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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78화 (178/287)

〈 178화 〉 20. 리벤지 (2)

* * *

마그누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돌아갈 생각이냐?"

"네, 그래야죠. 너무 오래 비워두기도 그렇잖아요."

"나도 몸이 다 낫고 나면, 찾아가서 의뢰비를 마저 지불하마. 니르바나 사원의 출입권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킬 테니까."

"쾌차하세요. 의뢰 할 게 있으시면 연락하시고요."

"음. 조심히 돌아가거라."

마그누스가 손을 흔든다. 스텔라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저 두 사람은 아주 세트로 붙어다닐 생각인 거 같다.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이겠지만, 본인들이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하지만, 마그누스가 제1위외 큰 시합을 벌인 데다가 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도 그의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별거 중이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몇 가지 좋지 않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것은 나의 나쁜 버릇이다. 불길한 가능성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면, 비탈길을 구르는 스노우볼처럼 좋지 못한 생각만 뭉게뭉게 피어오르곤 한다.

오른주먹을 쥐고 머리를 쿵쿵, 가볍게 두드리면서 괜히 떠오른 이상한 생각들을 하나둘씩 잠재웠다.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한 번 마그누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병실을 나왔다.

괜찮을 거다. 저렇게 보여도 꽤 강인한 사람이니까. 잠시 방황은 하겠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최소한 내가 걱정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사제사제, 끝났어?"

"응. 이제 여기에서 볼일 몇 개만 더 보고 돌아갈 준비를 하자."

내가 병실에서 나온 그때 루이스와 함께 있던 파비아가 가까이 다가왔다. 파비아는 마그누스의 얼굴만 아는 사이다. 그런데 굳이 나를 따라 나와서 외출한 건 그저 파비아의 성격 자체가 폐쇄된 곳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비아는 이제 나의 볼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산책하자고 조르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몇 가지의 볼일이 남아 있었다. 산책은 용건을 모두 끝낸 다음이다.

"그럼, 사제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음, 일단 보이드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 가야 해."

"보이드으?"

"응. 어쩌면 파비아 네 기억에도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녀석은 검왕검의 제작에 참여했던 스탭이었으니까."

파비아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예 모르는 반응은 아니다. 알고 있는 걸 떠올리려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검왕의 제자 파비아와 검왕검의 제작 스탭 보이드. 서로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 너무 고민하진 마. 네가 떠올려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까."

기억이라는 게 떠올리라고 해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이드에 대한 건 추후 '또 한 사람의 파비아'가 눈을 떴을 때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지금의 파비아를 너무 괴롭힐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자, 파비아는 오히려 살짝 심통이 난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사제, 사제는 혹시 나를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물론 이건 농담.

파비아가 진짜로 어린애라고 생각했다면, 함께 밤을 보내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갑자기 파비아를 놀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짝 웃으며 대답했더니, 파비아가 내 팔뚝을 물었다. 하지만 위력은 세지 않다. 이빨도 쓰지 않고, 입술만으로 우물거리는 것이기 때문에 약하게 꼬집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제가 나를 신경 써주는 건 좋지만, 너무 어린애처럼 대해주면 싫어."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할 거까진 없는데……"

파비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말한다.

아니, 그러면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 꼴이 재미있어서 살짝 웃었다.

파비아는 여전히 토라진 얼굴이라 귀를 만져주며 살살 달래준다.

파비아를 어린애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솔직히 연하로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 건 맞다. 실제 나이는 나는 물론이고 연금술사보다도 연상이지만, 솔직히 지금의 파비아를 연상으로 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갑자기 연상으로 대우하더라도 파비아가 놀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파비아는 지금의 관계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시험 삼아 "사저"하고 불러봤는데, 파비아는 그게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비아가 그럼 그렇지.

* * *

수도의 외곽에는 일대의 죄수들을 수감 중인 교도소가 하나 있다. 그리고 보이드 또한 여기에 갇혀 있다. 얼마 전 마그누스의 인도에 의해 그는 제피로스에서 수도의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 위험성과 반사회적 성향 때문에 구속복으로 칭칭 감아서 독방에 감금되어 있다던데, 모처럼 수도에 올라온 김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마그누스의 의뢰를 수행하던 당시에는 그쪽에 집중하느라 교도소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수도의 교도소가 대단하긴 하다. 제피로스에 있는 교도소와 비교해도 높이와 너비가 몇 배는 된다. 하지만 이건 그 정도로 이 일대가 범죄자로 충만하다는 의미다.

교도소는 커서 좋을 게 없는 건물이다.

"……좀, 으시시해."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대부분 너보다 약하거든."

파비아는 교도소에 입장한 그 순간부터 몸을 벌벌 떠는 기색이었다. 루이스는 그런 파비아를 진정시켰다.

루이스의 말처럼 이 교도소에 파비아보다 강한 죄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파비아의 전투 능력은 낮게 잡아도 특급에 영역에 있으니까.

특급은 특수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특급이라고 불린다. 그 숫자는 대륙 전체에 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

파비아가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루이스의 말을 들어도 파비아는 여전히 진정 하지 못하는 얼굴이다. 원래 성격 자체가 경계심이 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 같았다.

