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20. 리벤지 (4)
* * *
나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서 연금술사를 주목시켰다.
"하지만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는데요."
"응."
"보다시피 이 기술은 제 코어를 건드리는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기술을 썼을 때 선생님이나 루이스, 파비아의 코어에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닮은 것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마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내가 검왕검에서 새어 나온 검은 마력에 침식 당한 그때, 연금술사는 나와 같은 고통을 느꼈고 루이스 또한 고통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나와 몸을 섞은 세 명의 여인은 내 코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영향을 직격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지금의 기술을 구상만 하고 제대로 시험하지 못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연금술사가 지적했듯 이 기술은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는 기술이고, 효과의 대상은 코어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위험한 기술을 함부로 시험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검증한 후 실험을 하고, 실전에 투입해도 모자라지 않은 상황인데……, 보다시피 나는 검왕검을 획득한 이후 반년 가까이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조금 여유가 찾아온다 싶으면 또 다른 적이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으니까. 싸우고 나서 쓰러지고, 또 다시 싸우고 나서 쓰러지고.
내가 근 반 년 동안 혼수 상태로 지낸 기간을 다 합치면 한 달은 족히 될 거다.
느긋하게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기회가 될 때에 한다. 그런 식으로 미뤄두기에는 이제 슬슬 여유가 없다.
조금 전 보이드와의 대화가 계기가 되었다.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서둘러 새로운 힘을 이 손에 틀어쥘 필요가 있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에게 크게 문제가 벌어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가요?"
"응. 서로 닮은 것끼리 영향을 끼치는 건 마법의 기본 원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적 차원에서의 문제. 물리적으로 코어에 발생한 문제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워."
침대에 드러누운 연금술사가 내 팔뚝을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구상하고 있는 기술은 물리적으로 코어를 만지는 기술이니까……. 그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희박해. 물론, 그 기술이 시작되면 조금 압박감을 느끼긴 하겠지. 코어의 출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테니까."
그러나 연금술사는 꼼꼼하게 주의사항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 본격적으로 기술을 연구하기 전에, 출력 상한을 낮춘 상태에서 한 번 효과를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해야 찝찝하지 않을 거 같으니까."
"알았어요. 상담해주셔서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그것보다도."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연금술사가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가 떨어진 위치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한손으로 받아서 품에 안는다.
"마침 네가 여기에 칠판을 가져다놨으니까, 저걸 가지고 기초 이론을 만들어볼게. 요즘 들어서 다른 일이 워낙 많아서 잠시 쉬고 있었지만, 코어의 강화와 출력 증대는 오래 전부터 해오던 연구였거든."
그 말은 처음 듣는데,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연금술사와 지금처럼 24시간 내내 붙어다니기 시작한 건 최근 반 년 사이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나도 직장이 있었고, 연금술사와는 생활 패턴이 아예 달랐으니까.
반 년 전의 나는 말 그대로 그녀가 필요할 때 찾아가서 도와주는 조수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그녀와 반동거 상태로 지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이유로 나도 그녀의 모든 연구를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일부러 그 연구를 숨기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어, 저 때문이에요?"
"응. 너는 유능한 조수였지만, 마력을 쓰지 못해서 한계가 있었잖아. 내가 잘 연구해서 네게 코어를 준다면 더 유능한 조수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지."
연금술사는 그다지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내게도 코어의 생성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조금 벽에 막히기는 했지만, 아주 무의미한 연구는 아니었어. 코어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니까."
"저도 인공적인 코어의 생성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나쟈의 핵을 찾아다닌 거니까요."
연구 중 사고로 대학에서 제명된 교수를 찾아가서 도움을 부탁하고, 연구 시설과 거주할 곳을 제공하고──── 결국 배신 당하고 갈라섰지만─── 최종적으로 나쟈와 부딪쳐서 그 머리를 뜯고 핵을 획득했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솔직히 좀 어렵다.
코어가 없는 사람의 육체에 코어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를 흡수할 필요가 있는데, 인공적인 기술로 그런 물질을 생성한 예는 저 멀리 소림사에서 제작한 대환단 정도가 고작이다.
그녀가 아무리 대단한 과학자라도 자본의 문제, 그리고 연구 시설의 한계로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연구 성과는 원래 자본에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내 품에 안긴 연금술사가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네게 처음부터 코어가 있었더라면, 내 가르침으로 꽤 훌륭한 마법사가 되었을지도. 너는 싸움꾼보다는 마법사에 어울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진짜요?"
"응. 눈치가 좋고, 침착하고 머리 회전이 뛰어나지. 원래 마법사는 팀에서 제일 침착한 사람이 맡아야 하거든. 후방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조율해야 하니까. 전사들은 피를 보면 흥분하기 쉽잖아."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쩌다 보니 잡은 검이 적성에 맞아서 계속 쓰고 있지만, 내게 마력이 있었다면 연금술사의 제자로 들어간 그 시점에서 진로를 틀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나는 마법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지.
천변무궁류 또한 무?보다는 마법에 가까운 계통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검을 휘두르는 행위에 재미를 붙인 상태고, 천변무궁류의 검사라는 사실에 깊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
천변무궁류를 보조하는 역할로 마법을 쓰게 될 가능성은 있지만 아예 진로를 틀어버릴 일은 없지 싶다.
"하지만 음, 지금의 너도 나쁘지 않아. 천변무궁류는 재미있는 계통의 검술이니까. 네가 빠지는 것도 이해는 되고."
