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21. 아우터 스페이스 (5)
* * *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의 질문은 공개된 나의 정보를 고려했을 때 나오기 어려운 질문이다. 저 승려 또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질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사께서는 어째서 그런 질문을……?"
그러니까 지금의 내 대답은 이것이 베스트.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요구한다.
도대체 백율 대사는 어느 점에서 나와 검왕의 연결고리를 알아냈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빈승은 금일 새벽, 백신현 시주의 치료를 맡았소. 그것은 물리적으로 파괴된 부분의 피부와 근육을 찢고, 부서진 뼛조각을 걷어낸 후, 조직을 다시 재생시키는 수술이었지."
천천히 주먹을 쥔다. 피부를 찢고 근육을 가른 후 치료에 들어갔지만, 팔과 다리에 위화감은 크지 않다. 그 정도로 소림의 치료가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런데 시주의 경우, 일반적인 사람의 인체와 비교해서 기혈이 특이하게 배치되어 있거나 아예 구조 자체가 달라진 부분이 있었소."
"……아, 그거 때문인가."
나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다.
천변무궁류를 쭉 사용하는 과정에서 내 마력과 회로, 기혈 같은 신체 구조도 조금씩 달라졌다.
프로 축구 선수의 발 모양이 특이하게 변형되거나, 프로 레슬러의 귀가 만두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습득한 무술이 사람의 신체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나의 신체와 기혈은 천변무궁류에 특화되어 있는 구조로 변형되었다.
"다행히 치료에 크게 관여하는 부분은 아니어서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아도 치료를 끝마칠 수 있었지만, 추후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치료해야 할 경우 시주의 몸 상태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소."
백율 대사가 가사 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낸다.
"하여, 그런 이유로 소림사 내에 보관되어 있는 서책을 살펴보던 중 과거, 우리 소림사에서 과거 시주와 같은 신체 구조를 가진 인간을 치료한 기록이 남아 있었소."
"그 자가 검왕이었습니까?"
"그렇소. 그 때는 혼란의 시대라 아직 구파일방도 이 대륙에 들어오지 않고, 밀정만 몇 명 파견해서 동향을 살펴보던 시기였는데 그때 당시 소림 속가와 검왕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하더구려."
신기한 인연이다. 하지만 검왕의 유파는 동서양의 온갖 검술의 특징을 겸비해서 제작되었다.
검왕은 당대 제일의 무인이었다. 당연히 그 당시의 시대를 호령하던 동서양의 수많은 고수들과도 교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체 구조가 비슷한 것만으로 제가 검왕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백율 대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단서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논리가 크게 비약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백율 대사에게는 또 하나, 내가 검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잘 알아보셨구려. 백신현 시주의 말이 옳소."
백율 대사가 느긋하게 웃었다.
"시주께서도 그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 책에는 검왕의 신체 구조 뿐만 아니라 당시 이 대륙에 파견되어 있던 소림사의 밀정과 검왕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소. 무술의 흐름을 교류하거나, 당시 혼란스러웠던 대륙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주된 화제였지."
그가 허리를 펴고 고개를 꼿꼿히 들었다.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 책의 마지막에는 당시 검왕이 헤어지기 전에 남긴 말이 기록되어 있었소. '먼 후대에, 소림사는 나의 진전을 잇는 자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예언입니까?"
"검왕은 예언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 두었소."
예언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의 직감에 이상한 느낌이 걸렸다. 천변무궁류의 검사로서 갈고 닦은 직감이 소리친다.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 입자 하나 하나의 존재를 느끼고, 그 흐름을 제어해서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모든 마력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현상을 예언할 수 있다.
어디에서 비슷한 개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러한 이유로, 빈승은 백신현 시주가 바로 그 검왕이 말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짐작한 것이오. 의문이 풀렸소이까?"
"네, 감사합니다. 대사."
고개를 숙인다. 따지고 보면 백율 대사는 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금술사의 말처럼, 잘못하면 뇌에 큰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대사."
이야기가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내 뒤에 서 있던 마그누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전 이 친구를 니르바나 사원에 들여 보내 주고 싶습니다."
