비아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다, 백신현."
"그럴 필요 없다니까. 내가 시작한 일을 나름대로 수습했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샤를로트는 일주일 안에 통증을 덜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거다.
내가 지금 한 일은 샤를로트가 조금 더 일찍 회복할 수 있게 도와준 것뿐.
감사를 받기도 뭣하다.
"나는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쯤에 제피로스로 내려갈 생각이야.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
"그런가. 나는 보다시피, 아가씨가 아직 아프셔서 조금 늦게 내려가게 될 거 같다."
"내려오면 연락해. 나도 어지간하면 내 선에서 끝내고 싶은데, 그게 안될 거 같으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싸움에 나설 생각이니까."
나도 바보는 아니다.
할 수 있다면 내 선에서 이번 일을 해결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허유는 그 정도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자존심을 세우는 건 좋지 않다. 내가 허유를 쓰러트리는데 실패하게 된다면, 놈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을 파멸시킬 기세로 날뛰기 시작할 테니까.
허유의 전투 능력이라면 가능하다.
마그누스는 놈을 특급 모험가 전원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평가했고, 그 생각은 나도 같다.
경찰을 부르든, 군대를 동원하든,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맞서 싸워도 부족한 상대다.
그런 상황에서 스페트로 가문의 연줄과 권력은 큰 도움이 된다.
일이 잘못해서 꼬이게 될 경우,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내가 올리비아에게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장의 수단은 여러 개를 준비해둬야 하는 법.
그들에게 미리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 자리를 찾았다.
"알았다, 언제라도 인맥을 동원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마."
"부탁할게."
"……이로써 간신히, 네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건가?"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돌아선 내 등을 향해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이죽거렸다.
"친구끼리 그런 거 일일이 따지는 거 아니다."
"그런가. 그것도 그렇군."
올리비아가 내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 나름의 우정 표현인 듯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