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82화 (182/287)

〈 182화 〉 20. 리벤지 (6)

* * *

'사위'라.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말이 못 나올 것도 없었다.

진 노인은 연금술사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한 그때부터, 연금술사의 거주지 근처에 감시자들의 눈을 뿌려 두었으니까.

그때 연금술사는 감시자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그것을 꺼림찍하게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과시를 하듯이 내게 달라 붙었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 진 노인도 나와 연금술사의 관계를 거의 다 알고 있겠지.

지금은 진 노인도 감시자를 보내는 걸 포기했다. 감시자를 보내는 족족 나와 루이스에게 제압 당해서 쫓겨 나가는 판이라 별 효과를 보지 못했거든.

진 노인이 조금만 더 뚝심 있게 감시자 체제를 유지했다면 훨씬 이른 단계에 가면 검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진 노인이 계속 감시자 체제를 유지했다면 나도 다른 방식으로 플랜을 세웠을 테지.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하는 소리다.

……아무튼, 그래.

결국 진 노인이 나를 사위라고 표현하는 게 그다지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진 노인와 시선을 맞췄다.

"사위라. 그렇게 부르고 싶으시다면 마음대로 부르세요."

"……."

진 노인하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오히려 연금술사가 깜짝 놀란다.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려서 나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그래, 그럼 그렇게 부르겠네. 사위."

"예고 없이 찾아오신 이유를 좀 묻고 싶은데요. 가면 검사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고."

진 노인이 카카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가면 검사는 외팔이인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자네는 팔이 두짝 다 있었거든."

내가 왼팔을 잃어버렸을 때, 진 노인은 이미 모든 감시자를 철수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경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나와 파비아가 빈집촌에서 파쿠르를 하면서 회피했던 함정들은 감시자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서 설치해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요하네스 군과 맞서는 자네의 모습을 본 그 순간, 이 친구가 바로 자네의 정체를 눈치챘지. 자네의 모습과 가면 검사의 움직임이 겹쳐져서 보인다면서."

진 노인이 고개를 돌린다. 그 위치에는 키가 큰 남자가 서 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키와 덩치다.

즉, 그 남자 또한 제1위와 마그누스처럼 마력 없이 단련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 영역에 도달해 있다는 의미다.

그는 진 노인의 직속 경호원이었다. 올리비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때 중동의 지하 격투계에서 넘버 원이었던 남자.

그런 인물이 어떠한 경위로 진 노인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불명이다.

"이보게, 사위. 도대체 어느 새 실력을 그렇게 높인 것인가? 자네의 실력은 딱 홍 기룡 그 친구하고 비슷한 수준이었을 텐데……, 아니면 그때는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겐가?"

"비밀이죠. 함부로 말씀 드릴 수는 없잖습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진 노인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오히려 큭큭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아이샤. 남자 보는 눈이 훌륭하구나. 이 정도라면 사내라면 나도 허락하마."

"상관 없어. 애초에, 허락이 필요한 문제도 아니고."

연금술사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꽤 오래 되긴 했지만 그녀는 가문의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가출한 처지였다.

그녀는 십대 시절에 가출을 했으니까, 거의 20년 가까이 본가에 돌아가지 않은 셈이다.

"하긴, 벌써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 어젯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찾아갔다가 포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니까."

뭐야, 그럼 어제 나하고 연금술사가 욕실에서 그 짓을 하고 있을 때 찾아왔었다는 거야?

부끄럽지는 않지만,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크흠 하고 헛기침 소리를 냈다.

"매일 밤 아이샤를 아껴주는 데다가 그 실력도 그 천하제일의 무적자, 요한 군과 호각을 다툴 수 있는 수준이라니……, 나는 자네가 매우 자랑스럽다네. 사위."

"……제가 가면 검사인 건 확인하셨으니까, 이제 좀 돌아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

그때, 진 노인의 표정이 변했다.

짧디 짧은 한 순간의 급변이었다.

"어제였다면 내 볼일은 끝난 셈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네. 아직 자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

"제게 전하지 못한 일이라 함은……?"

"사실…… 자네가 가면 검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직후 사람을 풀어서 자네들의 뒷조사를 조금 했네. 듣자 하니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보이드라는 범죄자를 체포한 것도 자네와 루이스라는 어린 처자였다지?"

"그렇습니다. 그 보이드에게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있네. 아니, 있었지."

과거형이다.

보이드를 보기 위해서 교도소로 찾아가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지금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에 불과하니까. 그의 존재만 알고 있다면 면회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 보이드라는 친구에게 물어보면 사위가 될 남자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돈을 써서 빠르게 그 친구와 면회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했네."

