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20. 리벤지 (8)
* * *
"……그런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 이유가 뭔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일단 질문하고 보는 게 내 성격이다.
연금술사의 말을 잘 들어보면, 진 노인에 대해서 들먹이기는 해도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은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그게 신경 쓰였다. 그게 전부다.
"쓸데없는 호기심이네. 그런 사소한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고, 지금은 준비부터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럴까요."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이드를 찾아가서 탈옥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좀 신경 쓰이는데.
"하지만 나중에라도 대답은 들려주세요. 전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성격이라."
"……."
내 성격은 연금술사도 잘 알고 있다. 호기심이 강한 데다가 집착도 심해서 한 번 흥미가 동하면 끝까지 가는 게 내 방식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성향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연금술사도 지금 잠시 거부해본들 크게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사실, 연금술사가 직접적으로 대답을 거부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끊고 맺는 게 확실하고, 욕구에 솔직하며, 망설임을 모르는 성격이니까.
보기 드문 연금술사의 모습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진다.
입꼬리가 살짝 간질간질한게, 주의하지 않으면 미소가 지어질 거 같달까.
준비를 끝마치고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사실 회의랄 것도 없었다.
예전에 보이드와 붙었을 때의 경험을 복기해서 전투 패턴을 암기하고, 수도의 지도와 보이드의 현재 위치를 대조해서 지형을 검색. 피치 못한 사정으로 후퇴하게 될 때를 대비에서 도주 경로를 물색하는 등의 작업이 전부였다.
"늘 하던 대로 가죠. 저하고 루이스가 전방. 파비아와 선생님은 후방에 대기하다가 여차할 때 후퇴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러오는 걸로."
마그누스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지만, 제1위와 스텔라는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다. 협력을 요청하면 힘을 빌려주겠지.
아, 하지만 1위는 광증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 점은 조심해야 한다.
사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선에서 끝내는 게 제일 낫다.
호텔방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 번 추적진을 살펴본다.
보이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 * *
"신현아, 네 눈에도 보여?"
"네, 결계네요."
보이드의 현재 위치는 어느 한적한 공원이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의 환경을 생각하면 공원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고개를 든다. 매우 교묘하게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의 의식에 간섭해서 주의를 돌리는 타입이다.
특급 미만의 실력자는 아마 감지할 수 없을 것이다. 연금술사가 이 결계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던 건, 보이드의 위치를 추적한 주체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식의 결계는 한 번 주의를 끌린 시점에서 효과가 없다.
결계 탓에 근처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 결계를 지나치는 순간 보이드의 지각 범위에도 감지되겠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 결계를 돌파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보이드는 빛이 내려쬐는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
그는 여기저기가 뜯어지고 헤진 구속복 차림이었다. 구속복은 흰색이고, 팔의 소매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긴 소매를 등뒤에서 틀어묶어 대상의 양손을 구속하는 구조다.
그 점을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는 보이드의 모습과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저것이 내가 찾던 보이드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올백으로 넘긴 검은 머리카락, 핏기가 없는 마른 피부. 나는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저것은 보이드가 부리던 분신의 모습과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그러나 천변무궁류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는 허와 실을 구분할 수 있다. 저것은 예전에 맞서 싸웠던 보이드의 분신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체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다.
애초에 보이드의 분신 술식은 그 사람의 육체를 베이스로 제작되는 것이다. 즉, 나와 맞서 싸웠던 보이드의 분신은 보이드의 젊은 시절을 기반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틀림없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건 보이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늙은 노인의 몸에서 과거의 젊은 몸으로 회춘한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눈앞에 있는 건 보이드가 틀림없다. 외형부터 마력까지 내 감각에 잡히는 모든 단서가 눈앞의 남자를 보이드로 판정했다.
하지만 뭔가 위화감이 든다.
보이드의 마력 사이에 스며든 또 다른 성질의 마력이 보인다.
더 문제가 되는 건 내가 이전에 이것과 비슷한 부류의 마력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페트로.
란즈 가주의 육체를 차지했던 그때의 스페트로와 지금의 보이드가 겹쳐진다.
양측의 마력은 서로 닮아 있었다.
"넌……, 보이드냐?"
그 말에 보이드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인다.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지금의 나라면 백신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보이드와 어느 정도 합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보이드의 실력은 높이 쳐도 제5위의 특급 모험가 수준이다. 지금의 나보다는 강하겠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물론 백신아가 힘을 쓰기 시작하면 훨씬 간단하게 쓰러트릴 수 있다.
