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21. 아우터 스페이스 (6)
* * *
사찰의 음식은 맛있었다. 간이 세지 않았지만, 나는 원래 간이 센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입맛에 맞았다.
그 중에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채소도 있었는데, 그 채소가 술술 넘어갈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역시 몸 쓰는 사람은 밥심이지. 소림사가 가진 힘의 근원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식사를 대접 받은 후, 소림사의 입구로 나온다. 백율 대사는 홀로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서 따라 나왔다.
"신세 졌습니다, 대사."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구려. 부디, 눈앞에 닥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겠소."
"……일이 무사히 해결되면 그때 연락하겠습니다."
소림사를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사찰은 산 중턱에 세워져 있어서, 날이 저물기 전에 하산하려면 부지런히 내려가야 한다.
나는, 지금 코어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있는 상황이니까.
계단을 절반 정도 내려왔을까. 여기부터는 더 이상 소림의 영역이 아니었는지, 계단에 루이스와 파비아가 서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
"코어를 잠시 쓰지 못하게 된 걸 제외하면 다 회복됐어."
소림의 의술이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이쪽의 치료도 연금술사의 치료와 마찬가지로 몸에 상당히 부담이 심하게 가는 치료방법이기 때문에 여러 번 쓰면 몸이 상하게 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사, 사제에……."
"응, 파비아. 많이 걱정했지?"
파비아는 바닥에 손을 짚고 쪼그려 앉은 자세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루이스가 팔짱을 끼며 담백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비아가 많이 걱정했어. 소림사 바깥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도, 네가 치료 받는 모습을 차마 맨정신으로 지켜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샜는지, 파비아의 눈가에는 기미가 가득했다. 파비아가 가까이 다가와서 내 검지 손가락을 이로 살짝 문다. 세게 물지는 않았다. 힘을 주지 않고 살짝살짝, 마치 상처를 햝는 고양이처럼 입술을 우물거린다.
그리고 내 옆에 붙어서 루이스를 바라본다.
"근데 있잖아, 사제. 루이스 언니도 엄청 걱정했어. 사제가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안 내려오니까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왔다갔다 서성이기도 하고."
"아, 파비아!"
루이스는 포커 페이스를 10초도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루이스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묘하게 쭈뻣쭈뻣한 태도인 루이스의 곁으로 다가가서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난 괜찮으니까. 일단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회의부터 하자. 지금 생각해야 할 게 많아."
"……알았어."
루이스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신아는?"
"여기 있어."
루이스는 소림사에 들고 들어가지 못한 검왕검을 허리에 메고 있었다. 그것을 들어서 내게 건넨다.
검왕검을 허리에 차니까 확실히 마음이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나는 검왕검의 손잡이를 두어번 두드리면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 돌아왔다. 많이 걱정했지?"
「네, 많이 걱정했어요 검주. 무사한 거 같으셔서, 기쁩니다.」
최근 들어 걱정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보는 거 같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기분이라,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가장 좋은 건 걱정 시키지 않는 거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온갖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팔자가 있는 듯하다.
루이스와 파비아는 나를 기다리느라 오늘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은 것 같았다.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식을 사서 들어갔다.
그런데 루이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파비아의 태도가 특히 수상하다.
그 먹성 좋은 녀석이 자기가 손에 들고 있는 음식까지 권유하면서 나를 챙기려고 든다.
꼴에 사저라고, 사제인 나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사찰 음식으로 배가 찬 상태이지만, 위장에는 여유가 남아있다. 파비아가 건네는 음식을 그대로 입에 물었다. 파비아는 그게 좋았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호텔방에 복귀했다. 아직 피가 부족한 상태라 드러눕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쉬더라도 할 건 다 끝내놓고 쉬어야 한다.
"조금 전에 마그누스 대장이 내게 물어보더라고. 다른 대륙으로 도망치는 게 어떻겠냐고."
"난 반대야. 도망치더라도 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으니까."
루이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녀석의 말처럼, 도망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허유, 놈은 인간의 인지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경지에 있는 괴물이었다.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더라도 추적해올 게 뻔하다.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확신이 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설령 도망칠 수 있다고 해도 평생 도망쳐 다녀야 할 게 뻔하지. 맞서 싸워서 쓰러트리는 게 제일이야.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어. 그건 그 자식이 세도 너무 지나치게 세다는 거야."
"그게 문제지. 하지만."
