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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86화 (186/287)

〈 186화 〉 21. 아우터 스페이스 (2)

* * *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부딪치며 일렁인다.

지나치게 밀도가 높은 그 에너지는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마치 안개가 퍼지는 듯하였다.

그 존재가 보이드의 얼굴로 웃었다. 그는 이미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허유?다."

대수롭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표정을 살핀 허유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마치 무척이나 의외인 상황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놀랍군. 대부분의 인간은 내 진명을 들어도 그 이름을 알아 듣지 못하는데 말이야. 거기다가 정신적으로 힘겨워 하는 듯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군."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바로 그때 등뒤에서 파비아를 안고 있던 연금술사가 고개를 들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 말이 사실이야. 지금, 나와 루이스는 저 남자의 이름을 들을 수 없었어. 마치 필터가 겹겹이 쌓인 것처럼 도저히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수준으로 왜곡되어 있었거든."

보이드, 그의 몸을 차지한 허유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 보통의 인간의 경우, 나의 진명을 들어도 그것을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 그런데 그대는 그러한 반응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군. 설마, 한 번에 이해하고 알아 들었다는 뜻인가?"

모르긴 몰라도, 허유에게 있어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조심한다. 보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파장을 일으켜, 그 장본인을 광기에 물들일 수 있다.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 사실을 염두해서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었다.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거기다가 '파장'에 잠식되는 듯한 느낌도 없군……. 아무리 내가 본체가 아닌 데다가, 나의 차원계가 아니었다지만……, 이러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입으로는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에 나타난 수수께끼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듯, 웃으면서 검을 횡으로 든다.

"흥미로워.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신명나게 놀아보자꾸나."

그는 보이드와 다르다.

그래도 보이드는 전략을 쓸 줄 아는 남자였다. 분신을 보내서 이중 삼중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천변무궁류를 봉인하는 술식을 써서 나를 전략적으로 압박해왔다.

하지만 허유는 다르다.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처리했던 보이드와 비교해서, 긴장감이 부족하고 허술한 느낌이 있었다.

가지고 있는 힘의 자릿수가 보이드보다 아득히 높은 탓에 무시무시한 강적으로 느껴지는 것뿐. 허유 자체가 철저하고 날카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 덕에 나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허유가 흥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털어대는 동안 나는 조용히 최고최대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연금술사와 상의해서 뼈대만 제작해두었던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기술도 쓸 생각이다.

허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힘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나는 왼손의 의수를 움직여서 가슴을 쥐었다. 조금 전에 나는 코어의 경계를 무너트리는데 실패했다. 경계를 무너트릴 때 발생하는 반발작용을 억누르기 어렵다는 증거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경계를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코어에 아주 조그만 구멍을 낸다.

마력의 출입이 좀 더 빨라질 수 있도록.

칼 끝에 조금 더 많은 마력을 휘어감을 수 있게.

이로써 나의 출력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한해 12% 정도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크다. 마력의 흐름이 끊어지는 그 순간, 나는 일주일 정도 코어를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작은 구멍을 뚫는 것조차 쉽지 않다. 천변무궁류의 검사인 나조차 그렇다.

제대로 코어와 바깥의 경계를 무너트린 순간, 내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장점은 있다. 아주 조그만 구멍을 뚫는 것 뿐이기 때문에 조금 전처럼 제육검을 써서 준비할 필요가 없다. 약식으로, 코어를 살짝 자극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후우우우……"

호흡한다. 코어와 외부의 경계가 아주 조금 무너졌다. 출력으로 치면 12%. 하지만 천변무궁류의 검사인 나는 눈에 보이는 수치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높아진 출력이 제이검의 약식발동을 돕는다. 허유에 여유에 차서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이미 제이검을 준비하고 있었다.

"혜성?……!!"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마력의 흐름에 손을 대는 방법은 차고 넘친다.

애초에 백신아 또한, 스스로가 가진 마력과 몸의 움직임을 병행해서 천변무궁류를 다루고 있었으니까.

붉은 마력이 외골격처럼 몸을 외부에서 휘어감는다.

코어에 열린 구멍이 출력을 상승시킨다. 그 효과는 제이검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지금의 나라면 신체 능력만으로도 보이드와 호각을 다툴 수 있다.

지속 시간은 아마 10초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지금부터 내가 내달리는 것은 초음속의 세계. 내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좋아, 보기 좋군. 그럼 시작해볼까."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허유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바로 이때, 허유가 보인 행동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간다. 첫 번째, 수라마하검식??????의 질풍공륜검?風???으로 상단을 공격하겠네."

"……뭐?"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허유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그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마력의 흐름으로 읽어내, 그의 궤도를 예측했다.

수라마하검식은 보이드가 쓰던 독문무공의 이름이다. 그리고 질풍공륜검은 위에서 아래로 힘을 주어 내려찍는 초식.

나는 이미 보이드와 두 번의 전투를 경험했고, 검왕검 내부의 가상공간 속에서도 놈의 검술을 질리도록 연습해왔다.