바들바들 떨리던 파비아의 두손이 내 오른손을 꽉 틀어쥐었다. 마력은 쓰지 않았지만 완력 자체가 워낙 강력한 탓에 오른손이 살짝 저리다.

떼어내고 싶었지만, 파비아는 나와 손을 잡고 있을 때 큰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파비아에게 오른손을 붙잡힌 채 앞으로 걷는다.

"면회 시간은 총 30분입니다. 죄수를 자극하지 않게 조심해주십시오."

"네."

우리를 보이드가 있는 독방까지 안내한 교도관이 경고를 주고 나갔다.

오늘의 스케줄은 처음부터 준비했던 스케줄이다. 원래, 교도소의 죄수를 면회하고 싶다면 찾아오기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하니까.

보이드를 체포한 건 나와 루이스다. 면회를 밟기까지의 절차는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좁은 면회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보이드는 구속복에 묶인 상태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붕대로 구속되어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풀어져 있는 것이 눈과 입이었다.

"크……, 크크…… 누구인가 했더니. 그 애송이였나……."

"잘 지냈냐?"

보이드는 내가 구르제스에서 해신을 쓰러트리고 돌아오는 동안 이쪽 교도소로 이감되어 있었다.

스페트로의 탈옥에 보이드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제피로스의 교도소는 정신 병원 취급이라 다른 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볍게 운동장을 돌아 다니는 정도의 생활은 가능했지만 수도의 교도소는 지방의 교도소와 비교할 게 못 된다.

상당히 빡빡하고 구속력도 높다.

"오랜만에 수도에 올라올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잠시 들려봤다."

"……그뿐만이 아니겠지."

보이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어제, 나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충돌을 감지했다. 그것은 코어가 부서져서 마력을 감지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한 내게도 전달될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어. 내 예측이 맞다면…… 그 충돌에는 너희들이 관여를 했을 가능성이……"

"그래서? 지금의 넌 이제 내게 있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존재야.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오랜만에 당신의 꼴이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고 싶었던 데다가……, 내 사저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줬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사저.

그 단어에 보이드가 눈에 띄는 반응을 보였다.

"사저……, 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그때 보이드의 시선이 내 손을 꽉 틀어쥐고 있는 파비아의 얼굴을 향해 움직였다. 파비아는 시선이 마주친 순간 몸을 흠칫 떨면서 내 뒤에 숨엇지만, 보이드의 시선은 여전히 파비아를 쫓고 있다.

"……? 뭐야, 그 얼굴은…… 설마……?"

보이드는 파비아의 얼굴을 본 그 순간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낀 듯 눈을 찌푸렸고, 조금씩 그의 눈이 크게 뜨이며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맙소사, 살아 있었단 말인가.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렀을 터인데."

"광증에 노출된 것이 파비아의 수명에 영향을 끼쳤거나, 그게 아니면 그 지하 공방 자체의 효과였겠지. 나는 내 사저를 구르제스에 있던 공방에서 발견해냈어."

"공방의 지하에 저 여자가 있었다고……? 아니, 공방에…… 그런 공간이 있었단 말인가……?"

"천변무궁류의 검사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기관 장치가 있더군. 그걸 작동시킨 순간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열렸고, 이렇게 사저와 만나게 되었다."

파비아의 어깨를 잡고 내쪽으로 살짝 끌어당긴다. 그 순간 파비아는 크게 놀랐지만 싫지는 않은 듯 나를 떼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구르제스에서 마주쳤던 검왕회의 정보에 의하면 보이드와 검왕회는 서로 협력하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천변무궁류의 요결에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방에 숨겨져 있는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럴 수가……! 중대한 비밀을 바로 곁에 두고서도,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보이드의 표정이 열패감으로 구겨진다.

그의 고개가 한 번 픽 숙여졌다가 다시 올라온다. 보이드의 시선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바라는 게 뭐냐. 어째서 날 찾아온 거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거의 다 넘겨줬을 터."

"말했다시피 네게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어. 내가 오늘 여기에 찾아온 건 사저에게 너를 보여줘서, 사저에게 변화가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

파비아를 돌아본다.

파비아는 호기심과 적의 이외의 감정을 보이드에게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다지 눈에 띄는 반응은 없다.

"유감스럽게도, 사저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지만."

내 볼일은 끝났다. 나는 루이스와 파비아를 돌아보며 보이드에게 또 다른 용건이 있을지 질문했지만, 두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럼 더 있을 필요가 없다. 파비아도 이 공간을 불편해하는 것 같고, 얼른 돌아가자.

"어이, 애송이."

"뭐지?"

"네놈, 그 왼팔은 의수로군."

"그래서?"

내가 등을 돌린 채 대답하자, 보이드가 입술을 비틀며 대답했다.

"네놈이 검왕검을 획득한 시기를 고려하면, 이제 슬슬 네놈에게도 '그 존재'가 찾아왔을 것이다. 틀렸나?"

"맞아. 그리고 쓰러트렸지."

"크크크……, 역시 그런가. 괴물 같은 놈. 그 짧은 기간에 검왕검의 시련조차 해치워 버릴 줄이야."

보이드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로써 너는, 새로운 절망의 문을 스스로의 손으로 열어 젓히게 된 것이다. ……절망과 마주하게 된 네 운명을 동정하마."

절망이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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