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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77화 (177/287)

〈 177화 〉 20. 리벤지

* * *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지고, 아침이 밝았다.

그 날의 오전은 엉망이 된 호텔방을 치우는 데 사용했다. 얌전히 욕실에만 처박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정신 없이 하다보니 호텔방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마그누스가 호텔방의 비용을 수납해준 건 오늘 저녁까지.

못해도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는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샤워도 하고, 호텔방을 치우고 나니까 시간이 벌써 오후였다. 루이스와 연금술사, 그리고 파비아는 오늘 아침에 카운터에서 새로 받아온 침대 시트 위에서 엎어져 있었다.

나는 홀로 침대에서 일어나 찬물을 부어서 꿀꺽꿀꺽 마시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루이스를 호출했다.

"루이스."

"……읏. 왜, 왜 그래?"

"너, 단추 잘못 끼운 것 같아서."

단추를 한 칸씩 밀려서 채운 탓에 가슴골이 살짝 보인다.

"아, 으, 으으……"

루이스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상당히 수치스러워 하는 얼굴이다.

처녀를 잃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루이스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보여주는 반응이 늘 이렇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같이 느끼는 얼굴.

이때의 루이스는 침착함도 상당히 결여되어 있어서,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대답하곤 한다.

그 정도로 뜨거운 밤이었던 건 사실이다. 루이스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도 그렇다.

지금의 연금술사는 체력이 아예 바닥을 찍어서 혼이 입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안색이 나쁘다. 못해도 오늘 저녁까지는 계속 시체처럼 누워있을 게 틀림없다.

그나마 세 사람 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건 파비아다. 체력은 루이스가 파비아보다 낫겠지만, 파비아는 아직 수치심이라는 개념을 잘 모른다. 그냥 조금 지친 탓에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의 첫 식사는 루이스가 어젯밤 사왔던 음식으로 해결했다. 그다지 넉넉한 양은 아니라서 살짝 출출하긴 하지만, 조금 참을 만 하다.

하지만 슬슬 점심을 먹으러 나가긴 해야 할 거 같은데, 오늘은 어쩌면 좋을까.

그냥 내가 나가서 음식을 사올까. 지금 이 중에서 멀쩡한 건 나밖에 없는 거 같고.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호텔방의 벨이 울렸다.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정면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살짝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 자리에 연금술사와 거의 비슷한 체구의 여자가 서 있었다.

갈색 단발에 조용해보이는 인상. 제3위의 특급 모험가, 스텔라였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마그누스 씨가 눈을 뜨셨거든요……. 지금 두 분을 찾고 계세요."

스텔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킁킁, 하고 뭔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청소도 하고 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완전히 지울 수 있는 냄새는 아니었다. 특히 스텔라 같은 특급 모험가 앞에서는 더더욱 숨기기 어려웠겠지. 하지만 그녀는 조금 이상한 냄새를 감지했을 뿐, 그 정체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얼굴이다.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고 나갈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네."

스텔라를 물러나게 한 뒤 문을 닫는다. 그리고 사이 좋게 대화를 엿듣고 있던 세 명의 여자를 돌아본다.

"마그누스 대장한테 병문안 갈 생각인데, 혹시 같이 갈 사람?"

손을 들지 않은 건 연금술사 뿐이었다. 그녀의 안색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파비아는 왜? 파비아는 마그누스와 말 그대로 얼굴만 익힌 사이에 불과하다.

내가 파비아를 돌아보며 시선을 맞추자, 침대 위에 엎드린 자세로 오른손을 치켜든 파비아가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도 나갈래! 나가고 싶어!"

아, 그러니까 마그누스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그냥 바깥에 나가고 싶어서…….

파비아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비아를 향해 손짓했다. 파비아는 침대 위에서 네 발로 기어서 내려온 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은밀한 움직임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루이스도 침대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찾아서 외출할 채비를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연금술사는 침대와 뱃가죽이 일체화한 것처럼 시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사실 그녀의 체력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력의 도움을 빌려도 그녀의 체력은 우리 중 최하다.

루이스와 파비아와 비교하면 행위의 횟수도 적었다. 그녀가 가장 빠르게 체력이 바닥나서 퍼지는 탓이다.

그녀는 여기에서 쉬게 놔두는 게 좋겠다. 나는 침대 시트 위에 엎드려서 누운 연금술사의 등허리를 검지 끝으로 가볍게 누르면서 말했다.

"그럼 저희만 다녀 올게요. 오는 길에 먹을 걸 사올 생각인데,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응……, 아무거나……"

연금술사는 늘 이런 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리는 음식도 많은 데다가 입맛도 까다로워서, 진짜로 아무거나 사오면 호되게 혼나게 된다.

솔직히 엄청 귀찮은 사람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취향을 맞춰온 지도 어언 10년이다. 취향에 맞춰서 먹을 걸 사오는 건 그다지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다녀와……."

연금술사의 등허리를 살짝 간지럽히고 나서 돌아선다. 그 짧은 사이에 이미 루이스와 파비아는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 현관에 서 있었다.

겨울 옷 위에 코트를 걸치고 현관으로 나왔다.

스텔라는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 서 있었는데, 호텔방에서 나온 우리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서 바라보더니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시죠?"

영 기분 나쁜 시선이라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러자 그녀가 조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어, 그게 저…… 세 분의 마력이 묘하게 동기화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잘못 짚은 거라면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애초부터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를 중심으로 몸을 겹치는 과정에서 이미 그녀들의 마력은 서로 상당히 혼합되어 있는 상태였다.