그 검술의 이름과 모든 초식, 그리고 성질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허유는 스스로 설명한 기술을 고스란히 사용해서 나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그 움직임에는 거짓이 없다.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페이크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 일부러 내게 알려준 건가?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라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분노도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러한 감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한 걸음씩 물러나면서 거리를 잰다. 질풍공륜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직도황룡????의 태세이고, 칼이 꽂히기 직전 날의 크기가 반월의 모양으로 크게 부풀어오르면서 파괴력을 높이는 특징이 있다.

속임수는 없었다. 움직임 또한 정직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빠르고 무거워서, 도무지 회피할 수 있는 성질의 공격이 아니었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유지하는 것조차 큰 부담이다. 하지만 힘을 아낄 여유는 없다. 제이검을 유지한 상태에서, 또 하나의 천변무궁류에 들어간다.

제삼검이 펼쳐진다. 전신은 붉은색으로 발광하고 있는데, 넓게 펼쳐진 칼날만이 푸르게 빛나고 있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콰직!!

이 격돌에 의해서 발생한 충격은 저 멀리에 있는 제피로스까지 울려 퍼졌다고, 후에 전해 들었다.

* * *

"……."

그때, 어느 병원의 병실에서 제2위의 특급 모험가와 제3위의 특급 모험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의 충돌을 감지했다.

특급 중에서도 최전선을 달리는 그들의 지각 능력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이 능가하는 수준이다. 아주 미세한 자극이라도 삽시간에 포착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감각과 두뇌 속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진동은 그들이 특급이라서 감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의 충격은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진도의 땅울림에 가까웠다.

특급 모험가의 전력조차 아득히 넘어서는,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표현해도 모자라지 않을 위력.

이제껏 없었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느꼈다.

그리고 진원지는 바로 이 도시다.

마그누스가 고개를 들었다.

"스텔라."

"……네, 바로 움직여야 할 듯 싶습니다."

두 남녀의 시선이 교차했다.

"……."

그때, 별장의 수련장에서 쓰러져 있던 제1위의 특급 모험가는 매우 친숙한 형태의 파장을 감지했다.

그의 내부에 있는 광증이 지금의 파장에 환희하고 있다. 경지를 높인 끝에 아주 조금 접하게 된 '그 영역'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파장이 감지되었다.

위험하다. 그는 그 사실도 동시에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회피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었다. 요하네스는 지금의 충격파가 명백히 인위적인 작업으로 발생했다는 사실 또한 느꼈다.

충격파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제2파, 3파가 찾아올 수 있다.

그는 서둘러 움직일 필요성을 느꼈다.

"……아."

그때, 저택의 개인실에서 샤를로트가 갑작스레 무릎을 꿇고 자리에 쓰러졌다.

올리비아는 서둘러 샤를로트의 곁으로 달려갔다. 조금 전의 진동에 균형을 잃은 것일까.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식은땀을 흘리며 심호흡을 하는 샤를로트의 증상은 지금의 진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올리비아에게 천변무궁류의 감각이나, 특급의 지각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직감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사실을 예감했다.

* * *

바닥이 붕괴했다.

아니, 바닥 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던 지반이 아예 가루가 되어 으스러지고, 그 자리에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나의 몸은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 붕괴한 무저갱의 돌 조각을 차례로 내딛으면서 지그재그로 상승한다.

지금의 공격으로 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즉사하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무저갱을 넘어서서, 바닥에 천천히 착지한다.

검을 쥐고 있던 왼손의 의수는 아예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오른팔은 무사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돌아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꺾여 있어서, 관절의 파손이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수복한다.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은 고밀도의 마력을 외골격처럼 둘러서 신체를 강화하는 기술이다. 마력으로 힘을 줘서 비틀린 팔을 다시 제자리로 꺾고, 튀어나온 뼈를 집어넣고, 그대로 힘을 주어서 형태를 고정한다.

무사한 건 겉모습 뿐이다. 하지만 여유는 없다. 허유는 넓게 펼쳐진 무저갱의 저편에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수라마하검식?????? 질풍광파검?風光??으로 검막??을 형성하겠네."

허유가 검을 횡으로 가볍게 그은 순간, 그 궤적에서 무수히 많은 칼날이 사출되었다. 무저갱의 범위 바깥으로 후퇴해 있던 연금술사는 그 공격을 본 순간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과거, 보이드와의 1차전에서 내 몸뚱이를 고슴도치로 만들었던 기술이다.

하지만 그 숫자도 날카로움도 비교가 안 된다.

칼날 하나의 크기를 확인. 그리고 그 전체의 너비로 칼날의 개수를 계산한다.

수십 만, 수백 만, 그걸로도 부족하다.

광자의 칼날이라고 부르기에 마땅한 검막이 쏟아진다.

"……후우!!"