"거기다가 그 녀석은 보이드의 술식을 가지고 있어. 천변무궁류 봉인은 내가 실력으로 깨부술 수 있지만, 그 술식에는 신아가 내 몸을 차지하는 걸 방해하는 효과도 들어 있지. 이건 내 능력으로도 해체가 안 되는 부분이라서, 아마 신아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거야."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도 봉인된 상태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허유는 지금껏 우리가 맞서 싸운 적 중에서 역대 최강을 자랑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그런데 나는 그 적을 상대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를 쓸 수 없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수많은 싸움 중에서도 가장 불리한 싸움이 될 게 틀림없다.
"내가 생각하는 플랜은 두 가지야."
나는 검지를 들어서 주의를 집중시켰다.
"첫 번째, 보이드의 '검왕검 봉인 술식'을 해석해서 그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파해식을 제작한다. 그 후, 신아에게 모든 걸 맡기는 거지."
가능성은 있다. 검왕검의 기능을 봉인시킨 그 기술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술식에 불과하니까.
이 세상 모든 술식에는 그에 대항할 수 있는 공략법이 존재한다. 술식 전투가 정보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내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기술을 완성시키는 거지."
"그 이론을……"
루이스가 눈을 찌푸린다.
나는 어제 허유의 싸움에서 코어의 경계에 아주 조그만 구멍을 뚤었다.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출력을 높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제 있었던 전투에서 삶을 끝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아주 조그만 구멍을 뚫은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 기술을 최대한 강화해서 한 번에 내 코어와 외부의 마력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무너트린다면, 나는 일시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코어와 마력의 경계를 무너트렸기 때문에 그런 효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코어와 마력의 경계가 무너지고 천지교태의 경지가 이뤄지는 바로 그 순간, 나의 천변무궁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넓은 영역의 마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천변무궁류와 아주 궁합이 좋다.
나는 확신한다.
이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허유가 본체를 끌고 오더라도 맞서 싸울 자신이 있다.
물론 대가는 크겠지.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나의 코어는 아마 어마어마한 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잘못하면 코어의 영구 소실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목숨과 바꿀 수는 없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나는 이미 결정을 끝마친지 오래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두 가지 방법밖에 없겠지.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잊은 건 아니지? 내 경고를."
"그건 본인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벽에 세워두었던 검왕검을 가져왔다. 둥근 테이블 위에 놓여진 검왕검 위로 시선이 쏟아진다.
"신아야. 너도 우리 대화는 다 들었지?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린 그 순간, 아마 나는 넓은 범위에 있는 모든 마력을 검왕검에 실어 휘두를 수 있게 될 거야. 그때…… 네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
백신아가 침묵한다.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특히 파비아는 긴장감을 도저히 버티지 못했는지, 스스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루이스 아씨의 걱정은 지당합니다. 이 검왕검은 가상 인격을 설치하고 내부에 가상 공간을 설치하는 등, 온전히 검의 강도와 예리함에 집중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검왕검은 타 무기에 비해서 우수한 강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검왕검의 제작에 쓰인 광물이 그 정도로 대단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 특수합금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온전히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루이스가 비유했듯, 복잡한 물건일수록 강도는 낮아지는 법이다.
지금의 검왕검이 그 출력을 감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하게 해주세요.」
"네게 희생을 요구할 생각은 없어."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요? 검주.」
"있지, 당연히."
「방법이 있…… 어, 진짜요?」
백신아는 되려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연금술사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선생님. 분명 예전에 말씀하셨죠, 조금만 더 손을 대면 루이스의 검을 완성할 수 있다고."
"그랬었지……, 아."
연금술사도 이제 깨달은 눈치였다. 루이스도 입을 벌렸다.
"루이스의 검은 검왕검이 제작된 공방에서 발견한 연금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검왕검과 같은 재질'의 검이야. 이제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으니까, 그걸 완성시켜서 쓰면 돼."
「……아.」
"날의 형태를 고정할 때 강도와 예리함에 술식을 집중시키면 너보다 높은 강도의 검을 완성할 수 있을 거야. 그걸 쓴다."
난 살짝 웃으며 루이스를 돌아봤다.
"물론 그건 네 검이지만, 내가 잠시 빌려도 되겠지?"
"거부하면 나만 나쁜 년 되는 거 아닌가? 그거."
"맞아. 순순히 빌려준다고 약속하시지."
루이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린다. 하지만 거부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녀가 가장 우려하고 있던 문제점이 단숨에 해결된 셈이니까.
"좋아, 그렇게 하자. 내가 쓰기 전에 네게 시험 운전을 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오늘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열차로 바로 돌아가자. 이제 또 눈썹 휘날리게 움직여야 하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귀향의 때가 머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