연금술사가 내 팔에서 내려와 바닥에 두 다리로 섰다. 마침 그때 욕실의 문이 열렸다. 머리에서 김을 모락모락 뿜으면서, 루이스와 파비아가 나왔다.
"나머지 이야기는 네가 씻고 나온 다음에 할까."
"네."
고개를 끄덕였다.
* * *
"……."
샤워를 하고 나서 머리를 꼼꼼하게 닦은 뒤 거실로 나왔다.
연금술사는 칠판 앞에서 쉴 새 없이 검은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루이스도 관심이 생겼는지 연금술사의 옆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중이다. 파비아도 구경은 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 하지 못하는 얼굴. 오히려 살짝 따돌려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표정이 조금 우울하다.
칠판에는 사람의 신체 해부도가 그려져 있고, 마력의 흐름에 따라서 각 신체 부위가 어떠한 형태로 자극을 받는지 글로 적어서 표현했다.
"백신현 너, 이런 무식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무식하다……, 까지는 아니지 않나? 오히려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식한 거 맞잖아. 이건 잘못 쓰면 모처럼 얻은 마력이 모조리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루이스가 길쭉한 지시봉으로 심장 근처에 있는 코어의 그림을 가리켰다.
사람마다 코어의 위치는 제각각이고, 나의 코어는 심장의 오른쪽에 존재했다.
보통은 명치 아래에 코어가 있는 게 일반적이다. 연금술사, 루이스, 파비아 전원이 그렇다.
"결국 네가 하려는 건 코어와 외부의 경계를 무너트려서 코어의 한계를 없애는 기술이야. 무학에서 설명하는 천지교태????의 경지를 물리적으로 이루겠다는 소리잖아."
천지교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더해져서 하나가 되는 상황을 표현한 단어이다.
무학의 영역에서 그 경지는 코어와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의 경계가 무너지고, 천지간에 존재하는 마력과 합일하는 개념이다.
코어는 대기 중의 마력을 흡수해서 사용자의 육체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마력을 정제하는 기관이다.
코어와 대기 중의 마력의 경계가 없어진다 함은 마력의 한계가 사라지고 한 없이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고, 그렇게 손쉽게 무한의 힘이 손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제어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마력에 불과하다. 또한 스스로의 육체와 코어가 버텨주지 못하면 그 마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육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제약에 의해 다룰 수 있는 마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출력이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전투 지속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마력을 소모할 때마다 코어가 대기 중의 마력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하니까.
내가 구상한 이론도 이러한 천지교태와 같다.
코어와 대기 중의 마력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무너트려서 마력의 총량과 전투 지속력을 늘리는 기술을 구상 중이다.
물론 연금술사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의 내 코어의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탓에 인공적으로 천지교태의 경지를 재현하더라도 출력의 상승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무의 본질은 극기?己.
인공적인 수단으로 손쉽게 상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나의 유파는 천변무궁류,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는 검술이다.
코어의 마력과 대기 중의 마력의 경계가 사라진다면 나의 천변무궁류가 제어할 수 있는 마력의 범위가 아득히 넓어진다.
즉, 검 끝에 아주 미약한 마력의 흐름이 걸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인지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의 흐름을 더 확실하고 신속하게 붙잡을 수 있다.
비약적인 전투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나의 고질적인 약점인 출력 문제가 해결될 뿐만 아니라, 천변무궁류 그 자체의 완성도 또한 일시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코어와 대기 중의 마력 사이의 경계가 사라졌다 함은, 나 자신이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 그 자체와 일체화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천변무궁류와의 상승효과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궁극의 힘을 손에 쥘 수 있다.
"문제는 그 천지교태의 경지 자체가 코어를 아득히 오랜 시간 동안 단련한 끝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무학의 최상승 경지라는 점이야. 제1위나 마그누스 대장조차 그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 기나긴 무학의 역사 속에서도 두세 명 정도밖에 이루지 못한 경지라고."
루이스가 검지를 들어서 내 심장, 정확히는 그 옆의 코어를 가리켰다.
"지금의 네 수준으로 함부로 코어를 만지면 모처럼 손에 넣은 코어를 다시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있어. 어마어마한 부담이 걸릴 거야. 편법으로 도달한 경지는 틀림없이 네 몸을 해치게 되어있다고."
검지 손가락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내 코어가 있는 위치를 살짝 찌른다.
"운이 좋다면 한 몇 달 정도 코어의 기능이 정지하는 정도로 그치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잖아. 그렇지?"
"나도 마구잡이로 휘두를 생각은 없어. 이건 그저, 어디까지나 지금의 너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이 나타났을 때 맞서 싸우기 위해서 구상한 기술이니까. 죽느냐 사느냐,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준비해두려는 거지."
루이스가 제시한 불안 요소를 나라고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코어를 잃는 것과 목숨을 잃는 것. 둘 중 어느 쪽의 대가가 무거울까.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온 그때를 위해서 기술 한두 개 정도는 준비해두는 게 맞지 않을까.
"……너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하지만 문제점은 그 뿐만이 아니야."
루이스의 시선이 스윽 움직인다.
위에서 아래로, 지금은 벽에 비스듬히 기댄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검왕검을 바라본다.
"천지교태의 경지와 천변무궁류. 양측의 상승 효과는 아마 무시무시한 수준일 거야. 천변무궁류를 겉햝기 정도밖에 모르는 나라도 그 위력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 하지만 말이야."
루이스가 어울리지 않게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말문이 막힌 건 아니고, 표현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이 몹시 조심스럽다.
"그 상태의 출력을 검왕검이 견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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