"니르바나 사원을……"
"대사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저녁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출현하였습니다. 다행히 이 친구가 그 존재를 잠시 후퇴시키는데 성공했지만, 3개월 후에는 다시 찾아오겠다더군요."
마그누스는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를 통해서 전달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때, 그 존재는 더 강해진 상태로 이 친구를 찾아올 것입니다. 저는 그 꼴은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그러니…… 이 친구를 니르바나 사원에 들여보내서 수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순간, 백율 대사가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제 생각에 이 친구는 수행자의 성지에 출입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
"이 친구뿐만이 아니죠. 지금은 소림사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루이스라는 아이 또한, 실력과 인격 모두를 갖추고 있는 인재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같은 나이의 저와 비교해도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그누스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대사, 부디 허락을."
* * *
백율 대사와의 면담이 끝났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어중간하다. 모처럼 절에 온 김에 사찰 음식으로 점심까지 해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소림사의 마당에는 머리를 깎는 승려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초식을 수행하고 있었다.
마그누스가 씁쓸한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다. 설마 대사께서 거부하실 줄은 몰랐다."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아쉽다. 하지만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함부로 어깃장을 놓는 것도 좀 그렇다 싶어, 나를 거부하는 이유만 듣고 불당을 나왔다.
결국 니르바나 사원에 대한 출입권을 얻지 못했다.
백율 대사는 건실한 청년인 내게 개인적으로는 호감을 느꼈지만, 소림의 속가를 이끄는 입장으로서 나를 성지에 들여보낼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보이드의 몸을 차지한 그 존재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백율 대사는 허유가 제시한 3개월이라는 기한이 제대로 지켜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다.
허유가 제시한 시간보다 일찍 습격해올 경우, 나와 그 존재의 전투에 니르바나 사원이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소림속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백율 대사의 방침과 충돌했다.
단, 허유와의 문제를 무사히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출입을 허가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냈다.
나의 기량이나 정신적인 역량은, 니르바나 사원의 출입을 허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였다.
"신현이 너는 이제 어쩔 생각이냐?"
"뾰족한 답이 있나요. 그 날이 올 때까지 또 열심히 훈련해야죠."
"그걸로 되겠냐?"
마그누스가 혀를 찼다.
"내가 보기에 그 존재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친 그 어떤 적과 비교해도 답이 안 나오는 악몽 같은 존재야. 솔직히 말해서 나와 요하네스, 그리고 우리를 비롯한 특급 모험가 전원이 도전한다고 해도 이기지는 못할 거다."
그는 보기보다 냉정했다. 그리고 마그누스의 평가가 정확했다. 허유는 괴물이다. 스페트로조차도 허유에게는 당해낼 수 없다.
심지어 이것은 본체의 출력의 1%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측정한 역량이다.
보이드의 몸을 아무리 개조하더라도 본체의 출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하다못해 그 10%만 끌고 오더라도 끝장이다.
마그누스는 상당히 경직된 목소리였다.
"차라리, 이 대륙을 떠나서 도망치는 게 어떠냐."
"그런다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면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아마 안 될 거예요. 제가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더라도 쫓아올 수 있는 상대거든요."
"……방법은 있는 거냐?"
"네."
"있다고?"
마그누스는 당황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단 하나,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설 수밖에 없다.
내가 눈앞의 절망에 맞서 싸울 각오를 보이자, 마그누스는 조금 놀란 것 같으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네 선택을 존중하마.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세상 끝에서라도 달려 올테니."
"대장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때 부탁할게요."
"그래. 네 부름을 기다리마."
그와 손을 마주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그 자리에서 부지불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가 하산하는 궤도가 보였다. 아마, 이제 그가 돌아가야 하는 장소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마그누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때요?"
"뭐가?"
"그 녀석의 목표는 저예요. 그러니까 저를 포기하고 도망치면, 선생님은 살 수 있겠죠."
"그다지 마음이 안 동하네.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연금술사는 단답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내 옷깃을 살짝 잡았다.
"그런 것보다도, 입술이나 이리 내."
"갑자기요?"
"갑자기 하고 싶어졌어. 날이 추워서 그런가봐. ……그러니까 입술. 어서 이리 줘."
"알았어요."
연금술사가 다시 한 번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나는 거부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