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20. 리벤지 (7)
* * *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루이스와 파비아는 서로 붙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루이스가 파비아의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은 상태다. 파비아의 티셔츠가 살짝 들려서 살집이 있는 배꼽이 살짝 보인다.
"아, 사제!"
파비아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기뻐하며 반겼다. 내가 나가 있던 시간이래봐야 10분도 채 되지 않는데, 호들갑이 심하다.
그래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도 최근 들어서 눈치챈 건데, 나는 파비아처럼 순수하게 호의를 보내는 상대에게 약한 경향이 있다.
파비아는 샤를로트와 함께 내 지인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에 가까운 인간이다.
나도 그다지 깨끗한 인간은 아니라서 쟤네들을 대할 때마다 뭔가 기분이 좀 요상해진다. 너무 눈이 부셔서 시선을 맞추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와서 앉는다. 연금술사는 침대 위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었다.
보이드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는 전원에게 공유했다.
루이스는 납득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오늘, 네가 보이드를 찾아갔던 게 뭔가 문제를 일으킨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보이스가 자취를 감추는 건 이상하잖아."
"아마도 그렇겠지."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
오늘, 내가 보이드를 찾아간 것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를 자아냈고, 그 결과 놈의 실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경우 가장 의심스러운 건 보이드가 입에 담은 '바깥의 존재'다.
연금술사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바깥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하지만 지금은 그 '바깥의 존재'라는 것이 악마와 비슷한 존재라고 가정해보도록 하자."
그녀가 검지를 든다. 그 손가락 끝에 나와 루이스, 파비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행성에는 우리가 있는 물질계 이외에도 수많은 이계??가 겹쳐져서 존재하지. 악마는 그 중에서도 특히 물질계와 가까운 이계에서 서식하며,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정신체를 분류하는 표현이야."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정신체가 악마라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행동하지 않고 정해진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정신체는 천사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종교적인 이유가 존재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금술사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악마들은 절대로 혼자만의 힘으로는 물질계에 간섭할 수 없어. 그래서 온갖 수단으로 인간을 유혹한 뒤,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해서 그 육체를 탈취하지."
그런 의미에서 스페트로 또한 악마로 분류할 수 있다. 놈은 육체가 없는 정신체이며,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스페트로의 피를 이어 받은 혈족의 육체를 탈취할 수 있다.
그 힘, 행동력, 그리고 특성까지.
스페트로는 악마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었다.
"어쩌면 보이드도 그런 상황일 수 있어. 보이드는 이미 검왕검을 제작하던 당시, '바깥에서 온 파장'과 접촉하면서 '바깥의 존재'와 연결 되었다고 했으니까."
보이드는 그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매개체로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이드는 그 존재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최대한 돌려 말하는 식으로 표현을 회피했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위험한 행위였던 것일까.
보이드는 이미 '바깥의 존재'와 연결되어서 감옥을 빠져 나갔을까.
"일단 보이드를 찾아서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어요. 가설에 가설을 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보이드를 직접 만나서, 놈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실종된 보이드. 하지만 보이드를 찾아내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보이드의 고유한 마력 파장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교도소의 사람들은 쓸 수 없는 방법이다. 감옥에 수감된 시점에서 보이드는 이미 코어가 파괴된 상태였다. 마력의 파장을 기록하고 싶어도 기록할 수가 없다.
코어가 없는 보이드는 마력을 쓰지 못하는 나약한 노인에 불과하니까.
종이를 하나 가져와서 그래프를 그리고 그 자리에 보이드의 마력 파장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순수한 암기는 아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력의 파장에 보이드와의 전투의 수순을 복기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계산으로 채워 나간다.
보이드의 마력 파장은 10분도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추적술을 쓰면 사라진 보이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놈의 코어는 오래 전에 파괴되었지만 보이드가 교도소에서 빠져 나갔다는 건 모종의 이유로 코어가 회복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추적할 수 있다.
연금술사가 칠판에 있던 식을 지우고 다시 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표적의 마력 패턴을 진의 중앙에 기록하면 그 좌표를 나타내주는 그녀의 추적술이다.
"……."
나는 팔짱을 낀 채 추적술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확률은 반반이다.