그것이 보이드의 한계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전신의 감각이 외치고 있다. 지금의 보이드는 내가 알고 있는 보이드가 아니라고.
육체가 조금 젊어지고, 갈기갈기 찢어졌던 코어가 회복된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드의 내면에서 좀 더 극적이고 이해불가한 변화가 발생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보이드가 요란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는군. 그대를 향한 증오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보이드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지금의 말은 조금 이상했다.
스스로의 이름을 다른 사람 이름 부르듯이 표현하고 있다.
"그대의 말처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육체는 보이드라고 불리는 인간의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코어를 수복하면서 여러 가지로 손을 보았지."
지금의 보이드는 전혀 다른 존재에게 육체를 빼앗긴 상태로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현상을 자주 보았다. 스페트로에게 침식 당했던 란즈 가주, 광기에 의식을 잡아 먹혔던 요하네스.
나의 몸을 차지한 백신아 또한 원리로 따지면 크게 차이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보이드의 육체를 빼앗은 거냐?"
"빼앗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다소 수단이 강압적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또한 그의 내면에 존재하던 욕구에 의한 결과이니까."
"욕구……, 라고?"
"그렇다."
보이드의 얼굴이 살짝 움직였다. 몸을 틀어서 나를 돌아본다.
"이 인간은 이미 수많은 실패를 통해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코어는 파괴되었고, 그의 육체는 이미 수명의 한계를 거의 눈앞에 둔 상태였지."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보이드는 검왕의 시대를 살았던 인간. 그의 실제 나이는 세 자리수다.
코어가 부서지기 전에는 육체를 수용액에 실어서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분신을 내보내서 활동했지만, 그것도 나와 백신아에게 패배한 시점에서 끝을 고했다.
그의 코어는 파괴되었고, 육체의 노화를 늦출 방법은 없다.
보이드가 나아갈 길은 오래 전에 끊어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인간의 안에도 하나의 욕구는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그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지."
"내게……, 복수라고?"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 들렸다.
복수, 그것도 나한테.
"그렇다. 그 이외에도 질투나 시기 등 여러 가지 조그만 감정이 출력되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모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지."
보이드의 검지 손가락이 천천히 들린다.
"이 나를 패배시키고, 코어를 부수고, 검왕검마저 빼앗아간 남자."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보이드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강한 증오가 가감 없이 흘러 나왔다.
수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보이드의 진짜 감정이 한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바로 그대다. 천변무궁류의 계승자, 백신현이여."
"뭐라고?"
어이가 없었다.
뻔뻔한 데에도 정도가 있지.
가만히 있던 연금술사를 습격해서 검왕검을 빼앗으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내게 복수하겠다고?
보이드의 처지는 자업자득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스스로의 분에 맞지 않는 힘을 갈구한 끝에 놈은 선을 넘었고, 그 결과 모든 것을 잃고 진창에 처박혔다.
보이드를 그 꼴로 만든 건 보이드 자신이었다.
녀석에게는 여러 가지 길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보이드가 제대로 된 단계와 절차를 거쳐서 나를 찾아오고, 내게 제대로 보수를 지급하고 검왕검을 양도 받으려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내가 검왕검을 그에게 넘겼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때의 내게는 검왕검을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희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잘 풀렸다면 보이드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검왕검을 획득할 수도 있었다.
이외에도 길은 많았다. 거래, 교섭, 대여.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 있었던 길이.
그런 길을 거부하고 함부로 폭력을 쓴 건 보이드 쪽이다.
선생님을 습격하고, 내게 검을 휘두르고.
그 결과, 보이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의 그는 그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이 육체의 원래 주인이 가슴에 품고 있던 유일한 욕망이었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 하지만 이 인간이 품은 그 거무칙칙한 감정이 나를 이 자리로 끌어들였다."
현재, 보이드의 육체를 차지한 '그 존재'는 흡족한 듯 웃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이미 이 인간의 몸에는 이백 년 전에 나의 '파장'이 새겨져 있었다는 점. 어설픈 형태로나마 내 존재를 함부로 입에 담았다는 점. 그리고…… 내 시선을 끌어당길 정도로 강렬한 질투와 상실감을 품고 있었다는 점."
보이드의 얼굴을 한 남자가 두팔을 좌우로 펼쳤다.
그저 그뿐인 행위에 거무칙칙한 마력이 크게 부풀려진다.
남자의 등뒤로 거대한 흑익??이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그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