나는 칼날의 전체 개수를 빠르게 계산했다. 그리고 그 하나 하나의 위력이 특급 모험가의 일격에 못지 않은 수준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하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기술의 원 시전자라고 할 수 있을 보이드도 이러지는 못한다. 기술의 수준으로만 따지면 보이드의 기술이 훨씬 더 완성도가 높지만, 휘두르고 있는 힘의 자릿수가 몇 개는 다르다.

조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이지만, 현실은 가위바위보와 다르다. 아무리 그 수준이 천박하고, 기술적으로 미흡해서 파고들 틈이 존재한다고 해도, 힘의 단위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른발을 축으로 두고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바로 얼마 전, 요하네스와의 비무에서 보았던 기술이다. 그 흐름을 참고해서, 천변무궁류의 강화에 사용했다.

회전의 원리를 접목해서 천변무궁류의 제이검 상태에서만 휘두를 수 있는 최고 최대 위력의 일섬을 내지른다.

쿵!! 날 하나와 검왕검이 충돌했다. 하지만 아직 쳐 내야 하는 칼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수도 많고 칼날 사이 사이의 간격이 촘촘한 탓에 칼날끼리 서로 충돌하게 해서 궤적을 틀어버리기도 어렵다.

회전한다. 회전한다. 마치 철판을 다르는 회전 톱날처럼 쉬지 않고, 다양한 각도로 회전했다.

카기그기가가가가가각───!!

수백 만에 달하는 공격 하나 하나를 이를 악문 채 일일이 걷어내었다. 칼날은 모조리 하늘로 솟았다. 하늘로 솟은 칼날은 검은 입자로 흩어져서 밤의 어둠에 스며들었다.

치이이익!! 바닥에 신발을 끌면서 정지한다.

모든 공격을 걷어냈을 때, 나의 팔과 다리는 죄다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척추나 허리뼈에도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제이검의 힘으로 고정시킨다. 하지만 내부의 상태는 심각하다. 뼈는 부서지고 근육은 망가지고, 장기는 다진 고깃덩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한 번의 공격이 남아있다. 나는 아드레날린에 의해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고 있었다. 고개를 든다. 허유의 마지막 기술이 준비된다.

"마지막, 이 기술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

허유가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었다. 검은색 마력이 크기를 불린다.

그의 말처럼, 나는 이미 이제부터 날아올 기술의 이름을 알고 있다.

보이드의 독문무공, 수라마하검식??????의 오의.

수라파쇄일대겁????一大?.

그의 최종절기로, 실전에서는 쓰이지 못했다.

쓰이기 전에 백신아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나와 보이드의 1차전 당시, 날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채 내지르려고 했던 그 기술의 이름이 바로 수라파쇄일대겁이다.

그 원리는 대기 시간을 들여 고밀도로 뭉친 마력을 섬광의 형태로 사출하는 것.

보이드는 말이 없었지만, 그 원리상 천변무궁류의 일식필살검, 초신성을 참고해서 개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대의 분투에는 놀랐다. 설마, 나의 공격을 모두 주변에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걷어낼 줄이야. 그 모습이 가상하구나."

허유의 입술이 쭉 찢어졌다.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될, 이 공격을 막아 보아라."

그 일섬은 보이드의 원본과는 격이 다르다. 방어는 불가능, 회피도 무리.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까지처럼 다른 궤도로 걷어내는 것 뿐이다.

수라파쇄일대겁은 일직선으로 섬광을 사출하는 참격기다. 그리고 지금의 마력의 크기로 보아, 적어도 수십 킬로미터의 범위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을 숨기고 있다.

허유는 내가 연이어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정하면서 공격을 걷어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수라파쇄일대겁은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위해서 준비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그 기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음!?"

허유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 표정을 보고 싶었다.

수라파쇄일대겁을 휘두르기 위해서 허유가 검을 높이 치켜든 바로 그때, 나는 그의 지척에 파고든 상태였다.

허유가 휘두를 수 있는 공격은 최대 세 번까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이드의 육체가 멀쩡한 상태일 경우를 가정한 수치다.

당연히 칼에 맞아서 손상을 입으면 보이드의 육체는 더 빠르게 붕괴할 수밖에 없다.

내 승리 조건은 세 번의 공격을 모두 버텨내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드의 육체를 붕괴시켜서 허유가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승리 조건이다.

앞서 있었던 두 번의 방어, 그리고 민간인을 운운하며 루이스와 파비아를 전력외로 분류시킨 것은 나의 진짜 의도를 숨기기 위한 포석이었다.

수라파쇄일대겁은 보이드의 무수한 기술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긴 대기 시간이 존재한다.

보이드가 1차전에서 백신아에게 패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특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나는 앞으로 보이드와 두 번 다시 싸우게 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놈의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측한 게 아니다.

그저 보이드를 나 자신의 힘으로 쓰러트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도 분해서, 그 미련을 칼 끝에 실어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과거 백신아에 의해서 펼쳐졌던 일검이 백신현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재생된다.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이 허유의 상반신을 찢는다.

"……후!"

그때 허유는 웃고 있었다.

흡족하다는 듯, 시원스레 웃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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