보이드가 모종의 이유로 코어를 회복해서 스스로 빠져 나갔다면 추적술에 걸릴 것이고, 놈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보이드를 탈출시킨 거라면 걸리지 않겠지.
그리고 바로 그때, 마법진의 어느 지점에서 새하얀 빛이 점멸했다.
추적에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연금술사가 고개를 돌렸다.
"충분히 준비한 다음 찾아가보자. 전투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 * *
상의를 벗고 각 관절에 붕대를 감았다. 그 다음에는 장비를 체크. 준비를 하나씩 마칠 때마다 몸을 돌려서 칠판의 마법진에 주목했다. 보이드는 여전히 조금 전의 그 위치에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있잖아요, 검주.』
그때 백신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였다.
나도 장단을 맞춰서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어, 왜 그래?'
『검주, 보기보다 제법이네요.』
백신아가 휘파람을 분다. 물론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 하지 못하고 있다.
'뭔 소리야?'
『그 할배가 검주보고 '사위'라고 불렀을 때 있잖아요. 부정하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거든요.』
'……아, 그거? 하지만 부정하기도 애매하잖아. 내가 선생님의 안에 싸지른 게 몇 번인데.'
지금은 그다지 그럴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 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 상대는 연금술사와 루이스, 그리고 파비아가 되겠지.
……와, 이렇게 말하니까 나 되게 나쁜 놈 같은데.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야.
하지만 밤새도록 그렇게 뒤엉켜서 잔뜩 해댔는데 이제 와서 모르쇠 하는 것도 좀 웃긴 일이고.
어떻게든 되겠지, 뭐.
"신현아."
"네, 선생님."
바로 그때 전투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연금술사가 나를 불렀다.
"그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사람……? 진 노인이요?"
"응. 지금은 네게 살갑게 굴지만 그건 모두 기만이거든. 그 사람은 속에 너구리가 천 마리는 들어있는 영감이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그거야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사가 그 어린 나이에 가출을 선택한 것도 진 노인과 가문의 방침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그녀의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너를 사위라고 부른 이유도 네 무력이 탐이 나서겠지.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필요 없어."
"사위?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 소리를 들었는지 루이스가 짧은 반바지의 버클을 고정하면서 다가왔다. 급하게 다가왔는지 버클의 고정이 조금 느슨하다.
"할아버지. 그 사람이 찾아왔었어. 신현이가 가면 검사라는 걸 알고 관심을 가진 모양인데…… 그다지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도 신경 쓸 생각 없고."
"어, 그러니까 신현이를 사위 삼으려고 했다고요?"
"응."
"……."
연금술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들은 루이스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원래는 어제 찾아올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너도 알다시피 어젯밤에는…… 바빴잖아. 너도, 나도. 그리고 신현이도."
"으, 그럼 저희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게 그 할아버지에게 알려진 거예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루이스가 입술을 우물거린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조금 붉어졌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시선를 아래로 천천히 떨어트린다.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냐. 애초에 난 본가하고 연 끊은 지 좀 됐고, 그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생각도 없으니까."
연금술사는 단호한 태도였다. 내가 진 노인과 엮이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것 같다.
"난 너희들의 짐이 되기 싫은걸. 난 어른이고, 너희들은 어린애니까."
"어린애는 무슨, 저희도 이제 스물다섯이거든요?"
루이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반발했다.
이제는 어리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가 몇 살을 먹어도 연금술사의 눈에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나보다.
그 점은 나도 조금 불만스럽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짝 찔러볼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선생님."
"응, 왜 그래? 신현아."
"제가 사위로 들어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건, 그 할아버지의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거죠?"
"……응. 네 앞에서는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지만, 저 사람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건 틀림없어."
그녀의 말처럼, 내가 진 노인을 나쁜 사람으로 판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말은 믿는다. 그녀의 말을 믿어서 크게 손해본 기억은 없으니까.
"그럼, 만약 진 노인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요."
"나쁜 사람이야."
"그러니까 만약에요, 만약에. 어디까지나 가정이에요."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만약에 그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때도 선생님은 제가 사위로 들어가는 걸 반대 하셨을까요?"
"……."
"그게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갑자기 연금술사의 입술이 닫혔다.
보기 드문 침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