진 노인이 보이드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오늘 낮에 보이드를 찾아갔었으니까.

보통 본인이 감옥에 처박은 범죄자를 찾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 점에서 진 노인은 의문을 느꼈겠지. 그리고 나와 보이드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눈치채고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찾아갔을 때 그 친구는 이미 독방에서 모습을 감췄더군."

뭐라고?

지금, 보이드가 뭐?

"보이드가 모습을 감췄다고요?"

"그렇네. 실종되었어. 어쩌면 탈옥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그건 좀 말이 안 돼. 자네도 알다시피…… 그 친구는 지금 코어도 완전하지 못한 상황이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 자식을 교도소에 처박기 전에 코어를 파괴해 두었으니까요."

그리고 코어가 없는 사람이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교도소의 보안은 무르지 않다.

명백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사실 이것이 자네를 찾아온 진짜 이유일세. 그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자네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런가. 보이드의 실종이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그의 표적은 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의 긍지를 부수고, 코어를 파괴하고, 감옥에 처박은 것은 바로 나와 백신아니까.

"그래서 이 늙은이 생각에는…… 자네가 잠시 이 도시에 남아서 그의 행방을 추적해보는 게 어떨까 싶네. 불안한 요소가 있다면 그게 더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해. 물론 판단은 자네 나름일세."

"아뇨, 제 생각에도 그게 맞습니다."

나는 담백하게 진 노인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연금술사와 시선을 맞춘다.

연금술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이드가 스스로의 손으로 탈옥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다.

"음,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구나. 이 늙은이가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했다."

진 노인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를 살짝 쏘아보며 몸을 돌렸다.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보시죠. 저희도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움직이겠습니다."

"잘 해결되기를 빌겠네."

그리고 진 노인은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순간적으로 경호원이 진 노인을 데리고 자리에서 이탈한 것 같다. 동체시력으로는 쫓을 수 없는 속도였지만 천변무궁류의 감각이 이야기하고 있다.

"쓸데없이 참견하기는."

연금술사는 진 노인이 사라진 자리로 혀를 쭉 내밀고 있었다.

* * *

"잠시만! 잠시만요!"

나는 진 노인이 사라진 후, 호텔 라운지에서 숙박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또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와 연금술사의 머리통이 동시에 움직인다.

라운지 바깥에서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 높이에서 자른 소녀가 뛰어 오고 있었다. 제3위의 특급 모험가 스텔라.

액면가만 보면 나보다 연하지만 실제로는 연금술사와 동년배다.

그녀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저기, 그, 그 소식 들으셨어요? 보이드라는 죄수가……"

"……실종됐다죠. 그런데 그쪽은 보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스텔라는 보이드를 둘러싼 사건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마그누스에게 전해 들은 걸까?

"조금 전에 마그누스가 입원한 병실에 경찰 관계자가 찾아 왔었어요. 그리고 마그누스가 이쪽의 교도소에 이감시켰던 범죄자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죠."

역시, 경찰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마그누스를 통해서 전해 들은 모양이다.

실제로 마그누스는 제피로스에 수감되어 있던 보이드를 이쪽의 교도소로 이송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나도 그에게 보이드를 둘러싼 사건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저는……, 마그누스에게 부탁 받아서 여러분에게 그 정도를 알려 드리기 위해서 온 건데……"

"저희도 다른 경로로 전해 들었어요.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스텔라가 허리를 굽히고 달려온 길을 다시 돌아간다. 저 여자는 이제 거의 마그누스의 비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제3위인 주제에 묘하게 마그누스를 따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있잖아. 신현아."

"네."

숙박 기간을 더 늘리고 대금을 지불한 뒤, 로프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그 동안 연금술사는 내게 팔짱을 끼고, 체중을 거의 맡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워낙 가벼운 사람이라 그다지 무게감은 없다.

"내가 보기에 보이드가 스스로 탈옥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런 게 가능했다면 훨씬 오래 전에 감옥에서 탈출했겠지. 그리고 코어도 아직 부서져 있는 상태였잖아."

"그렇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코어가 수복되면 티가 나는 법이다.

나는 천변무궁류의 특성상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코어의 마력 반응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보이드는 여전히 코어가 부서진 상태로, 기초적인 수준의 마력조차 다룰 수 없는 다 늙어빠진 노인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뭘까.

내게 체중을 기댄 연금술사가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내 생각에는, 보이드가 입에 담았던 '바깥의 존재'라는 단어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