여자는 셋인데, 남자는 나 하나 뿐이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 자신의 마력 자체에 이미 루이스, 파비아, 연금술사의 마력이 잔뜩 섞여 있는 상황이라, 나와 몸을 겹친 세 여자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성질의 마력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스텔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리송한 상황으로 느껴질 게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정을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 나는 스텔라를 재촉하며 마그누스가 입원한 병원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그의 부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는지, 마그누스는 중환자실이 아니라 일반 병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조금 비싼 개인 병실의 침대 위에, 마그누스가 침대에 등을 기댄 상태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마그누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루이스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에게 있어 나와 루이스는 꽤 아끼는 후배로 여겨지고 있었다.

"오, 왔구나. 나는 도중에 의식을 잃어서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그때 나를 구해줬다지?"

그때, 마그누스를 끝장내려던 제1위의 검을 내가 멈춰 세웠다.

그는 그 직후 기절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네, 상태는 좀 어떠세요?"

"크게 나쁘진 않아. 얼굴 피부는 재생하면 고칠 수 있고, 고치기 어려운 부상도 없다. 타박상과 골절 정도야."

실제로 그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얼굴의 절반을 붕대로 휘어감고 있었다. 부서진 팔과 벗겨진 얼굴의 피부를 치료하기 위해서 깁스와 붕대 위에는 고도의 마력 문자에 의한 술식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너희가 제1위의 폭주를 멈춰 세웠다지? 어떻게 한 거냐?"

"늘 하던 대로 했어요. 검에 마력을 밀어 넣은 다음, 힘으로 부딪쳐서 그가 제정신을 찾을 수 있게 유도했죠."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니라 백신아가 한 일이지만, 원리는 나도 이해하고 있다.

마그누스가 폭주가 주화입마에 의한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그의 정신이 맑아질 수 있게 천변무궁류의 흐름으로 후려쳤다.

백신아에게도 처음 겪어보는 형태의 전투였지만, 녀석은 첫 도전에도 당황하지 않고 훌륭하게 역할을 끝마쳤다.

녀석의 저력은 끝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제1위의 말을 들어보니까, 대장은 그가 주화입마에 빠져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 거 같던데……, 도대체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저지른 겁니까?"

주화입마에 의한 폭주는 진정시키기 쉽지 않다. 그 자리에 백신아가 없었다면 요하네스는 그 콜로세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말살시킨 후에야 간신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그누스와 제1위의 잔뼈가 굵은 최정상의 모험가들이다. 스스로의 힘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나 그 책임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주화입마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승부를 신청한 마그누스나, 그 위험성을 저평가하고 폭주에 휘둘린 제1위 모두…… 내 입장에서 보면 참 못난 아저씨들이다.

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고, 알 만한 아저씨들이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짓을 저지른 거지.

"……그래, 네가 그렇게 타박하는 것도 이해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구나."

마그누스도 할 말이 없는지, 한숨을 가볍게 토해내면서 먼산을 쳐다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요하네스에게 먼저 부탁을 했다. 그 광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큰 무대에서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그리고 요하네스도 거기에 동의했지. 녀석과 나는 오랜 친구이면서, 호적수였으니까."

그건 알고 있다.

제1위와 2위. 두 사람은 늘 서로의 실력을 경쟁해왔지만, 그들 사이에 나쁜 감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경쟁은 언제나 선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마음 속의 어둠을 후벼파지 않고…… 한 사람의 스포츠맨으로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추구했다.

"물론 승부를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요하네스의 광증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와 결판을 내기 전까지는 그 광증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부분은 나도 요하네스도 잘못 생각한 듯 하구나."

마그누스가 양반다리로 앉았다. 그가 고개를 무겁게 숙였다.

"너희들에게는 면목이 없다. 크게 폐를 끼치고 말았구나."

"……제1위는 이제 더 이상 광증의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강의 특급 모험가 자리에서 물러날 거라고 말했어요. 이제부터 최강의 특급 모험가의 자리는 대장이 차지하게 되겠죠."

"달갑지 않은 출세로군. 분하다. 하다못해 내 실력으로…… 당당하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고 싶었다……."

마그누스의 목소리에는 그답지 않은 울적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건 아마 여기에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루이스의 존재가 그의 눈물을 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잘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우울함을 나 또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더 이상 그에게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리고 그 1위의 광증을 불러 일으킨 심득은 저도 전해 들었어요.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분석해서, 1위가 광증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게 구결을 고쳐볼 생각입니다."

"……괜찮은 거냐? 그 심득은 요하네스조차 광기에 물들인 심득인데?"

"괜찮아요. 지금의 저라면."

"네게는 늘 놀라게 되는군……. 그래, 너의 검술은 나는 물론이고 요하네스보다도 아득히 머나면 경지에 있는 검술이다. 그러한 검술을 소화하고 있는 지금의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마그누스는 크게 감탄하면서도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천변무궁류의 잠재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위 경지의 심득은 높은 경지의 심득에 귀속되는 법.

천변무궁류의 수준이 요하네스가 획득한 심득보다 높은 영역에 있다면, 그것을 소화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의 심득을 접하더라도 광증에 빠지는 일은 없다. 마그누스도 그 사실을 이해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결을 고치는 게 심하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재도전의 기회는 머지 않아 옵니다. 그러니까 대장께서도 너무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지금 마그누스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다.

나는 표정이 굳은 마그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강해지는 것만을 생각하세요. 제1위가 그 광증을 완전히 극복하면, 지금의 대장은 손도 대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요."

단언할 수 있다.

요하네스가 그 심득을 완전히 소화하게 되는 그 순간, 제1위와 2위의 차이는 더 큰 폭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미 지나간 패배를 곱씹고 있을 때가 아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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